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민주주의 이론가 이언 샤피로가 현시대에 던지는 뜨거운 화두
“우리가 정부에 충성을 다해야 할 때는 언제이고,
거역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개요】
미국 예일 대학 정치학과의 석학 이언 샤피로는 이 혁신적인 책에서 ‘정부가 과연 국민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오래된 정치적 난제에 도전한다. 사회계약론자들은, 정치권력이 국민의 합의를 저버리면 국민은 그릇된 권력에 저항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자들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우리 자신이 참여할 수 있을 때, 현재의 정부에 반대하고 다른 대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정부는 정당하다고 본다. 진리 추구와 개인 권리라는 계몽주의의 가치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적 대안들보다 나은 이유는 바로 민주적 권력 경쟁 메커니즘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권력 독점을 치료하는 중요한 해독제다. 이 책은 예일 대학에서 수십 년간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샤피로 교수의 정치학 강좌를 책으로 정리한 것으로, 문학동네에서 새로 펴내는 예일 대학 명강의 시리즈 ‘오픈예일코스’ 첫 책이다.
【소개】
‘오픈예일코스openyalecourses’
웹사이트(http://oyc.yale.edu)와 YouTube, iTunes를 통해 전 세계 누구나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예일 대학의 지식 공유 프로젝트로, 예일 대학이 자랑하는 세계적 석학들의 입문 강좌로 이루어져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배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평등한 배움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오픈예일코스’ 시리즈는 강의 내용을 한층 더 풍부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각 분야의 필수 지식을 전달한다. 첫 책 『정치의 도덕적 기초』에 이어 『정치 철학』(스티븐 스미스 지음, 오숙은 옮김), 『구약 읽기』(크리스틴 헤이즈 지음, 김민웅 옮김), 『신약 읽기』(데일 마틴 지음, 김민웅 옮김), 『문학 이론』(폴 프라이 지음, 정영목 옮김)이 2017년에 차례로 출간될 예정이다.
권력 독점을 치료하는 해독제, 민주주의
“……확실성은 아름답지만, 불확실성은 더욱 아름답다.”
이언 샤피로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말로 이 책의 문을 연다. 민주주의는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체제이며, 이 점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다. 주세페 디 팔마와 아담 프셰보르스키 같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의 견해를 빌려, 저자는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총을 들거나 정치체제에서 소외되지 않고 정치 과정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제도화된 불확실성”(274쪽)이라고 밝힌다. 정권을 언제든지 교체하고 대체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권력에게 주어진 정당성의 근간이다.
정당한 정치체제에는 반드시 부패와 부정직을 폭로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현재의 여타 대안들보다 나은 이유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을 제도화하여, 정치적 야심가들에게 어두운 구석에 빛을 비추고 서로의 실책과 속임수를 폭로할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령에 인질로 잡히기 십상인) 권력 독점을 치료하는 중요한 해독제다.(262쪽)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정치철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 중 하나인 이언 샤피로는 학계의 통념과 달리 참여와 대표성이 아니라 지배권의 제한 가능성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 책에서 샤피로는 통치 행위의 조건인 ‘정치적 정당성political legitimacy’의 원천이 무엇이냐를 두고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계약론, 반계몽주의,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수세기 동안 벌여온 치열한 논쟁을 되짚어가며, 성숙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가 보기에 이런 지적 전통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은 계몽주의다. 이에 따르면 근현대 정치사상은 ‘초기 계몽주의―반계몽주의―성숙한 계몽주의’의 방향으로 진화했다. 벤담의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로 대표되는 초기 계몽주의는 절대적 진리 개념과 과학에 근거한 토대적 확실성에 집착했다. 이런 계몽주의의 확신은 결국 오류로 판명나지만,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진리 추구와 개인 권리라는 두 핵심 가치를 조화시키려는 성숙한 계몽주의로 계승되며, 이 성숙한 계몽주의의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하는 정치 이론이 곧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 책은 계몽주의, 반계몽주의, 성숙한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사상적 흐름에서 정치 체제의 정당성을 논한다. 계몽주의 기획이 한물갔다고들 하지만, 저자는 계몽주의의 핵심인 진리 추구와 개인 자유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계약론에서 계몽주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저자는 각각의 사상이 세상을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지만 그 속에 담긴 핵심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며, 반계몽주의 사조의 공격에도 여전히 살아남은 두 가치, 즉 진리 추구와 개인 자유를 구현하는 최선의 체제는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_노승영(역자)
【내용】
‘정치적 정당성’의 주요 사상들
―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계약론, 반계몽주의
‘우리가 정부에 충성을 다해야 할 때는 언제이고, 거역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오래된 정치적 딜레마는 소크라테스, 마르틴 루터, 토머스 모어까지 거슬러올라가며, 현대에도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미얀마의 아웅 산 수 치에게서 여전히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도덕적 영웅인 이유는 그릇된 정치적 권위에 맞섰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의 사례로 규정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그릇된 정치권력에 기계적으로 복종한 도덕적 악인이다.
아이히만의 사례에서 보듯, 모든 정부의 정당한 권위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한계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우리의 충성을 요구하는 법과 국가의 통치 행위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고자 근대 이후 서구에서 제시된 주요한 정치적 정당성 이론들을 살펴본다.
공리주의: 벤담의 ‘행복 원칙’과 밀의 ‘위해 원칙’
첫번째는 제러미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는 ‘정부의 정당성은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라는 주장으로 수렴된다. 무엇이 행복인가, 누구의 행복을 따질 것인가,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등은 각 공리주의 학파를 구분하는 논점이다.(2~3장) 세부적으로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벤담의 금언을 잣대로 정부를 평가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벤담식의 고전 공리주의는 개인 권리에 무관심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를테면 최대 행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고전파 경제학자인 파레토는 “개인 간 비교를 이용하는 최대 행복 원칙이 (가령 노예가 잃는 행복보다 노예 소유주가 얻는 행복이 더 크다면) 노예제를 지지하거나, 절도를 부도덕한 행위로 금지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62쪽)며 개인 간 공리 비교를 폐기했다. 이를 보완하고자 역시 신고전 공리주의에 속하는 존 스튜어트 밀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타인에게 가해지는 위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때뿐이라는 ‘위해 원칙’을 제시한다. 하지만 밀의 원칙은 모든 행위가 의도치 않게 제삼자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어떤 행위가 타인에게 해로울 수 있는가 여부는 결국 해석과 판단의 문제가 되며, 이는 벤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공리라는 이름으로 개인 자유를 희생시킬 백지 위임장을 국가에 제공하는 셈이 된다. 20세기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공리주의는 나치즘과 파시즘, 베트남전쟁 같은 당대의 중대한 도덕적 사안에 대해 침묵했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마르크스주의: 착취 없는 세상이라는 이상
두번째로 마르크스주의는 착취 개념을 기준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판단한다.(4장)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착취의 정의, 착취와 노동·경제체제·정치체제의 관계, 착취 근절을 위한 정치기구의 역할 등을 놓고 근본적 차이를 보인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역사상 모든 정치체제가 어떤 식으로든 착취를 승인했지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착취 없는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규범적 속성을 이해하고 여러 자본주의 체제의 상대적 정당성을 구분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도 착취를 판단하고 측정하는 문제는 일관성이 없고 자의적이다. 즉 어떤 경우에서도 도덕적 자의성에 대한 존 롤스의 논증(162쪽 이하)에 취약하다. 누가 착취를 판단하고 측정할 것인지, 착취 최소화가 효율성 같은 여타 가치와 얼마나 상반관계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누가 의사 결정권자에게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절차에 진지하게 주목한 적이 없고, 그들의 유토피아 세상에서는 민주주의 절차가 불필요해진다고 밝힐 따름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국가들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 현실도 분명 부인할 수 없는 경험적 사실이다.
사회계약론: 근대의 ‘합의’ 개념과 롤스의 ‘정의론正義論’
세번째는 사회계약론 전통이다.(5장) 근대적 형태의 사회계약론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과 존 로크의 『통치론』(1680년대)에서 출발한다. 사회계약론자들이 보기에 국가의 정당성은 합의 개념에 뿌리를 둔다. 피통치자의 동의가 국가 정당성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은 합의를 구현하면 국민은 국가에 충성할 의무가 있지만, 국가가 국민의 합의를 저버리면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