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3월,문학동네에서루이스어드리크의?페인티드드럼?이출간되었다.루이스어드리크의작품은?비둘기재앙??사랑의묘약??라운드하우스?에이어네번째다.작가필립로스가그의작품들에서미국사회속,뉴어크지방에거주하는유대인의초상을그리는데전력했다면,루이스어드리크는아메리카원주민인오지브웨족이뿌리내리고사는다양한모습을그리는데천착한다.?페인티드드럼?도예외는아니다.
“그녀(페이트래버스)의목소리는내목소리와그리멀지않다.
나는그목소리가내목소리처럼되지않게하려고아주많이노력해야했다”루이스어드리크
북이발견됐다.채색된북,페인티드드럼이다.“한때마약에빠졌다가간염에걸린덕분에그늪에서빠져나온사람,옷에관심이없어서해고된옷가게매니저,교육을받다가만미술애호가,일기와습작시만줄곧써대는작가,끝으로내어머니가오십년도더전에시작한재산처분사업의동업자”인페이트래버스가발견했다.페이는죽은이가살던집에남아있는소유물들을처분해주는사업을어머니엘시와함께운영하고있다.그들의전문영역은아메리카원주민유물이다.그녀자신이오지브웨족혈통이기도하다.여느날처럼감정을요청받은집,그집에서제스스로소리를내는북을마주하게된것이다.삼나무에무스가죽이위아래를쌌고,의미를알수없는상징들이그려진북이다.신비로운힘에이끌려페이는아무도보지않는사이에차트렁크에북을실어자신의집으로가져온다.
오지브웨족전통에의하면북은매매될수없다.북이선택한이들만이북을전수하고계승해나갈수있다.그러니북은자신의자리를찾아가야한다.페이는수소문끝에버나드샤와노라는노인을찾게된다.북은아메리카원주민인샤와노의할아버지가만든것이다.샤와노는할아버지로부터전해들은북의탄생과여정에관한이야기를페이에게들려준다.
버나드샤와노는자신의할아버지가만들었던북을집으로가져온다.얼마지나지않아마을의한가족에게불의의사고가생기고,버나드는북을울려가족의영혼을위로하고치유하려한다.이후이야기는다시페이에게로돌아간다.페이는북이아픈사람들을돕고있다는버나드샤와노의편지를받으며자신의오랜상처를스스로극복하고자노력한다.
“소설은무엇보다북의이야기이면서,당연히인간의이야기이다.
관계,상실,슬픔,용서,화해,질서,무질서,연결성의이야기.”<옮긴이의말>중에서
총4부로이루어진소설은,각부마다다른목소리의화자가등장해각자의삶을말하고,그삶들이퍼즐조각처럼합쳐져책장을마지막으로덮을때에야독자의머릿속에북에대한총체적인이야기가완성되도록기획된구성이다.때문에얼핏보면오지브웨족고유의정신과혼이담긴북을중심으로이야기가얽혀있는듯하다.북은사람들의슬픔을치유해주는오지브웨족의중요한유산이다.하지만북이얼마나아름답고영험하며신비한존재인가를드러내기위해서였다면,즉북자체가중요했다면그글은픽션이아닌논픽션의모습을하고있었을테다.작가는북을울리는연료가되는,사람들의‘슬픔’에집중한다.?페인티드드럼?에선,다양한층위의슬픔이등장한다.특수한위치에있는사람들이겪어야하는슬픔이있다.아메리카원주민으로서겪어야했던역사속의슬픔-정부가모든사람들을보호구역의가장먼경계바깥으로,길로,시내로,주택지로이주시키던시절이있었다.처음에는괜찮은듯했지만곧일이어그러지기시작했다.얼마지나지않아중요한인물이었던사람들이숨지거나술꾼이되거나살해당하거나자살에가까운행위를하거나자기몰락의길을걷는듯보였다(159쪽)-이나,전쟁과같은국가의폭력에의해희생된사람들처럼.그리고사랑하는이를잃는것과같이보편적으로경험할수있는슬픔도있다.관계로부터,공동체로부터,사회로부터얻은슬픔들.이렇듯루이스어드리크가그려내는슬픔은흔하고도다양하며개별적이기에,옮긴이의표현대로슬픔은“색조를잃은무채색이아니라찬연한빛깔의유채색”(360쪽)일지모른다.
“우리에게는슬픔이있지요.
우리가슬픔을어떻게든다루지않으면슬픔이우리를놔주지않아요.”
슬픔이보편적인감정이라고해서이를그대로안고살아갈수는없다.벗어나야한다.
우리가간절히바라는것은단순한질서다.어느날,그리고다음날,그리고그다음날,우리가운이좋다면우리의하루하루는다르지않을것이다.슬픔은혼란이다.죽음과질병은세상을제대로움직이지못하게한다.북의질서는세상의질서다.그질서속에서살아나가고그질서를지키는것은절박하게희망을갈구하는몸짓이다.우리를보호하소서.우리를구원하소서.우리의마음에서슬픔을걷어가순수한마음으로세상을찬미하게하소서.(239쪽)
우리는구원을열망한다.페이가살고있는길의이름은부흥,‘리바이벌로드’이기까지하다.구원을모색하고자어드리크는인간세상바깥,슬픔을초월한존재들로시선을돌린다.이땅에살고있으나다른종種인그들을통해스스로를반추하고,인간스스로얻게된것보다더나은지혜를찾고자한다.이는자연과교감하는아메리카원주민특유의시선이라고도할수있겠다.
물론숲에서올바른길이란없고성장의법칙말고따라야할길도없다.올바른것이존재한다는생각은버리고가야한다.주위를둘러보라.이것이존재방식이다.비틀리고떨어지고뿌리에서갈라진다.한껏자라기위해서는아래의것을희생해야한다.흰자작나무는오래된솔송나무속을먹고살며제목을서서히조를포도덩굴을먹여살린다.(41쪽)
거미들은엄숙한목표를품고참을성있게움직인다.이우아한거미줄을만드는것은생존을위해서고,아름다움은그목적의부산물이다.궁금해진다.거미의나날처럼보잘것없는내수많은나날에서내목적은뭐지?내가만드는건뭐가아름답지?뭐가우아하지?세상에어떤보탬이되지?(107~108쪽)
“늑대가대답했어.물론말로대답한게아니라,뚫어져라쳐다보는시선으로.‘사니까사는거야.’늑대는질문을하지않았어.이유를대지도않았어.나는그때늑대를이해하게됐다네.늑대는삶을주어진대로받아들이지.그들은주위를둘러보며다른삶을바라지않아.인간에게분노하며자신들의생명을단축시키거나,더욱이어느정도이상으로인간을두려워하지도않지.아주슬기로워.”(164쪽)
혹은,마찬가지로인간세상바깥,망자들에게서힌트를얻고자한다.페이가죽은이들의물건을접하고느끼는행위들은,“비록무사히저승으로갔겠지만물건의배치나그것을다룬방식에아직남아있는죽은자들의가치관이나취향에대한느낌을얻고싶다.나는죽은자들과화해하고싶다.(50쪽)”.“어떤소장품에서는인간이느껴지지않지만어떤것에서는물씬느껴진다.”(52~53쪽)구원을얻기위한치열한몸짓이다.
어머니와딸의관계를통해본‘구원’
구원은쉽게찾아오지않는다.작가는‘어머니와딸’을서술하는방식에서구원받을수있는힌트를숨겨놓았다.각부의중심에는모녀관계가반복적으로등장한다.더정확히는어머니와그녀의맏딸이다.1부와4부에선‘엘시와페이’,2부에선‘아나?과숄소녀’,3부에선‘아이라와쇼니’가중심축이다.각각의관계엔,들끓는모성이없다.루이스어드리크는차라리“여자라면어머니와사이가좋다고인정하기는쉽지않다”(33쪽)라고단정한다.소설의어머니들은자식들을위해무조건헌신하기보다여자로서자신의욕망을좇는편을택한다.그리고그렇게자신의욕망을좇는사이,자식들에겐생명을위협하는위기가찾아온다.페이와여동생네타는과수원의사과나무에위태롭게올라가있고,숄소녀는달리는수레위에서늑대들의습격에쫓기며,쇼니는불타버린집을뒤로하고동생들을이끌고눈보라를헤쳐나가야한다.
딸들은어머니가부재한상황에서위기에서빠져나오긴하지만,상처는슬픔이되어남는다.페이는타인과의관계맺음에서끊임없이두려움과망설임을경험하고,숄소녀는자신의몸을투신해북이되며,쇼니는어머니로부터인정받고싶은욕구에목말라한다.“어머니들은우리를보호하려고”(352쪽)하기때문에,“딸에게산고에대한진실을말해주는것과같을테니”(같은쪽),위험에대한직접적언급을피한다.딸들은결국이런슬픔과결핍의경험을통해스스로깨달아야만한다.
“삶이당신을부숴놓을것이라고.그사실로부터당신을보호해줄사람은없고,그것은혼자살아도마찬가지라고.고독또한열망을자극하여당신을부숴버릴테니까.당신은사랑해야한다.당신은느껴야한다.그것이당신이이땅에태어난이유다.당신은심장을걸고여기에있다”(같은쪽)는것을.루이스어드리크가?페인티드드럼?을‘딸들에게’라는헌사로시작하고있음이의미심장해지는대목이기도하다.
슬픔을인정하고,받아들이며직시하는순간딸들은성장하며구원에이를수있었다.그리고그때야말로,나와타자와의관계가허물어지며비로소세상을조망할수있다는결론을보여주며소설은막을내린다.
만약그것들이갈까마귀묘지에서죽은것들을먹고살았던벌레나생명체를먹고그물질로이루어져있다고말할수있다면,그것들을여기에묻힌사람들,아이들,자신을희생한소녀들의정령이라고해도되지않겠는가?그렇다면갈까마귀의기쁨은이땅위와이땅아래,그리고내가바로지금서있는여기그중간에서우리가공유하는의식意識의한형태라할수있지않겠는가?내가이런생각에빠져있을때갈까마귀한마리가방향을틀더니내얼굴을향해총알처럼날아온다.하지만그것이내머리칼에날개를스치며지나갈때도나는움찔하지않는다.나는그야성의순간에내여동생의이름을외쳐부른다.(후략)(3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