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강정 시집)

귀신 (강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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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강정 시집 『귀신』.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철학자 진정석은 “몸과 몸을 통한 감각에 직접, 강하게 아니 요란하게 호소하는 방식”이 강정의 시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몸이 열리고 찢어지고 섞이는 비범한 이미지들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덧붙여, “『귀신』에 와서는 차분한 목소리의 시들은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것으로 이전 시집들과 달라진 점을 지적한다.
저자

강정

저자강정은1971년부산출생.시쓰는남자.노래를만들어부르기도하고가끔연극무대에서기도한다.시집으로『처형극장』『들려주려니말이라했지만,』『키스』『활』이있으며,산문집으로『루트와코드』『나쁜취향』『콤마,씨』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도깨비불

1부귀신
내죽음
도근도근
음파(音波)
물구나무선밤
밤의은밀한비행
물의자기장
사슴의뜨거운맹점
암청(暗聽)1
암청2
바다에서나온말
밤은영화관
물위에서의정지
소리의동굴

2부유리의나날
들켜버린한낮
유리의나날
유리의눈
가시인간
거미알
호랑이감정
해바라기
가면의혈통
무대위의촛불
공유결합(共有結合)
한낮의어두운빙점
큰꽃의말
돌의탄식

3부나무의룰렛
봄눈사람
초벌
돼지우리에서
움직이는벽화
봄날,거꾸로선정오(正午)
나무의룰렛
애이불비,까마귀
기이한숲
미스터크로우
겨울빛
천둥의자취凹
천둥의자취凸
최초의책

해설|세상의착란속에서부드러운착란을노래하기
|김진석(인하대철학과교수)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책소개

“바람지난자리의유령발자국들.
말은늘마지막이길바랐다.”

시적언어의순수성을믿는종말론자강정시인이적어내려간
삐딱하고도심각한시

그는펜과기타사이를오가면서생(生)을연주하는퍼포머다.
그는하고싶을때하고,최선을다해하고,빠른속도로한다.
이멋진무분별의에너지를‘강정’이라고부르자.
강정은동사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강정은한국시단에서독보적인존재이다.그는1992년시인이되었다.지금으로부터22년전의일이다.당시그의나이는스물두살이었다.데뷔후4년만인1996년,첫시집이나왔다.『처형극장』은폭발적이었다.무모한에너지가그랬고,종잡을수없이힘있는문장이그러했다.문단안팎의반응또한뜨거웠다.그리고그기억은오랫동안강렬했다.첫시집이나오고9년이지난뒤에이시집을만난고종석은이놀라운시집을몰랐다는것을부끄러워하며“망신(亡身)을무릅쓴진짜배기탐미주의를보기위해서,믿음의순도로만이아니라제례의우아함으로신을기쁘게할진짜유미교(唯美敎)를보기위해서,한국문단은강정의‘처형극장’을기다려야했다”고역설했다.두번째시집이나오기까지는10년이라는시간이걸렸다.죽음과타락의세계를실연해보였던첫시집에서신생의예감을담아낸두번째시집으로건너오면서몸을바꾸고목소리를바꿔야한다고선동했던시인은그로부터2년후,세번째시집『키스』를펴냈다.이시집에서시인은세계와의‘깊은키스’를통해소년에서어른으로올라섰고,그의매력의언어는마력의언어로탈바꿈했다.그로부터3년후,네번째시집『활』에서그는언어라는화살을지나간한세계의적막을향해겨눈다.이네번째시집을추천하는글에서이준규시인은말했다.“그에게귀신이붙어있다면,그들은모두시인이다”라고.
다시3년만에펴낸강정의다섯번째시집『귀신』은이렇게찾아왔다.마치이제껏밟아온시인의시적행보가예고했던것처럼.다시한번,이준규시인의말을빌려,“그리하여저주받은자이고슬픈자이고피를토하는자이고우는자이고또어쩔수없이사랑하는자”인강정시인의시세계는『귀신』에이르러더욱강렬하게독자들을끌어당길것이다.

바람분다

멀리서나무가내팔뚝이되어
구부러진다

땅속을만지는바람의눈

등뒤에서
본디없던강이범람한다

물속어둠에
잡아먹힌것인지
물바깥빛의홍안을
잡아먹으려는것인지

물고기뼈들로도열한후생(後生)의전말(顚末)

하늘빛그득담은,
내허물의마지막홍채
-「내죽음」전문

1부의첫번째시다.‘죽음’은강정의시에서빼놓을수없는화두이다.그의시는끈질기게,죽음을통해서새로태어나고자바라왔다.시인은우선나를지우는일을시작한다.팔뚝이구부러지고,범람하는강에잡아먹히고,마지막홍채마저하늘빛에스미며그속에서지워져가는모습에서강정시인특유의언어감각을엿볼수있다.
이번시집의해설을맡은철학자김진석은“몸과몸을통한감각에직접,강하게아니요란하게호소하는방식”이강정의시를지배하고있으며,“그과정에서몸이열리고찢어지고섞이는비범한이미지들이나왔”다고설명한다.그리고덧붙여,“그래도『활』까지는아직이야기와관찰을통해구성된차분한시들이,매우혼란스러운이미지의난장속에서꿈틀거리는시들옆에공존했었”으나“『귀신』에와서는차분한목소리의시들은아예자취를감춰버렸다”는것으로이전시집들과달라진점을지적한다.“귀신과도깨비들소리를듣고말하느라시인은온통허공에귀를기울이고허공에다말을뱉는다”는것이다.

괴물같기도요정같기도아이같기도어른같기도
남자같기도여자같기도하였다
그렇게
그어느것도아니었다

더잘들키기위해,
더질박한불의살로저들의흑막속에서
더큰몸이되기위해,
우린숨을죽였다
죽여야만다시타는
잉걸의노래를잇새로악물며
숨긴몸속에서속엣것들이
그만의발성으로더큰빛을불러낼수있도록
죽음이라는최초의가면을
서로에게씌워주었다

어머니인지옛애인인지,
나는그들의마지막남자이자최초의여자가되었다
그렇게오랫동안빛을피해
빛의한가운데로빨려들었다

물은더붉게흐르고
하늘위까지물이넘쳐밤의언덕너머,
물의갑옷을벗은시간의알몸이뚜벅뚜벅우리앞에섰다
분명한악당이었으나밥을해먹여주고싶은슬픈짐승이기도하였을거다
그나우리나겁에질렸을것이나그나우리나많이지쳤던것이었을거다
마지막방사의오열이거나거대한그리움의가쁜시종(始終)이기도하였을거다

삼계(三界)를다삼킨빛이다만,
어떤사람의액화(液化)한몸이었을뿐이라는것
-「도깨비불」부분

이것도저것도아닌제3자로귀신은나타난다.이성적인언어는배제하려고하는그들을위해,“숨긴몸속에서속엣것들이/그만의발성으로더큰빛을불러낼수있도록/죽음이라는최초의가면을/서로에게씌워주었다”.이준규시인이“그에게귀신이붙어있다면,그들은모두시인이다”라고했거니와강정시인은이귀신들을통해무엇을말하고싶었던것일까?“분명한악당이었으나밥을해먹여주고싶은슬픈짐승이기도”한존재,“겁에질렸”거나“많이지쳤던”이귀신들을우리는이번시집도처에서만날수있다.그리고강정은그들을환각과환청의기술과기법들을전면적으로확대시켜그리고있다.어쩌면시인은이삐딱한환각을통해언어의벽을뚫고싶었는지도모른다.
“강정은인간의언어이기를포기하고짐승의언어가되길바란다.새와거미와돼지의언어가되기를.또는사랑을말하면서도,부드러움과아름다움을멸시한채,아니,아니,멸시하는척하면서,밀도높은사랑만을하고자한다.그렇다.강정은밀도와강렬함을시의대상과형식뿐아니라,시의재료(언어)와매체(몸)의모든차원에서추구하고자한다.거기서그의시의특징이생긴다.”김진석의해석이이를뒷받침해준다.

희원일까체념일까
책갈피속에서동그란점이하나떨어졌다
지난밤에올려다본달일수도있다
부식토냄새가난다

한개점을오래들여다본다는건
세계로부터자신을덜어내
다른땅을핥겠다는소망

머리를박고울면서
점안으로자라들어가는고통의뿌리로부터
아직태어나지않은
나무와풀들의수원(水源)을찾는다

나는머잖아숲이된다
나무들을끌어안고
나무들의무덤이되어
다시동그란점이된다
지구를알약처럼삼키고
손때묻은우주의벌목지대에서
천년을잘못읽히던책한권,
비로소제뜻을밝힌다
수의(壽衣)벗듯문자를풀어헤쳐
돌의이마위에투명하게드러눕는다

나뭇잎한장이전속력으로한생을덮는다
나는미래의기억을다토했다
-「최초의책」전문

시집의마지막에놓인시.이것은이번시집의풍경을함축적으로보여주는‘시인의말’과연결되어『귀신』을완성한다.“말의회오리는고요의축주변에서/모래알하나도선명하게포착하지못한다”는‘시인의말’첫문장에서,시인은가장격렬한말의회오리를일으키고있는이번시집이실상아무것도보여주고있지않음을미리알려주고있는것이다.어쩌면시인은“바람지난자리의유령발자국들”을좇아여기까지왔는지모른다.“말은늘마지막이길바랐다”는고백은세상의언어로잘못읽힌,그래서“아직태어나지않은/나무와풀들의수원(水源)”에서찾는‘최초의책’을향한염원에서비롯된것일터.죽음은그런시초로돌아가기위한필연적인과정일것이다.
시를통해서죽음을꿈꾸는,“시적언어의순수성을믿는종말론자”강정의새시집이첫시집의강렬함을뛰어넘는이유가여기에있다.

강정의도깨비같고귀신같은시들은싸움,말싸움과몸싸움의기록이다.귀신들과한판붙는것도힘들지만,서정과서사와싸우는것도힘든일이다.여러사람이달라붙어이러쿵저러쿵하는서정과서사와드잡이하기.보통을서정과서사를통해사람들은서로에닿고서로를사랑한다.그런데‘나’는“서로닿지않는영역에서전력을다해자신을지우는게/사랑이다,라고나는쓴다”(「소리의동굴」).‘마지막말’을꿈꿀만하다.서정의예쁜언어도버리고,서사의착한이야기도버리고,끝장이라는난장을벌이기.언어가만들어낸허깨비들틈사이로비집고드러나는도깨비를사랑하기.
_김진석해설,「세상의착란속에서부드러운착란을노래하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