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왕의 생애 (쑤퉁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나 제왕의 생애 (쑤퉁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15.00
Description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저주를 감내해야 하는 제왕의 삶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어 10여 년 만에 독자들을 다시 만나는 쑤퉁의 장편소설『나 제왕의 생애』. 현실에는 없었던 ‘섭국’이라는 왕조를 배경으로, 어린 나이에 제왕이 된 소년 단백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역사에서 길어올린 소재뿐 아니라 작법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중국 고대소설의 요소들을 빌려와 진짜 같은 왕의 일대기를 완성시킨 이 작품은 쑤퉁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고 상상력이 넘친다는 평을 받는다.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열네 살의 나이에 갑작스레 제왕이 된 단백. 왕이 될 준비도 하지 않았고 왕이 되길 원하지도 않았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왕이다. 수렴청정의 틈바구니, 비빈들의 암투, 변방 외적의 침입, 왕위를 노리는 경쟁자들이 시시때때로 시도하는 암살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상황에서 소년 단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실제로 미미하다. 숨막히는 생활 속 단백은 늘 악몽에 시달리고 죽은 자들의 망령에 쫓긴다.

어느 날 서민의 옷을 입고 궁 밖으로 나가 줄타기꾼의 멋진 기예를 감상할 기회를 얻은 단백은 그의 자유로운 모습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이후 음모와 정치적 투쟁의 결과 제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서민으로 전락한다. 서민의 삶이 고단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수치스럽진 않다. 기형적으로 억눌렸던 그간의 자신을 돌아본 후 숨겨진 재능을 찾은 그의 앞에 완벽히 다른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겉모습은 물론, 속모습까지 완벽히 탈바꿈한 그는 도읍으로 돌아가지만 섭국을 집어삼킨 팽국의 군대와 불에 타 재가 된 섭궁만 그를 맞는데…….
저자

쑤퉁

1963년중국장쑤성에서태어나베이징사범대학중문과를졸업했다.1983년대학재학중단편「여덟번째동상」으로문단에첫발을내디딘이후,다양한형식실험을통해자신만의독특한문학세계를구축했다.30여년이흐른지금까지도일상과전위,상상과현실,서정과욕망의경계를자유로이넘나들며왕성한창작활동을이어가고있다.
중국고유의색채를고스란히품은그의작품들은독자와평단모두에게서높은평가를받는다.1988년에발표한「처첩성군」이‘20세기중국문학100선’에선정된것을비롯해2009년『하안』으로맨아시아문학상을수상했고이듬해에단편소설「자고」로루쉰문학상,2015년『참새이야기』로중국최고권위의문학상인마오둔문학상을수상한다.이외에도장쑤문학예술상,충칭문학상,소설월보백화상,상하이문학상,타이완연합보대륙단편소설추천상등다수의문학상을수상했다.
많은작품들이영어,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등으로번역소개되었다.또한「처첩성군」『홍분』『쌀』을비롯한작품들이영화화되어전세계인들로부터호평을받았다.

목차

제1부7
제2부123
제3부241
옮긴이의말337

출판사 서평

왕을세우는것도쉽고,왕을폐하는것도쉬웠던대섭궁
누구를좋아하는일도,잊는일도모두손쉬웠던열네살의국왕단백
눈물과피로아로새긴한생애의비망록

“이토록대담하고기상천외한서사는,고매한환상은,
예스럽고우아한정조는어디서왔을까.”
김숨(소설가)

2018년12월,쑤퉁의장편소설『나제왕의생애我的帝王生涯』가문학동네에서새로운번역으로출간되어10여년만에독자들을다시만난다.옮긴이김택규는“출판업의부진으로판매규모가적은중국소설은출간종수가크게줄어쑤퉁의구간들도차례로품절되었다.하지만구간들중『나제왕의생애』만큼은문학적,상업적가치를인정받아문학동네에서재출간하기로결정했다.이장편소설은쑤퉁의모든작품들중에서도가장특이하고상상력이넘친다”라평했다.한국에서동일한중국소설이두번이상번역된예가극히드문것을감안하면『나제왕의생애』의재출간은한국중국문학번역사에서하나의‘사건’이라할만하다.

“가장아름다운인생이란불과물,독과꿀이함께어우러진것이다.
이것이이책을쓰게된최초의동인이다.”_쑤퉁

『나제왕의생애』의첫인상은역사소설이다.하지만소설에등장하는인명,지명,역사적사건은모두상상의산물이다.작가쑤퉁은현실에는없었던‘섭국’이라는왕조를배경으로,어린나이에제왕이된소년단백의이야기를펼쳐보인다.
단백은정치적음모에휘말려열네살의나이에갑작스레제왕이된다.왕이될준비도하지않았고왕이되길원하지도않았던그는아무것도할수없는무력한왕이다.수렴청정의틈바구니,비빈들의암투,변방외적의침입,왕위를노리는경쟁자들이시시때때로시도하는암살에일상적으로노출된상황에서소년단백이할수있는일이란실제로미미하다.숨막히는생활속단백은늘악몽에시달리고죽은자들의망령에쫓긴다.소심하고겁이많았던단백은점점무기력해지고히스테릭하게변하는한편마음깊은곳에선하늘을나는새를동경하며매인데없이훨훨날수있기를강렬히소망한다.그러던어느날서민의옷을입고궁밖으로나가줄타기꾼의멋진기예를감상할기회를얻고,그의자유로운모습에서해방감을느낀다.
이후단백은음모와정치적투쟁의결과제왕의자리에서쫓겨나서민으로전락한다.서민의삶이고단하고불편하긴하지만수치스럽진않다.기형적으로억눌렸던그간의자신을돌아본후숨겨진재능을찾은그의앞에완벽히다른새로운삶이펼쳐진다.겉모습은물론,속모습까지완벽히탈바꿈한그는도읍으로돌아가지만섭국을집어삼킨팽국의군대와불에타재가된섭궁만그를맞는다.
제왕의삶이란지극히고유하고특별한그무엇이리라예상하지만,작가쑤퉁이그려내는제왕의삶은다르다.작가자신의말처럼불과물,독과꿀이함께어우러져있다.제왕에서서민이되는,불가능한상황들이발생하고,무한정의권력과자유를누릴것같으면서도주어진선택의폭은협소하다.굴곡과모순으로점철된삶이란특정한어느개인이아니라결국우리보편의모습이아니던가.때문에이소설은『나(제왕)의생애』라읽을수있겠다.소설가김숨이이소설을두고“상상속고대왕국섭의제왕이었던단백의생애와나의생애,두생애가물아일체의경지에도달하는황홀함에서깨어나는순간,우리는“불과물,독과꿀”이어우러진인생에어쩔수없이너그러워지게된다”고평한것도같은맥락이라볼수있다.

성장이멈춰버린‘제왕’

제왕으로서단백은,“문무백관의격렬한논쟁을듣고도결코끼어들지않는,무능한허수아비왕”(본문137쪽)이며“섭국의재난이머지않았다”(본문에서이표현은무려스무번이나등장한다)는,메아리처럼반복되는저주혹은예언을감내해야하는궁지에몰린왕이다.세상은단백이왕으로성장하길바라지않는다.아니,하나의온전한인격체로서성장하는것도막는다.
“조회중에함부로입을놀리는것을막기위해입을천으로틀어막고두손을옥좌에결박”(본문102쪽)해발언권을막아왕으로서기본적인직무를방해하는일은예사고“궁밖으로한걸음이라도나가는걸허락지않”는다(본문46쪽).자유가없다.첫몽정을하고속옷이젖자궁녀들은“이게뭔지아느냐?”는그의물음에답하는대신그속옷을잡아채수렴첨정을하는할머니황보부인에게대령하기바쁘다.신체의변화를겪으며사춘기에접어든그에게그누구도이렇다할설명을해주지않는다.몸은커지지만정신은성장하지않는다.때문에단백은소년이되기보다유아기상태에머물러있게된다.회의시간에정사에귀를기울이는대신귀뚜라미를들여다보고있는가하면,하얀꼬마귀신을보는착란증상을보이고,죽은자와관계되는일이라면무조건경계하는등정신적지체를겪는다.
정신적?정서적지체는악순환을낳는다.정사를장악하는실질적권한과정세를파악하는통찰이부재한상황에서필연적으로시국은어려워진다.변방에외적이침입하고,이를막기위한순행길에서“날씨가너무추워서떠나고싶지않단말이다!”라는논리로수비를위해움직이자는장수의간언을무시한후나아가그를베어없애버린다.이일은훗날단백을해하려는음모가되어되돌아온다.무지막지한세금부과에반발해들고일어난농민의반란도막지못한다.유일하게사랑했고,자신의아이를임신한여인에게는‘흰여우’를출산하게하고,궁밖으로쫓겨나는기구한운명을가져다준다.종국에는,왕위를이어받은후끊임없이자신과경쟁했던장자단문에게자리를빼앗긴다.스스로를왕의자리에서끌어내린것이다.

‘서민’으로전락한후진정한자신으로서다

무더운여름,세속의삶으로내팽겨쳐진단백.제왕의용포를벗자,단백은벌거벗은자신을바라보게되었고,진정자신이원하는바를추구하고자한다.자유가극도로제한된궁안에서줄곧갈망해온자유로운‘줄타기꾼’의길을가리라결심한다.그에게줄타기는“재능을타고났으나삶때문에묻혀버렸던아름다운기예”(본문293쪽)였다.왕이었을때는매사어디로가야할지,어떻게해야할지그답을남에게묻기바빴으나줄타는방법만큼은스스로찾기위해분투한다.

“나는왼쪽의멧대추나무를타고올라가허공의밧줄위에흔들흔들서다가아래로쿵떨어졌다.그다음에는오른쪽멧대추나무를타고올라가밧줄위에서다가역시아래로쿵떨어졌다.그러기를반복하면서내마음속깊은곳의외침이얼마나뜨겁고비장한지깨달았다.(…)스승없이모두스스로깨우쳤다.그러다어느가랑비내리는아침,그긴밧줄을수월하게다건넜다.(…)구월의가을비가내얼굴위에뚝뚝떨어지자이미시들어버린지난일들이내마음속에서다시피어났다.나는만면에눈물을흘리며밧줄한가운데에서서밧줄의반동에따라위아래로출렁거렸다.내몸과영혼이함께솟구쳤다가떨어져내렸다.”(본문292~293쪽)

가장높은자리에서가장낮은자리로내려왔으나그가보고주유하는세상은밀폐된공간에서열린공간으로바뀌었다.수직적지위하락이역설적으로수평적시야확장을일궈냈다.그는더나아가초연함까지얻는다.“나는서민이고줄타는광대다.내앞에있는것은망국군주의죄업이아니라삶과죽음의선택일뿐이다.그래서나는이미무서울게없다(본문317쪽).”단백은그렇게뒤늦게도약을이루고,줄위에서진정한자신으로곧추선다.

“이토록예스럽고우아한정조는어디서왔을까”
전통과모던이공존하는작법

왕들의솔직한심정을알수있는방법이있을까.기록으로남은실록이나왕의일기를통해서‘추측’을해볼수는있겠지만,왕의용포를입고있는자라면철저한자기검열을했을테고,그렇다면기록된그심정은‘진짜’일까.게다가폐위된왕의그것이라면,그심정을알리만무하다.작가쑤퉁은궁금했다.‘역사소설쓰기벽癖’이있는작가로알려져있고,정사正史보다는야사野史나전설속소재들을재구성해새로운세계를고안하길즐겨하는그다(구습이남겨진1920년대,어느일가의이야기를다룬「처첩성군」이나맹강녀설화를다룬『눈물』등이그러하다).『나제왕의생애』에서는역사에서길어올린소재뿐아니라작법이나기술적인측면에서중국고대소설의요소들을빌려와‘진짜’같은왕의일대기를완성시켰다.
『나제왕의생애』는주인공단백이자신의마음깊숙이숨긴이야기들을마음껏펼쳐보이는1인칭시점이다.단백이느끼는실존에대한공포와불안,자아분열이의식의흐름을따라서술되어,한국문학모더니즘의선두주자인이상李箱의시나소설을떠오르게도한다.

나는내가진짜섭왕같지않았다.단문이나보다더진짜섭왕같았다.
그것은말못할내마음의병이었다.나는이처럼스스로를비하하는의심을누구에게도말하면안된다는것을잘알고있었다.가장가까운연랑에게도예외가아니었다.하지만위태로워보여도진정한위험은없었던내제왕의생애초반에그러한의심은커다란바위가되어깨지기쉬운내왕관을누르며내정신에영향을끼쳤다.그래서나는괴팍하고고집센소년천자가되었다.
나는예민했다.나는잔인하고난폭했다.(본문106~107쪽)
*
“그러면나는?나는아직살아있느냐?”
“폐하는만수무강하실겁니다.”
연랑이말했다.
“하지만나는내가점점죽어가고있는것같다.아무래도이『논어』를다읽기는그른듯하구나.”
소란스러운말발굽소리가마침내밀물처럼광섭문을통과해왕궁으로쏟아져들어왔다.나는손가락으로귀를막고서말했다.
“들었느냐?이렇게섭국의마지막날이왔다.”(본문238쪽)

인물의심리상태를전면에내세우는이러한작법은모던하면서도,인물의성격을행동이나언행을통해간접적으로보여주기보다자신의감정을발화해욕망과상태를직접적으로보여주는중국고대소설과닮아있다.전통과모던의공존이다.한편이미지나몽환적인암시등을통해작품의분위기를주조하고복선으로작용하게하는것도중국전통소설의예술적흔적이다.소설에서는‘새’가단백의심경을대변하고,분위기를전환하는주요한소재다.

정말숲속의한마리새가되어날아가고싶었다.
“날자!”
나는갑자기크게소리쳤다.그것은오래앓아온내가입밖으로뱉어낸두음절이었다.(본문104쪽)
*
잿빛새한마리가내머리위를날아가는것을보았다.기괴한새울음소리가여름날의하늘에울려퍼졌다.내귀에는그것이마치사람소리처럼들렸다.
“망했노라……망했노라……망했노라……”(본문240쪽)
*
청년이되어서는자유로이창공을나는새들을가장좋아했다.이십여종의새이름을알았으며,그새들의울음소리를구별하고흉내내기도했다.외로운여행길에서나는나처럼홀로길을가는학자나장사꾼을숱하게만났지만그들과이야기를나누지는않았다.하지만새들과는적막한길에서늘대화를시도했다.
“망했노라……망했노라……”
나는공중의새를향해외쳤다.
“망했노라……망했노라……망했노라……”
곧새떼의응답이내목소리를덮었다.(본문280쪽)

무엇보다참언讖言,즉,예언의적절한사용이도드라진다.참언의사용은중국고대소설에서찾아볼수있는독특한특징이다.앞서언급했듯,『나제왕의생애』는소설전체가“섭국의재난이머지않았다”는거대한저주에휩싸여있다.이주문은소설의시작부터끝까지반복되고,많은인물들에의해말해짐으로써힘을가져섭국은결국소멸하고만다.
작가쑤퉁이전통소설의작법에서빌려온특징들과‘폐위된왕’에게도눈을돌리는작가고유의시선,의식의흐름을좇는모던한작법으로,소설은“예스럽고우아한정조”를,“처연함의미학”을,모순적이고도독특한울림을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