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시인의 집

$24.00
Description
전영애 교수가 켜켜이 쌓아 올린 시인들의 흔적.
‘개집만한 집’이어도 좋다고 시인은 말한다. 평생 독일문학을 연구하며 수많은 책들을 번역하고 틈틈이 한국어와 독일어로 시를 써온,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전영애 교수의 말이다. 삶은 어쩌면 평생에 걸쳐 안주할 단 하나의 집을 찾기 위한 여정은 아닐까. 저자의 말처럼 개집만큼 작은 집이어도 말이다. 힘겨운 대낮의 일상을 마치고 어둑해지는 길들을 지나서 마침내 돌아가 곤한 몸을 누일 장소. 물리적인 의미를 벗어난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장소, ‘집’.

저자는 혼자서 감당해내기 힘든 큰 물음에 직면할 때마다 먼 길을 나섰고 시인들을 찾아다녔다. 게오르크 트라클, 파울 첼란, 잉에보르크 바하만, 볼프 비어만, 고트프리트 벤, 프리드리히 횔덜린, 프리드리히 쉴러, 요한 볼프강 괴테까지. 총 열세 명의 발자취와 거처를 담은 『시인의 집』은 단순한 탐방기가 아닌 큰 물음의 무게를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달려갔던 먼 길들을 기록한 낱글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쿤체는 저자에게 시를 쓰게 해준 은사이자 동료다. 그 인연으로 쿤체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저자가 쿤체의 집 근처, 도나우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작은 한옥을 짓기도 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문 앞에 섬으로써.
저자

전영애

저자전영애는서울대를졸업하고,1996년부터동대학교독어독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독일프라이부르크고등연구원의수석연구원,뮌헨대학교의초빙교원을겸임했다.2011년바이마르에서‘괴테금메달’을수상했다.『어두운시대와고통의언어?파울첼란의시』『괴테와발라데』『서·동시집연구』(공저)『독일의현대문학?분단과통일의성찰』등많은저서를펴냈고,시에관한네권의연구서를독일에서펴내기도했다.『카프카,나의카프카』『프란츠카프카를위한무지개』등의시집을국내와독일에서펴냈으며,『괴테시전집』『서·동시집』『데미안』『변신·시골의사』『나누어진하늘』『보리수의밤』등60여권의책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발트해연안의부동산-에스토니아문인의집·011
만남의돌문턱-트라클의잘츠부르크/인스브루크·029
유리병편지의부름-첼란의부코비나·047
시인의마지막발자국-첼란의파리1·065
삶의집,죽음의집-첼란의파리2·083
물,불,시의,언어의끝-바하만의로마·103
떠도는사람들의거리-카프카의프라하1·125
겹겹의문,겹겹의뜰-카프카의프라하2·145
해뜨는언덕끝집-쿤체의도나우강가·163
시인,시인의집-쿤체의초대·179
잠시서울에켜진독일서정시인의등불-라이너쿤체방한기록·193
두이노성과비가-릴케의아드리아해·221
바람속,장미곁의묘비명-릴케의라론계곡·237
말테의도시-릴케의파리·255
파리의미아-하이네의파리·277
노래속에지은집-하이네의로렐라이언덕·293
세상을바꾸어보려한문인-브레히트의베를린·311
분단독일의가수시인-비어만의베를린·333
극렬했던모더니즘-벤의마부르크·351
맨머리로뇌우속에섰던시인-횔덜린의네카강변·371
우정에놓은기념비,환희의송가‘기쁨에게’-쉴러의마바하·389
큰시인의집,괴테하우스-괴테의바이마르·409
큰시인을빚어낸곳-괴테의프랑크푸르트·431
길위의집,카사디괴테-괴테의로마·453
길끝의집,노시인의마지막사랑-괴테의마리엔바트·475
에필로그여주시강천면걸은리-마침내찾은나의거처·491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그모든것을확인하려고,
나는또다시멀고먼세상끝까지달려갔다왔나보다.
알수없는부름에,목마름에이끌려.”
마음을누일방한칸을찾아가는머나먼여정
삶은어쩌면평생에걸쳐안주할단하나의집을찾기위한여정일지도모른다.힘겨운대낮의일상을마치고어둑해지는길들을지나서,마침내돌아가곤한몸을누일장소.우리는그곳을‘집’이라고부른다.집이없는자에게는휴식이없다.주변을온통경계하느라잠조차편하게잘수가없다.정처없이떠도는여행자라할지라도,그날밤의거처를생...
“그모든것을확인하려고,
나는또다시멀고먼세상끝까지달려갔다왔나보다.
알수없는부름에,목마름에이끌려.”
마음을누일방한칸을찾아가는머나먼여정
삶은어쩌면평생에걸쳐안주할단하나의집을찾기위한여정일지도모른다.힘겨운대낮의일상을마치고어둑해지는길들을지나서,마침내돌아가곤한몸을누일장소.우리는그곳을‘집’이라고부른다.집이없는자에게는휴식이없다.주변을온통경계하느라잠조차편하게잘수가없다.정처없이떠도는여행자라할지라도,그날밤의거처를생각하며움직이지않으면안된다.몸과마음을쉬게할곳.든든한식사와따뜻한차한잔을마실수있는곳.그리고마침내구원받을수있는곳.
그렇다.예컨대,이런손의떨림을둘곳이있어야했다.아직도떨림이남아있는이손끝으로돌아앉아적어야할것이내게도있었다.가끔은식당의냅킨에,운전하다손에잡힌휴지쪽에휘갈기듯쓴그것들을둘곳이있어야했다.개집만한집이라도있었으면했다.드러눕지못해도괜찮으므로.(……)내글을쓸곳이필요했다.(491쪽)
‘개집만한집’이어도좋다고시인은말한다.평생독일문학을연구하며수많은책들을번역하고틈틈이한국어와독일어로시를써온,서울대독어독문학과전영애교수의말이다.물론그집은물리적인의미에서의장소만을가리키는것은아닐것이다.아무리편한장소에있어도마음이불편하다면그곳은집이아니다.나라가아니며세상이아니다.
내갈비뼈위로다시수레바퀴들이구르는것같았다.불안했던저1980년대내내나는자주,수레바퀴가내가슴위를천천히굴러가고있는듯한통증을거의신체적으로느꼈다.정말신체적으로.떨친지오래된그고통이다시생생해진다.그러나어느덧수레가되어,나는또무슨짐승의위를굴러가고있는지.(12쪽)
“한생애의발자국들위에내발자국을얹어본다”
저자는혼자서는감당해내기힘든큰물음에직면할때마다먼길을나섰다.그렇게시인들을찾아다녔다.게오르크트라클,파울첼란,잉에보르크바하만,프란츠카프카,라이너쿤체,라이너마리아릴케,하인리히하이네,베르톨트브레히트,볼프비어만,고트프리트벤,프리드리히횔덜린,프리드리히쉴러,요한볼프강괴테까지.더많은이름들이있겠지만,이책에는총열세명의발자취와거처를담았다.
그들은모두지진계처럼세계의아픔을온몸으로감지한사람들이다.불행했던삶도많다.세계대전의전화戰火속에서자살한트라클,적의언어로시를쓰다센강에몸을던진첼란,쇠약해진몸을가누지못해집안에서일어난불길을미처피하지못한바하만.온세상이전쟁터였고,어디서나사람의목에칼끝이드리워져있던시절이었다.
생각하는사람의눈에는세계가어두웠다.전쟁은지났고“평화”가왔다지만바하만의눈에는세상이,매일매일이눈에보이지않는전쟁의연속이었다.(109쪽)
그리고카프카.그의눈에비친인간은‘법앞에서’벌레로‘변신’해버렸다.
무어라부를까.시인은아니다.소설을썼지만작가나소설가라는명칭을앞에붙이기도어쩐지마뜩잖다.굳이보통명사가와야된다면‘문학’이어야할것같다.문학이어도그결정結晶,시같다.시이다.(125쪽)
절박한삶앞에서온몸으로고통을겪는이라면그이를어찌시인이라부르지않을수있겠는가.저자는카프카를통해문학을,시를배웠다.
돌아보면,카프카읽기로나의문학‘수업’이시작되었다.카프카의작품을옮기는일로내독문학공부가시작되었고,그러면서문학이라는큰세계가압도적으로열려왔다.(……)인생에대한아무런전망도설계도할수없던그적막한시절,좁은방에엎드려한글자한글자또박또박카프카를옮겼다.(126쪽)
특별한인연도있었다.독일의시인라이너쿤체는시인으로하여금시를쓰게해준은사이자동료다.그인연으로쿤체가한국을방문하기도하고,저자가쿤체의집근처,도나우강이내려다보이는언덕위에작은한옥‘시정詩亭’을짓기도했다.
오래허공에떠있었다.내릴곳이없었다.어디에내려야할지몰랐다.여러해된그절박한물음을들고,나는어느눈내리는겨울날한시인의집문앞에섰다.(163쪽)
이책은이러한인연으로부터시작되었다.어느날,한사람이다른사람의문앞에섬으로써.반체제작가로지목되어탄압받았던구동독출신의시인라이너쿤체는,꼿꼿하고올곧은저항시인이면서도섬세함과따뜻함이밴시를쓴다.그런가하면,같은저항시인이지만브레히트와볼프비어만은거침없고정치적인발언가들이다.
극작가브레히트라면몰라도시인브레히트를내가지나쳐갈수는없다.그러나지금껏한줄도브레히트에대해글을쓴적이없다.(……)목청높인예술의윤리와당사자의삶의그것사이의잦은어긋남에대한나자신의태도에정리가필요했고,스스로의그침없는자기비판과반성에도정리가필요했다.(315쪽)
릴케역시저자의마음에남아있는시인이다.전영애는릴케를찾아망망한아드리아해의두이노성으로,육신이묻힌라론계곡으로,그리고그가『말테의수기』를썼던파리로향했다.그곳에남은첼란과하이네의흔적들도함께좇으며.
어느겨울날시인파울첼란의자취를찾아파리의길들을더듬어걸을때였다.첼란이오가던길에선명히찍힌그의발자국아래거의언제나또하나의희미한발자국이겹쳐찍혀있었다.아마도그래서였을것이다.첼란의자취를기록하고나서도마음이자주파리의거리들을되짚어걸었던것은.(255쪽)
늘‘시의부근’이었다.저자에게는‘삶의부근’이기도했다.하이네의노래로유명해진로렐라이언덕,벤의정신세계를선연히보여주는듯한이층도시마부르크,광인이된횔덜린이좁은방안에서후반생을보냈던네카강변,그곳에서한시간남짓떨어진곳에있는조그만마을인,쉴러가나고자란마바하까지.그리고마지막에는늘괴테가있다.
문과대도서관책꽂이의G자(즉주로Goethe)뒤,내창가자리에다시앉는것만으로도열려오는하나의세계가있다.온갖의무에매여살다보니점점찾기어려워지는나자신만의소중한시간이그곳에서쌓이기때문이다.(431쪽)
전영애는일평생괴테연구에매진해온세계적인괴테권위자이기도하다.2011년에는아시아인최초로독일바이마르괴테학회에서시상하는‘괴테금메달GoldeneGoethe-Medalle’을수상하기도했다.
지상의어느한구간,또공중에뜬한구간,그러나나는내마음속에깃든시한편을되풀이해서읽는다.이것이누릴수있는기쁨가운데하나라는생각이든다.(13쪽)
그에게살아가는힘이되어준것은언제나시한편이다.그가찾아나섰던시인들과마찬가지로.그리움이깊어한국어가아닌독일어로글을써내려가기도했다.첼란이그랬고,카프카가그랬듯.그렇게모인시들이독일에서출간되기도했다.
그러나나는헤매고있었다.두개의언어사이에.시인이라면,평생을쏟아이제모국어를다루는정치함에있어서어떤경지에올라야마땅할나이에,자주문법마저틀리는서툰외국어로시를쓰고있는자신을합리화할길은없었다.어디론가내리고싶었지만,내릴곳을알수없었다.그러나언젠가어디에발이닿는다면,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