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불 (체사레 파베세 장편소설)

달과 불 (체사레 파베세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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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저 달은 우리가 사는 땅에 피를 돌게 하고 또다시 살기 위해 우리는 언덕 위에서 불을 지른다!

『달과 불La luna e i falo』은 체사레 파베세Cesare Pavese(1908~1950)가 남긴 마지막 소설이자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파베세는 1949년 9월 18일에서 11월 9일 사이에 집필하여 1950년 4월에 이 작품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 소설 출간 두 달 뒤인 6월에 그 전해 발표했던 소설 『아름다운 여름』으로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작가로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두 달 뒤 싱그러운 여름날에, 파베세는 돌연 세상을 등져 그를 사랑하는 이들을 커다란 충격에 빠트렸다.

파베세의 『달과 불』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산토스테파노벨보’라는 공간이 파베세 자신의 고향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파베세는 이 소설에서 고향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고향이란 아무리 아픔을 주어도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힘을 되살려주는 곳이자, 뿌리 뽑힘을 경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위안처가 되고 지향점이 되는 곳이다. 다음으로 『달과 불』의 주인공 ‘안귈라’와 그의 절친한 벗 ‘누토’의 관계를 들 수 있다. 파베세가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살던 시절의 절친한 벗이었던 피놀로 스칼리오니(1900~1990)를 모델로 하여 주인공의 친구 누토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 또한 자전적이다. 이 소설에서 누토는 주인공이 부재했던 기간에 고향을 지킨 인물로 그려지며, 그가 주인공에게 들려주는 이차대전이라는 혼란기에 고향마을에서 일어난 갖가지 일화들은 이 소설의 전개에 지렛대 역할을 한다. 누토의 이야기를 거쳐서 주인공은 과거로 들어갔다가 현재로 나오기를 반복하고, 그럼으로써 이야기는 차츰 극점을 향해 뻗어간다. 끝으로 주인공 안귈라가 사생아라는 제약을 탈피하고 부유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미국이라는 공간도, 토리노대학에서 월트 휘트먼을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던 미국문학 전공자이자 번역가였던 파베세의 특징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주인공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기회의 땅인 동시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향의 정감이 사라진 비정한 땅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이 지닌 유년기의 꿈이 고향 탈출이었다면 장년기의 꿈은 황량한 사막 탈출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안귈라의 특징인 아버지 없이 자란 사람과도 연결된다. 소설 속에서 어린 시절에 안귈라를 양육해준 ‘파드리노’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파드리노는 대부(代父)나 교부(敎父)를 뜻하는 보통명사이지 특정한 이름이 아니다. 그럼에도 파베세는 이를 고유명처럼 대문자로 사용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파베세의 개인적 체험이 투명돼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주인공은 끊임없이 새로운 땅, 현실의 부조리를 해소할 이상향을 찾는다.

32장으로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주목할 대목들이 있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주인공 안귈라는 가난한 농가에 입양되어 어린 시절을 보내다 십대가 됐을 무렵 인근의 부유한 모라 농장에 맡겨져 하인 생활을 한다. 이런 안귈라의 꿈은 자신을 묶어둔 밑바닥 환경(고향)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는 마침내 농장을 도망쳐 미국으로 이주해 온갖 고생 끝에 성공하여 나름대로 돈을 벌고,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고향을 방문한다. 이 소설은 이십 년 만에 고향을 찾은 주인공이 겪는 보름 동안의 일을 다루고 있다. 때마침 열린 여름 축제 기간에 안젤로 여관에 머물면서 고향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가 떠나 있던 시기에 고향에서 벌어진 갖가지 사건들에 관해 듣게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 ‘친토’라는 어린아이다. 주인공이 기대 없이 찾은 가미넬라 언덕의 옛집에 사는 이 절름발이 소년은 주인공의 유년을 거울처럼 비추는 존재다. 아무 희망 없이 속박된 소년의 모습에서 주인공이 희구하는 희망의 정체가 윤곽을 드러낸다. 또 이와 나란히 축을 이루는 것이 모라 농장의 세 딸 이야기다. 선망의 대상이면서 자신과 다른 계층인, 쉬 다가갈 수 없는 지체 높은 신분의 아가씨들. 마지막에서야 이들의 쓰디쓴 인생사가 밝혀지면서, 이차대전 말기 북이탈리아의 복잡다단한 비극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몰락의 한복판에서 단말마처럼 발악하는 파시스트들의 이탈리아사회공화국(일명 살로 공화국)과 전후에 처절히 배제되는 빨치산들 간의 대결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운명과, 무정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깨닫게 해준다.
저자

체사레파베세

시인,소설가,번역가.1908년이탈리아북서부피에몬테주의작은마을산토스테파노벨보에서태어났다.일찍아버지를여의고어머니와누이손에서자랐으며토리노로이주해학업을마쳤다.다첼리오고등학교때작가이자반파시즘활동가인교사아우구스토몬티에게서큰영향을받고,영문학을공부하던토리노대학때는레오네진츠부르그를비롯한여러친구들과사귀며문학적야망을키운다.1932년허먼멜빌의『모비딕』을번역출간한다.파시즘에맞서고당대문학을쇄신하는방편이었던파베세의미국문학을향한열정은,엘리오비토리니와함께이탈리아의네오리얼리즘문학을여는계기가된다.1935년허스키한목소리의여인을지키려다공산당협력자로몰려파시즘정권으로부터감금3년형을받고남쪽바닷가브란칼레오네마을로유배된다.그무렵소용돌이치는속내를하루하루기록하기시작하면서일기쓰기는확고한습관으로굳어진다.1936년사면되어토리노로돌아와첫시집『피곤한노동』을펴낸다.초창기에이나우디출판사에서편집자로일했으며이때많은작품을구상한다.이차대전발발로파시스트군에징집되지만천식을이유로면제되어반년가량로마에머문다.1943년에이나우디에서『피곤한노동』최종판을내면서시인으로서의한시절이끝났음을선언한다.이차대전종전후공산당에입당해당기관지『루니타』편집에도참여한다.이후소설에매진한다.왕성한창작열로『동지』『닭이울기전에』『언덕위의집』등을발표하고,독특한형식의『레우코와의대화』같은작품을내놓는가하면,1949년작『아름다운여름』으로1950년이탈리아최고권위의스트레가문학상을받기에이른다.그러나유명작가로발돋움한그해여름,갑자기세상을등져많은이를충격에빠트렸다.같은해봄에출간됐던『달과불』은그의마지막소설로남게된다.사후에시집『죽음이다가와당신의눈을가져가리』가출간되었고,유배시절부터썼던방대한일기가『삶이라는직업』이란제목의책으로엮여출간되었다.

목차

달과불___________________ 009쪽
옮긴이의말__________________ 213쪽

출판사 서평

파베세가남긴마지막소설!
“상징적인기호와자전적인모티프,
절대적인언어를사용한
파베세의가장밀도높은작품.”
이탈로칼비노

전후이탈리아문학에네오리얼리즘의열풍을몰고온
파베세의대표작국내초역

이차대전종전후이탈리아문학계에큰자취를남긴체사레파베세가생전에발표했던마지막소설『달과불』이문학동네에서번역,출간되었다.『피곤한노동』(시전집01)과『냉담의시』(시전집02)로파베세의시세계전체를조망할수있게한데이어,이번에펴낸『달과불』(파베세선집03)에서는시인으로서의한시절과작별을고한후그가어떻게소설에몰두했는지를살필수있도록했다.시인에서소설가로변신에성공한파베세가삶을마감하기직전에모든것을쏟아부어완성한이작품은가장파베세다운작품으로평가를받고있으며,오늘날까지이탈리아네오리얼리즘(신사실주의)의열풍을확산시킨걸작으로평가되면서많은이들로부터꾸준히사랑을받고있다.

소설의줄거리는다음과같다.사생아이자미국에서자수성가한주인공안귈라는사업차방문한제노바에머물면서이십년전에떠난고향,여름축제가열리는산토스테파노벨보를찾는다.모든것이변했지만또이상하리만치모든것이그대로인그곳.클라리넷을부는친구누토가있고,어린시절의추억을간직한가미넬라언덕의옛집이있고,거기에사는불쌍한절름발이소년친토가있는곳.그리고이들을둘러싸고끝없이이어지는란게언덕들,포도밭의풍경들,그리고풀과나무,들판에생기를불어넣던하늘의달,해마다생명의약속처럼다시지펴지던언덕위의불들.그러나주인공안귈라가그토록그리던달과불의추억은하나씩부서진다.조금씩밝혀지는모라농장의최후와광기에불타없어지는오두막집,이차대전무렵북이탈리아피에몬테의거친현실이신화처럼펼쳐진다.이신화적전망속에서기억은비극적현실이라는새로운육체를얻는다.

[책속으로추가]

그모든것에서,모라농장에서,우리의삶에서지금무엇이남아있는가?여러해동안저녁바람결에실려오던라임나무향기만으로도나는다른사람이된것같았고,그와동시에진정한나자신을느꼈는데,왜그런지그이유조차알수없었다.내가언제나생각하는것은,그계곡에,또세상에수많은사람들이살고있으며,그때우리에게일어났던일들이바로지금도계속일어나지만,사람들은그것을모르고또생각하지도않는다는사실이다.(본문165쪽)

저기먼지속에서,누가큰길을달려오는,꼭개가내달리는것같은모습이보였다.한소년이절룩이며우리에게달려오고있었다.친토임을식별했을때,그는벌써우리앞에당도해나의다리께로몸을던지며개처럼웅얼거렸다.
“무슨일이야?”
처음에는믿기지가않았다.아버지가집에불을질렀다는것이다.“너희아버지가?뭘어쨌다고?”누토가물었다.
“집에불을질렀어요.”친토가되풀이해말했다.“날죽이려했어요……목을맸어요……불을질렀어요……”
“등잔을엎었다는거야.”내가말했다.
“아니,아니요.”친토는외쳤다.(본문169쪽)

나는아직도옛모습그대로남아있는울타리난간에앉아서,그많은죽은사람들중에서도마테오씨의딸들만큼은머릿속에서지울수없다고말했다.“실비아는그렇다고치고.집에서죽었으니까.하지만이레네는그뜨내기랑어떻게됐을지……고생은고생대로하고서는……그리고산티나,그산티나는또어떻게죽었을는지누가알겠어……”(본문200쪽)

우리는보잘것없는포도밭을가로질러갔고그곳의단단한둥치에는산모양의조그마한노란색꽃과양치식물이가득차있었다?그꽃들을씹어껍질이터진포도나무줄기에붙여막는것을나는알고있었다.언덕은계속오르막이었다.우리는여러농가를지나이제탁트인곳에이르렀다.
“너한테할얘기가있어.”갑자기누토가눈을깔고말을이었다.
“나산티나가어떻게죽었는지알아.거기에있었어.”(본문202쪽)

그러다가1943년여름과더불어산티나의호시절도끝이났다.누토는소식을듣고또전하기위해늘카넬리에갔지만더이상커튼쪽으로는눈을들지않았다.사람들은산티나가무리의우두머리와알레산드리아로도주했다고했다.
9월이되자독일과의전쟁이다시기승을부렸다?민병대원들은굶주린채변장을하고맨발로집에숨어들었고,파시스트들은밤새총질을했다.모두들수군거렸다.“다끝난줄알았는데.”공화국이시작되었다.어느날누토는산티나가카넬리에서돌아와파시스트들의본부에서일을다시시작했고,술에취해검은여단대원과잠자리를한다는소문을들었다.(본문203쪽)

산티나가거짓말을하는건아닌지파악하려고온갖노력을기울이던누토는,마침내지금은이쪽인지저쪽인지결정해야하는시기라고,자신은결정을했다고,자신은탈주자들과애국자들,공산주의자들편에섰다고말했다.자신들을위해사령부에서첩자노릇을해달라고그녀에게부탁을해야했지만,누토는감히그렇게말할엄두가나지않았다?특히여자를,그것도산티나를그렇게위험한일에개입시킨다는걸용납하지못했다.정작그런생각을떠올린것은산티나자신이었고,그녀는누토에게군의움직임과사령부의명령,파시스트들에대한많은정보를제공해주었다.(205-206쪽)

두달뒤인5월말,산티나는카넬리에서떠났다.그들이눈치를채고잡으러왔기때문이었다.독일군순찰대가들이닥쳐그녀집을수색했다고영화관주인이말해주었다.카넬리에서는그이야기뿐이었다.산티나는언덕위로달아나빨치산대열에합류했다.누토는밤중에들러임무를전하는동지들한테서간간이소식을들었는데,그녀는무장을하고다니며모두로부터존중받고있다고했다.나이든어머니,빌어먹을집만아니라면,누토역시그무리속에서산티나를도왔을것이다.(본문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