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 소년들

아연 소년들

$18.81
Description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재판정에 서게했던 그 문제작!
2015년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이라는 찬사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당시 전통적인 소설이나 시를 쓰는 문인이 아닌 언론인 출신의 논픽션 작가이자 제3세계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간 이 파격적인 결정에 전 세계의 이목이 알렉시예비치에게로 쏠렸다.

이번에 출간한 『아연 소년들』은 알렉시예비치를 그간 신화화되고 영웅시되었던 국가의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고 참전군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했던 작품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이어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 그리고 인류가 벌이는 가장 잔혹한 범죄인 전쟁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다루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된 소련 병사들 중 많은 수가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던 소년들이었다. 이 책은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고 문학작품을 즐겨 읽으며 어머니와 여자친구를 끔찍하게 생각하던 평범한 소년들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여러 ‘목소리’들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책을 쓰기 위해 4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곳곳을 돌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군과 ‘아연 소년들’이라 불린 전사자들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500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책에 담긴 전쟁의 광풍에 휩싸인 어린 소년들과 어머니들의 절절한 절규는 전쟁이 아이와 여성, 인류의 가장 여리고 보호해야 할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저자

스베틀라나알렉시예비치

저자:스베틀라나알렉시예비치
벨라루스의저널리스트이자작가.1948년,우크라이나에서태어났다.그는소설가도,시인도아니다.그러나자기만의독특한문학장르를창시했다.일명‘목소리소설NovelsofVoices’,작가자신은‘소설-코러스’라고부르는장르이다.다년간수백명의사람들을인터뷰해모은이야기를Q&A가아니라일반논픽션의형식으로쓰지만,마치소설처럼읽히는강렬한매력이있는다큐멘터리산문,영혼이느껴지는산문으로평가된다.
1983년,그는『전쟁은여자의얼굴을하지않았다』의집필을끝냈다.이책의원고는2년동안출판사에있었으나출간될수없었다.그는영웅적인소비에트여성들에게찬사를돌리지않고그들의아픔과고뇌에주목한다는사실때문에비난받았다.
1985년『전쟁은여자의얼굴을하지않았다』가드디어벨라루스와러시아에서동시에출간됐다.이책은전세계적으로200만부이상이팔렸다.
1992년,신화화되고영웅시되던전쟁에이의를제기하는『아연소년들』에대한재판이열렸다.그러나민주적인시민과전세계작가,독자들의노력으로재판은종결되었다.
이밖에주요작품으로『마지막목격자들』『체르노빌의목소리』『세컨드핸드타임』등이있다.
그의책은미국,독일,영국,스웨덴,프랑스,중국,베트남,불가리아등에서35개언어로번역출간되었으며전세계에서수백편의영화와연극,방송극을위한대본으로사용되었다.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의최고정치서적상,국제헤르더상,에리히마리아레마르크평화상,전미비평가협회상등수많은국제적인상을수상했다.
2015년“다성악같은글쓰기로우리시대의고통과용기를담아낸기념비적문학”이라는평가와함께노벨문학상을수상했다.

역자:박은정
조선대학교러시아어과를졸업하고러시아페테르부르크게르친국립사범대학교에서언어학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전남대학교와조선대학교에출강하고있다.

목차

프롤로그/9
수첩들에서(전쟁터에서)/21
첫째날:“많은사람이내이름으로와서이르되……”/45
둘째날:“다른이는비탄에잠긴영혼으로죽어가는데……”/169
셋째날:“너희는신접한자와박수를믿지말며”/291
『아연소년들』에대한재판(소송사건경과일지)/403
옮긴이의말/505

출판사 서평

“하늘에서,미리준비해놓은수백개의아연관들을보았다.
아연관들은햇빛을받아아름답고도무섭게빛났다.”
이것은인류의어머니들이치러낸전쟁의기록이다!

“이전쟁이누구의전쟁이었을것같아요?어머니들의전쟁,바로우리어머니들이나서서싸운전쟁이었어요.어머니들은앞으로도목숨걸고싸울거고요.우리를낳아기르고우리를위해애간장을태울거라고요.우리의영혼을위해서도요.”(210~211쪽)

아프가니스탄에파병된소련병사들중상당수가아직학교를다니고있던소년들이었다.『아연소년들』은평범한소년들이전쟁터에서어떻게변해가는지를여러‘목소리’들을통해보여준다.어린나이에사람을죽이고마을을불태우는끔찍한경험들을하면서죄의식마저마비된소년들,선임들에게죽도록구타를당한소년들은전쟁터에서죽거나,불구가되거나,살아돌아오더라도극심한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시달린다.그들은악몽과불면증,마약중독과알코올중독에시달리고,사람들과관계를맺고일상생활을꾸려나가는데어려움을겪는다.전쟁터에서의기억이머리에서떠나지않아자살시도를하거나,살인을저지르는이마저있었다.

아들은다른이들이그곳에서한일을여기서했기때문에살인자가됐어요.똑같은일을두고다른이들에게는메달과훈장까지수여했으면서……도대체왜우리아들만심판대에세운거죠?아들을그곳으로보낸사람들은요?살인을가르친그사람들말이에요!나는아들에게살인을가르치지않았다고요……(쓰러지듯주저앉아비명을지른다.)
아들은내주방용손도끼로사람을죽였어요……아침에도끼를가져다다시찬장에넣어놓았더군요.마치스푼이나포크를다시제자리에갖다놓은것처럼……
나는,아들이두다리없이돌아온그엄마가부러워요……술에취해엄마에게행패를부려도요.온세상을미워하고……짐승처럼엄마에게덤벼들어도요.그엄마는아들에게매춘부를직접구해다줘요.아들이미치지않도록요……한번은그엄마가직접아들을상대하기도했어요.아들이발코니로기어가9층에서몸을던지려고했거든요.(19쪽)

이전쟁이소년병들이대거차출된전쟁이었기에,소련-아프가니스탄전쟁은또한어머니들의전쟁이기도했다.금이야옥이야키운아들을전쟁터에보낸어머니들은한시도마음편할날없이아들이돌아오기를기다리며매일매일전쟁터로편지를보낸다.아들을아프가니스탄에서빼내오기위해고위급관료에게무릎을꿇고,뇌물을찔러넣고,매일교회에가서아들을위해기도하는이들도바로어머니다.아들이전쟁터에서전사해도,살아돌아와도,어머니들의전쟁은끝나지않는다.그들은식음을전폐하고아들의무덤가에살다시피하거나,신체적·정신적불구가된아들을뒷바라지하며전투를치르듯일상생활을이어나간다.

국가는없었다

자국민을전쟁터의소용돌이로몰아넣은국가는국민을책임지지않는다.전쟁비용을최소화하기위해제2차세계대전때나사용했던무겁고더운구식군복을지급하고,유통기한이몇년은지난통조림이며구더기가끓는식량을배급해병사들은만성영양부족에시달리며이가빠지기까지한다.싸우다죽는병사들보다약과의료진이부족해서죽는병사들이속출한다.유공자들과유가족들에게약속된보상역시지켜지지않는다.무수한소년들,어머니들을고통속으로몰아넣은국가는일방적으로명령을내리기만할뿐,국민들을책임지거나보호하지않는다.언론을검열하고감시·통제하며아프가니스탄에서모든것이잘돌아가는것처럼보이게끔선전하는것에만열을올린다.『아연소년들』은전쟁에서승전국과패전국은존재할수있지만,어느쪽이든개개인의국민들은국가가제시하는이념이나대의에희생되어고통받을뿐이라는진실을조명한다.

나는나보다더불행한사람들을봐야만했어요.그리고봤고요.
사람들은이전쟁이옳다고말했어요.아프간민족이봉건주의체제를타파하고훌륭한사회주의국가를건설하도록우리가도와야한다고요.우리병사들이죽어나간다는사실에대해선무슨이유인지다들침묵했고,우리는그저그곳에전염병이많아서그런가보다고만생각했어요.말라리아,장티푸스,간염같은전염병말이에요.
곧조금씩의문이들더군요.‘우린뭐하는사람들이지?’당국은우리의이런의문을달가워하지않았어요.정작슬리퍼나파자마는없는데정치구호와선전문구가적힌현수막이나포스터들은잔뜩가져와내다걸기바빴어요.포스터뒤로우리병사들의비쩍마르고슬픈얼굴들이보였어요.그모습을나는영원히못잊을거예요……
모든사람들을‘일러바쳐야’했죠.불쌍하게여겨서는안되었어요.하지만우리는불쌍하게여기는마음을포기하지않았고,그마음때문에모든걸견딜수있었죠……
혹시불에탄사람본적있으세요?못봤다고요?얼굴도없고눈도없고몸도없어요……그건쭈글쭈글한,노란껍데기에싸인뭔가덩어리같은거예요……이껍데기속에서터져나오는비명은비명이아니에요,짐승의울부짖음이지……(64~67쪽)

작가가법정에서면서까지지키고자했던진실…진실!
세상에악을확장시키지않으면서악의한가운데를통과해지나가기

이책의마지막장에는,소련-아프가니스탄전쟁만큼이나참혹하고처절한두번째전쟁에대한이야기가실려있다.알렉시예비치가『아연소년들』로인해치러낸재판은법정공방이라기보다는차라리‘투쟁’에가까운것이었다.알렉시예비치는책을출간하고3년뒤,이책을위해인터뷰했던일부아프간전쟁참전군인과유가족어머니로부터돌연명예훼손으로고발당한다.알렉시예비치는전쟁의참상을알리기위해,몇번이고찾아가인터뷰하고함께울었던이로부터자신을방어해야할상황에처한다.

이재판에서는“슬퍼하는어머니들등뒤로떡벌어진어깨의낯익은형체가기분나쁘게어른거린다.”언론은“짐짓아무것도보이지않는척시치미를뗀다.‘어머니들등뒤의장군들이문제가아니다’라면서”.인터뷰당시알렉시예비치에게부디자신의진실을알려달라고눈물로호소했던이가국가가아닌알렉시예비치에게막대한배상금을요구하고,작가의책을전적으로지지하는집회에서열심히발언했던소년병의어머니가갑자기작가를‘악마’로몰아세운다.방청석에서는작가를비난하는목소리들이난무하고,토막을내서죽이겠다는살해위협의목소리까지나온다.

-저여자는백만장자인데다‘메르세데스’가두대나있다고요……여기저기해외여행도다니고……
-작가는책한권쓰는데이삼년이걸리고,돈도요즘트롤리버스기사의두달치월급정도받는다는데,당신은대체‘메르세데스’가어디서난겁니까?
-해외도자주다닌다면서요.
-저여자는달러를받았어요.그래서우리한테더러운오물을쏟아붓는거라고요.우리아이들한테요.
-당신이직접군대에서복무해봤어?안했잖아……우리아이들이거기서비참하게죽어갈때당신은전쟁이끝날때까지대학벤치에죽치고앉아있었다고.
_『아연소년들』에대한재판(소송사건경과일지),방청석의목소리들중에서

알렉시예비치는법정에서서이모든목소리들을듣는다.문학과작가에대한최소한의이해도없이한작가의인격을말살하고그의작품세계와가치를부서뜨리는이법정안의전쟁터에서알렉시예비치는부디문학전문가에의한감정과소견을듣게해달라고요청하지만,두번이나묵살된다.언론은이사건을대대적으로보도했고,수많은시민들과전세계의작가,독자들이항의서한을보내면서분노를표출했다.

1993년12월8일,지친알렉시예비치가피고인석에서일어나발언한최후진술은,지저분한마타도어와중상이오가고한작가의피를보기위해온갖사람들이달려든이희대의재판이남긴또하나의절절한문학작품이다.

저는모스크바백악관에서총격이일어나리라고는마지막순간까지믿지않았던것처럼이재판의성립역시끝까지믿지않았습니다……우리가서로총부리를겨누게될줄은정말몰랐습니다……
저는이미육체적으로도많이지쳐있는상태라,분노에찬냉정한얼굴들을마주대할힘이없습니다.만약이자리에어머니들이나와있지않았다면저도이재판에나오지않았을겁니다.저에게소송을걸어온사람들이어머니들이아니라옛체제라는걸잘알지만말입니다.

남자들이가장사랑하는……가장소중한장난감인전쟁을남자들로부터무사히빼내오기란불가능합니다……이신화를……태곳적부터있어온이오래고도오랜본능을요……
하지만나는전쟁을증오하고,한사람이다른한사람의삶을결딴낼권리를가지고있다는생각자체를증오합니다.

전쟁은힘겨운노동이자살인행위입니다.하지만몇년씩세월이흐르면서힘겨운노동은기억에남지만살인행위에대한생각은기억의끝자락으로밀려나지요.이토록상세한내용들과감정들이정말머리로지어낼수있는것들일까요?제책속에등장하는그온갖끔찍한일들이요?

어머니들의등뒤에서저는장군들의견장을봅니다.장군들은영웅훈장과갖가지물건들로가득채운커다란가방들을가지고전쟁터에서돌아왔습니다.어머니들중한분이,오늘이곳법정에나와계시기도한,그어머니가이런이야길했습니다.아연관과아들이쓰던칫솔,수영복이든검은색작은여행가방을돌려받았다고요.이어머니에게남겨진건그게전부였습니다.아연관과작은여행가방,그게아들이전쟁터에서가져온전부였던겁니다.그렇다면어머니들은누구로부터아들들을지켜야할까요?진실로부터요?진실은,아들들이부상을당해도치료할알코올과약이없어서그대로목숨을잃어야했다는게진실입니다.알코올과약을죄다거기상점들에팔아버렸는데있을턱이있겠습니까.진실은,우리아이들에게1950년대에만들어진녹슨통조림을먹였다는게진실이고,땅에묻을때도대조국전쟁때의낡아빠진군복을입혀묻었다는게진실입니다.심지어그렇게해서비용을절약하기까지했다지요.저는무덤들옆에서어머니들에게이런말까지는하고싶지않았습니다……하지만결국이렇게하게되는군요……
세계곳곳에서총질을하고다시피를보고있다는사실을알고들계십니까?어떻게하면피가정당화될수있을지방법을찾고들계신가요?아니면찾는걸돕고들계신가요?

저는이시대,지금이순간의역사를쓰고녹음합니다.살아있는목소리들,살아있는운명들을요.역사가되기전의목소리와운명은아직은누군가의고통이고,누군가의비명이고,누군가의희생이거나범죄입니다.저는자신에게수없이묻고또묻습니다.‘그기운이우주에미칠정도로악의규모가커져버린이때,세상에악을확장시키지않으면서어떻게악의한가운데를통과해지나가지?’(471~477쪽)

저자는전쟁을미화하고전쟁속에서스러져간젊은이들을영웅으로박제하려는일체의시도에맞서진실을지키고자했다.전쟁은그자체로누군가의고통이고누군가의비명이며누군가의희생이거나범죄라는진실을.그리고그가운데다른누구보다도고통받는존재들은어린소년들,어머니들,여성들이라는것을.세계유일의휴전국이자분단국가인대한민국에서살아가면서북한의핵실험,사드배치문제등수시로불어닥치는전쟁의위협에노출되어있는한국인들에게『아연소년들』이시사하는전쟁의잔혹함과폭력성,그속에서고통받는개개인들의목소리는남다른의미를갖는다.
전쟁의불씨를끌어안고살아가는‘휴전국’한국사회가지금,『아연소년들』을주목해야할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