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영원한 밤 (김인숙 소설)

단 하루의 영원한 밤 (김인숙 소설)

$13.00
Description
요히 일렁이는 잔물결 같은 문장들이 일으키는 아득한 착란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기꺼이 끌어안는 작가, 김인숙 단편의 정수

한국일보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0), 이상문학상(2003), 이수문학상(2005), 대산문학상(2006), 동인문학상(2010), 황순원문학상(2012)…… 소설가 김인숙이 걸어온 이 화려한 이력 앞에서 누군가는 그가 작가로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느낄까.
그렇지만 한국문학에서 김인숙이라는 작가가 지닌 특별함은, 그가 누구보다 깊고 넓은 작품세계를 일구어내었음에도 누구보다 왕성하게 그 세계의 경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등단 이후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방황과 자유에 대한 희구를 그렸던 그는 이후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품으로, 개인의 삶을 세밀하게 응시하는 작품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해왔다.
그런 김인숙의 신작 소설집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은 삶의 매서운 진실을 묘파해내는 김인숙 소설의 매력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작가가 새롭게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페미니즘 로드무비의 통쾌함과 뜻밖의 스릴러적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최근 김인숙 소설의 특별한 변화”라고 간명하게 짚어냈듯, 이제 김인숙은 잠잠하던 일상 위로 돌출되곤 하는 뜻밖의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점점 더 거세지다가 아홉번째에 이르면 사람을 삼켜버릴 정도로 대단해”(「아홉번째 파도」)지는 파도처럼 언젠가는 삶을 삼켜버릴지도 모를 낯선 기미들에 대해.
저자

김인숙

서울에서태어나연세대신문방송학과를졸업했다.1983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상실의계절」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장편소설『먼길』로한국일보문학상을,단편소설「개교기념일」로현대문학상을,단편소설「바다와나비」로이상문학상을,단편소설「감옥의뜰」로이수문학상을,소설집『그여자의자서전』으로대산문학상을,소설집『안녕,엘레나』로동인문학상을,단편소설「빈집」으로황순원문학상을수상했다.장편소설『’79~’80겨울에서봄사이』『꽃의기억』『봉지』『소현』『미칠수있겠니』『모든빛깔들의밤』,소설집『칼날과사랑』『브라스밴드를기다리며』등이있다.

목차

델마와루이스_007
아홉번째파도_057
토기박물관_081
넝쿨_111
단하루의영원한밤_141
빈집_169
아주사소한히어로의특별한쓸쓸함_197
내이럴줄알았지_227

해설│양경언
레츠킵고잉_259

작가의말_281

출판사 서평

기억의갈라진실금아래서생이마련해둔함정속에서비밀을가둔채영원히반복되는단하루의밤

김인숙소설의새로운색채는「델마와루이스」에서가장뚜렷하게드러난다.「델마와루이스」는아흔이가까운나이의두자매가가출을감행하여바다로향하는여정을그린작품으로,제목에서보듯리들리스콧이연출한동명의영화에서모티브를얻었으리라짐작해볼수있다.
소설은영화와달리두주인공을노인으로설정함으로써노년의삶에대한우리사회의편견을깨뜨릴뿐만아니라,델마와루이스가중년의식당여자와그여자의딸을만나이뤄내는여러세대여성들간의유쾌한연대를부각시킨다.
그러나델마와루이스의자식들은노년의일탈을황당해하기만할뿐이들이왜가출했는지는영영알지못하고,소중한비밀을간직한자매의마지막여행은우리에게뭉클한여운으로남는다.
삶이함정처럼감춰둔비밀은때로스릴러의문법을통해선연하게폭로된다.「빈집」은오랜세월함께살아온남편에게증오심을느끼곤하는한여자가그럼에도삶을그러안기로결심하는결말뒤에남편의충격적인비밀을덧붙인다.
여자가본남편의모습은극히일부일뿐이며,남편이여자에게느끼는감정또한사랑만은아니라는것.소설은한인간이품을수있는비밀의무한성을독특한공간으로형상화하면서비밀에의해일상이유지되는역설에대한깊은사유를보여준다.
「토기박물관」은영어학원에같이다니는나이든여성‘미라’와‘제니’가어느오후우연히토기박물관의전시를관람하게된다는단순한줄거리로요약되지만,읽다보면곧정밀하게계산된구성임을체감하게만드는수작이다.
노년여성의가벼운히스테리처럼읽고지나온문장들이어느새사랑과고독의증세로다시읽히면서,문장하나하나가결말로나아가기위해필요한단서였다는사실을깨닫게되는것이다.
별다를것없던일상이일순긴장으로조여지는순간을작가는매우구체적으로묘사하면서,때로는‘기억의착란’이라는매력적인소재를활용하기도한다.한사람의인생은겉으로는명확한기록으로정리될수있지만,그내면에서는주관적이고불완전한기억으로만존재한다.
그런데기록과기억이상충하는것으로밝혀진다면인간은얼마나처참히무너지게되는가.「넝쿨」은그질문에대한답을찾고자성폭행생존자‘형윤’의지울수없는기억을불러온다.형윤에게그날의기억은착각할수있는것이아니지만,증거와기록은그녀가범인을잘못지목했다고말한다.
쏟아지는비난을견디며기억속범인의시선을피하지않으려눈을홉뜨는형윤의표정은삶을견디는일의그악스러움에대한절절한비유다.

너무나사소한,그래서비루하기까지한,
오직자신에게만특별한쓸쓸함에대하여

『단하루의영원한밤』에서김인숙은일상속에서발견한비일상의조짐에그어느때보다또렷한존재감을부여한다.주목해야할점은작가의이러한시도들이일상에서비롯되어결국에는보통의삶으로귀결된다는것이다.
표제작「단하루의영원한밤」에는노쇠하여정신이점차혼미해져가는노교수가등장한다.삼십년전어느하루의일탈로제자에게사생아를낳게한뒤,제자가아니라자신이받아야했던모욕과평생을싸워온그에게남은기억은이제삼십년전그날하루뿐이다.
“최후의생존을위해남겨놓을수있는만큼만남겨놓은”그기억을붙든채노교수는희미한숨을쉬고있다.하필그하루를남겨놓게만든것은그리움일까,죄책감일까,아니면창피함일까.삶을감내하다가결국스러져가는노교수를지켜보는또다른제자‘그’의삶에도창피하고모욕적인순간들이얼룩처럼묻어있다.어느밤,‘그’는자신의삶과노교수의삶을겹쳐보기시작한다.생의통증을느낀그밤이노교수의마지막기억처럼사는동안영원히반복될것이고,자신은그안에서헤어나오지못하리라는것을깨달으면서.
하지만이런쓸쓸한깨달음은창피와모욕과삶이내리는온갖형벌을감내하며주어진생을이어가고있는우리모두에게문득찾아오곤하지않는가.다른사람에게는별것아니겠지만나만의인생을살아온나에게만큼은특별한,비밀스러운깨달음.
그러니디테일은조금씩다를지언정김인숙이쓰고있는것은다른누구도아닌당신삶에대한이야기이다.아무리비루하고구차할지라도,모든인생은특별한비밀하나쯤품고있다는메시지를담은이야기들.
그건숱한인간사를응시해온작가가이무심한듯다정한소설들로우리를위로하는방식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