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세상을견딘다는것은나를견딘다는뜻이기도했다”
소설로인생에복무하는작가이승우,그의열번째소설집
‘쓴다’는동사의힘을믿는사람.‘매일쓴다’는것으로인생의의무를이행하는사람.그것이작가이고,이승우작가가그렇다.스물셋에등단해올해로36년,‘소설가로산다는것’을흔들림없는작품들로몸소보여주는사람.그의열번째소설집을묶는다.
책을만들기위해소설들을다시읽으면서,내문장들속으로들어와있는세상의기운들을감지한다.놀랄일이아니라는건안다.각각의소설들에그소설을쓸때의시대의간섭이선명하다.어떤소설은그간섭에대한토로이다.세상이요동칠때흔들리지않는마음은없다.가장자율적인것도자율적이지않다._‘작가의말’에서
도무지납득할수없는인생의원리,가장가까운관계에서도피할수없는오해와충돌,나를쥐고흔드는알수없는시선…작가가바라본세상과그속을살아가는인물들에게는알수없는것투성이다.지난몇년간의‘시대의간섭’은상상력을바탕으로만들어진소설이현실의부조리와기이함을넘어설수없음을다시한번상기시켰으리라.일종의무력함과‘자율적이지않음’속에서작가가그려낸작품속‘모르는사람들’의이야기여덟편이이책에담겨있다.내적갈등과자기비판을통해집요하게변주되는이승우작가특유의문장은,인물들을한걸음한걸음신중하게내딛게한다.그나아감을통해‘모르는사람들’이알아가는것은무엇인가.그들이마주한사실혹은비밀은진실인가.재구성된기억과진술속에과연진실이란존재하는가.
보이지않았으면보지않았을-그러나보였으므로보지않을수없는
‘지금-여기’의나를만든과거의진실
안다고믿었던관계들에물음표가붙으며
타인을향한전혀다른첫걸음이시작된다
십일년전아버지가말도없이사라졌다.“이세상은견디는것이다”라고말한아버지였다.“말하는사람은자기가한말을듣기도하는사람이다.어떤점에서는누구보다잘듣고가장잘듣는사람”이란것을생각하면,견딘다는것이‘떼어내다’가아니라‘붙어있다’에가깝다는것을생각하면,우리가족들에게서자기자신을‘떼어낸’아버지를‘나’는이해할수없다.어머니는비논리적인이유를붙여아버지의부재를설명한다.결국아버지가회사광고모델과해외로몰래떠났다가비행기사고로사망했다는것이어머니에게는논리적인귀결이되었다.
이해할수없는것을이해하는가장쉽고위험한방법은이해할수있는것만이해하는것이다.가장쉽지만,이것은사실은이해가아니라오해하는방법이기때문에이해하지않는것보다위험하다.(…)서둘러이해하려고하는사람은참된이해를위해고려해야할많은것들을무시하고복잡한것을단순화한다.예컨대그사람의내면을들여다보지않아야한다.내면같은것이따로있다는생각을하지말아야한다.
_21쪽,「모르는사람」에서
아버지의부고는십일년만에,뜻밖의장소인아프리카레소토에서들려왔다.낯모르는사람에게듣는아버지의지난십일년은도무지믿기어려운일로가득하다.“살면서자주내가참으로살기를갈망했던,살지못하고있는다른삶을그리워했”던아버지,“평생동안다른삶을그리워하면서사는남자와한집에살아야했던,그러나정작자신은그리워할다른삶이없었던,그래서자기가붙어있는곳에서자기를떼어낼생각을할수없었던,(…)어떻게든붙어있으려고버둥거렸을어머니의삶”,그러므로어머니에게아버지는‘가장멀리있는사람’이자‘가장모르는사람’이었다는것을나는뒤늦게알게된다.(「모르는사람」)
또다른‘나’의이야기.유복자인나는자신의고향M시에서근무하게된다.아버지를잃고떠나온곳이므로,어머니가M시에대해말하지않는것은당연한일이라고나는이해하고있다.그러나“어떤이야기는말해져야할시간에말해지고어떤이야기는말해지지않아야할시간에말해진다.(…)어떤이야기는살고살리기위해말해질시간을기다린다.”M시를찾은나에게외삼촌이전해주는내부모의만남부터나의출생에이르기까지그들역사의전모는참혹하고비통하다.
그모든것이,그러니까다거짓이었을까요?하고묻고나서나는움찔했는데,그순간그질문이내존재가거짓에기반하고있느냐는것으로치환되어들렸기때문이었다.나는내존재가거짓에기반하고있다는선고를받을까봐두려웠다.
_59쪽,「복숭아향기」에서
“아,사람의운명이란게이렇게정해지는가보구나”하고생각했던젊은날의어머니를,내인생을이제와이런식으로뒤흔드는무덤속아버지를,나는이제어떤얼굴로마주해야할까.(「복숭아향기」)
능력의문제가아니라믿음의문제이다.믿음이문제일때는믿음을표면에내세우기가어렵다.능력의있고없음은‘나의’문제지만,믿음의있고없음은‘그에대한’문제이기때문이다.나의무능은나를향하지만,나의불신은그를향한다.그에대한불신이기때문이다.그일을할능력이없다고말하는것이너를믿지않는다고말하는것보다쉽다.나는,나는너를믿지않는다고면전에서말하기가어려워서나는그일을할능력이없다고말하는부류의인간이다.요컨대특색이라곤없는인간이다.특색이라곤없는평범한인간의특색가운데하나는인과관계를벗어난사건의전개를불편해하는것이다.
_71쪽,「윔블던,김태호」에서
‘내’가불신하고있는사람은자수성가한의류업체의회장이다.나는그의회고록을쓰는중이다.정신상태가불안정한칠순의회장은,나에게윔블던에서의유학시절과그때만난김태호라는인물에대한이야기만을되풀이하며,김태호를찾아달라고부탁한다.그러나회장의아들말에따르면회장은윔블던에서유학한적도없다.구체적인기록없이기억과진술에만의존할때왜곡과과장이의심되는건자연스러운일,그러나자신의지난날허물과오욕을뒤늦게라도인정하며바로잡고자애쓰는회장의모습에나는점점마음이움직인다.(「윔블던,김태호」)
“가장단순하고가장투명해보이던아버지야말로우리가가장모르는사람이었”다는것을,“모든것을혼자감당하려고”그가어디까지추락했는지를‘나’는전혀몰랐던가.요컨대아버지가나에게‘평탄한길’을만들어주기위해꾸려온삶이무엇으로이루어져있었는지나는정말몰랐는가,알수있었으나모르고자했는가.(「강의」)
내이름‘김철수’와한국이름이같은말레이시아인‘찰스’,“그의이름이철수이기때문에그와엮이고,그의존재를거부하지못할까봐”나는신경이쓰인다.“어느날갑자기그가나로변신하고나를대신할지모른다는,말도안되는상상”이,불합리한줄알지만자꾸머릿속에떠오른다.같은이름이라는외피아래전혀다른삶의조건을가진두사람,‘철수’에게‘찰스’는어떤이름으로남을것인가.(「찰스」)와이파이를쓰기위해매일밤집근처를배회한거라는외국인노동자틴카우,“넘어가지않습니다.나는여기로있습니다.당신은용서합시다”라는부정확한문장을반복하며,와이파이를계속쓸수있게해달라고그녀에게간청한다.
“당신들이두려운게아니에요.”그녀는입을열었지만곧닫고말았다.그녀가하려고한말은,당신들이아니라당신들을두려워하도록만드는무엇인가가두렵다는것이었다.그무엇인가가당신들뿐아니라세상에대해,세상의모든사람들에대해두려움을갖게한다는것이었다.내안의두려움이내밖의모든사람들을두려워하게한다,그래서문을열지못하게한다,그것이문제다,라는것이었다.
_179쪽,「넘어가지않습니다」에서
그녀는굳게걸어잠근문을열고낯선얼굴들을대면할수있을까.(「넘어가지않습니다」)
규칙적이고안온하며예상외의일이란무엇하나없는안정한하루는얼마나어렵게이루어진것인가.부정하고싶지만그럴수없는과거에대한죄책감은,‘장필수씨’삶의디테일을모두없애고가장단순한일과만을남긴채그것을반복하게만들었다.동생‘장철수씨’가분노에찬목소리로그의집에들이닥쳐“하필오늘,저런짓”의기억을불러일으키기전까지는그반복이가능했다.(「안정한하루」)불편한과거와대면한것은국립대학교수‘김승종’도마찬가지다.과거내가한일이지금의내발목을잡고있다고느끼는김승종은지금의나를바라보는과거의불편한시선에서벗어날수있을까.(「신의말을듣다」)
나는왜수철을원망할수없는가?그렇게자문하다가그는신음소리를내며주저앉았다.하나의문장이화살처럼날아와그의가슴팍에박혔기때문이다.그것은수철의말이신의말이기때문이다.말해지지않았기때문에사라지지않은,언제든말해질수있는것을가지고있는수철이그의신이었기때문이다.신이된수철이그를지배했다.너에게그럴자격이있는가?신이된수철이그를따라다니며그의생각을묶고행동을통제했다.수철의통치아래들어간그는더이상자유롭지않았다.
_205쪽,「신의말을듣다」에서
“말해질시간에말해진이야기는살지만,혹은살리지만,삶으로써살리지만,말해지지않을시간에말해진이야기는죽는다,혹은죽인다,죽임으로써죽는다.”(「복숭아향기」)이번소설집편편에등장하는누군가말하고,누군가듣는행위,“그는말했고,나는들었다”로인해우리는삶의진실에좀더가까이다가갈수있다.그러나삶의아이러니와모순에서자유로워질수는없을터,‘지금-여기’의나를만든과거를받아들이고그것을시작점으로행할수있는관계의윤리,삶을마주하는윤리를회복,재구축해나가는것,요동치는세상에서자율성을놓치지않기위한첫걸음이어쩌면여기서시작될지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