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조각가 (박화영 소설)

악몽 조각가 (박화영 소설)

$13.00
Description
일상이 다른 용법으로 구부러질 때
조용히 우글거리기 시작하는 기담의 세계
200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공터」가 당선되어 등단한 박화영의 첫 소설집 『악몽 조각가』가 출간되었다. 「공터」는 동네 사람들이 버려진 공터에 쓰레기와 함께 감추고 싶은 비밀을 투기하면서 벌어지는 불길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오정희는 흔한 유형에서 벗어난 글쓰기를 통해 “소설을 내면성에 가두지 않고 과감히 공터로 끌어내어 속도감 있는 단문, 드라이한 문체로” 펼쳐냈다고 평했다. 이후 박화영은 “풍부한 ‘스토리’들과 장면 전환의 자연스러운 흐름”(신춘문예 심사평)을 무기로 남들과는 다른 기묘한 소설세계를 풍부하게 일구어왔다.
그렇게 묶인 이 소설집의 도처에는 생명력을 지니고 꿈틀거리는 섬?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화장실이 안에 든 사람을 그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평행세계로 보내버리고(「화장실 가이드」), 어느 날 도심의 광장 한가운데 나타난 벽이 점점 높고 길게 자라 도시를 반으로 가르며(「벽」), 더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무정란 도시’에서 한 여자가 예감이 좋지 않은 무언가를 잉태한다(「무정란 도시」). 달아날 수 없는 악몽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꿈속의 작업실에서 악몽을 조각하거나(「악몽 조각가」), 갑자기 혀가 몸속으로 빠져들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각 부위에 얽힌 과거의 상처들이 되살아나기도 하고(「혀」), 모두가 잠든 밤에 어두운 골목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깨어나면 머리 없는 유령이 자기 머리를 발로 차며 그 길 위를 걸어다니기도 한다(「골목의 이면」).

기묘하고 공포스러운 현상을 일상 속에 침투시키는 박화영 소설의 환상성에 주목할 때, 눈에 띄는 점은 작가가 환상세계를 그리는 방식이다. 박화영 소설에서 “환상은 현실과 다른 차원에 속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 공간이 특별한 사연을 만나 “조금 다른 용법으로 구부러질 때 열리는” 세계다(복도훈, 해설). 즉, 박화영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세계를 만들어내기보다는 현실 밑에 겹쳐진 채 이미 존재하고 있을 법한 환상을 현실 위로 올려놓는다. 그래서 『악몽 조각가』를 읽을 때 우리는 3D 입체 안경을 쓴 것처럼 하나의 화면 위에서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보고, 그 사이의 미묘한 시차를 감각하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박화영 소설이 단순한 괴담으로 종결되지 않는 또하나의 이유는 박화영이 내세우는 서술자들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담담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집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건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초자연현상들이다. 그런데 박화영의 서술자들은 소름 끼치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자신이 처한 현실로 애써 받아들이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다. 인물들의 차분한 행적은 그들이 갑작스레 내던져진 괴기스러운 현재와 충돌하며 묘한 충격을 불러온다. 그리고 이들의 입을 빌려 박화영이 태연하게 구사하는 정련된 문장과 그 속에 담긴 냉소 섞인 유머가 작가의 소설을 독특하고 세련된 기담으로 완성시킨다. 그렇게 우리는 『악몽 조각가』를 읽으며 슬프면서도 웃음이 나고, 기괴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저자

박화영

1977년광주에서태어났다.2009년세계일보신춘문예에단편「공터」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화장실가이드_007
자살관광특구_037
벽_067
무정란도시_097
악몽조각가_131
공터_161
혀_191
골목의이면_217
주_245

해설|복도훈(문학평론가)
토템과터부_271

작가의말_291

출판사 서평

그어떤것과도닮고싶지않다는열망
박화영소설세계의기원을새기다

어떤방식으로든자신만의시그니처를소설속에새겨내려는박화영의시도는단편「주」에이르러과감한형식실험으로이어진다.가상의책에달린후주라는형식만으로도강렬한인상을남기는이작품은『악몽조각가』의마지막소설로자리하여얼핏소설집의후주처럼도보이도록위장되어있다.땅속깊이거꾸로박혀있는정체불명의거대한기둥柱에관해부연하는이60여개의주註는우리로서는읽을수없는책의내용을짜맞출퍼즐조각이다.쓰이지않은이야기와주석의행간에숨겨진이야기를조합해독자스스로또다른상상을펼쳐볼수있는흥미로운작품이다.
책의맨마지막에실린‘작가의말’도남다르다.박화영은‘작가의말’원고쓰기의어려움을토로하며‘작가의말’을쓰기위해누구의조언을구했고,어떤도서를참고했으며,그책에는어떤중요한주의사항들이적혀있었는지구구절절늘어놓는다.사실과허구가뒤섞인이‘작가의말’은단순한집필후기로남는것이아니라,박화영이라는작가와그의소설이지닌분위기를집약해전달하는또다른장치로기능한다.
『악몽조각가』는박화영이무엇과도같지않으려는기발한시도를책의처음부터끝까지밀고나가완성한첫결과물이다.덕분에이책을읽을독자도마지막페이지까지흥미롭게책장을넘길수있게되었다.박화영만이꿈꾸고조각할수있는이악몽같은이야기들은한동안우리의의식에달라붙어끈질기게감각될것이다.

*

여기까지썼으니이제물을한모금마셔도괜찮을듯하다.사실작가의말을쓸때주의해야할점가운데하나가물은글을다쓰고나서마셔야한다는것이다.이러한훌륭한지침은물론『작가의말작법』에실려있는것이다.이책을쓴저자는물과관련된조언과함께불우했던19세기어느영국작가의사연을전하고있다.이무명작가는생애첫책의출판을앞두고마지막작업으로작가의말만남겨두었다고한다.작가의말만마무리지으면세상을깜짝놀라게할대작이잉크냄새를풀풀풍기며미천한서점진열대위에강림하실예정이었으나결국그책은계속하늘위에머무를수밖에없었다.작가의말을쓰다말고저자가콜레라로사망했기때문이다.이불우한저자가잘못한일이라곤글을쓰기직전물을한잔마신것뿐이었다.하지만안타깝게도그물은콜레라균에감염되어있었고가뜩이나대작을쓰느라심신이지쳐있던작가는병을이겨내지못했다.(…)
내책이물론그불우한작가의책에비할바는못되지만그래도나름고생한만큼서점진열대의미미한구석에라도자리잡기를바란다.그런의미에서작가의말이얼마나중요한지다시한번되새기게된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