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대지

사랑의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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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느 날 시詩가
한 여인의 배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현실이라는 더욱 넓고 큰
시 속으로 들어선다.”

청년 르 클레지오의 야심이 박동하는 감각적 묘사
인간 존재와 언어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

◇ 산다는 것은 감격적이고도 기이한 일
감정과 언어와 의식이 소용돌이치는 하나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험

『사랑의 대지』는 『조서』와 『홍수』에 이어 르 클레지오가 1967년 발표한 세번째 장편소설로, 작가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샹슬라드라는 소년이 지상에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고, 모든 유희와 언어와 무한한 의식을 경험하고 다시 무無로 돌아가기까지, 대지 위 인간의 거대한 서사를 아우르는 이 소설 속에서 독자는 청년 시절 르 클레지오의 박동하는 야심과 그의 웅숭깊은 소설세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이른바 ‘카메라-펜’이라고 불리는 문체를 통해, 르 클레지오는 삶의 매 순간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때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매우 미시적으로, 때로는 태초부터 197세기에 이르는 우주의 시선으로, 인간 존재와 언어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펼쳐 보인다. “삶의 근저를 이루는 내밀하고 막막한 감성을 표현하”는 특유의 감각적 묘사, 언어와 상상의 놀라운 기교로 가득한 소설이다.

저자

J.M.G.르클레지오

지은이:J.M.G.르클레지오(Jean-MarieGustaveLeClezio)
2008년노벨문학상수상작가,‘현대프랑스문단의살아있는신화’장마리귀스타브르클레지오는1940년프랑스니스에서태어났다.모리셔스태생의부모와함께다양한문화가교차하는항구도시니스와나이지리아등에서유년기를보낸경험은그의삶과글쓰기에깊은흔적을남겨놓았다.이후니스,엑상프로방스,런던,브리스톨대학에서수학했다.1963년스물셋의나이에첫작품『조서』로르노도상을수상하며화려하게데뷔했고,『열병』『홍수』등의작품을통해대도시속에서현대인이느끼는고독감과물질문명에희생되는왜소한인간군상을그려냈다.
초기작품에서현대문명속인간의불안을주로다루던르클레지오는1967년부터중남미를비롯해제3세계를여행하면서서양이아닌다른문명으로눈을돌린다.시원始原의자연속에서훼손되지않은인간본원의감성을발견하고,자연과어우러지는삶을추구하게되었다.이러한사상적변모는작품세계의변화로이어지며,아카데미프랑세즈폴모랑문학대상수상작『사막』을비롯해특유의시적서정성을바탕삼아『성스러운세도시』『황금물고기』『하늘빛사람들』등의작품을집필했다.문학으로서세계여러문명의소통과공존을모색하고자하는르클레지오의주요작품으로는『원무,그밖의다양한사건사고』『우연』『타오르는마음』『아프리카인』『허기의간주곡』『라가-보이지않는대륙에가까이다가가기』『발이야기그리고또다른상상』등이있다.2009년레지옹도뇌르훈장을수훈했다.  

옮긴이:최수철
1958년춘천출생.서울대학교불어불문학과및동대학원을졸업했다.1981년조선일보신춘문예소설부문에「맹점」이당선된후,창작집『공중누각』『화두,기록,화석』『내정신의그믐』『분신들』『모든신포도밑에는여우가있다』『몽타주』『갓길에서의짧은잠』『포로들의춤』,장편소설『고래뱃속에서』『어느무정부주의자의사랑』4부작,『벽화그리는남자』『불멸과소멸』『매미』『페스트』『침대』『사랑은게으름을경멸한다』,장편동화『물음표가느낌표에게』를출간했다.윤동주문학상(1988),이상문학상(1993),김유정문학상(2009),김준성문학상(2010)을수상했으며,르클레지오의『황금물고기』『매혹』『우연』『타오르는마음』을우리말로옮겼다.한신대학교문예창작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프롤로그007

나이땅에우연히013
태어나서025
삶을시작하고042
성장하고054
그림에빠져들기도하는중에077
여러낮이지나갔고084
여러밤이지나갔고104
나는또한모든놀이를즐기고120
사랑하고132
행복해하고161
모든언어로말하였으니177
수화도183
알아들을수없는말도195
혹은당돌한질문도일삼으며200
지옥과다름없는곳에서207
아이를낳고237
침묵을깨고자하고260
모든진실을전하고자하며269
무한한의식의세계를살다283
도주하고327
이윽고늙어서334
죽었고357
매장되었다389

에필로그397

옮긴이의말:시간과공간의드라마,혹은삶의소용돌이403
J.M.G.르클레지오연보411

출판사 서평

노벨문학상수상작가르클레지오
인간존재와언어에대한근원적인사유

청년르클레지오의야심이박동하는
감각적묘사,언어와상상의놀라운기교


한소년이지상에태어나서죽기까지,그의의식이그를둘러싼모든것을향해뻗어나가서더듬거리고파고들고때로부딪치기도하는과정을보여주는소설._옮긴이의말

『사랑의대지』는J.M.G.르클레지오가르노도상수상작이자데뷔작『조서』(1963)와현대도시문명을예지자적시선으로그려낸『홍수』(1966)에이어1967년발표한세번째장편소설이다.에필로그와프롤로그를제외한스물세개의장에걸쳐,소설은샹슬라드라는소년이지상에태어나성장하고,사랑하고,모든유희와언어와무한한의식을경험하고죽음을맞이하여다시고요속으로사라지기까지,대지위를살아가는인간의거대한서사를아우른다.따로떨어뜨려놓고보면의미가모호한각장의제목들도마침내소설전체를관통하며하나의문장,하나의서사를완성한다.
‘카메라-펜’이라고불리는문체를통해르클레지오는때로는현미경으로들여다보듯매우세세하게,때로는태초부터197세기에이르는광막한우주의시선을통해과감하게인간의삶을둘러싼모든것을관찰하고기록하며,나아가인간존재와언어에대한근원적인사유와통찰을펼쳐보인다.문학비평가R.M.알베레스는르클레지오가『조서』부터『사랑의대지』에이르는초기작들에서“삶의근저를이루는내밀하고막막한감성을표현”하였으며“살아있다는감각의기층을이루는극히개인적인고통과즐거움이한데뒤얽힌세계를보여준다”고말했다.독자는이소설속에서청년시절르클레지오의야심이박동하는감각적묘사와언어와상상의놀라운기교,그의웅숭깊은소설세계의정수를발견하게될것이다.

“어느날시詩가
한여인의배에서태어나고,성장하여
현실이라는더욱넓고큰
시속으로들어선다.”


샹슬라드라는소년이지상에태어난다.그리고그보다조금앞서,세상을관조하는듯한화자‘나’는대지의풍경에대해이야기한다.한쪽엔높은산과구릉,다른쪽엔광막한모래언덕이펼쳐진“말라붙은흙과자갈로이루어진벌판”.이내그땅에는수많은생명이스쳐지나간다.“수많은남자와여자들이태어났다가죽고,도마뱀들이구멍속에서잠들고,벌레들이붕붕거리고,잎이두꺼운식물들과먼지를뒤집어쓴작은관목들이땅에뿌리를박는일이끊임없이,조금도변함없이,반복”된다.대지는“늙은여인의주름진피부”같은모습으로,수세기에걸쳐“비에씻기고바람에마모되”고,“혹한에갈라져터지고,바다에조금씩침식되”며다양한자연현상에수없이모습을바꾼다.흡사르클레지오버전의「창세기」를보는듯한대목이다.그리고그수많은자연현상에관여하고,생명을꿈틀대게만드는태양에대한묘사도이어진다.

단단하고울퉁불퉁한지표면위로태양은하늘에박힌괴상한심연처럼부글부글끓고있다.(…)그태양은흡사노려보는듯한타오르는눈이다.그것은아무것도이해하지않는다.그것은아무것도판단하지않는다.그렇다,그것은단지하늘에굳건하게못박혀있을뿐이고,땅으로끊임없이동심同心의고리들을보내오며,그리하여붉은색수은주가30도정도를가리키게되는것이다.뜨거운열기가태양에서부터방출되어하늘의구석구석으로퍼져나가서,그에너지가모래비처럼모든것을가득채운다.혹독한,이루말할수없이혹독한태양의에너지가지상의모든벌어진동공洞空속에자신의입자들을박아넣고,모든것을마멸시키고갉아내고벗겨내는것이다.(14쪽)

그는태양뿐만아니라지상의모든생명에이름을부여하며모래알하나,벌레한마리,풀잎하나하나까지자신을둘러싼모든것을경탄어린눈으로바라본다.그에게생명을품은이땅의모든존재는한편의시와같은것이기때문이다.모든것을망각하지않으려는노력이다.그리고“각각의사물들과동물들,식물들에게이름을부여하고난뒤에는,인간은더이상혼자가아닐”터이다.또한그는모든전투와학살과집단탈출등에대한,이지구상에벌어진모든역사를기록해보려노력하고,마침내한인간,삐뚤삐뚤한글자로서툴게쓰여있는‘샹슬라드’라는이름하나에주목한다.

산다는것은감격적이고도기이한일
감정과언어와의식이소용돌이치는
하나의완벽하고아름다운모험


어린소년상슬라드에게세상은아름다움과경이로움,무한한가능성과호기심으로가득한곳이다.소년은어느날시멘트보도위를우글거리는감자벌레들을관찰한다.때로는그것들의움직임전체를조망하고,때로는그중한마리를잡아손바닥위에올려놓고자세히들여다본다.“지리멸렬하게흩어져오락가락하면서각자어떤귀한것을찾아다니고,(…)서로부딪치고몸을비벼대면서도전혀지친기색을보이지않”는감자벌레들을내려다보고있으면시간은몇시간이고흘렀다.그것은그의왕국이었다.감자벌레들을쇠격자와성냥갑안에가두어놓으며샹슬라드는문득자신이감자벌레들에게신과같은존재라는사실을깨닫고,폭군혹은절대군주처럼군림하기도한다.어린소년은아직어리석고미성숙하기에자신을세상의중심이라여기며그저자신의유희를위해다른존재를짓밟고폭력을휘두른다.

샹슬라드는자신이만들어놓은감옥을가만히살펴보았다.쇠격자의각네모꼴칸속에서는붉은색과검은색줄이그어진감자벌레의등과가는다리들이버둥거리고있었다.그것은마치한눈에내려다볼수있는도시,시멘트와쇠로이루어지고,한결같은창문들이아파트의밀폐된작은공간들로나있는진짜도시와도같았다.(32쪽)

그러나그는생에대한예민한감각을잃지않고끊임없이세상을관찰하고온몸으로부딪히며조금씩성장한다.그는“자신을감싸고서힘껏죄어들어오는태양”의열기를느끼며“몽환의절벽꼭대기”에서자기자신을내려다본다.그순간“붉은색과검은색바둑판무늬수영복”을걸친그의몸은그가어릴적관찰하던감자벌레와크게다르지않은듯하다.
그리고어린소년은아버지의죽음을경험한다.죽음에대해인식하지못하는소년의눈에“손수건을코밑에갖다대면서”아버지가누운“침대위로몸을굽히고는,소곤거리면서사라져버”리는사람들의동작은우스꽝스럽다.그는아버지가사람들을속이는코미디를하고있다고여긴다.그리고마침내떠날시간이되자그는남들몰래아버지의팔을꼬집어본다.아무런신음소리도내지않는“침대위남자”의반응에샹슬라드는놀란다.그는아버지의장례식을치르고나서야비로소죽음이라는개념에대해,그리고인간의삶이유한함을인식하게된다.
여러낮과여러밤을지나며샹슬라드의의식세계는더욱깊어지고확장된다.그리고그는세상의모든놀이와유희를즐기며,사랑하고행복해하며,아이를낳고,때때로삶의현존과끔찍한허무를마주하고,인간이저지르는전쟁과살육에대해자각하고,때때로철학적질문을던지고,마침내자신을겹겹이둘러싼거대한세상을깨닫는다.

“내말들어봐.어느날우리할머니가어떤끔찍한이야기를해주셨는데,그말은정말내게고통스러웠어.할머니는여든이셨고,나는열두살이던가열세살이던가그랬는데,할머니는이렇게말씀하셨어.‘사람들은깨닫지못하지만,삶이란너무도빨리지나가버린단다.’그말이나를너무고통스럽게했어.뭐랄까,너무끔찍하게느껴졌다고할까?”(146쪽)

결국확실한것이라곤,각각의것들을담아내는끝없는상자들의연속뿐이었다.즉,침대는방속에,방은호텔속에,호텔은마을속에,마을은산천경개속에,산천경개는지구속에,지구는태양계속에,태양계는은하성운속에,은하성운은은하계속에,은하계는우주속에,우주는우주속에,우주는우주속에,그리고다시우주는우주속에담겨있는것이었다.(160쪽)

언어에대한근원적인사유와
소설형식상의미학적모험


소설전체를관통하는전지적인시점은샹슬라드의생애의결정적인순간을포착해내며일상을세세하게묘사한다.그리고소설중반에이르러샹슬라드는인간이가진모든언어를말하고이해하고자하는야심을드러낸다.세상의모든언어로끊임없이세상과소통하고자하는르클레지오의작가적욕망을대변하는듯하다.식물잎사귀에새겨넣은글자,자음과모음을바꾼자신만의암호문,누트카인디언의몸짓등세상에는수많은언어가존재했다.그리고그는바람소리,어슴푸레한달무리,잔잔한바다위에서도자연의언어를읽을수있다는사실을깨닫는다.
어느날언덕위로올라간샹슬라드는회중전등을깜빡이며침묵속에서말을하기시작한다.이말들은두페이지에걸쳐모스부호처럼그려지는가하면,또다른장에는수화를나누는두사람의손짓묘사를다섯페이지에걸쳐대화문처럼구성해놓기도하고,소설의한장전체가의미를알수없는미지의어휘와문장들의연속으로이루어진부분도있다.독자들은이언어들을해석할수는없으나,형식상의실험을통해언어에대한새롭고낯선감각을그대로전달하고자한작가의의도를엿볼수있다.

“일상적인현실과의식의세계를날과올로삼아
인간성에대한새롭고도섬뜩한진실을재구성하는
더할나위없이섬세하면서도혁신적인감수성.”_옮긴이의말


샹슬라드라는한인간의생애의결정적인순간들을포착해내면서도인간존재의삶전체를조망하고,나아가인간의언어와인간이속한대지,그대지가속한우주까지르클레지오의사유는뻗어나간다.그리고샹슬라드의삶을그린스물세개의장을담아내는상자처럼소설앞뒤에배치된프롤로그와에필로그에서작가의전지적인시점이더욱빛난다.프롤로그와에필로그에서작가는이책을손에쥔독자의행동을꿰뚫어보듯묘사하고,소설을읽는행위와의미,책이라는물질에대해서도서술한다.그리고책한권에인간과우주를모두담아내려는자신의노력을무화해버리듯,그는진정한이야기는책밖세상에있다고전한다.
옮긴이최수철은작가의또다른대표작『황금물고기』의옮긴이의말에서“르클레지오의작품세계를관통하는한가지공통점은삶의매순간잠재해있는아름다움과진실을찾아나서는예술가적모험”이라고이야기했다.르클레지오는『사랑의대지』를통해우주속의대지,그대지안의작은방,방안의책한권에갇히기보다거대한우주속인간의유한한속성을깨닫고,삶속에서진정한시와아름다움을발견해야한다고역설한다.그리고그러한삶의진리를망각하지않도록온생을다해애써야한다고,그리하여“진정으로살아있는존재”가되어야한다고르클레지오는작품을통해말하는듯하다.

덮인책,아마도거의덮인책위에서세상은파도처럼끊임없이부서지고닳아간다.따지고보면,책속의것들은바깥의것들보다덜중요하다.한평생에서하루의독서가무슨의미겠는가?세상을뒤덮고있는그무수한,괴발개발쓰인글귀들속에서한줄의글이무슨의미겠는가?하나의단어,하나의태양,하나의문화가있는것이아니다.도처에수백만의사물들이있다.어느곳에든,이를테면당신의시선의닿는곳에도시가있지않은가?(4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