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아무도 아닌

$12.00
Description
작품으로만 남고자 하는 작가 황정은의 의지가 담긴 소설집!
황정은의 세 번째 소설집 『아무도 아닌』. 《파씨의 입문》이후 4년여 만에 펴내는 소설집으로, 2012년 봄부터 2015년 가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2014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누가》, 2014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상류엔 맹금류》, 201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上行》이 수록되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이 세계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황정은이 그 시간을 정직하게 통과해오면서 놓지 않았던 고민의 흔적과 결과들을 특유의 낭비 없이 정확하고 새긴 듯 단정한 문장들로 담아냈다. 이 책에 담긴 여덟 편의 작품을 한데 모아 읽는 일은 단순히 훌륭한 예술작품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 지금 이 순간 바로 인간이라는 삶의 자리에 독자인 자신을 다시금 위치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저자

황정은

‘작가가선정한오늘의소설’,‘올해의문제소설’에선정되고,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등굵직한문학상후보에오르는등발표하는작품마다문단의큰주목을받아온작가다.1976년서울에서태어났다.2005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단편소설「마더」가당선되며등단했다.소설집『일곱시삼십이분코끼리열차』,『파씨의입문』,『아무도아닌』,장편소설『百의그림자』,『야만적인앨리스씨』,『계...

목차

上行_009
양의미래_037
상류엔맹금류_063
명실_089
누가_113
누구도가본적없는_137
웃는남자_163
복경_187

출판사 서평

황정은,신작소설집
오랫동안기다려온여덟편의이야기
2014년이효석문학상수상작「누가」
2014년젊은작가상대상수상작「상류엔맹금류」
2013년젊은작가상수상작「上行」수록
“인간삶에도사리고있는유령적순간을날카롭게묘파하는황정은소설의압도적인위력을유감없이보여준다.”_이효석문학상심사평
“이작가는,마치어떤맹수가먹잇감을점찍고한참을노려보다가단한번의돌진으로대상을정확히가격하여쓰러뜨리듯이,쓴다.”_신형철(문학평론가)
“오늘날우리의젊은세대를관통하는어떤사회역사적인그늘에몸을담그고나온듯한느낌을받게된다.가히황정은스타일이라고부를만한경지다.”_신수정(문학평론가)
황정은의세번째소설집『아무도아닌』이출간되었다.『파씨의입문』(창비,2012)이후4년여만에펴내는소설집으로,2012년봄부터2015년가을까지발표한여덟편의단편소설을묶었다.이중「上行」「상류엔맹금류」「누가」등은유수한문학상을수상하면서이미평단과독자들에게널리사랑을받아온작품들이며(차례로2013년젊은작가상,2014년젊은작가상대상,2014년이효석문학상수상.*「양의미래」는2014년현대문학상을수상했으나차후반려),소설집가장마지막에실린「복경」은한신문의칼럼을통해서비스직의감정노동문제를다루면서신자유주의시대에펼쳐지는계급적경험과파토스를날카롭게그려낸작품으로언급되며주목받은바있다.(오혜진,한겨레,2015.5.24.)
요컨대문예지에발표된작품들이한권의단행본으로묶여나오기전부터이미활발하게읽히고회자되어왔다는뜻이다.이는이번소설집에실린작품들이차마현실에서벌어지는일이라고믿기어려울만큼충격적인사건들을경험하며살아야했던시기에쓰였다는사실과결코무관하지않을것이다.어쩔수없는이세계의시민이자작가로서황정은이그시간을정직하게통과해오면서놓지않았던고민의흔적과결과들이특유의낭비없이정확하고새긴듯단정한문장들로남았다.그러므로여덟편의작품을한데모아읽는일은단순히훌륭한예술작품을경험하는것을초과하여,지금이순간바로인간이라는삶의자리에독자인자신을다시금위치시키는일이될것이다.

이전에출간되었던작가의책이그러하듯,『아무도아닌』또한가급적작품으로만남으려는작가의의지를짐작할수있는만듦새를하고있다.책날개에는출생년도와수상이력,이제까지펴낸책등으로요약되는작가의약력이아니라그저이름석자만이적혀있으며,작품들의의미를분석하여독자의이해를돕는해설또한실려있지않다.표지뒷면은으레그렇게하는것처럼작가나작품에대한수식들이나추천사대신본문중에서발췌된문장들로채워져있을뿐이다.
이러한만듦새는“아무도아닌”이라는책의제목을더욱명징하게만들면서그의미를계속해서헤아려보도록이끈다.틀림없이여러방향으로열려있는말일테지만,어떤의미로는결코열리지않을것이다.책의앞쪽에는작가의말로도혹은제사로도읽힐수있는단한줄의문장(“아무도아닌,을사람들은자꾸아무것도아닌,으로읽는다”(5쪽))이적혀있는데이는어떤특정한의미로이말이연결되는것을차단하는듯하다.예컨대흔히사용되는것처럼,그사람은그렇게대단한사람이아니라는뜻,보잘것없으니무시해도좋다는뉘앙스를풍기는뜻과는닿지않을것이다.이에힘입어“아무도아닌”의의미를한정해보자면말그대로무(無),즉존재의확정을부정하는뜻에서혹은행위의주체가없다는뜻에서‘아무도아니’라는의미일것이다.
그러니까희미해져야만오히려또렷해지는듯이보이는“아무도아닌”이라는말의의미를좀더분명히이해하기위해「명실」을살펴보자.이작품의발표당시제목은“아무도아닌,명실”로소설집의제목이여기에서비롯되었다고볼수도있을것이다.‘명실’은생전단한권의책도낸적없는작가인‘실리’를추억하며그녀가남긴수만권의책에둘러싸여살아간다.그러나그중어느것도펼쳐보지는않은채로말이다.스무살도되기전부터결핵에걸려폐가좋지않았던실리는이미오래전에세상을떴다.명실은실리에대해듣고읽어온이야기들을기록해보려고하지만그것들은파편들로서만존재할뿐이다.무엇보다그녀는길을걷다가어디선가할머니,라고부르는상인의음성에깜짝놀라며,그것이자신을지칭하는말이라는것을뒤늦게깨달을정도로늙어있다.또한누군가조금전까지앉아있다가일어서나간것처럼모로살짝틀어진의자를보며거기에앉아있던존재가바로자신이었음을알지만이를낯설게느낄정도로늙어있다.
하지만그녀는사용한지오래되어굳어버린실리의만년필을찾아펜촉을따뜻한물속에담가두고이제는정말쓸준비를한다.잠시내려놓아섬뜩하도록차가워진만년필을다시손에쥐고체온과같아져이물감이사라질때까지기다리며무언가를쓰고자한다.쓰려고마음먹은시간사이로언젠가실리가들려주었던누군가를기다리는사람의이야기,실리와밤배위에서본집어등의불빛들,실리의죽음과곧명실자신도죽는다는사실등과같은상념들이끼어들지만,그녀는마침내쓴다.

그게필요했다.모든것이사라져가는이때.어둠을수평선으로나누는불빛같은것,저기그게있다는지표같은것이.
그아름다운것이필요했다.
그녀는노트에만년필을대고잉크가흐르기를기다렸다.제목을적고쉼표를그리고이름을적었다.(「명실」,110~111쪽)

아무도아닌존재,그러한명실이쓰는것.그것은아마도황정은이써왔고또쓰고자하는것일테다.인간이라는작은존재,그리고망할듯망하지않는압도적으로폭력적인이세계.결코떨쳐낼수없는그절대적인조건을가지고서황정은은쓴다.‘오제’와함께시골에내려가고추를따고다시서울로올라가는이야기「上行」,지하에있는서점에서일하던‘나’가실종된소녀의목격담을고백하는이야기「양의미래」,‘나’가한때연인이었던‘제희’의가족과함께수목원으로나들이를갔던날에대해회상하는이야기「상류엔맹금류」,조용한집을원해이사했으나이상한소음들에시달리며이웃들을무서운방식으로체험하는이야기「누가」,외환위기가발생한바로그시기에바르샤바를여행하는부부의이야기「누구도가본적없는」,“오랫동안나는그일을생각해왔다”로시작하여“오랫동안나는그것을생각해왔다”로끝맺고있는,작가스스로화자가“인간과짐승의기로”(문지이달의소설2014년10월인터뷰중)에서있다고했던이야기「웃는남자」등이바로그것이다.
절대적인두가지조건때문일까.황정은의소설세계가가진조도(照度)는어쩐지희망보다는어둠쪽에더가까운것처럼느껴진다.하지만그어둠은완전히닫혀버린문처럼막막한것이아니라그틈새로아주간신히빛이새어나오고있는것처럼어슴푸레하다.그렇게느껴지는이유는기본적으로작품으로부터비롯되는것이겠지만,어쩌면작가와마찬가지로절대적인두가지조건을공유하는독자가이야기를읽으며필연적으로품게되는바람같은것때문일지도모르겠다.어쩔수없이아주작은불빛이라도떠올리고그것이존재를,또세계를약간만이라도밝힐수있기를간절히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