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 좀 빌립시다 - 문학동네 시인선 55

라이터 좀 빌립시다 - 문학동네 시인선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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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학동네시인선」 제55권 『라이터 좀 빌립시다』. 2007년 '현대시'로 데뷔한 뒤 활발한 시작 활동을 보여온 이현호 시인의 첫 시집이다. 라이터를 켜기 전의 어둠과 라이터를 켠 뒤의 밝음, 그 불길이 당겨지는 찰나의 그을린 시간과 삶과 심장의 흔적과도 같은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이현호

1983년충남전의에서태어났다.2007년[현대시]를통해등단했으며,시집『라이터좀빌립시다』,『아름다웠던사람의이름은혼자』등을펴냈다.대부분의시간을방에서고양이두마리와지낸다.누가누가더오래누워있나내기라도하는듯이.

목차

1부아름다운복수들

붙박이창
성탄목
매음녀를기억하는밤
모든익사체는떠오르려고한다
금수의왕
아름다운복수들
마녀의사랑
뜰힘
안녕하세요,당신의고독은
13월의예감
령(零)

2부혼자무렵의태풍

왜이렇게젖어있는가
말들의해변
옥탑에서온조난통신
혼자무렵의태풍
겨울나무에서겨울나무로
궤적사진
현해탄
하나의바늘끝에서얼마나많은천사들이
춤추는가
외눈이지옥나비로생각하기
새들은적우로간다
징크스

3부벤치는열린결말처럼

새로쓰는서정시
봉쇄수도원
북극성으로부치는편지
습관성난청
꽃의온도
거꾸로선쉼표가가리키는것은
국제여관
묵음(默吟)
저녁의작명
벤치
이름,너라는이름의

4부마음이라는이생의풍토병

잿빛
잠든눈송이에입김을불어넣어주려하기로

우주혁명전선
네쪽짜리새들의사전
알지못하는곳으로부터불어온바람이오래
기른머릴흐트러뜨리고갔다
습작시절
복무일기
퍼펙트게임
속항해일지
기항

5부잠잠

꿈에바울을만나고그들을얘기하려했으나
휘파람
나는다시발명되어야한다
몰락의발명
너를기다리는동안새의이마에앉았다간것의이름은
내륙일기
오래된취미
들개를위하여
열리지않는
잠잠
노을섬편지

해설|날씨와별자리의방
|윤경희(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저마다납덩어리하나씩은입에문듯묵묵하고막막한침묵속2014년의6월,그럼에도첫시집을펴내는한젊은시인이있어여기소개하려한다.2007년『현대시』를통해등단했으니올해로시력(詩歷)7년차,83년충남전의에서태어났으니올해로우리나이서른둘이된청년이현호,그가바로이페이지의주인공이다.
총5부로구성하여각부마다11편의시를그러모아모두55편의시를싣고있는이번시집은‘라이터좀빌립시다’라는묘한뉘앙스의제목아래그막강한혈기를화기로숨기는데일단은성공한듯하다.속으로는불을껴안고있으나겉으로는소화기처럼차가운온도를자랑하는‘라이터’라는존재는시적거리감을설명하려할때얼마나적절한예시가되어주는사물인가.게다가빌리겠다니.첫시집임을감안할때이른바숨을내쉬는콧구멍속으로도들었다나가는선배시인들의수많은시구절구절을그대로흡입하기보다잘기억해두었다가내주된요리에양념정도로여기겠다는객기어린치기가얼마나솔직한감정의발로인가.
제목으로앞서그의시를추측해보려목차를펴본다.‘모든익사체는떠오르려고한다’‘하나의바늘끝에서얼마나많은천사들이춤추는가’‘새들은적우로간다’‘거꾸로선쉼표가가리키는것은’‘네쪽짜리새들의사전’‘너를기다리는동안새의이마에앉았다간것의이름은’등등의제목에제법압도당하다가마주한시편들에서마음한편이꽤차분해짐을느낄것이다.의외로고분고분하고사분사분하게말을부리는마부의채찍이그의손에들려있음을알아차렸을까닭이다.시인의시는오로지시를완성으로밀고나가기위해떼를쓰거나악을쓰는쇳소리의생목이아니라차분하나자조섞인변성기전소년의수줍고맑은목소리를가늠케한다.이를테면“나는어쩔수없이이국의여자귀신을믿게되는것이다”라고고백할정도로잘믿는마음에잘흔들리는눈동자랄까.

잠든애인을바라보는묵도속에는가져본적없는당신이란말과곰팡이핀천장의야광별에대한미안함이다들어있었다그럴때운명이란점심에애인이끓인콩나물국을같이먹고,남은한국자에밥을말아한밤에홀로먹는일이었다
-「붙박이창」부분

깍지낀손안의별은지구에서가장환한성냥불그빛가로애인의머리가함박눈같이내려앉았다우리는서로의맘속에이별이다녀갈만큼큰굴뚝을지어주었다꼬마전구들을별무리처럼휘감은겨울나무가계절을잊고이른꽃순을피워올렸다
-「성탄목」부분

그렇다소년.그럼에도여전한소년.오늘우리가이현호라는젊은청년의시집에서소년을불러낸건첫시부터마지막시까지예민하게촉이선소년의솜털이눈물이땀이분노가사랑이두려움이좌절이고스란히드러나고있기때문이다.감추려해도감출수없는모든감각의열림은시의열정으로부터,그열정의떨림은설렘과부끄러움과의지가한데부딪치며내는종소리에서타전되는바,이극단적으로뻗쳐오는시의근육시의내성이삶은두부처럼순하다가도고추장찌개속두부처럼매운혀끝의뜨거움을느끼게도만든다.어떤시작은알았다면어떤끝은알수가없고또알길이없는터라두리번거리면서헤매게되는시의길,시의삶,시의운명.더구나그것이첫시집일경우에누구라도팔아야하는발품의과정이있을터,이시간의힘겨움을아름답게봐주는우리들의눈이있어시라는꼬투리속풋콩들은용기를내어건강하게살을붙여나갈수있는게아닐까.
이렇듯‘사랑’은자신감을불러오게마련이고자만과차이를두는이혈기왕성한자신은밤이든낮이든,산자든죽은자든,온감각을열어제앞에불러낼수있는모든이름들을호명해앉히는데주저함이없다.한없이풀어지다가끝없이풀어버리다가도르르일순감아버리기도하는혀의‘놀림’은예컨대이런시가보이고이런시를써낼줄아는이현호만의순정이기도한것이다.

죽음이가장쉽다.삶은그다음이다.인간의시간을소진하기위해시쓰고노래할때,슬픔은삶보다가까운데서온다.선배와바람이난애인이결혼한이듬해자살하고,외삼촌은공사장에서벼락같이떨어진벽돌에머리가깨져죽고,관상을공부하던친구는군에서제손으로목을매고,후배는이유도모른채살해당하고불태워졌지만(……)//오도카니,삶보다가까운데서차오르는슬픔에배가부를때,생이가장쉽다.사(死)는건그다음이다.
-「현해탄」부분

이현호의시집『라이터좀빌립시다』에서55편의시가빠짐없이투과해나가는구멍하나가있다면바로‘쓰다’라는말일것이다.시인은글을쓰는자인동시에몸을쓰는자이기도하여저만큼앞서몸을던진뒤그만큼글로뒤좇아보기도하고또반대로저만큼앞서글을던진뒤그만큼몸으로뒤좇아보기도한다.몸과글,글과몸,이둘가운데어느무게가상대가앉은시소를가라앉힐지는아무도장담할수없을것이다.다만서로에게기울다말다하는반복속에저도모르게스미는각도가있다면아마시라는종류의이름일것이다.시집을다읽고났을때귀가먹먹하면서묘하게슬픔이인다면,그안개에게먹힌것같은답답한심정에갇혀버린다면,우리는이현호시인이의도한적없지만의도치않게쳐둔그물망에걸려든셈이될것이다.시집을읽다버둥거리며숨막혀하는우리들이라면그것이바로감동일것이다.마지막으로이시를예로보탠다.

복수를사랑한다.그건복수보다아름다운일.그림자는하나의전구빛을나누기위해스스로흐려지면서,하나의꽃술에매달린꽃잎들처럼분신한다.빵조각을나눌수록배고픔은깊어가지만,굶주림에대해이야기나눌사람도늘어난다.퍼즐같은삶의문법안에복수를흩어뿌리기할때,무의미가의미를가지치기할때,투명해지는어깨들.멜빵처럼그어깨에두팔걸치고,흘러내리지않는그림자가될때,가지와가지가어긋매껴만드는그늘아래걸을때,사랑한다,사랑하지않는다……하나둘떨어져나간꽃잎들이퍼즐조각으로완성할아름다운복수들.복수가복수를사랑해서복수가복수를낳는,그건나무더하기나무는숲보다아름다운일.
-「아름다운복수들」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