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어디로모실까요?”
“멀리!저멀리로!이곳진창,우리의꽃으로이뤄졌도다.”
중세의오주공작은꿈에서정박중인배에서먹고마시고잠자는오늘의시드롤랭이되고,
오늘의시드롤랭은꿈에서말타고수백년을건너시간여행중인중세의오주공작이된다.
두삶이겹쳐지며피어나는연푸른꽃,크노의호접몽이보여주는언어의신비
레몽크노,프랑스현대문학사의지형을바꾼거장의초상
20세기문단의거장크노(RaymondQueneau,1903~1976)는,유례없는작품들로현대프랑스문학에지대한영향을미친인물이다.무엇보다1960년대수학자와문학가로구성된‘잠재문학작업실’이란뜻의실험문학그룹울리포(OuLiPo)를만든장본인으로자주언급된다.한국에제법알려진작가들인조르주페렉,이탈로칼비노등도차후에그그룹에합류해함께활동했다.크노는문자와수의세계를나란히놓고봄으로써문학속에서전혀낯선방식으로또다른잠재성을이끌어낸작품들로주목받았다.일례로바흐의푸가에서영감받아동일한일화를99가지문체로변주해낸『문체연습』(1947),단10편의소네트만으로시100조편의제작가능성을제시한시집『시100조편』(1961)등은오늘날기념비적인작품이되었다.블라디미르나보코프를비롯해수많은작가가크노의작품들을두고“전율을불러일으키는명작,프랑스문학사에서가장위대한이야기를써낸작가”라며크노의남다른작업에박수를보냈다.이렇듯아무도흉내낼수없는독창적인작품들로울리포의선구자로평가받은크노.그는이오네스코와베케트가보여준언어파괴,셰익스피어나초서가툭툭내뱉던야한농담,파운드나조이스가지닌입말의이미지,라블레나세르반테스한테서보이는왁자한상상력을보다더실생활로끌어와문자로서,문자를위한,문자의모험을펼친다.
크노는일찍이초현실주의그룹에도잠깐몸담았고,콜레주드파타피지크그룹,프랑스수학협회,난센스논의학회,유머학회,공상과학애호가서클등울리포말고도다양한그룹들과연대하며문학내에잠재된여러가능성을끊임없이탐색하는작가였다.11살부터작성한독서목록을평생이어나갔을정도로어마어마한독서광이었고,1000편이넘는시와16편의소설등을펴낸작가이자,갈리마르플레이아드총서를이끈편집자로서여러작가를발굴해낸눈밝은지성인이었으며,부뉴엘-트뤼포-베리만등과작업한시나리오작가이자배우이자칸영화제심사위원이기도했고,대중가요샹송의작사가이기도했다.사르트르가그의시<네가이런생각이라면Situt’imagiens>을읽고노래로만들어보라고청한그곡이나중에쥘리에트그레코가불러폭발적인기를누렸다는일화며,알렉상드르코제브의문하생으로서그의헤겔강의록을정리하여주석판을내는가하면,코제브밑에서함께공부했던바타유와함께헤겔연구논문「헤겔변증법의기초비판」을같이쓰기도했으며,수학자다비트힐베르트를연구한책을펴내기도했고,초현실주의그룹의수장앙드레브르통에반대하여(그의처제와결혼했음에도)바타유,레리스,프레베르,데스노스등과『한송장uncadavre』이란팸플릿을공동제작하는등일화에서보다시피다양한얼굴로다방면에서두각을보인인물이었다.
만년의대가가장자호접몽의우화로풀어낸역사와꿈과언어의대향연
이소설『연푸른꽃Lesfleursbleues』(1965)은오랜세월언어를가지고실험했던크노가펴낸후기작이다.만년에무르익을대로무르익은대가의면모가고스란히담겨있는작품이다.꿈과현실,중세와현대,각종언어와조어가갈마드는이작품의독특한서사적구성은읽을때마다새록새록또다른재미를안긴다.
이이야기를끌고가는중심인물은,오주공작과시드롤랭이다.1960년대파리센강인근에수송선을묶어두고그곳에서먹고자는한량시드롤랭과중세에서시종과함께말을하는두마리말을타고시간여행에나선오주공작.둘은전혀다른시간을사나,각자자기네꿈속에서서로를만난다.말하자면언제그시공간이바뀌었는지알수없게,누가누구의꿈속을거니는지알수없게,둘의잠속모험이반복되고변주된다.「작가의말」에서보다시피,크노는중국의호접몽우화를가져와되묻는다.“오주공작자신이시드롤랭이되는꿈을꾸는걸까,아니면시드롤랭자신이오주공작이되는꿈을꾸는걸까?”독자는어느새오주공작이탄주마등에함께탔다가쥐도새도모르게시드롤랭이한잔하는수송선의테이블로옮겨온다.
작가는재밌게도중세의오주공작이꿈길을걸어시드롤랭의현실로오기까지정확히175년씩역사의징검돌을배치했다.그정황을보자면,오주공작은1264년여덟번째십자군원정을꾀하는성루이대왕이통치하던시절의봉건영주로처음모습을드러낸뒤(1장에서4장까지),샤를7세가통치하는1439년으로(5장에서8장까지),그러고는루이13세를대신해마리드메디치가섭정을펼치는1614년으로(9장에서12장까지),그다음에는루이16세의폐위를몰고온대혁명의해인1789년으로(14장에서17장까지),그리고마침내드골이통치하는1964년으로(18장에서20장까지)건너뛰어시드롤랭이살고있고작가인크노가이작품을집필하던시점인현대로온다.둘의눈꺼풀이감겼다뜨일때마다역사적정황도순간순간뒤바뀐다.그러다마침내둘이만나는마지막장은압권이다.이장에가서야비로소진흙밭에피어난연푸른꽃을볼수있기때문이다.또한묶어둔수송선이드디어이곳에서풀려나어딘가로떠나는것도이마지막장이다.
크노는여기서각기다른시대,다른나라의인물이한데어울리는이작품에서여러언어,구어,조어등을써서특유의유머로이야기를풀어낸다.라틴어,희랍어,이탈리아어,독일어,어설픈영어,심지어인공언어까지총동원하여,이작품에는희한한언어의향연이펼쳐진다.시드롤랭의수송선이‘방주’라고불리는것이노아의방주를연상시키듯,크노의이소설자체가하나의방주가되어바벨의방언들,그언어의대홍수속으로나아가는방주같다.
번역의불가능성을헤치고나온구성진번역이주는재미와한국어판의의의
그간크노의작품들은문학사에서숱하게거론되었으나번역불가능성이제기될만큼언어실험을감행한작품들이대부분인지라,대중적으로성공한소설『지하철소녀쟈지』가2008년잠깐나왔던걸빼면,그간한국에소개될기회가없었다.그의작품이자국의문학장에어떤식으로든통쾌한자극과독창적인영향력을행사하리라는확신은,영문판(바버라라이트)이나이탈리어판(움베르토에코,이탈로칼비노)번역에도전한쟁쟁한그이름들의명성만봐도능히짐작가능하다.가까운일본만하더라도이미크노의전작이거의소개되어있을정도다.한국에뒤늦게나마소개되는행운을누린것도번역가의어지간한소명의식과역량이뒷받침되지않으면불가능한작업이라는걸알수있다.
한국에먼저『지하철소녀쟈지』를소개한정혜용번역가는,이번소설역시심혈을기울여크노가여기저기폭죽처럼터뜨리고있는언어유희와형식실험을따라잡으며한국어로구성지게옮겨냈다.크노의작품이언어의지리적풍경을완전히뒤바꿔놓음으로써독자로하여금새로운문학언어에대한상상력을증폭시키듯,번역가는최대한자신의주체성과모국어의가능성을열어젖혀이작품의묘미를살려냈다.옮긴이해제를통해크노의언어실험이어떻게감쪽같이술술읽히는이야기로변모했는지짐작할수있을것이다.번역가정혜용은말한다.“우리는따로또같이놀았다.크노는자신의모국어인프랑스어로,번역가는번역가의모국어인한글로.이작품에는시쳇말로‘아재개그’라할만한유치하고시답잖은말장난에서부터(첫페이지를장식하는덜떨어진말장난들)기존단어를살짝비튼신조어만들기나(들어본듯하나존재치않는국가“루머니아”나“잔나비아”등)초성이나음절바꿔치기처럼일상의흔한말실수를활용한말장난을비롯해(맞는듯맞지않은“천개번둥”등)언어적·문화적박식함을전제로하는고급말장난에이르기까지가능한온갖종류의언어유희가총망라되어있다.이허구의세계에입장한이상,그저긴장을풀고한데어우러져놀다가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