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 (김정환 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 (김정환 시집)

$10.00
Description
김정환의 시집『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 시인이 지난 3년 동안 쓰인 시들로, 이들 시편들이 총 3부에 나뉘어 담겨 있다. 1980년 데뷔 이후 그가 써왔던 시의 계보, 역사를 담보로 현실을 증거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지경의 탄탄한 장시들을 독보적으로 선보인 특유의 시풍을 이번에도 엿볼 수 있다.
저자

김정환

저자김정환은1954년서울에서태어났다.1980년계간『창작과비평』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지울수없는노래』『황색예수전』『회복기』『좋은꽃』『해방서시』『우리,노동자』『기차에대하여』『사랑,피티』『희망의나이』『하나의이인무와세개의일인무』『노래는푸른나무붉은잎』『텅빈극장』『순금의기억』『김정환시집1980~1999』『해가뜨다』『하노이-서울시편』『레닌의노래』『드러남과드러냄』『거룩한줄넘기』『유년의시놉시스』『거푸집연주』등이있다.백석문학상과아름다운작가상을받았다.

목차

시인의말

1부
ps.
지명의호의(好意)
인쇄소
각도
좋은여자후배시집
액체황홀
고립의역정
시장→장터→시장,서울토박이-공지영과김
인숙에게
성(城)
내몸에
야구
모기실내
사각(死角)
한성부지도
분명

생가주변-편혜영에게
선데이서울김태희

2부
構想의具象,혹은중력의수평-신학철(1944~)작,<한국현대사-갑순이와갑돌이>(2002,oiloncanvas,130××200cm,8pieces/122×200cm,8pieces).좌에서우로도읽음.
물지옥무지개-세월호참사의말
최근미국사정-그리고슬픈순간의영원,1990년
서라벌레코드사발행

3부
건물노후
점,뿐,속
31년
격자의강대나무
신(神),첫,지구
소리-김숨에게
방해-이시영에게
스캔들혁명사
나무방전망
뉴질랜드소
이빨빠지는나날
젖무덤전망햇살체
지명의안식(安息)
길찾기-이병창에게
도미대가리매운탕
성묘
원전노후(老朽)
『미학오디세이』20년,정말?-진중권에게
보유(補遺):발굴바벨탑토대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책소개

김정환시인의신작시집『내몸에내려앉은지명(地名)』을펴낸다.시인의말마따나지난3년동안쓰인시들로,이들시편들이총3부에나뉘어담겨있다.‘지난3년동안’이라는말에서이번시집의힌트를찾는다면무리가아니겠나하겠지만,오히려그밝힘이이시집을이해하는데중요한안내표지판이된다는걸앞서밝히고싶다.우리에게지난3년의시간은어떠했나.매일같이일어나고습관처럼빚어지는사건사고의참혹함은해결될기미없이오늘도현재진행형이고,무엇보다민주주의라는정신은뒤로더뒤로더는갈데가없음에도계속후퇴하며벼랑끝까지밀려가고있는게또한우리들의현실이기도하다.그런데아니라고?“하늘엔조각구름떠있고강물엔유람선이떠있고저마다누려야할행복이언제나자유로운곳”이라고?아그러니까우리대한민국이라고?우리조국이라고?그런데우리는왜이렇게힘들까.그런데우리는왜이렇게슬플까.
김정환시인의이번시집은지난1980년데뷔이후그가써왔던시의계보,그러니까역사를담보로현실을증거로그누구도따라올수없을지경의탄탄한장시들을독보적으로선보인김정환만의시적장기들이유감없이발휘된한권의수작이다.시의정신과시의입말이같은보폭으로그궤를맞추고있다는점이특히나놀랍다.정신이앞지르면시의문체라는가랑이가찢어지고,문체가앞지르면시의정신이라는옆구리가터지는데김정환시인은이둘의조합을조화로이이뤄낸다.“인간으로살았다는게그렇게신기할수가없다”라는자조섞인오묘한인정이언제나그를균형있는‘인간’으로생각하게하고쓰게하고행동하게만든것은아닐까?시에서그는세상을넓고얕게보기도하고좁고깊게도볼줄아는까닭에다면의눈을자유자재로떴다감는입체성을선보인다.더불어굵고진한테두리속유려하면서도미려한그의시적컬러를나는다음과같은시에서쉽게찾아내기도한다.

여보.우리가당분간유지할것은연민의각도다.
산자들의번화가아니면
비린내질펀한어촌근해집어등야경이우리앞에
다시출현할때까지.울음이울음의흔들림을
선이선의흩어짐을,수습할때까지.아니면
할수없는거다여보.그것은우리몫의연민.
바다가멀리멀리물러나일직선에가닿을때까지.
벽에걸어두고온모자가걸린다.그무게의
부재가많이걸린다.
-「각도」부분

옛사람이글씨쓴것아니고옛글씨가사람쓴것아니다.
한용운이영원히살았다며내게보낸한문우편엽서
답장으로쓴다.스스로장한너의일을하라.알게모르게
죽음도문제는죽음이아니고생이다.
아니,자신이생에속수무책이라는사실말고
죽음이무얼더알겠는가?
-「고립의역정」부분

우리가사라지는것도모르고사라질수있다.
우리가사라진것도모르고사라질수있다.
그건차라리낫겟지.그때사라지지도못한
사람들생각하면생이,잔존하는생명이
끔찍그자체일수있다.
원전노후,
그것은괴물이스스로그러기전에자신을폐해달라는
말.괴물자신의마지막
필사적인인간언어의
말,말의마지막인호소.
왜그것을인간이알아듣지못하나?
우리마을에나라를집어삼킬,
낯익은괴물이있다.
호소하는낯선괴물이있다.
-「원전노후(老朽)」부분

무엇보다그라는시인의가장큰미덕은누구든가르치려드는권위와교조로부터가장멀리있는사람이라는점이다.그는물과같은사람이다.흐르는사람이다.섞이는사람이다.그러나어디로흘러야하고흘러가야하는지는제몸이귀신같이알아채서제가가지말아야할길로는절대물한방울도튀게하지를않는사람이다.마구흩어져있는듯한분산인데그나름의공식이존재하는일사분란이다.혀를내두를만한숙련이라하면평생시로산시인에게실례가될수있는말일테지만솔직한것이얼마나대범해질수있는지그대범함속에얼마나많은삶의길항이자연스럽게머물다갈수있는지그는제시속에다양한삶의가지가지들이놀다갈수있게자연스럽게몸을내어주는대신흥을얻어내는데성공한다.흥은흥을만나더한흥으로몸을부풀리는흥겨운더하기이자리듬의곱셈.굳이리듬감을강조하지않았는데도우리가이시들을노래처럼흥얼거릴수있다면이는그가부린흥의그물망이참으로탄력적이기때문이라고밖에해석할여지가없겠다.또한다음의시를보자.

아내가출근전에팔팔끓여놓고간
도미대가리매운탕다시끓여
나홀로점심먹는다.땀을뻘뻘흘려도
도미대가리매운탕
새빨갛게맵고새까맣게짜도
소용이없다.
어두봉미*눈알을파먹는거
별거아니고잠깐이고
동굴이다.
춥고끔찍하여최소한
아내와내가있었지.
얼굴살뜯어먹으면서서히
드러나는생선
두개골,광년너머
지질연대의.
특히백악기의.
인간이먹는죄가
진화를능가하고그것이참으로
빠른시간의먼
거리(距離)였구나.아내와나
순식간멀리떨어져
아내도없고나도없다.
소름끼치는데소름이라는낱말이없는그

백악기에내가있다.아내는어느연대에?
그리운,그리운
구석기여,음식의
죽음이보였던.인간종(種)의
희망이여,살갗이었던.
아내여,이모든것이었던.

*魚頭鳳尾.‘물고기는머리쪽,새고기는꼬리쪽이맛있다.’
-「도미대가리매운탕」전문

이시집에서특히나주목해서보아야할페이지가있다면바로2부의시편들이다.신학철선생의그림<한국현대사-갑돌이와갑순이>와함께펼쳐진장시「構想의具象,혹은중력의수평」속에서우리현대사를찬찬히읽어나가는과정을배울수있었다면,‘세월호참사의말’이라는부제가붙은「물지옥무지개」는시인이“2014년5월5일,그러니까참사의수가뒤늦게,어처구니없이,그러므로더욱지리하고더욱지리한바로그만큼더끔찍하게,304로변경확인되기전에쓰”인것으로,그날로부터2년이지난지금까지도답보속에있는세월호참사의현장을보다객관적이면서도저마다의주관적인판단을해보게끔열어주는의미로시의제기능을다해내고있다.있는사실을정확하게짚어내고있을뿐인데참혹해서견딜수가없다.나라의국상이라지않는가.나라가다할때까지울어야할국상이라지않는가.

1
자식잃은부모들,슬픔에희망이없다.슬픔을모르는자더욱희망이없다.

6
죽은어린이날이있다.죽은어버이날이있다.죽은스승의날이있다.오그밖에이러고도세상이돌아가다니,우리가살아있기는한건가?

10
너무나지리한슬픔의미분(微分)으로넘어간다.왜냐면주검들의소문만끝없이이어진다.너무나느닷없는충격의적분(積分)들로넘어간다왜냐면끝까지기적을포기할수없었다.

19
무지개뜨지않았다.박제된시간위로투명한어깨들이고개숙이고있다.늦는남편이늦는아내가늦는아이들이영영돌아오지않을것같다.

26
무지개뜨지않았다.열달품어낳은자식인데열며칠만에인양을할수는없다……실종학생부모의절규가절규의뒤늦은등장을알수가없다.

29
내이름은세월호참사.울음이나라의한몸일때까지울어보자.

30
무지개떴다.무지개떴다.여기가물지옥,퉁퉁불은무지개떴다.
-「물지옥무지개-세월호참사의말」부분

『내몸에내려앉은지명(地名)』을다읽고나면내가한권의시집을읽은것인지한편의시를읽은것인지가물가물헷갈릴수도있을것이다.한호흡으로쓴시와한호흡으로완성한시집이라는품은그리쉽게만날수있는질그릇이아니다.질그릇을깨든질그릇을애지중지여기든이제남은몫은읽는자들의것.다만이시집을관통하는정서를짧게요약해달라면이렇게덧붙일수는있겠다.“비운보다인과/응보로느껴져야했다./조선왕족들자존심이아직남아있었다면말이지./끔찍한비만틈틈그비좁은길로쏟아져나온/백성들의인산(因山)/인산인해./통곡하는슬픔보다더불쌍한그슬픔의짐을/비좁은길보다더비좁게옥죄는데써야했다.”(「한성부지도」부분)이것이바로우리다.일제강점기이후에도여전한,우리로부터단한걸음도나아가지못한우리를가리키는커다란비유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