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박형서 소설)

낭만주의 (박형서 소설)

$13.00
Description
박형서 소설에 도래한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시작점!
현실보다 정교한 설정, 우주만큼 무한한 상상력
소설 실험가 박형서가 생에 바치는 기발하고 애잔한 세레나데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날렵한 유머 감각으로 삶의 비극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농담의 악마’ 박형서의 다섯번째 소설집 『낭만주의』가 출간되었다. 소설쓰기라는 행위에 어떤 한계도 설정하기를 거부하면서 ‘비슷한 가짜’가 아닌 ‘진짜’ 소설을 쓰기 위해 실험을 거듭해온 작가는 2014년 여름부터 2017년 봄 사이에 발표한 이 6편의 중단편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또 한번 갱신해냈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를, 그는 과거에는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추구했지만 그후 소설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라는 효용을 믿게 되었고, 이제는 “두 세기 전에 유행했던 한편으론 촌스럽고 또 한편으론 신비로운 저 요란한 허세 속에 서사의 항구적 진실, 다시 말해 우리 길 잃은 작가들의 영원한 주제가 담겨 있지 않았던가” 깨달았다고 한다.
소설집을 여는 첫 작품 [개기일식]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소설의 서술에 직접 개입하면서 서사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는 독특한 전개로 박형서 자신이 새로운 스타일을 확립하기까지 거쳐온 고뇌의 시간을 소설화한다. 개연성과 인과를 내세운 소설로 공공의 적과 투쟁해야 했던 시대를 지나, 모방이 아닌 왜곡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임을 주창했던 시대 또한 저물었을 때, 소설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개기일식]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나간 두 시대를 소설가 ‘성범수’의 대학 은사인 ‘칠성장어 최교수’와 ‘다슬기 유교수’로 표상한다. 시간이 흘러 두 교수의 위세도 역사 저편으로 흩어지고, 오랜 시간 자기 시대를 결정하지 못해 소설을 쓰지 못하던 성범수에게 어느 날 깨달음이 찾아온다.

칠성장어라면 과감히 지우고 당당하게 채웠을 것이다. 다슬기라면 엉뚱하게 지우고 제멋대로 채웠을 것이다. 성범수 자신은 또 다르다. 신중히 지우고 조심스럽게 채운다. 그게 성범수의 방식이다. (…) 그 원칙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봐줄 만큼 흥미로워야 한다. 다음으로는 앞뒤가 그럴듯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본성에 관해 의미심장해야 한다.(52쪽)

소설이란 흥미로운 동시에 그럴듯하고, 결국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이 소설집 『낭만주의』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형서는 규범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동하는 서사에 반드시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 어떤 기발한 상상력도 우리의 실제 삶에서 구현 가능할 법하게 설계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 그런 박형서가 그리는 삶은 ‘불행이 디폴트’인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순간일 뿐임을 거침없이 증명하며 삶의 맨얼굴을 집요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박형서 소설은 비극적인 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쓰기의 방식을 ‘박형서식 낭만주의’라 명명해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낭만주의』는 박형서 소설에 도래한 이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저자

박형서

강원도춘천에서태어나2000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등단했다.소설『새벽의나나』『당신의노후』,소설집『토끼를기르기전에알아두어야할것들』『자정의픽션』『핸드메이드픽션』『끄라비』가있다.
대산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김유정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개기일식_007
권태_055
시간의입장에서_123
키큰난쟁이_153
외톨이_181
거기있나요_219

작가의말_258

출판사 서평

공들여축조하고아름답게파괴한다
덧없기에더욱빛을발하는소설가의예술혼

박형서소설은어디서도접해본적없는흥미로운사건을구상하는데에서출발한다.일찍이삶의권태로움을알아차린한여자가무심코던진불씨에미국대륙이통째로불타오르고([권태])무분별한유전자조작으로인해닭의멸종이임박하며([시간의입장에서])난쟁이신분으로태어난뒤몸만커져버린‘키큰난쟁이’가아이를여읜슬픔을‘일반인’들에게인정받기위해애써야한다([키큰난쟁이]).아내가바다에빠져익사하자비탄에잠긴남자가연구를거듭해지구상에서바다를날려버릴계획을세우며([외톨이])미시우주를만들어문명의발생과진화를연구하던과학자가절대적인힘의유혹에빠져미시우주계의신으로군림하기도한다([거기있나요]).

하지만박형서소설의진정한묘미는이런상식을뛰어넘는사건들에현실성을불어넣는작가의놀라운설득력에있다.예를들어[권태]에서작가는미국의지형과자연환경,화염의물리적성질에입각하여불길의진행경로를치밀하게설정함으로써미국전역을남김없이태워나간다.불길이캐나다까지는번지지않도록차단하는능청은덤이다.[외톨이]에서는보잘것없는외톨이였던재봉사의아들이과학이론을짜깁기하여시대를뒤흔들성과를이룩했다고익살스럽게눙치는가싶더니그가발명품을완성하기까지수행한연구의과정과동원된이론의디테일을꼼꼼하게채워넣어아내를잃은한남자가장엄한바다를상대로복수극을펼친다는허황된이야기를가능할법한서사로만든다.[거기있나요]에서우리은하계의축소판인미시우주의환경과그속에서살아가는쿼크입자들의생태는실제현실보다도그럴듯하게설정되어있어,작품을읽다보면우리가살아가는현실세계역시다른차원의존재에의해조작되고있는세트장이아닐까슬몃의심해보게될정도다.미시우주계를지배하려는욕망을이기지못한과학자‘광조교’가상벌체계와천당-지옥구도등을고안하는모습을보고있노라면신과종교에대한묵직한의구심이피어난다.
『낭만주의』에수록된소설들각각은박형서가만들어낸미시우주이기도하다.현실보다디테일한설정으로완벽하게짜여진작은세계를추구한다는점에서,박형서는소설이라는허구속에현실을구현해내는궁극의경지에도달하고자하는예술가다.그런데소설에서공들여축조된그세계는작가에의해허망하게파괴되어버리고,인물들은잠깐의진한행복을맛보고는곧바로나락으로떨어진다.박형서에게행복은‘일종의비정상’상태이며이어지는지난한삶,그리고그끝에마련된파국이진짜현실이다.그러므로소설이현실과닮기위해서는공들여만든소설속세계또한파괴되어야하는지도모른다.혼신의힘을기울여세공한예술작품을주저없이깨뜨려버리는박형서의기행은생의덧없음에대한은유일까.그러나박형서가창조한인물들은스러져가는와중에도자신을둘러싼세계에기필코흔적을남기고야마는바,오히려작가가진정으로말하고자하는것은별볼일없어보이는우리의삶에도비극에맞설불가해한희망이숨겨져있다는진실인지도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