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모든것이무너져내리는파상의시대,해답은있는가
2016년11월12일.광화문일대는사람들의거대한물결과함성으로가득차올랐다.촛불이밝혀졌다.세종로사거리,서울시청앞을지나종로와을지로일대,그리고숭례문까지.주최측추산100만명의사람들이거리로나왔다.남녀노소할것없이대통령하야를외쳤다.1987년6월항쟁이후최대규모의시위였다.어떤것이부서져내리고있고,새로운무언가가그속에서꿈틀거리고있다.그토록강력하던지배의블록이어처구니없는주술적허상이었다는믿기힘든현...
모든것이무너져내리는파상의시대,해답은있는가
2016년11월12일.광화문일대는사람들의거대한물결과함성으로가득차올랐다.촛불이밝혀졌다.세종로사거리,서울시청앞을지나종로와을지로일대,그리고숭례문까지.주최측추산100만명의사람들이거리로나왔다.남녀노소할것없이대통령하야를외쳤다.1987년6월항쟁이후최대규모의시위였다.어떤것이부서져내리고있고,새로운무언가가그속에서꿈틀거리고있다.그토록강력하던지배의블록이어처구니없는주술적허상이었다는믿기힘든현실에대한각성과환멸이분노로서표출되고있다.
21세기들어한국사회에는신자유주의적양극화와불평등심화,민주주의의후퇴,지도층의무능과부패,삶의안전을위협하는각종재난과사건들이닥쳐왔다.세월호가침몰했고,백남기농민이사망했다.무언가근본적인것이해체되고소멸해가고있다는시대적감각이우리삶의일상을근원적으로규정하고있다.
사회가,사회의마음이꿈꿔온모든것들이무너져내리는파상破像의시대.사람들은기왕의가치와열망의체계들이충격적으로와해되는체험앞에속수무책으로맞닥뜨린다.9·11테러,2008년금융위기,3·11동일본대진재,이슬람국가(IS)들의등장등,파국적으로엄습해오는재난과위협이우리시대를특징짓는어지러운풍경을이루고있다.이러한파상의시대는문명사적으로대변동의시기이며,대안이명확하게드러나지않은상황에서과거의꿈들이자신의한계를드러내며문제화되는시기다.
사회학자김홍중은바로그‘현장’에발딛고서있는동시대의증인이다.『마음의사회학』이후7년만에펴내는이책에서,그는우리시대가지난100여년간사람들이격렬하게품었던꿈들(문명개화,해방근대화,산업화,민주화,세계화)의성취와실패,기억과망각,매혹과환멸의복잡다단한퇴적층이자미래를당겨오는다수의몽상구성체들이격돌하는전장이되었다고말한다.저자는특히과거의꿈들이부서져가면서형성된마음의폐허에집중하면서,한사회가꿈을통해어떻게공통의미래를생산하는지,그리고동시에그렇게구성된미래의꿈들이고통스럽게붕괴하면서역설적으로새로운희망이움터나오는지를섬세하게점검하고있다.
이는50여년전C.W.밀스가『사회학적상상력』(1959)에서보여준낙관적전망과는큰차이를갖는다.우리시대의상상력은기업에서훈련시키고,자기계발속에서육성되고실현되는목적합리적행위의한유형으로전락했다.울리히벡의위험사회론,바우만의액체근대성,기든스의재귀적근대,보드리야르의사회적인것의종언등여러학자들의진단이내려진21세기의맥락에서보면,밀스가약속했던‘상상력想像力’은더이상의미를갖지못한다.상상력을강조하고,거기에내포된인간의창조력을중시하는것은불가피하게미래를장밋빛으로물들인다.그래서현실의고통과비참을적확하게포착할수없다.상상력이아닌파상력破像力에대해이야기하는이유가거기에있다.
몽상과각성
제1부인‘몽상과각성’에실린글들은집합적몽상이허물어지면서드러난리얼리티의참혹한민낯에대한예민한증언과관찰들이다.김홍중은나가사키원폭투하로부터이야기를시작한다.핵이후의시대를사는인간에게희망이있는가묻는다.7만4000명이죽고,20만명이상이부상당한이참사이후인간이라는존재는‘사멸적인것들의유’의위치에서‘사멸하는유’의위치로바뀌었다.원자력의시대는여러시대들중한‘시대’가아니라모든시대들이끝을향해감에있어형성된잠깐동안의‘유예’에가깝다.
방사능에의해오염된인간들에게“한아이가우리에게태어났도다”는더이상복음이되지못한다.그것은누군가가또길고치유할수없는,사악한고통의세계에던져졌다는사실의통보일뿐이다.그것은더이상미래의새로움의기약이되지못한다.과거의악한씨앗이피워낸악한과실일뿐이다.그렇게태어난한아이는더이상메시아가아니다.그는환자이다.미래의화신이아니라한희생자이다.(31~32쪽)
이는자연스레3·11동일본대진재에관한생각으로이어진다.후쿠시마의원전들은여전히현재인간이가진과학기술과힘으로어찌할수없는상태에내던져져있다.3·11의충격은근대성의뿌리로기능해온기초적사유범주들의자명성을흔들고있다.인간중심주의,이성에대한신뢰,과학주의,생명과자연에대한철학등이급진적으로재고되어야하는상황이다.
우리가결코잊을수없는사건도있다.세월호이야기다.김홍중은이사건을목도한국민들의마음이부서졌다고말한다.이마음의부서짐은일반적인우울이나무기력과같은병증으로구분할수없다.그것은바로‘주권적우울’이다.참사후우리는모두마음이부서졌고,그결과말이부서졌으며,아무것도할수없는집단무기력의상태에빠졌다.저자는이를‘통감痛感의해석학’으로극복하고자한다.
이어골목길의미학화현상을탐구하면서,신자유주의적삶의환경에던져진21세기의한국인들이골목길이라는몽상공간을통해과거에대한자신들의향수(노스탤지어)를어떻게육성해왔는지를보여준다.또한21세기들어크게흥행하기시작한일련의유괴영화들을분석하며,특히납치된아이의의미에대한해명을통해위험사회로접어든한국사회에서부모들이어떻게아이(자식)를가장소중한존재(토템)인동시에합리적으로관리되어야하는존재(리스크)로구성해왔는지,그역설적상황을드러낸다.신경숙소설에서그가발견하는것은,사랑의꿈이환멸로귀결되는우리시대의친밀성의파상에다름아니다.그에의하면신경숙소설은386세대가사적영역에서어떻게민주적가족관계를구축하는데실패했는지를보여주는문학적징후다.
생존과탈존
제2부는‘생존과탈존’이라는제목아래‘서바이벌’이시대정신이되어버린세계의비참을다룬다.‘저항’‘반항’‘자유’‘도전’의상징이었던이전세대의청년들과달리현재의청년세대들은‘생존’을하나의‘주의’로삼아버렸다.이들이추구하는‘생존’은목숨의구제가아니라경쟁상황에서잔존하여최소한의안전을확보하는것에가깝다.
생존주의란당혹스런개념이다.왜냐하면,생존은그본성상주의主義와결합할수없기때문이다.생존은주의이전,성찰이전,사고이전의,생명의충동과힘의영역을지칭하는용어이다.목숨이붙어있는존재로서생존에의경향성을벗어던질수있는존재는없으며,살기위해서몸부림치는존재들은비난의대상이아니다.생존에의열망은자연적인것이며,선악을넘어서있는것이다.문제는생존이,조직된주의가될때,지향된가치가될때,집합적마음의짜임의원리가될때이다.생존이주의로서나타날때,그것은무언가의붕괴를지시하고있다.(291쪽)
「동아시아생존주의세대의얼굴들」은한국,중국,일본청년들의얼굴을통해바라본사회상이다.한국의‘88만원세대’,중국의‘바링허우八十後세대’,일본의‘로스트제너레이션lostgeneration’은비슷한특징을공유하는세대다.중국의한젊은화가의자신만만해보이는얼굴사진과,일본화가이시다테츠야의그림에나타난우울의얼굴들,윤태호의만화『미생』에서보여지는장그래의얼굴에나타난무표정과체념을설명하며,김홍중은이를198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