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전경린 장편소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전경린 장편소설)

$13.00
Description
오로지 내가 너를 기억하는 힘으로 써내려간 우리의 이야기
섬세한 문장과 강렬한 묘사로 삶과 사랑의 양면성을 그려내는 작가 전경린의 신작 장편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2017년 3월부터 7월까지 넉 달간 연재되었던 작품을 상당 부분 개고해 묶었다. 휘몰아치는 서사나 스펙터클한 사건 없이 한 인물의 유년과 성장, 그 반추를 함께하는 감정선을 따라가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나를 만들어가고 또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이 깨달을 수 있다. 전경린 작가의 이번 작품에서 그것은 기억과 관계의 힘, 그리고 그것이 이끈 운명이다. 작가는 이렇게 묻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기억이 있을 것이라고. 그 노스탤지어가 이끄는 곳에 어쩌면, 내가 지나온 과거에 어쩌면 이미, 앞으로의 삶을 결정할 거의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저자

전경린

저자전경린은1995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중편「사막의달」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아무곳에도없는남자』『내생에꼭하루뿐일특별한날』『난유리로만든배를타고낯선바다를떠도네』『열정의습관』『검은설탕이녹는동안』『황진이』『언젠가내가돌아오면』『엄마의집』『풀밭위의식사』『최소한의사랑』『해변빌라』,소설집『염소를모는여자』『바닷가마지막집』『물의정거장』『천사는여기머문다』등이있다.한국일보문학상,문학동네소설상,21세기문학상,대한민국소설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현진건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임시동거인
반지를빠뜨린구멍
흔한이별
병원집
봄장미가밍크고래에게한말
나애,단하나의원본
엘로이
나를라애라고부르는세사람
너를기억하는힘으로
종이비행기국가대표선수
토마토처럼깨어지는얼굴
악어가등뒤로지나갈때
예레바탄사라이,땅에가라앉은궁전
가라앉은궁전
가정의전설
이제필요한건우연을관리하는능력
상자속의동화
고독의질서
에필로그│내가거기로갈게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어떤일은단한번일어났다해도영원히계속된다.”
-감정의일생을쓰는작가,전경린신작소설

섬세한문장과강렬한묘사로삶과사랑의양면성을그려내는작가전경린의신작장편이출간되었다.『해변빌라』(자음과모음)이후삼년만이며,열두번째장편소설이다.문학동네네이버카페에서2017년3월부터7월까지넉달간연재되었던작품을상당부분개고해묶었다.휘몰아치는서사나스펙터클한사건없이한인물의유년과성장,그반추를함께하는감정선을따라가는일만으로도,우리는나를만들어가고또변화시키는것이무엇인지새로이깨달을수있다.전경린작가의이번작품에서그것은기억과관계의힘,그리고그것이이끈운명이다.작가는이렇게묻는듯하다.누구에게나‘이마를비추는,발목을물들이는’기억이있을것이라고.그노스탤지어가이끄는곳에어쩌면,내가지나온과거에어쩌면이미,앞으로의삶을결정할거의모든비밀이숨겨져있는것은아닐까,라고.

“아마도진짜이별은우리가모르는사이에시작되어
우리가모르는사이에끝날것이다.”

-너를기억하는나의이야기.
오로지내가너를기억하는힘으로써내려간우리의이야기.

“나를라애라고부른사람은세상에세사람있었다.”소설의화자‘나애’의과거를지배하는세사람,도이,상,종려할매다.가족과떨어져‘병원집’에서살게된어린시절나애를지켜준사람들이기도하다.도이,상과는유치원시절,그들사이에‘문자도없던시절’우연히만났다가헤어진뒤아홉살에또다른우연으로만났다.“세상에들어오기전에,우린거기서함께했다”고그시절을술회하는나애.공고하고비밀스럽고무구하고강렬한유년의추억이다.종려할매는‘병원집’의별채에기거하며집안일을도맡아하던인물.나애의버팀목이되어부재하는것이나다름없는어머니의자리를채워주었다.
풍요보다는결핍이,꿈보다는녹록치않은현실이삶을지배하던1970년대의풍경속그추억은반짝빛나지만시간은흐르고인생은알수없는방향으로나아가게마련이다.불우한가정환경이나뜻하지않게마주한불운모두자신의탓은아니지만,상은폭력을쓰는세계로,도이는폭력을당하는세계로멀어져갔다.종려할매와는작별인사도못한채헤어져버렸다.끝내상은젊은나이에스스로죽음을택했다.도이는요양병원에입원하였으나외려비로소평화로운시간을보내고있다.

나는언젠가할말이있었다.도이야,너를줄곧생각했다.너를잊은적이없었다.하지만그것은틀린말이었다.사람이줄곧그것을생각할수는없다.이따금생각한것이다.늘잊고살다가문득문득생각한것이다.평생그럴것이다.(36쪽)/기억한다.나의진실은이것뿐이다.기억이란이야기가아니다.이야기라고하기엔너무짧은영상들,끊어지는장면들,흩어지는표정들.그러나순간이라고하기엔너무깊다.나는기억한다는것의의미를모른다.다만줄곧도이를생각해온것만같다.(74쪽)

작품에서반복적으로등장하는,나애가도이를떠올리고생각하는대목.따라읽다보면그것이도이를살게한원동력은아닐까생각하게된다.어린시절도이와상이나애를살게한것처럼말이다.“이를테면도이와상이라는축이없었다면,나의유년세계는기억으로구성되지못했을것이다.다른수많은나날이유실되었듯이,어딘가로빠져나가사라지는것이다.아무일도없었던것처럼,아니아무일도없이”(73쪽)라는나애의말처럼,우리는나하나로온전히나일수없는존재이며,우리의세계는서로의기억속에살고기대며구성된다.삶을이어가는힘이그안에서나오는것은어쩌면당연한일일터이다.

2010년대를사는현재의나애에게는강과희도가있다.십년을안정적으로만나온강과는강의옛연인허윤주가찾아오며기묘한삼각관계를이어가다가-나애는강과허윤주사이의아이의대모가되었다-결별하였다.희도와는삼년을‘임시동거인’처럼만났다.나애와희도는많은시간과경험을공유했지만“둘사이에는어느새최초의간격으로돌아가는탄성이있었다.”(10쪽)그런희도와나애는결국서로를떠나보내려하는데…

상실은두려우면서도친숙했다.언젠가몇번이고겪었던일이또다시일어나는것이다.그런데나는왜잃어버릴때안심하는것일까.왜잃어버린것들이오히려더안전하게느껴질까.오히려더확고하게나의것같을까.현실은여기까지이다.여기서끝이난다.희도는떠나지만,이제현실의이름을지우고내안의세상을살차례였다.나의안에는그런장소가있다.한번일어난일은영원히복기되는곳,그곳에서는아무것도사라지지않는다.(49쪽)

도이,상,종려할매,‘병원집’의다른사람들,엄마,그리고강.소중한사람들을차례로잃어갔던나애의경험과기억은,그녀가품어온근원적인고독은,결국이렇게희도역시떠나보내는가.공항의출국게이트로발걸음을옮기는나애의모습으로소설은끝이난다.나애는어디로향할까.“때로어딘지모를그멀고낯선여행지는기억과망각이뒤섞인자신의가장안쪽일수도있다.자신의고독을받아들이고침묵할때부유하는여행은끝나고삶이시작된다.”(243쪽)

‘감수성의작가’전경린은내면깊은곳의감정을마치살아움직이는생물처럼생생하게그려낸다.그것이어떻게생겨나자라는지,변하는지,소멸해가는지,그감정의일생을씀으로써인간의가장여리고섬세한특질을애틋하게부각한다.그리고그감정이이끈,누군가의삶을지배하게된운명으로우리를조용히안내한다.소설의마지막장을덮은뒤밀려오는저마다의기억속에가만히들어앉아소중했던이름들,나를소중히여겼던이름들을곱씹어볼일이다.‘너를기억하는힘으로’라고되뇌며그이름들로이루어진지금의나를새삼돌이켜보면,마음한구석에서부터벅차오르는묘한감정에휩싸일터이다.그것이바로위태롭고공허한,때때로버거운삶을감싸안는전경린식위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