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책서두에이렇게썼다.
연필은내밥벌이의도구다.
글자는나의실핏줄이다.
연필을쥐고글을쓸때
나는내연필이구석기사내의주먹도끼,
대장장이의망치,뱃사공의노를
닮기를바란다.
지우개가루가책상위에
눈처럼쌓이면
내하루는다지나갔다.
밤에는글을쓰지말자.
밤에는밤을맞자.
그는요즘도집필실칠판에‘必日新(필일신,날마다새로워져야한다)’세글자를써두고새로운언어를퍼올리기위해연필을쥐고있다.산문『라면을끓이며』이후3년반여의시간,그의책상에서지우개가루가산을이루었다가빗자루에쓸려나가고,무수한파지들이쌓였다가쓰레기통으로던져진후에야200자원고지1156매가쌓였다.그리고그원고들이이제468쪽의두툼한책이되어세상으로나간다.
지금“물렁하고아리송한문장으로심령술을전파하는힐러(healer)들의책이압도적인판매량을누리는”(376쪽)대한민국의독서풍토에,언젠가한인터뷰어가칭했던바‘몽당연필을든무사(武士)’김훈이돌아왔다.
아침의날똥에서인간이순신의내면에이르기까지―
‘노인의장르’를완성해내는김훈의연필
과거에김훈은‘산문은노인의장르다’라고말한적이있다.아마도작가자신이직접보고듣고경험한일과기억의파편들을끄집어내고파헤쳐거듭살아본후에야간신히쓸수있는장르라는의미에서한말이아닐까싶다.소설가이기전에이미탁월한에세이스트였던그는어느덧칠순에이르러스스로의내면과대한민국현대사를아우르며이‘노인의장르’를완성해간다.
그의문장은오함마를들고철거촌을부수던지난시대의철거반원들과,그철거반원들에게달려들다가머리채를붙잡히고울부짖던시대의엄마들에대한유년의무섭고참혹한기억으로부터,젊은시절생애가다거덜난것같은날술을퍼마시고다음날아침뱃속이끓을때누었던슬픈똥에대한이야기,그리고『칼의노래』에미처담을수없었던‘인간이순신’의내면에대한이야기를비롯해,지난해세월호4주기를앞두고그가팽목항,동거차도,서거차도에서머물며취재한세월호참사에이르기까지종횡무진뻗어나간다.
생애가다거덜난날의허무와참혹…
그래도“적에게똥을끼얹어가면서,인간은살아남아야하고자신을지켜야한다”
가장일상적이고사소한대상을집요하게묘파해기어이인간과세계의민낯을보여주는김훈의글쓰기는이번책에서도여전하다.지난산문집에서‘라면’한그릇으로끼니를대충때우는사람들의공감을자아냈던그는,이번책에선‘똥’이야기로매일아침끓는속으로변기위에주저앉으며하루를시작하는생활인들의심금을울린다.
생애가다거덜난것이확실해서울분과짜증,미움과피로가목구멍까지차오른날에는술을마시면안되는데,별수없이술을마시게된다.지금보다훨씬젊었을때의이야기다.술취한자의그무책임하고가엾은정서를마구지껄여대면서이사람저사람과지껄이고낄낄거리고없는사람욕하고악다구니하고지지고볶다가돌아오는새벽들은허무하고참혹했다.(…)
다음날아침에머리는깨지고속은뒤집히고몸속은쓰레기로가득찬다.이런날의자기혐오는화장실변기에앉았을때완성된다.
뱃속이끓어서,똥은다급한신호를보내오고항문은통제력을잃고저절로열린다.(「밥과똥」,42~43쪽)
똥에대한이지독한묘사에서는날똥냄새마저풍길것같다.그는계속간다.
똥의모양새는남루한데냄새는맹렬하다.사나운냄새가길길이날뛰면서사람을찌르고무서운확산력으로퍼져나간다.간밤술자리에서줄곧피워댔던담배냄새까지도똥냄새에배어있다.간밤에마구지껄였던그공허한말들의파편도덜썩은채로똥속에섞여서나온다.똥속에말의쓰레기들이구더기처럼끓고있다.
저것이나로구나.저것이내실존의엑기스로구나.저것이내밥이고내술이고내몸이고내시간이로구나.저것이최상위포식자의똥인가?아니다.저것은먹이사슬에서제외되지않기위하여먹이사슬의하층부로스스로기어들어간자의똥이다.밥이삭아서조화로운똥으로순조롭게연결되면서몸밖으로나가는것이아니라,밥과똥의관계는생계를도모하는신산(辛酸)에의해차단되거나왜곡된다.이똥은사회경제적모순과갈등이한개인의창자속에서먹이와불화를일으켜서소화되지않은채쏟아져나온고해의배설물이다.(…)
지금동해에서해가뜨는매일아침마다이나라의수많은청장년들이변기에앉아서내젊은날의아침처럼슬픔과분노의똥을누고있다.밥에서똥에이르는길은어둡고험하다.(「밥과똥」,43~45쪽)
그러나밥과똥이뒤얽힌이삶의악다구니속에서도,그는똥에매몰되어허우적거리지말고삶의길을찾아내야한다고말한다.똥의더러움과똥의모욕감을도리어전쟁무기로활용했던정약용처럼말이다.
똥속에서도그는단념할수없는삶의길을모색했고,당대의질곡을향해그길을설파했다.적에게똥을끼얹어가면서,인간은살아남아야하고자신을지켜야하고희망을기약해야한다.이경세가의우국(憂國)은똥속에도길이있다고외친다.(「밥과똥」,48~49쪽)
김훈을벼락처럼때린한문장
“감옥문을나왔다.”
그러나제아무리적들에게똥을끼얹어가면서계속가봐도사라지지않는고통,여전히건재한적들이있다.이(李)가떨어진(落)자리의사당이라는뜻의이순신사당‘이락사’에서시작되는글「내마음의이순신」에서그는내외부의잔혹한적의에둘러싸인채전쟁을치러야했던이순신의내면을조심스럽게복원해낸다.
그가감옥을나와서쓴첫번째문장은“감옥문을나왔다”이다.『난중일기』를읽을때,이문장은벼락처럼나를때린다.이문장은,남한산성서문의밑돌처럼무수한표정을감춘채무표정하다.
이순신은한산수영에서체포되었다.삼도수군통제사의명예는짓밟혔고죽음이예비되어있었고몸에는고문이가해졌다.그리고다시계급장없는병졸의신분으로백의종군길에나설때,이순신이자신을가두고때리고죽이려했던임금과그주변의문신권력자들에대해서어떤판단과어떤감정을지니고있었는지를후인들은전혀알수없다.그는부지런하고꼼꼼한기록자였지만,매맞고백의종군하는자신의내면에관해서는한글자도쓰지않았고,술자리에서부하들에게일언반구도말하지않았다.
쓰지않고말하지않았지만,그의내면에는말하여질수없는어떤것들이들끓고있었을터인데,그것이무엇인지를그는끝내말하지않았다.(…)
공로가죽음일수도있다는이불의한세상의더러움을이순신은알고있었고,도적을물리치고전쟁을끝내는날그는바다에서전사했다.(「내마음의이순신Ⅰ」,101~104쪽)
김훈에게이순신장군은역사적인해전을치러낸위대한영웅으로서만이아니라알수없는적의와치욕으로점철된이와글거리고악악대는‘인간세(人間世)의고해’를끝까지건너간인물로서소중하다.이순신은술자리에서부하들에게조차자신의고통과치욕을떠벌리지않고전시하지않았다.이순신은“말하지않고,갈길을간다”.그침묵의힘,오직사실만을기록하는정직성,죽음에서삶으로사람들을이끌어가는이순신의리더십을김훈은,지금도마음에품고있다.
“작가는변모하고있다.”
이원고가인터넷에연재될때,한독자가이렇게한줄의단평을남겼다.
“작가는변모하고있다.”
이번신작에서그는이사회에서실제로일어난구체적인사건들을언급하며슬픔과분노를숨기지않는다.세월호참사를진정성없는눈물로막아보려했던박근혜전대통령의‘5.19대루(大淚)’,폭염수당100원을요구했던한배달라이더에대한이사회의처우,국회의원들이서로오수(汚水)를끼얹듯주고받는‘물타기’언어에대한노골적인비판을담은글들도그렇거니와,그가가보지못한반쪽의산하‘북한’을생각하며쓴몇편의글들에서는,그가이세계의진탕과모순에기꺼이발을담그고,그의연필로정확하게분노하겠다는결의가느껴진다.그는라이더유니온결성을준비하고있는박정훈씨를직접만나‘귀한세상공부’를했다며이렇게쓴다.
가난했던시절에한국사람들은나라가잘살게되고국민소득이늘어나면빈곤의문제는저절로결되는것으로믿었다.그러나,그렇지않다는것이증명되었다.소득이늘어나자빈곤은구조화되었고구조적빈곤은토착되고세습되어간다.가난은다만물질적결핍이아니다.빈곤은그결핍을포함한소외,차별,박탈,멸시이다.이구조는이제일상화되어서아무도거기에의문을제기하지않는다.이것이시장의원리이며시장의자율적기능이작동한결과라고설명하는말들은힘이세다.나는그야말로백면서생이어서소득분배나경제발전방향같은거대담론을입에담지못하지만,내가보고겪은것들을겨우말할수는있다.(…)
라이더유니온의오픈카톡방에한라이더가글을올렸다.
―청년들이여,정치에관심을갖지않으면개보다못한인간들이내머리위에군림한다고세동대왕님,이순심장군님이말씀하셨습니다.
그의어조는거칠지만,그가말하려하는바는거칠지않다.도시의네거리신호대기선에서,오토바이들은홀로서있다.(「아,100원」,169~173쪽)
김훈의문장에깃든한줄기웃음
‘호수공원의산신령’이받아쓴‘보인다’의세계
한편,김훈의세계에스며든유머를발견하는것도김훈의신작을읽는특별한즐거움이다.쉼표하나어중간한부사하나슬쩍끼워넣을틈없었던그의단단한문장과도저한허무의세계에슬쩍농담과웃음이배었다.노인과여성들의결론도없고한도없는수다가판소리처럼신명나게출렁거리고,이세속도시를살아가는사람들의갖가지‘지지고볶는사연들’에피식,웃음이새어나온다.
다들얼굴이쭈그러들었고,머리털에먼지가낀듯했고,눈동자에쏘는힘이빠져서헐렁해보였다.
―이젠술도다부지게못먹네.앞으로는모이면우유로하자.사이다로하든지.
―술몇잔먹다보니날이다저물었어.(…)
이패거리중에서내가그나마책권이나읽고글줄이나쓰는편이어서나는언제나서생대접을받는다.친구들은떠들어대다가이야기가애매해지면나에게떠넘긴다.
―야,그건훈이한테물어봐.쟤는머릿속이아는걸로꽉차있거던.도루묵알처럼말이야.몽땅아는거야.아이구니미,그놈의책.(「해마다해가간다」,455~460쪽)
때로그는북적이는결혼식장에서‘고매한인품을완성한신사’로소개받고흰장갑을낀채주례사를하지만,젊은하객들의반응은영신통치않다.몇번의실패끝에김훈은다시는주례사를맡지않으리라선언하는데,이일화를담은글의제목은‘꼰대는말한다’이다.웬만해서는다시듣기어려울‘김훈의주례사’를엿보는것도이책을읽는또하나의재미이다.
그는기꺼이스스로를‘꼰대’라지칭하며늙음에대하여여러우스개와단상을풀어내지만,나이든다는것이그에게비단회한과슬픔만은아닌모양이다.그는‘늙기의기쁨’에대해이렇게썼다.
너무늦기는했지만,나이를먹으니까자신을옥죄던자의식의경계가무너지면서나는흐리멍덩해지고또편안해진다.이것은늙기의기쁨이다.늙기는동사의세계라기보다는형용사의세계이다.날이저물어서빛이물러서고시간의밀도가엷어지는저녁무렵의자유는서늘하다.이시간들은내가사는동네,일산한강하구의썰물과도같다.이흐린시야속에서지금까지보이지않던것들이선연히드러난다.자의식이물러서야세상이보이는데,이때보이는것은처음보는새로운것들이아니라늘보던것들의새로움이다.너무늦었기때문에더욱선명하다.이것은‘본다’가아니라‘보인다’의세계이다.(「늙기와죽기」,74쪽)
그래서그는이선연히‘보이는것들’을충실하게받아적기로한다.나이든그는요즘나무와숲과물에기대어살아가고있다.20년째그가산책하고걸으며쉬어가는‘일산호수공원’에는그외에도많은사람과생명들이‘지나가고지나간다’.
유치원에다니는동네아이가공원에서두발자전거를타다가넘어졌다.나는벤치에앉아있었다.뒤따르는자전거들이많았으므로,나는아이를안아서길밖으로데리고나왔다.아이는무르팍이깨져서피가조금배어나왔다.아이는엄마를부르며울었다.아이는핸드폰을가지고있지않았다.나는아이에게엄마핸드폰번호를물어서내핸드폰으로엄마에게연락해주었다.(…)울음을그쳤던아이는엄마를보자다시울음을터뜨렸다.아이들은엄마를보면참았던설움이복받치는모양이다.아이는울면서엄마한테말했다.
―내가넘어져서우는데,이산신령할아버지가날구해줬어.
아이엄마는우는아이를안고달래면서깔깔웃었다.아이엄마가말했다.
―얘가그림책을너무많이봐서이렇게됐어요.할아버지,죄송해요.
요즘도산신령나오는그림책이있는모양이다.
아이는동화속세상에서살고있었다.울음을그친아이는엄마와함께돌아가면서나를향해단풍잎같은손을흔들었다.일산에서20년을살고나니나는호수공원의산신령이되었다.(「호수공원의산신령」,28~29쪽)
단풍잎같은손으로인사를하고팔랑팔랑뛰어가는아이의뒷모습을‘호수공원의산신령’은바라본다.절망과불의로가득찬이세계에서도아이들은자라고,사람들은공터에서공을차고,젊은이들은떡볶이를먹으며끼니의무거움을털어내며,눈이내리면거리에몰려나와연애하고키스한다.‘산신령’이된김훈은마치투명인간처럼,이진부해서아름다운거리와세상을기웃거리며사람들의이야기를엿듣고오늘도연필로몰래받아쓰고있다.
스쳐지나가는,하찮고사소한,날마다부딪치는,가까운것들에대하여
김훈의‘후진거리의노래’
이제그는여생의날들을아끼며‘가까이있는것들을가까이’두고살려한다.이책에실린글의상당부분은그가문학동네네이버카페에‘누항사―후진거리의노래’라는제목으로연재한글들이다.이누추하고허접하고후진거리에서서여느사람들처럼‘미세먼지와초미세먼지를마시며’써내려간글들이다.그러나이누린내나고먼지자욱한거리에서도흙냄새나는냉잇국한사발의온기와아이에게뽀뽀하는젊은엄마가있고,돌이킬수없는국가폭력과참사이후에도계속’살아가는사람들’이있다.그에게소중한것은이렇듯그럼에도불구하고‘살아가는사람들’이다.
아이가아프고젊은엄마가아이를병원에데려가는누항(陋巷)의일상이이처럼아름다운것인지를알기위해서나는70살까지산것이다.이것을알았으니70년세월은헛되지않았구나싶었다.나이를먹으니까나자신이풀어져서세상속으로흘러든다.이와해를괴로움이아니라평화로받아들일수있을때,나는비로소온전히늙어간다.새로운세상을겨우찾아낸다.
나는말하기보다는듣는자가되고,읽는자가아니라들여다보는자가되려한다.나는읽은책을끌어다대며중언부언하는자들을멀리하려한다.나는글자보다는사람과사물을들여다보고,가까운것들을가까이하려한다.시간이얼마남지않아야,보던것이겨우보인다.(「늙기와죽기」,75~76쪽)
김훈의‘연필로쓰기’는‘몸으로쓰기’다.그리고‘가까운글쓰기’다.기계가없어도,마땅한공간이없어도,희망이나전망이없어도,호수공원벤치에서,빗길에배달라이더가넘어져짬뽕국물이흐르고단무지가조각난거리에서,그는관찰하고듣고쓰고있다.그렇게쓴글들이이책으로묶였다.
가장더러운똥에서부터그의마음속고결한곳에자리잡고있는이순신에이르기까지―김훈이몽당연필로겨우붙들어둔문장들이여기에남았다.이책은70대의김훈이연필로꾹꾹눌러쓴산문의진경(眞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