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출퇴근하는배우,하정우
그에게걷기란,
두발로하는간절한기도
나만의호흡과보폭을잊지않겠다는다짐
아무리힘들어도끝내나를일으켜계속해보는것
영화배우,감독,그리고그림그리는사람.스크린과캔버스를넘나들며자신만의활동을펼쳐온배우하정우가이번엔새책을들고에세이작가로찾아왔다.문학동네에서출간된하정우에세이의제목은『걷는사람,하정우』.
이책에서하정우는무명배우시절부터트리플천만배우로불리는오늘에이르기까지서울을걸어서누비며출근하고,기쁠때나어려운시절에나골목과한강변을걸으면서스스로를다잡은기억을생생하게풀어놓는다.이책에는‘배우하정우가지금까지그가걸어온길’과‘자연인하정우가실제로두발로땅을밟으며몸과마음을달랜걷기노하우와걷기아지트’,그리고걸으면서느낀몸과마음의변화’에대한이야기가모두담겨있다.
배우하정우는하루3만보씩걷고,심지어하루10만보까지도기록한적있는유별난‘걷기마니아’로알려져있다.손목에걸음수를체크하는피트니스밴드를차고서걷기모임친구들과매일걸음수를공유하고,주변연예인들에게도‘걷기’의즐거움과효용을전파하여‘걷기학교교장선생님’‘걷기교주’로도불린다.
그는강남에서홍대까지편도1만6천보정도면간다며거침없이서울을걸어다닌다.그에게웬만한이동거리의단위는‘차로몇분거리’‘몇킬로미터’가아니라‘도보로편도몇분’이더익숙하다.심지어비행기를타러강남에서김포공항까지8시간에걸쳐걸어간적도있다는그에게‘걷기’란단순한운동이아니라,숨쉬고명상하고자신을돌보는또다른방식이다.
“엄청바쁠텐데왜그렇게걸어다니나요?”
“언제부터그렇게걸었어요?”
희한하다싶을정도로걷고또걷는배우하정우를향한이질문들에,이제그가이책『걷는사람,하정우』로답하려한다.
하정우에세이『걷는사람,하정우』는서점에풀리자마자주문이쇄도해출간당일2쇄에돌입하며,연말서점가와출판계에도훈풍을불어넣고있다.
글쎄,언제부터였을까?돌아보면내가할수있는일이오직걷기밖에없는것만같았던시절도있었다.연기를보여줄사람도,내가오를무대한뼘도없었지만,그래도내안에갇혀세상을원망하고기회를탓하긴싫었다.걷기는가진게아무것도없는것만같았던과거의어느막막한날에도,이따금잠까지줄여가며바쁜일정을소화해야하는지금도꾸준히나를유지하는방법이다.
이점이마음에든다.내가처한상황이어떻든,내손에쥔것이무엇이든걷기는내가살아있는한계속할수있다는것._서문에서
강남에서홍대까지걷는다,하루3만보,가끔은10만보…
좋아하는사람들과나란히걷고,
맛있는것을먹고,많이웃고,오래일하고싶은
자연인하정우의발자국
영화속찰진‘먹방’으로도자주회자되는그는스스로‘걷기를즐기지않았더라면족히150kg은넘었을것같다’고말할정도로실제로도잘먹고많이먹는다.그러나그는좀덜먹고덜움직이기보다는좋아하는사람들과이세상의맛있는것들을직접두손으로요리해먹고두발로열심히세상을걸어다니는편을택하겠다고말한다.그는이세상의맛있고아름답고좋은것들을충분히만끽하고감탄할줄아는사람이다.
그는한강주변을‘내집앞마당’이라생각하고걷는다.이책에는그가길위에서바라본‘매직아워’의하늘,노을,무지개,그의새벽걷기의쉼터이자간이카페가되어주는한강편의점,함께걷는길동무,종일걸은후에그가직접요리해먹는단순하지만맛깔나는음식등,그가채집한일상의조각들이스냅사진으로실려있다.
영화<터널>을촬영할때,터널안에매몰된‘정수’의초췌하고마른몸을표현하기위해촬영중단기간에혹독한다이어트를해야했을때도그가택한것은역시‘걷기’였다.그러나그에게걷기는단지몸관리의수단만은아니다.
하정우에게걷기란지금손에쥔것이무엇이든,어떤상황에처해있든두다리만있다면굳건히계속할수있는것이다.슬럼프가찾아와기분이가라앉을때,온마음을다해촬영한영화에기대보다관객이들지않아마음이힘들때,그는방안에자신을가둔채남탓을하고분노하기보다운동화를꿰어신고,그저걷는다.
걸으면서복기하고스스로를추스른다.일희일비하지말자고,지금이순간조차긴여정의일부일뿐이라고,그리고결국은잘될것이라고.
2015년내가주연과감독을맡은<허삼관>이개봉했을때,나는한창<암살>의주요장면을촬영하고있었다.<허삼관>은기이할정도로관객이들지않고있었다.부랴부랴이유를찾다가,나자신을질책하다가,눈떠보면<암살>촬영시간이닥쳐와있었다.
촬영장에가는것조차너무나힘이들었다.왜냐하면사람들이분명나를위로하려할테니까.어떤사람은별일아닌척담담하게나를토닥일테고,또누군가는까맣게타는내속마음을눈치채고어떤말을꺼내야할지조심스러워할것이다.그모두가고스란히느껴져서나는더불편했다.
갑자기바보가된것같았다.사람들앞에서어떤표정을지어야할지도모르겠고,나의아픈마음을어떻게털어놓아야하는건지,사람들의위로는어떻게받아야하는건지아무것도알수가없었다.촬영장에서유쾌하게농담을건네고사람들을웃기던하정우는사라져버리고,무슨짓을해도사람들과어울리기힘든어둡고우울한남자만거기남아있었다.
아침에촬영장으로향하는출근길,나는한시간씩기도했다.제발내가맡은연기만은무사히소화하게해달라고._「왜자꾸만나를잃어버리지?」,35~36쪽
‘믿고보는배우’로불리는하정우에게도성공과실패는해가뜨고지는것처럼거듭찾아온다.때론댓글에서“하정우씨,감독은하지말고그냥배우만하세요!”같은신랄한평도뜬다.그럼에도그는계속간다.배우뿐만아니라감독과제작자라는멀고험하지만영화를더잘이해할수있는길로조금더멀리걸어가보려한다.
사실배우로서든감독으로서든새영화를시작할때나는늘두렵다.그러나그두려움이나를주저앉히거나새로운시도를아예못하도록막지는않는다.또한성공과실패란단순히흥행의그래프만으로는확정할수없는것이라는생각도든다.<허삼관>은흥행에는실패했지만‘나의실패작’은아니다.내가<허삼관>을연출하면서받은선물들은물질로는다헤아릴수없을정도다.
누군가내게“하정우씨,배우만하세요”라고말할때나는예전에는상처받았지만,앞으로는상처받지않으려한다.그건내가배우로서는대중들에게꽤친숙하고그럭저럭잘해왔다는뜻아닌가.감독하정우는배우하정우에게빚졌지만,언젠가는감독하정우가배우하정우에게그빚을갚을날도있으리라생각한다.배우하정우는지금까지많은행운과사랑을누렸고순탄한길을걸어온편이지만,스무살에연극무대에오른이후서른무렵10년만에간신히빛을본사람이기도하다.그에비하면영화감독하정우는이제데뷔한지고작몇년밖에안된신출내기다.감독으로서의성공과실패를운운하기엔아직가야할길이멀다._「왜사랑받지못했을까?」,229~231쪽
화려한필모그래피너머
그가흘린땀과간절한기도의기록―
하정우는어떻게영화를선택하고만들어가는가
<군도><암살><터널><베를린><아가씨><신과함께>등그의화려한필모그래피뒤에숨어있는그의땀과기도를엿볼수있다는것은,이에세이를읽는특별한즐거움이자감동이다.
많은사람들이그에게영화를고르는안목이범상치않다고들하지만,그는작품을결정할때‘책’(시나리오)만보는것이아니라그‘책’을들고온‘사람’을들여다본다.그가영화를찍는동안동행으로삼아야할사람이어떤길을걸어온사람인지를살피는것이다.실제로배우가처음받아보는단계에서이미완벽하게짜인시나리오는드문편이라고그는말한다.영화시나리오도스태프와배우들이모두꾸려지면,함께대화하고고민하며완성본을만들어가는것이다.
1편과2편모두가천만관객을넘어선<신과함께>에합류하기로결심할때도,그는전작<미스터고>에서처음으로쓴맛을본김용화감독이자신에게‘가장절실한’가족이야기로되돌아왔다는점에주목했다.한국에서판타지물이성공을거둔사례가드물고,손익분기점이까마득하게높다는점도그의결단에큰영향을끼치진못했다.
중요한것은‘누구’와동행이되어한편의영화라는먼길을함께걸어가느냐였다.
<신과함께?죄와벌>은알고보니김용화감독이실제로어머니와의관계에서못다한이야기를극에담은것이었다.그는한인터뷰에서<신과함께>1편을‘돌아가신어머니를향한진혼곡’이라표현했다.언뜻일과는직접적인관련이없는부수적인요인처럼보이지만,내겐그것이이영화를선택하는무엇보다확실하고결정적인요소가되었다.나는이영화가잘될수있다는확실한느낌을받았다.때로이확실한예감은영화에관계된누군가의‘절실함’에서나온다.나는그의절실함에공감했고,그의동행이되어주고싶었다.
내게는‘어떻게시나리오를고르는가?’라는질문보다‘어떤사람들과일하길좋아하느냐’라는질문이더맞는것같다.배우가받아보는단계에서사실완벽하게짜인시나리오는거의없다.시나리오는언제나배우와스태프가모두구성된후함께이야기하고토론하며개선해나가는것이다.한절반정도는바꿀생각을하고들어가는거다.나는현재시나리오의반을더낫게바꾸어나갈열린생각과에너지를가진사람,나와절실함을나눌수있는사람들과일하길좋아한다._「내가동행을선택하는법」,239쪽
그가걷기를통해배운것은걷기도,일도,인생도,‘내숨과보폭을찾는것’이중요하다는것이다.그는남탓을하고,여건을탓하고,대중을탓하고,분위기를따지는법이없다.그저건강한두다리가있다는것에감사하며자신의앞에펼쳐진길을기꺼이즐기면서걸어간다.
사람들이쉽게‘성공’과‘실패’의양극단으로나누어단정지어버리는순간조차자신이끝까지걸어야할긴여정의일부라믿는그의시야로세상을바라보다보면,문득하정우처럼내숨과보폭으로걷고싶어진다.살아가면서그어떤조건과시선에도휘둘리지않고두다리만있다면‘계속할수있는것’이있다는것은든든한일이다.
좋아하는사람들과나란히걷고,맛있는것을함께먹고,많이웃고,오래일하고싶은,자연인하정우의발자국이이책에활자로남았다.
하정우에게‘걷기’는두발로하는간절한기도,그리고어떤경우에도계속되어야할‘삶’그자체다.
삶은그냥살아나가는것이다.건강하게,열심히걸어나가는것이우리가삶에서해볼수있는전부일지도모른다.
살면서불행한일을맞지않는사람은없다.나또한마찬가지일것이다.인생이란어쩌면누구나겪는불행하고고통스러운일에서누가얼마큼빨리벗어나느냐의싸움일지도모른다.
누구나사고를당하고아픔을겪고상처받고슬퍼한다.이런일들은생각보다자주우리를무너뜨린다.그상태에오래머물면어떤사건이혹은어떤사람이나를망가뜨리는것이아니라내가나자신을망가뜨리는지경에빠진다.결국그늪에서얼마큼빨리탈출하느냐,언제괜찮아지느냐,과연회복할수있느냐가인생의과제일것이다.나는내가어떤상황에서든지속하는걷기가나를이늪에서건져내준다고믿는다.
티베트어로‘인간’은‘걷는존재’혹은‘걸으면서방황하는존재’라는의미라고한다.
나는기도한다.
내가앞으로도계속걸어나가는사람이기를.
어떤상황에서도한발더내딛는것을포기하지않는사람이기를.
_「걷는자를위한기도」,291~2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