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장편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장편소설

$13.50
Description
소설가가 독자에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크고 빛나는 위로!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저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아름답고 정제된 문체,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우면서도 사려 깊은 시선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저자의 이번 소설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한 여성 소설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처음으로 일인칭 화자를 내세운 작품으로,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는 일과 한 인간이 인생의 의미를 정립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정갈하고 담백하게 펼쳐 보인다.

소설의 화자인 루시는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1980년대 중반에 병원에서 보낸 구 주, 그중에서도 오래 연락을 끊고 지내던 엄마가 갑작스레 찾아와 그녀를 간병해줬던 닷새를 회상한다. 당시 루시는 간단한 맹장수술을 받고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린다. 직장과 가사일로 바쁜 남편은 그녀를 보러 오지 못하고 그녀는 일인용 병실에 누워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씨름한다.

입원한 뒤 삼 주쯤 지났을 무렵, 그녀 앞에 마법처럼 엄마가 나타난다. “안녕, 위즐.” 아주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애칭으로 그녀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루시는 단번에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엄마는 침대 곁에 앉아 고향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들의 결혼생활, 불행한 결말을 맺었던 삶들에 대해서. 엄마의 이야기는 루시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현재의 표면 위로 불러온다.

종조부의 차고에서 지내며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떨던 날들, 부모님의 억압과 간헐적인 폭력이 이어지던 날들, 그래서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 앰개시에 대한 기억을. 또한 그녀가 그토록 동경했던 뉴욕에서의 삶까지도. 그리고 루시는 서서히 깨닫는다. 그러한 기억들이 어떻게 자신을 현재의 그녀로, 소설가로 만들었는지를.
늘 사람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발표해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와 다층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저자의 이번 작품 역시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한층 더 깊어진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이백 페이지 남짓의 길지 않은 소설 속에 밀도 있게 담겨 있어, 소설이란 가장 내밀한 이야기로 가장 보편적인 위로를 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저자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ElizabethStrout는1956년미국메인주포틀랜드에서태어나,메인주와뉴햄프셔주의작은마을에서자랐다.어린시절부터글쓰기에매료된스트라우트는일상의소소한일들을노트에적고,도서관의문학코너를좀처럼떠나지않는아이였다.작가가되겠다는열망으로유명한작가들의이야기나그들의자서전을탐독하기도했다.집밖에서도많은시간을보냈던이소녀는바닷가바위를뒤덮은해초와야생화를숨기고있는뉴햄프셔의숲을보며,자연에대한깊은애정을품게된다.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는베이츠대학에서영문학을전공한뒤영국으로건너가일년동안바에서일하면서글을쓰고,그후다시미국으로돌아와끊임없이소설을썼지만원고는거절당하기일쑤였다.작가가되지못하리라는두려움에그녀는시러큐스대학교에서법학을전공하고잠시법률회사에서일했지만,얼마지나지않아일을그만두고뉴욕으로돌아와글쓰기에매진한다.문학잡지등에단편소설을발표하던스트라우트는1998년첫장편『에이미와이저벨』을발표하며작품성과대중성을동시에인정받는다.이작품은오렌지상,펜/포크너상등주요문학상후보에올랐고,‘로스앤젤레스타임스아트세덴바움상’과‘시카고트리뷴하트랜드상을수상했다.2008년세번째소설『올리브키터리지』를발표하고언론과독자들의호평을받은뒤,이작품으로2009년퓰리처상을수상했다.이후『버지스형제』『내이름은루시바턴』『무엇이든가능하다』등의소설을꾸준히발표하며많은사랑을받고있다.

목차

내이름은루시바턴...9
감사의말...221
옮긴이의말_기억의자리들,공백의자리들...223

출판사 서평

인생의첫맛은외로움이었다.
그럼에도결국……
모든삶은경이롭다.
“지금은내인생도완전히달라졌기에,어린시절을돌이켜보며이런생각을하게될때가있다.그렇게나쁘지는않았다고.어쩌면그렇게나쁘지는않았을거라고.하지만햇살이내리쬐는보도를걷거나바람에휘는나무우듬지를볼때,또는이스트강위로나지막이걸린11월의하늘을바라볼때,내마음이갑자기어둠에대한앎으로가득차는순간들이?예기치않게?찾아오기도한다.”_본문21쪽
소설앞머리에서화자가밝히고있듯이“이것은단순한...
인생의첫맛은외로움이었다.
그럼에도결국……
모든삶은경이롭다.
“지금은내인생도완전히달라졌기에,어린시절을돌이켜보며이런생각을하게될때가있다.그렇게나쁘지는않았다고.어쩌면그렇게나쁘지는않았을거라고.하지만햇살이내리쬐는보도를걷거나바람에휘는나무우듬지를볼때,또는이스트강위로나지막이걸린11월의하늘을바라볼때,내마음이갑자기어둠에대한앎으로가득차는순간들이?예기치않게?찾아오기도한다.”_본문21쪽
소설앞머리에서화자가밝히고있듯이“이것은단순한이야기이다.”(본문10쪽)『내이름은루시바턴』은어둠으로가득했던,그러나반짝이는순간들도있었던자신의과거를회상하는한소설가의이야기다.소설의화자인루시는지금으로부터꽤오래전1980년대중반에병원에서보낸구주,그중에서도오래연락을끊고지내던엄마가갑작스레찾아와그녀를간병해줬던닷새를회상한다.당시루시는간단한맹장수술을받고원인모를고열에시달린다.직장과가사일로바쁜남편은그녀를보러오지못하고그녀는일인용병실에누워남편과어린아이들을그리워하며외로움과씨름한다.입원한뒤삼주쯤지났을무렵,그녀앞에마법처럼엄마가나타난다.“안녕,위즐.”아주오랫동안듣지못했던애칭으로그녀를부르는엄마의목소리를듣자루시는단번에몸이따뜻해지는것을느낀다.
그녀의엄마는침대곁에앉아고향사람들에대한이야기를끊임없이풀어놓는다.그들의결혼생활,불행한결말을맺었던삶들에대해서.엄마의이야기는루시의마음속깊은곳에무겁게가라앉아있던어린시절의기억을현재의표면위로불러온다.종조부의차고에서지내며추위와배고픔과외로움에떨던날들,부모님의억압과간헐적인폭력이이어지던날들,그래서그토록떠나고싶어했던고향앰개시에대한기억을.또한그녀가그토록동경했던뉴욕에서의삶까지도.그리고루시는서서히깨닫는다.그러한기억들이어떻게그녀를현재의그녀로,소설가로만들었는지를.
“하지만이건내이야기이다.
이이야기는내것이다.이이야기만큼은.
그리고내이름은루시바턴이다.”
『내이름은루시바턴』에서작가는루시바턴이라는일인칭화자에게목소리를내어준다.게다가스스로를‘나’라고지칭하는이소설의화자는소설가이다.작품중반부에이르면자신이소설을쓰게된이유와경위에대해루시바턴이풀어놓는이짧지만강렬한이야기자체가곧루시의작품이라는사실이드러난다.즉『내이름은루시바턴』은소설이쓰인계기(원인)에대한이야기이면서동시에쓰인소설(결과)그자체이다.시작과끝이맞물린뫼비우스의띠처럼원인과결과가맞물린이작품의구성은언뜻단순해보이는이야기에깊이를부여한다.『내이름은루시바턴』은소설가가되는일에대한,소설가로사는일에대한,그리고소설을쓰는일에대한일종의메타소설인셈이다.따라서“책이내외로움을덜어주었다(…)그래서생각했다.나도사람들이외로움에사무치는일이없도록글을쓰겠다고!”(본문34쪽)말하는루시바턴의목소리뒤에서우리는오랜세월소설가로살아온작가스트라우트의존재감을느낄수밖에없다.
시간순서에관계없이단편적인기억의조각들로느슨하게연결되어있는이소설의구성역시스트라우트의글쓰기방식과일치한다.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는언론에기고한글에서자신의작업방식을이렇게밝힌바있다.처음부터끝까지선형적으로소설을쓰는것이아니라일상속에서떠오른장면들을‘수집해’짤막하게글로옮긴뒤커다란테이블위에펼쳐놓고각장면들의연결성을떠올리는방식으로글을쓴다고.그리고단편적인장면들을수집하는그과정이소설쓰기에서자신이가장좋아하는단계라고.비교적이야기성이뚜렷했던이전작품들과달리조금더자유로운서사로얽힌이작품은스트라우트소설의원형에조금더가깝다고도볼수있을것이다.
그러나결과적으로이작품을통해스트라우트가하려는일은,그리고해내는일은이전작품들과다르지않다.그것은“인간의조건에대해알려주는것,우리는누구이고우리는무슨생각을하고우리는어떤행동을하는지를말해주는것”(본문114쪽)이다.
기억,우리를붙잡고있는것.
혹은우리가붙잡고있는것.
“나는우리가아이였을때품게되는아픔에대해,그아픔이우리를평생따라다니며너무커서울음조차나오지않는그런갈망을남겨놓는다는사실에대해내가아주잘안다고생각한다.우리는그것을꼭끌어안는다.펄떡거리는심장이한번씩발작을일으킬때마다끌어안는다.이건내거야,이건내거야,이건내거야.”_본문217쪽
결국『내이름은루시바턴』에서말하는‘인간의조건’은기억이다.매순간한겹씩쌓인그기억의총체가‘나’라는사람을구성하고정의한다.하지만그기억은선연하고명료한기억이아니라흐릿하고모호한기억이다.일부가지워져있거나세월속에서뒤틀린기억이다.소설의화자인루시는반복해서자신의기억이,즉자신의진술이,사실이아닐수도있음을밝힌다.따라서독자는화자가말하는과거의일화들이실제로일어난일이맞는지확신할수없다.기억은그렇게불완전하고우리를구성하는것이그불완전함이기에,타인을진정으로이해하는것역시불가능하다.루시는엄마가어린시절자신이받았던고통과상처를떠올려주기를기대하지만끝내그바람은이루어지지않는다.두사람의기억은어긋난다.딸과엄마는서로를사랑하지만서로를완전히이해하지못한다.
작품속에서루시가끊임없이과거의기억을떠올리는것은어떤최종적인하나의진실을확인하기위해서가아니다.중요한것,소설이진정으로말하고싶어하는것은실체적진실이아니라심리적진실이다.우리가가지고있는기억이사실이든사실이아니든,지금이순간실재하는우리는그기억으로이루어진존재이기때문이다.그리고그속에는어둠과빛이공존한다.기억속의어둠은오랜시간이지나도사라지지않고어딘가에도사리고있다가생각지못한순간에우리를붙잡는다.기억은그렇게우리를붙잡고놓아주지않는속박이지만동시에우리가붙잡고놓아주지않는것이기도하다.
소설은고통을극복하고완전해지기위해내면에깃든어두운기억을몰아내야한다고이야기하지않는다.대신죽음이삶의일부이듯,어두운기억역시우리의일부라고이야기한다.결국루시는어두운기억을억압하는대신끌어안고받아들이는법을배운다.그녀는어둠속에존재하는반짝이는순간들을본다.트럭속에갇혀공포에떨었던기억은울고있는그녀를꺼내안아주던아버지의따뜻한손길과얽혀있다.루시를앞으로나아가게하는힘은바로그것,어둠속에서빛을보는시선이다.루시는끝내엄마와완전한화해를이루지못하지만그럼에도그녀는앞으로나아간다.구원은타인과의화해가아니라자신과의화해에서오기때문이다.결국소설의제목이자소설의말미에등장하는화자의선언,“내이름은루시바턴이다”는자신의어둠을향해내미는화해의손길이다.
“하늘이없으면어떻게살수있을까?”
“대신다른사람들이있잖아요.”
어둠속에우뚝서서밤을밝히는크라이슬러빌딩처럼,기억속에반짝이는순간들은삶에내재할수밖에없는어둠을견딜만한것으로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