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엔민주주의를흔히불가침의진리처럼여기지만,고대그리스이래로많은사상가들은오히려군중의지배,‘다수의횡포’를경계했다.고대그리스의플라톤과19세기의토크빌은똑같이민주주의에서타락한물질주의를봤다.위대한현자가곧정치지도자인‘철인왕’에대한염원도단지고대의꿈만은아니었다.법과권력,정의와자유에관한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마키아벨리,홉스,로크,루소,토크빌의의견은다달랐다.최고의시민이곧최고의인간은아니듯,정치는상대적이다.마키아벨리의말처럼우리에겐자기손을더럽힐줄아는고도의정치술도필요하다.미국대통령을지낸정치학자제임스매디슨은정부형태자체가인간본성의반영이라면서“인간이천사라면정부는필요없다”고말했다.정치철학에정답은없다.정치철학은‘최선’의정치체제를향한지식탐구의여정이다.
소크라테스,정치철학의출현
서양정치철학의출발점은단연소크라테스다.소크라테스의재판과죽음은그자체로대단히정치적인행위였다.서구철학전통은소크라테스의재판이드리운기다란그림자속에서이어져왔다.그재판은소크라테스이후의모든철학자가마주쳐야했던문제를제시한다.한편으론진리와최고의체제를추구하면서도,다른한편으론불완전한사회의법과규범을따라야하는현실의딜레마가바로그것이다.철학과사회의이런긴장은삶의영원한실상이자철학자체의전제조건이다.
소크라테스는“성찰하지않는삶은살가치가없다”고확신한다.다른무엇도중요하지않다.그에게는자기완성을위한매우개인적인노력이지고한가치를지닌다.소크라테스의죽음은결코비극이아니다.70세였던그의죽음은장차철학이용기와정의의근원으로서여겨질수있도록한철학적순교였다.
플라톤의이상국가
‘철인왕’을제시한플라톤의유명한국가론에서중심이되는심리적범주는‘티모스thymos’(기개)다.영예를추구하는마음,삶의경쟁에서앞서고다른사람들을지배하려는욕망인티모스는탁월한정치적정념이다.티모스안에는영웅주의와자기희생,명예욕과지배욕이공존한다.모든위대한정치가,모든폭군도이런자질을지니고있다.플라톤의『국가』는티모스를다루는전략,티모스를이성의통제아래두고우리로하여금균형,자기통제,중용의수준에도달하게해주는전략을제시한다.그것이플라톤의정의正義이다.
플라톤의이상국가인‘칼리폴리스Kallipolis’는세단계를거쳐성립한다.첫번째는사유재산의제한,두번째는가족의폐지,세번째는철인왕을세우는일이다.특히『국가』에서남녀의공평한교육,기회의균등을역설한점은특기할만하다.칼리폴리스에여성의사회적성공을막는‘유리천장’은없다.대신‘낭만적사랑’도없다.성관계는엄격하게번식을위해서만이루어지며,아이양육은공동체의책임으로공동탁아소에서이루어진다.이계획의목적은‘나’와‘나의것’이라는소유개념의철폐이며,‘나의것’은‘우리것’으로대체된다.
그러나플라톤은철인왕같은통치자가실제로등장하기를기대할수없음도인정한다.그런철학적국가는개인의교육을이해시키기위한은유이다.정치개혁에참여하기를바라는개인의첫번째임무는자기개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법의지배
인간이정치적동물인이유는유독인간만이말하는능력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말,즉이성은다른동물이누릴수없는선택의자유를준다.인간을정치적으로만드는것은본능이아니라이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따르면,최고의시민은공직에적극참여함으로써만완성된다.시민적자유는정치적책임을행사할때에만,동료시민들의행복을함께책임질때에만온다.아리스토텔레스가염두에둔정치체제는교육받은소수엘리트시민이모두의선을위해통치하는귀족주의공화정에가깝다.그는다수가지배하는민주정을참주정,과두정과함께타락한체제로꼽았다.아리스토텔레스는품격있는입헌질서를위해법의지배가정당하다고본다.아리스토텔레스는법의지배가정의를보장하지는않지만,정의,즉정치적합법성은법의틀을벗어나서는성립할수없다고확신했다.
그러나그가염두에둔국가는공통의언어로통치가가능한작은도시국가다.한도시국가를형성하는것은공동의경험과기억이기때문이다.오늘날처럼여러언어를쓰는다민족대규모공동체는아리스토텔레스의기준에따르면인간의행복에필요한상호간신뢰와우정이쌓이기어렵다.
성서의정치성,이브는페미니스트?
『창세기』의이브는왜지식나무에접근하지말라는신의명령을무시했을까?그런데신이그런지시를내린대상은아담이었다.아담이그말을이브에게도전했겠지만,이브는어쨌든신의명령에불복종한게아니라아담의명령에불복종한것이다.아울러이브는아담에게없는자연적호기심을드러낸다.아담은신이명령하면잠자코복종하는하찮은사람에지나지않는다.반면이브는철학자와같은태도를보인다.그녀에게는자연스러운호기심,낯선경험에열린태도,배우려는열의가있다.
선과악을아는도덕적지식은인류역사의발전을여는열쇠다.도덕적지식은우리를인간으로만들어준다.죄를저지르기전의아담과이브에겐바로이런인간성의본질적측면이없었다.지식나무의열매를먹는것은인간됨의실현을향해내디딘결정적인첫걸음을나타낸다.
성서의정치적가르침을살펴보면,대체로정부(다윗같은유대인왕을포함해)가내세우는법은불공정하며통치자들은도덕적으로결함이있다고지적한다.정부,국가체제에대한노골적인고발이다.성서처럼분명하게개인의양심을통치자들의권위보다위에두는고대의문학작품은없다.
마키아벨리,근대국가의건축가
근대주권국가의건축가마키아벨리의『군주론』은새로운지도자,무無에서자기만의권력을창조할준비가되어있는지도자에게바치는책이다.마키아벨리가지도자의중요한자질로꼽는것이비르투virtu(힘,역량,남자다움)이다.이는때로폭력적이고강탈적인성격을띤다.비르투란어떤기회(상황)에서이익을취하는능력으로,이런상황은운運(포르투나fortuna)에의해주어진다.비르투와운은마키아벨리에게상호보완적인용어다.비르투는그것을사용할적절한상황이있어야하고,모든상황은적절한인간적기술과능력을발휘할기회를만들어낸다.운(운명)이홍수가난거센강물이라면,비르투는이통제할수없는물살을제어하는둑과같다.
마키아벨리에따르면,모든국가는지배하기를바라는부자/권력자인귀족계급과그저귀찮게하지않기만을바랄뿐지배하려는욕망이없는평민계급으로나뉜다.마키아벨리는군주의권력이귀족보다평민에기반을두어야한다고본다.권력에대한야망이있는귀족은군주에게위협이되기때문이다.따라서정부가할일은이런귀족계급을통제할방법을강구하는것이다.
마키아벨리는무엇보다사회갈등(계급갈등)의이론가이며,이런갈등을긍정적으로여긴다.그에게는모든정치가당파정치다.합의는사기이며,합의에대한호소는한계급의지배를위한연막에불과하다.인간의삶은원래피할수없는갈등이다.정치의목표는갈등의종식이아니라갈등을조직하고그것이국가적위대함이란명분에활용되게끔만드는것이다.
홉스의주권자
마키아벨리가‘군주’를말한다면홉스는‘주권자sovereign’를이야기한다.주권자란계약을통해만들어진비인격적권력,‘인공적’권력이다.홉스가제시하는정치체제는간접통치,즉대의정부다.주권자는집단의힘으로직접통치하는인민이아니다.주권자는인민을대표하는사람을통해인위적으로재구성된인민의의지다.주권자대표는인민의의지를거르는필터역할을한다.
홉스에게자연상태는전쟁또는갈등의상태,만인에대한만인의전쟁상태다.이때전쟁상태는모두가두려워하는공인된권력의부재를뜻한다.홉스에게자연은평화와조화,우애속에서하나로통합된세계가아니다.전쟁상태가영원히싸우는상태를뜻하진않는다.그것은영원한두려움과불신의상태다.죽음,불명예,실패에대한두려움이야말로가장흔한자연적정념이다.하지만이두려움이있기에인간은자연상태에서시민적상황으로나아갈수있다.자연상태의두려움과불안을떨쳐내려면절대적권력을부여받은주권자를만드는수밖에없다.
이때주권자는사람이아닌직책을가리킨다.주권자를탄생시킨계약은‘만들어진’것이다.주권자는자연적으로존재하지않는다.주권자는인민의창조물,인민이승인한생산물이다.주권자에게인민을대표하고대신행동할권한을부여하는것은바로인민이다.이주권자만이법의원천이다.법은주권자의명령이다.홉스의주권자는오늘날과같은비인격적정부의토대가된다.
로크,정부의목적은재산권보호
로크는인간의자연적자유와평등을옹호한다.생명?자유?재산같은개인의권리,합의에의한정부,권력분립이이루어진‘제한된권한’의정부,그리고혁명할권리를옹호한다.로크는자유민주주의,입헌민주주의관념의대변자다.
로크는사적소유권이자연법에따른것이며,정부의과제도재산권보호에있다고본다.그가말하는새로운정치는영광,명예,덕목과는더이상관련이없다.상업은피를흘리거나목숨을걸라고요구하지않는다.상업은확실하고믿을만하며중간계급적이다.
세계는“근면하고합리적인”사람들이사용하도록주어졌다고말할때,로크는새로운중간계급(부르주아)을염두에둔것이다.로크의『통치론』에서목표는이새로운계급에게통치권을제공하는것이다.로크의새로운상업국가는인간의얼굴을한마키아벨리주의다.그는군주의통치를새롭고진취적인중간계급의통치로대체한다.로크의정치철학은독일의사회학자막스베버가말한‘자본주의정신’을정확하게대변한다.
『통치론』은정부의정당한권력이피통치자들의합의에서얻어진다고주장하지만,어떤정부형태가최선인지구체적으로밝히지는않는다.로크에게는권력,즉군주나행정부의힘을견제하는체제가최고의정부다.정부의목적은우리생명과재산에대해독단적권력을휘두르는전제적주권자의출현가능성을방지하는것이기때문이다.
루소,법은자유의시작
루소는『사회계약론』을이런문장으로시작한다.“인간은자유롭게태어났지만어디에서나사슬에묶여있다.”홉스와로크는자연상태에서시민사회로이행하더라도인간본성자체는잘변하지않는다고보았지만,루소는시간이흐르면서인간본성에거대한‘혁명’이일어난다고믿었다.
루소는『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본래독립적이고자유로운인간이어떻게사회에서는약하고의존적인노예처럼살게되었는지보여준다.미개인savage은어떻게시민이되었을까?자연인은어떻게부르주아가되었을까?답은바로‘재산’이다.“고대정치가들은항상도덕과미덕을이야기했다.우리정치가들은상업과돈이야기만한다.”(『학예론』)
부르주아는타인의의견에둘러싸여거기에기대어사는부류,혼자일때는타인만생각하고타인과함께일때는자신만생각하는부류다.부르주아는표리부동하고위선적이다.자기편애로인해끊임없이동요하는부르주아는영원한불안속에서살며,이는우리문명이남겨준특수한고통이다.
루소가말하는사회계약은일반의지의기초이며,일반의지만이주권자를합법화한다.왕도의회도아닌공동체전체의일반의지만이진정한주권자다.홉스와로크에게자유는법에의해규제받지않는행위의영역이다.법이침묵하는곳에서만자유가주어진다는뜻이다.그러나루소에게법은자유의시작이다.인간은자신이따르게될법을만드는데참여하는정도만큼자유롭다.자유는자신이관여한그법에따라행동하는것이다.그럴때에만개인은자신의주인이된다.
토크빌,민주적영혼의불안
“민주주의에관해쓰인역사상가장중요한책”『미국의민주주의』에서토크빌은새로운민주주의사회가인간의자유를조직적으로위협하는새로운권력형태,새로운지배유형을창조한다고보았다.그가말한사회는미국으로대표되는중간계급의민주주의,즉무언가모호한욕망의대상을끊임없이추구하는사람들로이루어진부르주아민주주의사회다.토크빌은이새로운형태의정치권력이미칠효과를어떻게완화할지숙고했다.
토크빌은정부의형태보다는사회적상태로서의평등을이야기한다.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