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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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외면하는가?
등단 14년 만인 2008년,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펴낸 이래 대중과 문단의 폭넓은 사랑과 주목을 받아온 심보선 시인이 처음으로 펴낸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첫 시집 출간 직전인 2007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써온 산문을 가려 뽑고, 때로는 지금의 시점에서 반추한 코멘트를 덧붙이기도 하며, 77개의 글을 한 권에 담았다.

시인이자 사회학자의 눈으로 사회적 문제를 타인의 문제로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문제로 생각하는 자세에 대해 써내려간 글들을 모두 세 개의 부로 나누어 수록했다. 제1부에서는 삶과 사람, 가족, 일상과 관계를 소재 삼아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 택시 기사, 시인, 활동가, 친구와의 대화와 일화에서 마주한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제2부에서는 사회학적으로 문화 자본이 결여된 집안에서 자라 시인이 될 확률이 지극히 낮았던 저자의 유년으로 시작되는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책 속에 끼워진 아버지의 육필 메모와 관련된 내밀한 고백과 함께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들을 레퍼런스 삼아 예술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제3부에서는 그동안 사회적 갈등과 운동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저자가 공동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애틋한 이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저자

심보선

시인,사회학자.서울대학교사회학과와같은과대학원을졸업하고미국컬럼비아대학교에서사회학박사학위를받았다.1994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시「풍경」이당선되면서등단했다.연세대학교커뮤니케이션대학원교수로재직하고있다.
시집『내가누군가를죽여야한다면』『오늘은잘모르겠어』『눈앞에없는사람』『슬픔이없는십오초』,예술비평집『그을린예술』이있다.어빙고프먼의『수용소』를옮겼다.김종삼시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서문을대신하여│“멋지게살려하지말고무언가를이루려해라”005

제1부
영혼의문제015
그벤치에서일어났던일024
어떤곳의어떤대화들027
어느시인의평화로운죽음030
끝나지않았어034
벌새를찾아라?038
삶이야구같기만하다면042
버릴수없는것들046
푸른색이야기049
권력과인격052
아버지의역사055
헛된노력,절박한결실059
악을생각하다062
달리는당신,슬럼프는없다066
보험069
절규하는‘처절사회’073
오,스컹크!077
마지막꿈082
무너진방앗간087
삶의의미?지금삶의의미라고했나?091
소확행이라는마술097
퀸이여,당분간만이라도,영원하라101
철창속패거리104
나를당신보다높이지말아요107
수다스러운눌변가들의세상을꿈꾸다110
비교적공평한봄기운113
단골,시대착오적으로서글픈존재117

제2부
내가시를쓰기시작했을때123
나는소망한다내가어서늙기를136
극장과공동체139
예술과계급144
작업실의부재153
우정과애정의독서156
아픈자의의지162
세상에서가장슬픈수학165
시쓰기는‘말만들기놀이’168
이명(異名)을갖는다는것171
당나귀와문학174
서러움의상실177
드로잉엄살180
노래하고기타치는시인183
인류의예민한부모들186
그누구도고상함을누릴수없다189
메멘토모리192
달려라,뭐든간에196
시쓰는사람200

제3부
달려라중학생207
절규하는이성210
선과악의평범성214
기억을위한장소218
분향소에가자222
어색하고부끄러운기쁨226
오늘은내가지상에갇혔네233
비밀문서의세계237
삶이있는저녁240
그곳에삶이있다244
‘무식국가론’을제안하다248
나는그들을잇는통역자였다252
불편한이야기꾼들260
억하심정은누가푸나264
어쩌다아줌마,어쩌다사장님268
기소당한절규“장애인을해방하라”272
지옥의청년들276
귓속말공공성279
박래군의펜282
늙는다면세운상가처럼285
실패한아이러니289
빚과수금293
아베(Ave)근혜297
미리공부하는환대302
새동료가필요한전문가들306
최악의진보적사태310
사람과사람사이의비핵화313
마석으로다녀온소풍317
미노드목탄,미누를기리며322

후기325

출판사 서평

시인이자사회학자의눈으로마주한세상,그리고당신.
―심보선첫산문집

등단14년만인2008년첫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를펴낸이래대중과문단의폭넓은사랑과주목을받아온심보선시인.그의첫산문집을펴낸다.첫시집출간직전인2007년부터2019년현재까지써온산문을가려뽑고,때로는지금의시점에서반추한코멘트를덧붙이기도하며,77개의글을한권에담았다.우리가무엇을잊고무엇을외면하는지끊임없이되새기는글들이다.사회적문제를타인의문제로외면하지않고우리의문제로생각하는자세에대한글들이다.요컨대‘그쪽의풍경은환한가’묻는글들이다.당신이있는곳을돌아보기를,내가있는‘이쪽’의풍경은어떤지바라보기를,그리하여나와너,우리가서로에게어떤영향을끼칠수있을지,어떤움직임이될수있을지,어떤세계를보여줄수있을지묻는.이것은시인이자사회학자라는그의이력과무관하지않겠으나,오로지그때문만이라할수는없을터이다.“친구들과연인과동시대인이살고있는삶에매혹”되고,그삶들의움직임이“나의몸과영혼을뜨겁게하고,내가슴속에서말을들끓게하고,나의손발을움직이게하는힘”이라말하는‘심보선’이라는바로그사람에게사회학을하는좌뇌와시를쓰는우뇌가있기때문이라하는것이더타당할것이다.

나는글을쓰면서-그것이시건혹은논문이건-깨닫게되었다.내가선택하고빠져드는대상은단순히주제가아니라는것을.그것은인간들의탄식,좌절,환호성,기쁨,경탄이어려있는세계라는것을.그리하여내가이세계에대해글을쓴다는것은그세계를부각시키는것이고,그세계와연루된다는것이고,그세계에참여한다는것임을알게되었다.(…)나는베버와아버지의충고를받아들이면서도어쩔수없이삶에이끌린다.친구들과연인과동시대인이살고있는삶에매혹된다.나는삶과일,삶과작품사이를쉼없이오간다.세상을떠난이들의충고와살아있는이들의부름사이를쉼없이오간다.나의말과행동,나의기쁨과슬픔은그사이어디에선가태어나고소멸하고다시태어난다.(8-9쪽,「“멋지게살려하지말고무언가를이루려해라”」)

영혼이라는수수께끼,예술이라는수수께끼,공동체라는수수께끼
―내가이세계에대해글을쓴다는것은

심보선은자신에게‘세가지수수께끼’가있다고말한다.‘영혼이라는수수께끼,예술이라는수수께끼,공동체라는수수께끼’이다.책은그에따라총세개의부로나뉘어있다.
제1부에서는삶과사람,가족,일상과관계를소재삼아‘영혼의목소리’에귀기울인다.그에게영혼이란선험적인무언가가아닌,“언제나일상으로부터,태도들사이에서,몸짓과말투속에서,모종의신호로서우리에게말을건네”는것,“강박과예속에대해매순간저항하게하고,망설이게하고,그것도아니라면최소한어색하게”하는것이다.일용직노동자,아버지,택시기사,시인,활동가,친구와의대화와일화에서마주한영혼의목소리를제1부에담긴글에서만날수있다.인간이란무엇인가,인간적인길을따라가는것이란무엇인가,그가품은첫번째수수께끼이다.

그길은자존심이나생계처럼모든이에게통용되는가치나필요성을따르는길이아니다.아니어쩌면그렇게보일수도있다.그길은겉으로는창작의길일수도있고노동의길일수도있다.그러나그길의이면에는비밀스러운또다른길이깔려있다.보이는길안에보이지않는길이있다.보이는길과보이지않는길,명명될수있는길과명명될수없는길,그둘사이의갈등과모순속에서,길은어찌됐든굽이굽이이어지고앞으로나아간다.어제는없었던새로운지평선을향하여.(18쪽,「영혼의문제」)

어째서이렇게영혼의문제에집착하는가,하고심보선에게묻는다면그는“영혼은‘행복하지만삶의의미에무지한아이’와‘불행하지만삶의의미에도통한노인’을합체시켜서새로운인간을탄생시킨다”고대답하리라.

영혼은목적어의자리가텅빈명령어와같다.영혼은어쩌면허튼소리중에서도가장위대한허튼소리다.영혼은불가능성에대한가장경이로운역설(力說)이요,가장아름다운역설(逆說)이다.이수수께끼같은영혼때문에나는웃다가울고울다가웃는다.영혼때문에나는시를쓰고시를산다.영혼은나의시와나의삶을뒤죽박죽섞어버린다.그러니지금영혼의희미한목소리에귀기울이며미명을맞이하는나는,내가시인이든아니든그것은하등중요하지않으며,다만저미명이후의아침만이나의유일한윤리가될것임을아는것이다.(22-23쪽,「영혼의문제」)

제2부는심보선의유년으로시작된다.사회학적으로‘문화자본’이결여된집안에서자라시인이될확률이지극히낮았다.어쩌면그랬기에그에게시쓰기란‘내가쓸수없는것’을쓰는행위,상식의세계에서강요되는정체성을거부하고‘타자’가되어쓰는것일터이다.그것이책속에끼워진아버지의육필메모를비밀스럽게계승하는일이기도하다는내밀한고백도담겼다.이후다양한예술가와작품들을레퍼런스삼아예술이라는수수께끼를풀어간다.성동혁?신해욱?최승자시인의시에대한단상,김소연시인과함께진행한시창작워크숍‘퀼티드포엠’활동부터,체사레파베세와존버거,페르난두페소아,아르튀르랭보등을다루며이때심보선의해석과사유는작품에한정되지않는다.대화와만남의장소로서의예술,예술과삶/계급의관계,작업실의의미부터,예술(시)이란진리보다는행복에가까운것이며,자족적이기보다는확산될수록비범해지고위대해지며,무엇보다자유로워진다는데까지나아간다.

무수한익명의인간이시를통해,혹은시적인말과행위를통해그세계를만들었고거기에참여해왔다.그러나바로그익명성으로인해그세계의윤곽은희미하고그세계의지속은위태롭다.그세계를너무나사랑해서,혹은그세계를너무나소유하고싶어서,애호가의맹목적인열정으로,혹은호사가의명예욕으로그세계를상식과학식으로포획하려는모든시도는실패하게돼있다.그세계를예술적탁월함이나미적완성도로규정하려는모든시도는실패하게돼있다.왜냐하면그세계는예측불가능하며언제나“아직끝나지않았어”“이게전부가아니야”라는잉여의감각속에서,예감속에서,텅빈침묵같지만사실은넘쳐나는수다의말로,서늘한금속같지만사실은뜨겁게달아오른칼날의이미지로출몰했다사라지기때문이다.(134-135쪽,「내가시를쓰기시작했을때」)

세월호참사를기억하고진실을규명하자는취지의거리연극제인‘안산순례길’,고공농성중인해고노동자들에게트위터를통해소설,시,에세이,혹은개인적인지지메세지를녹음하여육성으로들려주었던‘소리연대’등심보선은사회적갈등과운동의현장에서구체적으로목소리를내왔다.구의역스크린도어사망사고,쌍용자동차해고자문제를시로써기록해왔다.공동체라는수수께끼,공동체라는애틋한이름에대한심보선의생각을제3부에서만날수있다.

모든것을말할수있는시대가왔다고안도하는순간,망각은거스를수없는물리법칙처럼작동하여우리가그토록싸웠던무책임과무자비함을어느새승자의위치에되돌려놓기때문이다.기억의힘을잃은세상이야말로우리가또다시패배했다는사실조차잊게만드는끔찍하도록평화로운지옥이기때문이다.(263쪽,「불편한이야기꾼들」)

나는타인을함부로대할수없다.타인이나를위험에처하게할수있는능력을나또한동일하게가지기때문이다.동시에나는타인을존중해야한다.내가문제를해결하고자하는의지를타인또한동일하게가지기때문이다.(316쪽,「사람과사람사이의비핵화」)

작은것이작은것너머로이동할때
―그날그자리에있을사람에게

이책의부제‘그날그자리에있을사람에게’는“내가읽는시가그날그자리에있던모든사람들의말,공통의말이되기를소망하면서”(259쪽)에서가져와변형했다.책에실린77개의글은과거에쓰였고글이쓰일당시보다더과거의일들에대해쓰인것도많지만,이책은결국미래의누군가를향해띄우는편지같다생각했기에.“작은것이작은것너머로이동하는마술이일어날때가있다.확실성에서불확실성이발견될때도있다.이때불확실성은불안을야기하기도하지만놀랍고도설레는모험으로이어지기도한다”(98쪽)는믿음을담았다.신랄하게비판하고단정적으로확언하지못하는사람,사실은희망하기위해비관하는사람,세가지수수께끼를화두로붙잡고죽을때까지쓰고싶다는사람,그가가만히묻는다.그쪽의풍경은환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