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는이가

은는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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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끝별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은는이가』. 총 4부로 구성을 한 이번 시집은 생과 사의 소란스러우면서도 쓸쓸한 낯빛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통통 튀는 언어 감각으로 자칫 비루할 수 있는 삶에 반짝, 거울에 비친 볕의 쨍함을 희망으로 비추는 시인 특유의 재주가 탁월하게 발휘된 시편들로 가득하다. “일생을 건 일순의 급소”(「사랑의 병법」)를 순식간에 알아채는 육식의 눈이 있는가 하면, 기다리고 기다렸다 “주르륵 미끄러지는 것”(「꽃들의 만(灣)」)을 꽃이라 정의하고 기다리는 초식의 엉덩이도 있다.
저자

정끝별

1988년『문학사상』에시가,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평론이당선된후시쓰기와평론활동을병행해오고있다.시집으로『자작나무내인생』,『흰책』,『삼천갑자복사빛』,『와락』,『은는이가』,『봄이고첨이고덤입니다』,시학서로『패러디시학』,교과서시다시읽기책으로『시심전심』,평론집으로『천개의혀를가진시의언어』,『오룩의노래』,『파이의시학』,『시론』,시해설...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책소개

그러니까이건너무새로운사랑이야기


시인을업으로삼은지26년.그리고다섯권의시집.대략적인계산으로치자면5년에한번새시집을펴낸셈이니시를두고그리서두르지도그리게으르지도않았다는증거.‘그냥그런’속도가실은‘최상의타이밍’이기도하다는알듯모를듯한삶의이야기를품고여기정끝별시인이다섯번째시집을내놓는다.그리하여『은는이가』.지금껏시인이펴낸시집들을열거해보자면『자작나무내인생』『흰책』『삼천갑자복사빛』『와락』이거니와뭐랄까,어떤규격이나기본적인틀은있되그안에서언뜻언뜻비치는자유로움이라든가일탈이라든가묘한천진이꿈틀거리기도하는바,우리문장을구성하는기본적인조사들을조합하여내놓은이번시집『은는이가』까지합하고보니정말이지정끝별시인의시에대한호기심이점점이증폭됨을느낀다.시가거기있다면그곳에서절로몸이휘고시가저기있다면저리에서절로입이트이는시의유연성,그타고남을운명으로살아온시인정끝별.총58편의시가담긴새시집『은는이가』를살짝들여다보자면이렇다.

총4부로구성을한이번시집은생과사의소란스러우면서도쓸쓸한낯빛을적나라하게보여줌과동시에통통튀는언어감각으로자칫비루할수있는삶에반짝,거울에비친볕의쨍함을희망으로비추는시인특유의재주가탁월하게발휘된시편들로가득하다.“일생을건일순의급소”(「사랑의병법」)를순식간에알아채는육식의눈이있는가하면,기다리고기다렸다“주르륵미끄러지는것”(「꽃들의만(灣)」)을꽃이라정의하고기다리는초식의엉덩이도있다.그뿐인가.너무나당연해서,너무나마땅해서자세히들여다볼여지조차가지지않았던사람과사물에이름을붙여주고바라봐주고웃어줄수있는,그래서귀하고중하고유일한존재로만들어줄줄아는모성의가슴도팔할이다.사실우리모두스스로를특별하다고생각한다지만사실너나나나“그냥그런사람”(「그냥그런사람」)이지않은가.그냥그런보통사람들……그러나또한편으로“괄호에묶어둘누군가가있다는건든든한일”(앞의시)이기도하며“담담해서한껏삼삼한일”(앞의시)이기도할것이다.혹여세상에우리같은‘보통사람들’을이시집의제목처럼문장을받치는조사‘은’과‘는’과‘이’와‘가’에비유한다면무리가되려나.

당신은사랑‘이’하면서바람에말을걸고
나는사랑‘은’하면서바람을가둔다

안보면서보는당신은‘이(가)’로세상과놀고
보면서안보는나는‘은(는)’으로세상을잰다

당신의혀끝은멀리달아나려는원심력이고
내혀끝은가까이닿으려는구심력이다

그러니입술이여,두혀를섞어다오
비문(非文)의사랑을완성해다오
-「은는이가」부분

화려한꽃술같은의성어나의태어가아닌,화려한꽃술의꽃받침같은조사하나가문장의고삐를틀어쥐었다는사실,문장을읽고문장을써본자들은무릎을치고알아먹을것이다.하이힐이삐끗하듯조사하나의잘못디딤으로사유까지길을틀기도하는경우왕왕이기때문이다.“한잠에서떨어진단추하나가한잠의사랑을고백하듯/한잠에서떨어진음모한가닥이한잠의배반을부르듯”(「한밤이라는배후」)떨어진단추하나이며떨어진음모한가닥은다름아닌우리……이근원으로부터우리가비롯되었다는사실을누군들모를까.그러나우리는참잘도잊기에평생을크고이름난존재를좇다가“어둠을가늠하는흙의말로/여든다섯에아버지”(「묵묵부답」)가흙에묻히는순간에야비로소눈을깊이내리깔고이렇게묻게되는것이다.“도대체어떤삶을산거야,당신은?”(「별책부록」)

언제죽을지몰라셋방조차구하기어려운독거노인들이외로움에지쳐독방에서이런저런줄을목에걸고,
세상끝놀이를하다정말목을매기도했어
-「목에걸고」부분

파도든해일이든벌건눈으로맞으며
핏줄의피로랄까연명의연속이랄까
냉동과해동을거듭오가다병상에누워
안보여야,셋째아들한테만귀띔한채
그리부릅뜨고계셨던아버지의먼눈
끝내입에넣을수없는

젓가락이들어올린
허공을삼킨동공
-「동태눈알」부분

“모든죽음은자살아니면의문사라고/당신을보내고내가삼킨문장들”(「별책부록」)은다시금세상곳곳으로그시선을가닿게한다.의문을부르는죽음이매순간마다벌어지고그때마다수거하지못한물음표들이곳곳에산재해있는삶에서호기심많은이시인은그때마다구령도없이운명처럼우뚝선꽃과마주하고애인과마주하고시와마주한다.돌고돌아마주한그지점에서맞이한그이름,사랑!“너도쉰소리를내는구나”(「노을」)할만큼연륜깊어진그이름,사랑!‘그러니까이건너무오래된사랑이야기’라는제목으로이시집과함께한시인진은영의발문또한새겨읽어봄직하다.

네가나를베려는순간내가너를베는궁극의타이밍을일격(一擊)이라하고
뿌리가같고가지잎새가하나로꿰는이치를일관(一貫)이라한다

한점두려움없이열매처럼나를주고너를받는기미가일격이고
흙없이뿌리없듯뿌리없이가지잎새없고너없이나없는그수미가일관이라면

너를관(觀)하여나를통(通)하는한가락이일격이고
나를관(觀)하여너를통(通)하는한마음이일관이다

일격이일관을꽃피울때
단숨이솟고바람이부푼다
무인이그렇고애인이그렇다

일생을건일순의급소
너를통과하는외마디를들은것도같다

단숨에내리친단한번의사랑
나를읽어버린첫포옹이지나간것도같다
바람을베낀긴침묵을읽은것도같다

굳이시의병법이라말하지않겠다

-「사랑의병법」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