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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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학동네 시인선 107 이수정 시집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가 출간되었다.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장장 17년이라는 장고 끝에 첫 시집을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낯설거나 거친 언어가 아니라 오래도록 다듬은 자갈처럼 매끄러운 빛을 내는 맑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한 살들을 덜어내고, 말들을 덜어내고 나니 가장 자연어에 가까운 단어들이 남았다고 시인을 대변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언어들을 서정을 노래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죽음과 태어남을 반복하며 삶, 혹은 삶 바깥의 것을 시라는 만화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수면처럼 끊임없이 물결쳐 자신을 숨기지만 시인은 기어이 그 안을 바라보는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수차례에 걸친 재탄생처럼 그의 시 속에는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저자

이수정

저자이수정
1974년서울에서태어났다.2001년『현대시학』을통해등단했다.광주과학기술원에서시를가르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

심해에내리는눈
달이뜨고진다고
별의심장이었던,
시계악기벌레심장
벼루
음지식물
히말라야를넘어야하는마지막밤
일그러진하루
북풍속에서의잠
적막한음계
어떤저녁
가을벚나무
세수
저물녘의고유진동수
꽃지다
키작은사람들의가을

집이나를밀어낸다
억새
바다는보이지않고
겨울아침에
마른날의꿈
비곗덩어리
아스피린먹는사람
열쇠공을위하여
시계가소리도없이
희고긴이빨을가진,
재밌는것은무거우니까
서랍을봉함
먼지다듬이만이기억했다
기억의DNA는나와일치하지않는다
스파이웨어
날개가득커다란눈을그리고
이차원의수행
희망은사납다2
절망은옹기종기
산맥은빛난다
머루

구름먹는밤
바람의목줄을풀어주다
희망은사납다
로드킬
억새가흔들려서
시간의띠를뒤집어추억에붙여놓은건누구인가
연필

자동이체된봄이오는지,가는지
낭가파르바트
물음표가방울방울
가방
버지니아울프의일기
콘택트
너를기다리던별하나
옹이
기다림
기다림2
미루나무
백담사
성에
청어
손을뻗는참나무
기왓장어깃장
응달로만걸었다
갈림길
사라진
양파
슬픔은얼마나부드러운가
수면깨우기
겨울강
황태
난곡(難谷)
풍자를금하라

해설|나를찾는긴여정위,‘흰재의시학’
|나민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바다엔한생애를
지느러미에맡기고살던것들이
수평선너머로가고싶은마음인채로죽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하는데
흩어진사체가고운눈처럼내린다하는데
-「심해에내리는눈」부분

시인은심해를통해천천히가라앉는이미지와수평선너머에대한갈망을통해정적(靜的)세계를그려내고있다.재가되어버린생의부스러기들을찬란하게묘사하면서폐허위에새세계가얹어지는모습,삶과삶바깥사이에있는존재의경계를포착해낸다.
시인은부서지는것들에서도아름다움을놓치지않는다.순간적으로존재했다사라지는사물들의잔류혹은잔재에서도수천조각의빛을발견하는시인의마음은,서늘하면서도단단한세계를만들어낸다.시인의눈을통해부서지고재조립되는사물들은고유한생에의감각으로번역된다.“수천개의달이뜨고”지는수면에서달지느러미들이“일제히물을차고올라잘게부서질”때밤새“심해어들을몰고”(「달이뜨고진다고」)오는바다는그래서자기자신만의삶―그리고세계―를갖게된다.
뜨고지는수천개의달을볼수있는마음이어서일까,그부서짐을포착할눈을가져서일까,이수정의시세계는결코어둡지않다.그의번역을통해새롭게탄생한생(生)은눈부실정도로찬란한빛을품고있다.그래서마치무한히펼쳐진마음속세계를돌아다니고돌아와그곳이어떤곳이었는지들려주는듯한이시집은존재의민낯을확인하게하면서도읽는이의내면을따뜻하게한다.이역설적인온도는아마도이수정이제시하고싶은세계의온도그대로일것이다.그안에서시인이내놓는시어들과함께여행할우리는(어쩌면)여러차례죽음을경험할지도모르겠다.그러나‘다시’태어남이야말로가장열렬히존재하는방식이아니었던가.재는가장뜨거운열렬함이후에가장부드러운빛을품게되지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