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장편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장편소설)

$13.50
Description
“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환상과 실재, 소설과 현실을 잇고 엮는 독보적인 감각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를 통해 지극히 평범하고도 소외된 인간을 정교하게 축조된 환상의 세계로 데려와 이야기를 펼쳐 보인 작가 염승숙. 지난해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없는 미래와 굴착기의 속도-박솔뫼 『도시의 시간』론」)으로도 등단하면서 텍스트와 세계를 읽어내는 촘촘한 겹눈을 가졌음을 인정받은 바 있다. “늘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고, 쓰면서 어제보다 나아진 인간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힌 수상 소감은, 소설을 쓰는 일과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를 조망하는 일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진지한 작가이자 성실한 연구자의 시선을 가진 염승숙의 읽고 쓰는 삶의 순환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말 그대로 ‘햄ham’이 되어버리는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하여 무력감이 도저한 이 시대의 청춘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장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충실함과 풍성함,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서사적 재미와 특유의 리듬으로 충만한 이 작품은, 작가가 가진 그 고유한 겹눈으로 읽어내고 써낸 세계를 만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저자

염승숙

저자염승숙
2005년『현대문학』에소설,2017년경향신문에평론이당선되어등단했다.소설집『채플린,채플린』『노웨어맨』『그리고남겨진것들』,장편소설『어떤나라는너무크다』가있다.

목차

여기에없도록하자
007

작가의말
326

출판사 서평

고통을‘모르는것’이아니라‘몰라야만’하는세대
노동하지않으면햄이되어버리는질문도해답도없는세계
살아남기위해죽지않기위해안간힘쓰는인간,
억지로숨을참으면서참혹을견디는자의생이이책에담겨있다._정이현(소설가)

『여기에없도록하자』는노동하지않는어른은모두햄이되어버리는세계의이야기다.마치프란츠카프카의『변신』속그레고르잠자가어느날갑충으로변해버리듯,불그스름한가공식품햄이되어버리는것.반대로다시일하기시작하면햄은사람으로변한다.뉴스에서는매일‘오늘의안개’‘오늘의사고’‘오늘의햄’이보도되고,신원미상의햄들에관한정보가느릿느릿자막으로지나가는이안개로가득하고장벽으로가로막힌공간속,주인공‘추’는제빙공장,이삿짐센터,프랜차이즈음식점을전전하며일하던어느날‘홀맨’을구한다며나타난선배‘약’과조우한다.숙식제공에채용증명서를써준다는약의말에추는“여기가아닌곳으로.여기만아니라면어디든”하는마음이되어홀맨의업무가무엇인지따져묻지도않은채그가이끄는곳으로몸을옮긴다.

햄이되지않는것.
그것만이다행스러운현재다.
이세계에대항하는단하나의방어태세로서나는노동한다.(131쪽)

추는베어지고,뭉개지고,닳아버린햄이나뒹구는을씨년스럽기그지없는허허벌판의게임장앞에당도해그저대기하라는명령만을받는다.새벽두시,마감시간이되어“시간다돼갑니다”라고손나팔을하고외치던다음순간,누군가가거칠게달려들어추의뺨을갈기며욕하기시작한다.“이개새끼,이햄같은새끼,이햄보다못한찢어죽일개새끼가재수없게!”화난손님을말리지않는것이이곳의룰이었고,얼마지나지않아추는자신의일이‘인간샌드백’이되어주는것이라는사실을깨닫는다.

우리는하염없이버티어선채로하루하루를보냈다.때리면맞고,맞으면신음했다.통증과지루함은동시에왔다.아픈데지루하고,지루한데아팠다.몸이괴로운것도끝내는따분해졌고,그따분함에도싫증을느끼는때가잦았다.(218쪽)

하지만추는하루하루의삶을,상처를서둘러봉합해버리며그일을계속해나간다.그러니까추의지속,성실은학습된무기력일까?아니면가감이없이,현재의상태를유지하는수동적능동의다른모습일까?“누구나‘무엇’이되어야”하기에“되지않으면햄이”되어버리는아이러니의세계속에,비정하고비참한하루하루속에추는그렇게,그토록‘있는다.’

폐허에도아름다움이있다면
절망에도리듬감이있다면
비참에도사랑이있다면

“청춘인데청춘이아니고인간이되인간이아닌”“가난한무력이이도저한세계에서꿈꿀수없음에까지이르”게된디스토피아.짙은안개에둘러싸여한치앞도보이지않는이낯선공간이,질문도해답도없는세계에놓인인물들이보여주는선택과행동과마음이,지금바로이곳의현실이기도하다는것을독자는소설을읽는한순간깨닫게될것이다.짙어졌다옅어지기를반복하는안개속끊어질듯이어지는대화,조금씩뒤틀리고허물어지는단어,돌연피어오르는사랑의기억.끝끝내이어지고야마는일상속의크고작은비참속에놓인그들을조금은뜨거워진눈으로,조금은시린마음을부여잡으며우리역시끝끝내목도할수밖에없을것이다.

‘초승달’만큼만보여요.
햄이말했다.
사람도,세상도,모두초승달정도로만보인다니까요.가늘고,얄브스름하게……나도모르게고개가갸우뚱비뚤게틀어져버려요.그런다고더잘보이지도않지만.(207쪽)

2011년,월가점령시위에울려퍼진“하지않는편을택하겠다”던그유명한바틀비의전언을기억하는가?그리고지금2018년,더욱나빠지기만할뿐인지금의시대에는더나아간새로운말이필요하지않을까,하는생각을해본다.혹은그거리의함성에대한화답이바로이것이지않을까,하고도생각해본다.그러니까바로“여기에없도록하자”는말.단호한절망의말로도간곡한청유의말로도보이는이문장이,소설가염승숙이지금껏보여주었던환상과실재의직조의다른모습이지않을까,다정과비정이겹쳐보이는한문장이아닐까,곰곰곱씹어본다.그질문을품은채이제우리가안개속으로걸어가흠뻑젖어들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