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이승희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이승희 시집

$12.00
Description
아직은 살아 있는 내가 이미 죽은 내게 건네는 애도의 노래!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문학동네시인선」 제30권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1997년 《시와사람》,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저자의 두 번째 시집이다. 상실과 절망, 죽음의 이미지들이 담긴 시편들로 구성되어있다. 암울했던 여름, 그 존재 자체로 기대어 울고 싶은 의지처가 되었던 붉게 핀 맨드라미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맨드라미로 피어난 식물적 교감을 드러내고 있다.

낡아서 쓸모없어지거나 버려진 존재로부터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도 하며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려 바닥난 존재의 상실감에서 스며 나오기도 하는 쓸쓸함까지 오롯이 담아낸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언젠지도 모르게 잃어버린 시간들과 쓸쓸히 대면하게 하며 삶과 죽음이 손을 잡고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맨드라미는 지금도’, ‘그날’, ‘연신내 약국 앞 포장마차에는’, ‘봉숭아 물들다’, ‘동물원에 태양이 지루하게 떠 있는 동안’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그리운 맨드라미를 위하여

죽고 싶어 환장했던 날들
그래 있었지
죽고 난 후엔 더 이상 읽을 시가 없어 쓸쓸해지도록
지상의 시들을 다 읽고 싶었지만
읽기도 전에 다시 쓰여지는 시들이라니
시들했다
살아서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내가 목매달지 못한 구름이
붉은 맨드라미를 안고 울었던가 그 여름
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때
그래 있었지
오전과 오후의 거리란 게
딱 이승과 저승의 거리와 같다고
중얼중얼
폐인처럼
저녁이 오기도 전에
그날도 오후 두 시는 딱 죽기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울어보았다
저자

이승희

저자이승희는1965년경북상주에서태어났으며,1997년에『시와사람』으로,1999년에경향신문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으로『저녁을굶은달을본적이있다』가있으며,동시집『달에게편지를써볼까』(공저?)와동화집몇권을펴냈다.‘서쪽’동인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말
1부
맨드라미는지금도
제목을입력하세요
늙은토마토는고요하기도하지
봄비는그렇게내린다
그리운귀신
다시봄비는내리고
그림자들
110-33
버려진가방같은
부치지?못한편지
화분
내삶의전부이신막막함이여,
그날
연신내약국앞포장마차에는027
아무도듣지않고보지않아도혼자말하고빛을뿜어내는텔레비전한대가있는헌책방
2부
봉숭아물들다
어느여름날
여름의우울
동물원에태양이지루하게떠있는동안
여름의대화
호텔캘리포니아혹은늙은선풍기의노래
여름이나에게시킨일
살속은적막하다
맨드라미피는까닭은
맨드라미정원
맨드라미손목을잡고
나는당신의허기를지극히사랑하였다
핏물
핏물
빈방있음
3부
안녕052
그리운맨드라미를위하여
가족사진
여름
나는뭉쳐지지않는구름
시절,불빛
갈현동470-1골목
갈현동470-1번지세인주택앞
불빛에쓴다
저녁불빛을따라걷다
코뮌
빗방울에대고할말이없습니다
발바닥에관하여,내가모르고있는
밤의고양이몰리의퀼트
4부
막막함이물밀듯이
쫌쫌쫌
마음비워진집이담벼락에기대어울고있습니다
마음을만드는게아니었음을
상처라는말
절벽가는길
꽃이지거나지지않거나
오,행복하여라
비를맞는저녁
하루살이
다시비를맞는저녁
지겨워……살고싶다는말은
라디오소리는흘러어디로가나
내마음의수몰지구
낮술
해설
│아름다운상실의노래
│이경수(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아직살아있는내가이미죽은내게건네는애도의노래”
-우울과어둠을견디게하는맨드라미의붉은힘
뜨거웠던여름이지나갔다.계절은언제그랬냐는듯싶게무채색으로옷을갈아입는다.여름동안숨막히게푸르던잎들은짧은가을동안급히옷을갈아입고비명처럼색이바래다가힘없이떨어진다.그런계절이다.가을과겨울사이.저녁어스름무렵.어둠으로들어가는입구같은날들이다.이런스산한계절에지난계절의화려함을간직한듯한붉은자줏빛시집이찾아왔다.계절의변화에아랑곳없이거기,여름날의쨍한...
“아직살아있는내가이미죽은내게건네는애도의노래”
-우울과어둠을견디게하는맨드라미의붉은힘
뜨거웠던여름이지나갔다.계절은언제그랬냐는듯싶게무채색으로옷을갈아입는다.여름동안숨막히게푸르던잎들은짧은가을동안급히옷을갈아입고비명처럼색이바래다가힘없이떨어진다.그런계절이다.가을과겨울사이.저녁어스름무렵.어둠으로들어가는입구같은날들이다.이런스산한계절에지난계절의화려함을간직한듯한붉은자줏빛시집이찾아왔다.계절의변화에아랑곳없이거기,여름날의쨍한아름다움을그대로간직한채,마치『거짓말처럼맨드라미가』피어난듯.
2006년첫시집『저녁을굶은달을본적이있다』이후6년만에이승희시인의두번째시집『거짓말처럼맨드라미가』가출간되었다.첫시집에서시인은가난한시절에대한기억,고단한현실에대한응시속에서궁극적인삶의거소(居所)를더듬어찾아가는여정을섬세하고투명한목소리로담아낸바있다.화려한파격이나손쉬운초월에기대지않고,경험적충실성과서정적회감(回感)의원리로단단하고생기넘치는그의작품들은이후이승희시인의시적행보를주목하게하기에충분했다.“부정적인곡괭이보다긍정적인호미”(정호승시인)를사용하여시를짓는다는평을들은바있는시인이지만,이번시집은상실과절망,죽음의이미지들이도처에서읽는이의발목을잡아깊은우울속으로빠지게한다.
첫시집에서부터드러났던시인의식물적교감은이번시집에이르러맨드라미로피어난다.맨드라미는7,8월,뜨거운한여름에개화하는꽃이다.그여름은시인에게젊음과생명의느낌보다상처와상실의계절이었던듯하다.시인은죽음의충동과이미지들사이에서여름을건넌것은아니었을까.그리고그뜨거운상처와우울속에서붉게피어난꽃이있었으니,맨드라미이다.암울했던시인의여름에,붉게핀맨드라미는그존재자체로기대어울고싶은의지처가된다.
맨드라미가맨·드·라·미로피는동안
죽은발톱을생각했다
나는언제부터죽은발톱으로걸었나
밥먹다말고토해버린생
역겨운냄새속에서
미처소화되지못한이름처럼
까맣게살이오른죽음들
발톱에가득모여있다
맨드라미가까만발톱을만진다
아빠먼저죽지마
연두는꽃이져도연두란다
먼저죽지마혹은목매달고사이로
정신없이몇번의계절이지나갔다
여름은너무뜨거웠다고
맨드라미붉은손목에서난오래잠들고싶다고
-「여름」전문
붉은맨드라미를안고울었던가그여름
세상어떤아름다운문장도
살고싶지않다로만읽히던때
그래있었지
오전과오후의거리란게
딱이승과저승의거리와같다고
중얼중얼
폐인처럼
저녁이오기도전에
그날도오후두시는딱죽기좋은시간이었고
나는정말최선을다해울어보았다
-「그리운맨드라미를위하여」부분
“세상어떤아름다운문장도/살고싶지않다로만읽히던”“너무뜨거웠”던그여름은이미시인에게푸른것을찾을수없는계절이다.어쩌면지금우리에게찾아온이계절,어둡고스산하고쓸쓸한겨울초입의느낌으로시인은그여름을지나왔는지모른다.이러한계절을비집고붉은꽃을피웠으니,마치요즈음길가에서붉은맨드라미를만난것만큼이나시인에겐자신앞에나타난맨드라미가거짓말같았을것이다.그래서닭볏처럼길게늘어진꽃모양이꼭잡아놓치고싶지않은손목으로시인에게닿았으리라.온통늙거나시들고죽음을향해가고만있는것들사이에서붉은생명력을보여주는맨드라미는아이(딸)의이미지와겹치곤한다.맨드라미와아이,그리고시가있기에시인은여름의우울을건널수있었다.
사는게그런게아니라고누구도말해주지않는밤.난내우울을펼쳐놓고놀고있다.아주나쁘지만오직나쁜것만은세상에없다고편지를쓴다.
-「여름의우울」부분
꽃이지는소리처럼네무릎가를적시는장물의아침처럼그렇게열손가락끝이빨갛게울어버린밤이지나면,네몸에서핀꽃을보게될거야.그리고네손톱에자라는흰달이다시널마중나올때까지행복할거야.그흰달이기억하는꽃의이름,상처가아물면꽃이핀다는걸알게될거야.
-「봉숭아물들다-솔에게2」부분
“우울을펼쳐놓고”편지를쓰며노는것은시인에게시를짓는일일터.그것이우울을견디는시인의방식이고,“아주나쁘지만오직나쁜것만은세상에없다”는것이시인이하고자하는말일것이다.“상처가아물면꽃이핀다는걸”알기에이제시인도맨드라미,그붉은꽃을피울수있을것이다.그러기위해서아직내몸에남아있는상처와죽음에애도를표하는일은피할수없다.그처럼“아직살아있는내가이미죽은내게건네는애도의노래”는다시금그상처와아픔속으로들어가야하기때문에우울하고쓸쓸할수밖에.그럼에도불구하고이우울과쓸쓸함이빛나는이유는“거짓말처럼맨드라미가”내앞에피어있다는“지금도어디선가제키를키우고있”다는사실을알기때문이다.
이승희의이번시집은뼛속까지쓸쓸하다.쓸쓸함은낡아서쓸모없어지거나버려진존재로부터비어져나오는것이기도하고소중한무언가를잃어버려바닥난존재의상실감에서스며나오는것이기도하다.그의이번시집을읽는내내쓸쓸한바람이불고추적추적비가내렸다.따뜻한불빛과붉은꽃들에대해노래할때조차도어디선가쓸쓸하고우울한바람이불어왔다.이승희의두번째시집을읽는일은그렇게우리가언젠지도모르게잃어버린시간들과쓸쓸히대면하게한다.그것은마치거울을보다문득마주하게된눈가의주름이나기미처럼,책갈피에서우연히발견한번진글씨자국처럼낯설고우울하고쓸쓸하다.깊은상실감과우울감에빠져들게한다는점에서이승희의이번시집은아직살아있는내가이미죽은내게건네는애도의노래로읽을수있다.그의시에서삶과죽음은그렇게손을잡고하나가된다.
_해설「아름다운상실의노래」중에서.
●시인의말
밥먹이고
옷입히고
반짝이는머리핀두개쯤꽂아주고
붉은네손목을잡고아주오래도록걷고싶었다
.
폐허속으로
들어온
천진난만
나는줄게아무것도없어서

즐겁게
노는동안
폐허로살아낼수있었던것
.
정직하게울었고
맨드라미가피었다.
그랬단다,아가야
솔아
2012년가을
이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