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문학동네 시인선 32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문학동네 시인선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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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준 시인이 전하는 떨림의 간곡함!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문학동네시인선」 제32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2017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정(Lyric)’을 담은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고 소외된 것들에 끝없이 관심을 두고 지난 4년간 탐구해온 저자는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산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순간들에 대한 짙은 사유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인천 발달’, ‘지금은 우리가’,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등의 시편들과 함께 저자의 시집을 열렬히 동반하며 그가 시를 쓰던 몇몇 순간을 호명한 허수경 시인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반디미용실 화재, 여직원 1명 사망’으로 일간지 사건사고란에 간략히 보도되고 끝났을 일을 시인은 시로 남겼다. 덕분에 우리는 그녀를,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애도할 수 있다. 불편한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잊지 않으려는 박준 시인의 윤리의식은, 그 ‘떨림의 간곡함’은 진정성 있는 언어로 독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남길 것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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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준

1983년서울에서태어나2008년『실천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당신의이름을지어다가며칠은먹었다』『우리가함께장마를볼수도있겠습니다』,산문집『운다고달라지는일은아무것도없겠지만』,시그림책『우리는안녕』을펴냈다.신동엽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편운문학상,박재삼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나의사인(死因)은너와같았으면한다
인천반달
미신
당신의연음(延音)
동지(冬至)
슬픔은자랑이될수있다
동백이라는아름다운재료
꾀병
용산가는길-청파동1
2:8-청파동2
관음(觀音)-청파동3
언덕이언덕을모르고있을때

나의사인(死因)은너와같았으면한다
태백중앙병원

2부옷보다못이많았다
지금은우리가
미인처럼잠드는봄날
유월의독서
호우주의보
기억하는일
야간자율학습
환절기
낙(落)
오래된유원지
파주
발톱
당신의이름을지어다가며칠은먹었다
학(鶴)
옷보다못이많았다
여름에부르는이름
이곳의회화를사랑하기로합니다
별들의이주(移住)-화포천
광장

3부흙에종이를묻는놀이
모래내그림자극
마음한철
별의평야
청룡열차
천마총놀이터
가을이겨울에게여름이봄에게
낙서
저녁-금강
문병-남한강
꽃의계단
눈을감고
날지못하는새는있어도울지못하는새는없다
꼬마

눈썹-1987년

4부눈이가장먼저붓는다
연화석재
2박3일
잠들지않는숲
입속에서넘어지는하루
희망소비자가격
미인의발
해남으로보내는편지
누비골방
가족의휴일
유성고시원화재기
오늘의식단-영(暎)에게
동생
당신이라는세상
세상끝등대1
세상끝등대2

발문│이번생의장례를미리지내며시인은시를쓰네
허수경(시인)

출판사 서평


박준시의특징가운데하나로‘서사성’을들수있다.일련의서사위에최근젊은시인들사이에서유행하는전위나그로테스크한이미지대신낯설지않은서정으로무장해오히려참신하고편안한느낌을준다.그중에서도특별한것은특정한사건사고의묘사로읽히는시가빈번하다는점인데,그것이시적화자에게어떤의미로남았는지에초점을맞추지않고사건을기록해두는데의의를두는듯해더욱눈에띈다.

반디미용실에서처음낙타를보았습니다미용실누나는쌍봉낙타봉같은가슴사이에제머리를묻고비뚤어짐을가늠했고저는실눈만떴다감았다했습니다(……)누나는동네아저씨들술자리의기본안주가되기도하고아주머니들의커피잔에서설탕과함께휘저어졌습니다(……)낙타가떠난날은감나무집형이소주를댓병으로마신날이었습니다형가슴보다까맣게그을린반디미용실건물,석유말통과담뱃불이반딧불이처럼날아들어왔다는미용실주인은양귀비염색약처럼까맣게울었습니다(……)낙타가사하라로갔는지고비로혹은시리아사막으로갔는지는알수없지만요마음을걷던발자국은아직도남아저는요즘도간혹그발자국에새로만나는미인들의흰발을대어보기도하는것이었습니다
―「미인의발」부분

총무는채점을하다말고잠이들어있었습니다매년이차에서떨어졌던그도,탈출해나왔다면내년쯤에는아마이등병이되었을겁니다그나저나왜결핍의누대(累代)에는늘붉은줄이그어졌는지알고계실까요?

3층에사는여자들이이차를마치고돌아온듯했습니다공동주방에서부치는달걀냄새가온방실을점유하고있었죠스탠드가꺼지고소방벨이울린것은그때였습니다
―「유성고시원화재기」부분

‘반디미용실화재,여직원1명사망’으로일간지사건사고란에간략히보도되고끝났을일을시인은시로남겼다.덕분에우리는그녀를,그녀의삶을들여다보고애도할수있다.구청에서직원이나올때마다정신이돌아와바른말을하는치매노인이실은사복을입고온군인에게속아남편의은신처를알려주고말았던,그리하여혼자가되었던사연을기록으로밝혀줌(「기억하는일」)으로써우리는노인을,노인의바른말을이해할수있다.「유성고시원화재기」를읽으면우리는그곳에살던사람들은떠올려볼수있다.화재가누전인지방화인지끝내알수는없지만“그동안울먹울먹했던것들이캄캄하게울어버린것이라생각”된다는진술자의모호한말이어쩐지명백한진실인것처럼느껴진다.이역시‘유성고시원에서화재가일어나얼마의재산피해와인명피해가있었다’로요약될일이었다.이렇듯박준시인은‘사건’을‘삶’으로바꾼다.대개결핍된사람들의삶이다.“결핍의누대(累代)”를사는사람들.시인은들리지않고볼수없었던이야기들을들리고보이게기록함으로써그들의삶을복원한다.기억되도록하는일,그저그런삶이라치부되지않도록보존하는일,그것은박준시인이불편한이세계를받아들이는방식이자그안에서쉬이잊힌숱한삶들을애도하는형식일것이다.

불편한세계를사는시적화자는자주아프다.“나는매일병(病)을얻었지만이마가더럽혀질만큼깊지는않았다신열도오래되면적막이되었다”(「용산가는길」),“빛을쐬면서열흘에이틀은아프고팔일은앓았다”(「2:8」),“눈을감고앓다보면/오래전살다온추운집이//이불속에함께들어와/떨고있는듯했습니다”(「눈을감고」),“나는유서도못쓰고아팠다(……)한며칠괜찮다가꼭삼일씩앓는것은내가이번생의장례를미리지내는일이라생각했다”(「꾀병」)등과같이시집에는병의기록이무수하다.어째서인가.“한철머무는마음에게/서로의전부를쥐여주던때가우리에게도있었다”(「마음한철」)는지나간사실,“가족이앉은돗자리위로청룡열차선로가만든그늘이옥(獄)의창살처럼내”렸던유년의기억,수학여행에가지못하고“흙에종이를묻는놀이”를하며“결국무엇을묻어둔다는것은시차(時差)를만드는일이었고시차는그곳에먼저가있는혼자가스스로의눈빛을아프게기다리는일”이라는깨달음을온몸에새겨왔기때문이다.요컨대범박한일상속에서“노루처럼/방방뛰어다”(「눈썹」)니다가문득고독한자아를마주하고세계에눈을뜨며얻은일종의성장통이라할수있겠다.이러한자신의병을‘꾀병’이라말하는것은자신보다이세계가더아프리라는인식에서시작될터이다.

아픈‘나’의이마를짚어주는손이있다.“뭐야내가더뜨거운것같아”라고웃으며말하는‘미인’이다.‘유서도못쓰고아픈’내곁에누워잠든미인(「꾀병」),“김치를자르던가위를씻어/귀를뒤덮은내이야기들을자르기시작”하는미인(「호우주의보」).시집곳곳출몰하는미인은‘나’와세계를연결하고,죽음과삶을연결하는매개자로서활약한다.때로는그리움의대상이자연정의대상이기도한데,그것이이성(異性)으로한정되는것은아니다.이세계의,그리고시세계의아름다움에대한시인의열망,이상향으로서의‘미인’으로도충분히읽히며,이는끊임없이앓고있는시적화자를지탱해주는지향점으로기능한다.

그는이세계가자신의위장속에서결국소화될수없을것이라는예감에시달린다.위장안에서소화되지못하는세계도언젠가는불쑥바깥으로나온다.아마도더이상이세계를위장안에담고있지못할거라는시달림.그시달림은소화되지못한세계를바깥으로드러나게만드는동력이다.시달림은“애인의손바닥,/애정선어딘가걸쳐있는/희끄무레한잔금처럼누워”(「미신」)있는상태의떨림속에서진행되었다.그떨림의간곡함이언어로환원되었다.우리는그결과를‘박준의첫시집’이라고부르는지도모르겠다.
―허수경발문,「이번생의장례를미리지내며시인은시를쓰네」부분

세계는내내불편한것일터이고,개인의고통역시사라질수없는것,그러나그것들모두쉽게잊진않으리라는박준시인의윤리의식은,그‘떨림의간곡함’은진정성있는언어로남아독자들의가슴에잔잔한파동을남길것이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