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유계영 시집)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유계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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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선정 「미래는 공처럼」 수록

“내가 나를 지나가버린 것을 끝까지 모른다”
―‘나’에게 잘 도착하는 길은 ‘나’를 잃는 과정 중에 있는지 모른다
2010년 등단 이래 깊고도 낯선 시세계를 구축해온 시인 유계영. 첫 시집 『온갖 것들의 낮』(민음사, 2015)과 현대문학 핀시리즈에 포함된 시집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2018)에 이어 세번째 시집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를 펴낸다. 첫 시집에서 우리가 만났던 “스타카토풍의 불안과 공포를,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는 건조한 밤을, 입체파 회화처럼 단절되면서 동시에 연결되는 몸과 얼굴”(이장욱)에 더해 시인 유계영의 더 깊숙한 곳이 침착히 꺼내 보여진 시집이 되겠다.
시인은 “왜 과거의 어떤 나로부터 현재의 나에 이르기까지는, 내가 살던 시간 같지 않을까. (…) 오늘의 나는 오늘 태어난 나”(『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서랍의날씨, 2016, 공저)라고 말한 바 있다. 조연정 평론가가 쓴 이번 시집 해설 가운데 “유계영 시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죽은 나’의 ‘미래일기’(「미래일기」)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대목 또한 맥이 통할 터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성이 말처럼 당연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과거를 떠올렸을 때 거기 남은 내가 낯설고 그 시간이 내 것 같지 않다면, 오늘의 나는 오늘 태어난 나이자 죽은 나의 미래라는 감각이, 그 사이에서 ‘나’가 느끼는 곤란함과 혼란함, 상실감을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는지 모른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저자

유계영

2010년『현대문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온갖것들의낮』『이제는순수를말할수있을것같다』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우리는시끄럽고앞뒤가안맞지
봄꿈/더지퍼이즈브로큰/공공서울/눈금자를0으로맞추기위해/불과아세로라/심야산책/왼손잡이의노래/동창생/개와나의위생적인동거/반드시한쪽만유실되는장갑에대하여/몰/치와와/미래일기/참재미있었다

2부손까지씻고다시잠드는사람처럼
미래는공처럼/허클베리?경언에게/맛/신은웃었다/레이스짜기/삼박자/여름이오다/다이얼/적록색맹에게배운지혜/잠실/이석/잠을뛰쳐나온한마리양을대신해/밤의이야기/가족사진

3부이렇게긴오늘은처음입니다
해는중천인데씻지도않고/나는미사일의탄두에다꽃이나대일밴드,혹은관용,이해같은단어를적어쏘아올릴것이다/우리는친구/북/진술서/실패한번역/맨드라미/치(齒)/대관람차/환상통/아코디언/구충제먹는날/자유로

4부별뜻없어요습관이에요
시/착한기린의눈/너무느리게생각하고너무급하게돌진하는코뿔소/겨울에쓰는여름시/두마리앵무새가있는구성/은둔형오후/만성피로/기린을보여주는사람은난장이를숨긴다/엔젤링/푸가/구경하는집/촙/탈(脫)/마침내의날/웃는돌

해설|‘못다한이야기’
조연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손목이라는벼랑에앉아젖은날개를말리는
캄캄한메추라기

미래를쥐여주면반드시미래로던져버리는
오늘을쪼고있다

울고있는눈사람에게옥수수수프를내어주는여름의진심
죽음의무더움을함께나누자는것이겠지
얼음에서태어나불구덩이속으로
주룩주룩걸어가는

경쾌하고즐거운자,그는미래를공처럼굴린다
침대밑에처박혀잊혀질때까지

미래는잘마른날개를펼치고날아간다
한때코의목적을꿈꾸었던
당근꽁지만을남기고
―「미래는공처럼」부분

100명의시인?문학평론가?출판편집인의추천으로‘2019작가가선정한오늘의시’에선정된시「미래는공처럼」의일부다.선정당시‘비가시적인속성을가시적으로포착하는능력이탁월’‘공의탄성과역동성을미래의시간성으로표현하고삶의태도와내밀한관계성의문제를철학적시간성에실어흥미롭게노래한시편’이라는평을받았다.눈물로녹아내리는눈사람과뜨거운여름의이미지,공처럼굴리고구르는미래,녹아사라진자리에남은당근꽁지.유계영특유의기묘한시간성이잘드러난시다.
“오늘의나를목격했다는사람이있었는데/그것이진짜라고말하는사람은없었다”(「미래일기」),“너자신과멀어지면멀어질수록/훌쩍자라게되는거란다”(「반드시한쪽만유실되는장갑에대하여」),“나보다오래전에살았던사람들이우르르구경온다”(「환상통」)라는감각또한그러하다.오래전살았던나들을상실감속에서확인하고,태어남과동시에죽음을향해간다는자명한사실을확인하다보면,매일반복적으로경험하는낮과밤,그반복이꾸려가는어제와오늘과내일역시‘나’가제시간에‘현재’에도달할수없음을되새기게된다.


“삶의반대는죽음이아니라살수없음입니다”
―만날수도,그렇다고이별할수도없는이를잃는일에대하여

유계영의시에서과거를기억하는일이어떤안온함,다정함,따뜻함등의긍정적감정들보다는언제나얼마간의서늘함,먹먹함,슬픔등의부정적감정들을동반하게된다면,그것은과거를거쳐미래로흘러가며결국죽음을향해가는인간삶에내재한보편적상실감때문만은아닐것이다.그것은“살수없음”이라는사태로인해과거의특정시간속에갇혀현재라는미래에는결코당도할수없게된,수많은“죽은애”들에대한어떤윤리적책임감이그녀에게강하게작동하고있기때문이어서그럴것이다._조연정,해설「‘못다한이야기’」에서

과거의‘나’에대한생경함을의식하고,과거로사라진‘나’에대한애도불가능에집중하는유계영의‘나’들.한낮에도잠에서깨어나지못하고“난살아있지,살아있구나/외워놓지않으면잊어버릴수있는지(「잠을뛰쳐나온한마리양을대신해」)”주문처럼외우고,잠들지못하는밤에일어나는‘밤의이야기들’에대해말하는그의‘나’들은,이렇듯밤을품은채낮을,죽음을품은채삶을살아간다.그것은나아가‘살수없음’으로가버려스스로를애도할수없는사람들에대한이야기로이어지는바,죽은애가참석한동창회의풍경을따라가보면좋겠다.

죽은애도온것같다죽은애가와서
자신이죽었다고귓속말을흘리는것같다
(……)

죽은애가죽은것은모두가아는얘기
들어줄수없는얘기

(……)
여기에서
우리가다시만났습니다
그러고도다시만났습니다
산사람처럼어울려떠들고마신다.

(……)

무슨말이더필요해
너무많은말이필요하니까지금껏그래왔듯이죽은듯이살아가자산사람처럼또만나자
창밖의사거리에는급정거하는소나타,클랙슨소리위로미끄러지는중학생들이또
횡단보도를지우고
내가나인것이치욕스러웠던날들과떳떳했던날들을
마구흘리며
달아난다

그러나쇠고랑끝에매달린금속추처럼
죽은애의죽음을끌고간다우리는
후렴구를연거푸반복하면서
―「동창생」부분

평범한일상이전혀평범하지않게느껴지는순간,장례식장에서신고온구두가아무래도내것같지않게느껴지는순간(「밤의이야기」),자나깨나자신만을비추는거울을문득극복해보고싶다느껴지는순간(「은둔형오후」)이있다면,언어와세계의흔들림없는경직성을깨고,생경하고불가해한순간을생경하고불가해하게,그러니까어떻게든이해가능한/사회가공유한언어체계로그려내려애쓰지않는,요컨대‘시적으로’,‘시답게’밀고나간이시들을즐길수있으리라.이런얘기는좀어지러운가?무심한듯차분한얼굴로말하며그가내민이시집을받아들지않을도리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