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백석 (김자야 산문)

내 사랑 백석 (김자야 산문)

$16.80
Description
백석, 열렬하고도 슬픈 생애에 신화가 된 사랑 이야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백석의 연인, 김자야
“하마터면 놓쳐버릴 뻔했던, 사랑을 실은 흰 당나귀의 아름다운 이야기”
시인 백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金子夜, 1916∼1999)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내 사랑 백석』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 <‘당신의 ‘자야’>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의 이야기를,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노년의 자야의 심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여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저자

김자야

본명김영한,기명김진향.자야는연인이었던시인백석이지어준아호이다.1916년서울관철동에서태어나일찍부친을여의고할머니와홀어머니슬하에서성장했다.금광을한다는친척에게속아가정이파산하자,1932년조선권번에들어가기생이되었다.한국정악계의대부였던금하하규일선생의지도를받아여창가곡,궁중무등가무의명인으로성장했다.
1935년조선어학회회원이던해관신윤국선생의후원으로일본에가서공부하던중,해관선생이투옥되자면회차귀국하여함흥에일시머물렀다.1936년함흥에서영생고보영어교사로와있던청년시인백석과사랑에빠졌다.1938년백석이함께만주로떠나자고제의했으나혼자서울로돌아왔다.같은해에<조선일보>기자로다시서울로뒤따라온백석과재회하고,청진동에서살림을차렸다.1939년백석이만주의신경으로떠나면서이별했다.
1953년중앙대학교영어영문학과를만학으로졸업했다.지은책으로스승하규일의일대기와가곡악보를채록한『선가하규일선생약전』이있다.
스승하규일명인과연인백석을추모하는사업에평생매진했다.『무소유』를읽은뒤법정스님에게시가천억대의서울성북동길상사부지를시주했고,‘길상화’라는법명을얻었다.길상사가문을연지2년만인1999년향년84세로별세했다.
숨을거두기열흘전,“천억을내놓고후회되지않느냐”는이생진시인의물음에이렇게답했다고한다.

“천억이그사람(백석)시한줄만못해.
다시태어나면나도시쓸거야.”

목차

작가의말_추억을위한변명5

1부운명

내나이열여섯에15
마누라!마누라!35
기생진향51

2부당신의‘자야’

당신만아는이름‘자야’73
‘모던보이’와북관의여인들82
‘바다’같은사람98
이별연습109
청진동연가123
나와나타샤137
삼우오三羽烏151
사랑의위기161
방황177
당신은가고……189
짝잃은외기러기201

3부흐르는세월너머

바람벽에그려보는얼굴219
시인의절규225
꿈에오신당신239
시속에당신모습이249
시전집품에안겨280
여든살의청년285
당신곁으로292

발문_아름다운인연,아름다운족적302
백석시인연보308

출판사 서평

기생복색을입고수필을발표하기까지
학업의꿈놓은적없던‘문학기생’의삶

다른사람들은모두들나를부러워하였다.특히옷입은자태가두드러진다든가,절하는맵시가일품이라든가하는이야기들을하면서나를부러워했다.그러나나는이러한말들이조금도즐겁지않았고,오직내가슴속에는어떻게하면공부를더할수있을까라는일념뿐이었다.(34쪽,‘내나이열여섯에’)

나는어떻게해서라도나의은인이신옥중의해관선생님을면회해야할것만같았다.그래서내가그렇게도싫어했던기생의복색을다시입고함흥권번으로들어갔다.왜냐하면내가기생이되어야커다란연회같은것에참석할수가있었고,또그러한기회에함흥법조계의유력한인사를만나서신선생님의특별면회를부탁할수있을것같았기때문이었다.(46쪽,‘마누라!마누라!’)

1부<운명>에서는백석을만나기직전김영한여사의성장기와기생김진향으로서의삶이펼쳐진다.어린시절불우했던집안사정,기생으로의입문,일본유학과귀국,백석과의운명적인만남까지가영화처럼펼쳐진다.1916년서울관철동에서태어나일찍부친을여의고할머니와홀어머니슬하에서성장한김영한은친척에게사기를당해집안이하루아침에거리로나앉게되었다.그녀는무너진집안을일으켜보고자열여섯의나이로조선권번에들어가기생으로입문해조선정악계의대부였던금하하규일선생문하에서여창가곡,궁중무등을배우게된다.
그런가운데그는『삼천리』지에수필을발표하여‘문학기생’으로명성을날렸다.그러다가1935년,조선어학회회원이었던해관신윤국선생의후원으로일본유학길을떠난다.그야말로주경야독으로학업을이어가던중,해관선생이투옥되었다는소식을듣고서둘러귀국하지만면회가안된다는말을듣고함흥땅에주저앉는다.1936년가을,그는궁리끝에자신이그렇게도싫어했던기생복색을입고함흥권번으로들어간다.오로지은인이던해관선생을만나기위함이었다.기생이되면큰연회같은곳에나갈수있고,그러면함흥법조계의유력한인사들을만나서해관선생님의특별면회를신청할수있으리라는절박한믿음으로다시들어선길이었다.결국해관선생은만나지못했지만,바로그곳에서,1936년함흥영생고보영어교사로와있던백석과운명적인만남을갖게된다.

그날은내가함흥권번에소속이되어함흥에서가장큰요릿집인함흥관으로나갔던바로첫날이었다.영생고보의어느교사가이임하는송별회의자리인것같았다.그자리에서나는당신과의운명적인만남을가지게되었던것이다.나는내삶의은인이신해관선생님을만나기위해타관객지에잠시와서머물고있는처지였고,당신역시서울에서그바람센함흥땅으로부임해와있는멋쟁이시인총각이었다.어쩌다우리두사람은첫눈에서로그렇게도어이없이사로잡히고말았는지.(46쪽,‘마누라!마누라!’)

말없이연거푸기울어지는술잔에용기를얻은당신은술상아래쪽에서더덤썩나의손목을잡았다.꽉잡힌내손목에는이미불꽃튀는사랑의메시지가뜨거운전류처럼화끈거리며전달이되었다.
“오늘부터당신은나의영원한마누라야.죽기전엔우리사이에이별은없어요.”
전혀예상치도못한당신의말이나의귀를놀라게하고,또의심케했다.(47쪽,‘마누라!마누라!’)

문학기생김진향의사랑과삶의연대기에는당대의상황과풍속,일본에대한인상,그리고기생개개인의일상과내면이구체적으로언급되어있다.특히,기생사회의흥망성쇠,일제하기생들의운명에관한이야기들은왜곡된인식에근거한기생상에새로운관점을제시한다.비록일제의말살정책에의해서서히몰락의길을걸었지만당시기생들은한국의전통궁중가무의개척자였다고그는힘주어말한다.일제에의해기생사회의미풍양속이깡그리압살되어버리기까지,기생사회와조선역사의명암을낱낱이지켜본그의충정어린외침이글곳곳에서터져나온다.


그동안알려지지않았던백석의인간적인면모와
백석시가발산하는애틋한정조의기원

2부<당신의‘자야’>는백석과의사랑그리고이별의기록이다.백석이지어준‘자야’라는이름에얽힌이야기,청진동시절자야를두고‘세번’이나새로결혼할수밖에없었던냉엄한신분제시대의사랑,거리에서지인이나자야의손님과마주칠때마다곤욕을치를수밖에없었던이시인과기생커플의고뇌와갈등,백석집안의극렬한반대와자야의방황,자야에게만주신경으로도망가자고제안하는백석의사랑이영화처럼펼쳐진다.

조선생이안절부절못하면서말을꺼냈다.
“참말씀드리기거북하지만,백군이지난해십이월이십사일에집을나와서그날바로두번째의장가를들었다고하는구려.그래서자기는자야에게도저히면목이없어집에를못들어가겠으니,나더러제발좀같이가달라는것이었어요.”
한마디로가소로운웃기는이야기였다.
조선생은당신의그러한모습을보고친구로서말할수없는실망감도느끼고,또한놀랍고도괘씸한마음에
“여보게!지금무슨말을하는가?같이가면괜히나까지도
혼이난다네!”
하고는겨우당신을떼어놓고,혼자달려오는길이란다.
이말에내가심히충격을받아서얼굴이핼쑥하게되자,그는나를위로해주기에여념이없다.(163쪽,‘사랑의위기’)

이들의이야기는단순한개인들의연애사를뛰어넘는다.자야가복원한그들의사랑과고뇌,갈등을통해백석과백석시에관한새로운정보를얻을수있기때문이다.“그분의시작품가운데는꽃답고영롱한두침자가고스란히살아있고,청순한순정과격렬한열정의너그러운미소가변함없이남아있습니다"(<작가의말>중에서)라는회고에서도볼수있듯이,백석의시「바다」「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이렇게외면하고」「내가생각하는것은」「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등에흐르는애틋한정조의실체는그들의애정전선을반영하는거울이기도했다.
이처럼백석에대한여러정보와인간적인면모가자야의회고에서자연스럽게드러난다.그는억양이짙은평안도말을썼는데이는시집『사슴』에그대로쓰이고있어서,자야는“이시집을읽으면꼭당신의음성을듣는것같은착각에빠진다”고한다.또매사에깔끔한성격이었던백석은육류보다는나물반찬을좋아했고,심한결벽증에남에게신세지기싫어하는한편,문학에관한화제에서만큼은눈을반짝이며이야기했다고한다.

3부<흐르는세월너머>에는백석의시를어루만지며그들의젊은시절과생사조차알길없는백석을그리워하는자야의애틋한정이고여있다.여든살의청년백석을꿈에서만났는데,백석이자꾸만허기가지다고호소하고돈을몇천원만꾸어오라고재촉하더라는대목은애절하기그지없다.더불어백석시를통해백석을그려보는살뜰한마음,백석은‘월북시인’이아니라‘재북시인’으로보아야마땅하다는것,제손으로백석의시선집을펴내겠다는신념으로동분서주하다가뜻밖에도한후배시인에의해발간된『백석시전집』을가슴에안고느꼈던감격,그리고백석의고희를맞아쓴편지등은긴세월이흘러도변색되기는커녕더욱짙고단단해지는자야의순정을그대로드러내고있다.

꿈을깨고나니비록꿈일망정시장하다고애원하던표정,돈을좀꾸어오라고재촉하던그처절하고측은한모습이눈에밟히었다.그러한당신의모습을생각하니나의마음은말할수없이애처롭고가여운연민의정이끓어올랐다.내심정은그저뒤숭숭하기만했다.
이낭군님은도대체어찌하여밤마다꿈마다나의속을불로지지는듯시달리게하는것인가.틀림없이북한에서도당신의형편이좋지않았을것이리라.
내마음은도무지진정이되지않았다.
측은한마음으로곰곰이생각해보았다.당신은아마도북한에서실제로겪은여러가지참혹한정황을내꿈에나타나서슬프게하소연한것만같았다.당신의몸과마음은운명적으로혈혈단신의삶이었다.
(163쪽,‘꿈에오신당신’)

못다한사랑위로하는마지막필생의사업
팔순노구로복원한시인백석의삶과사랑

우리가오늘날백석과자야의내밀한이야기를만날수있기까지,책의산파역을담당했던이동순시인의공을빼놓을수없다.책말미에수록된이동순시인의발문「아름다운인연,아름다운족적」을통해김자야의원고집필과완성과정을엿볼수있다.

어느날오전나는연구실로걸려온한통의전화를받았다.첫느낌에도매우단정하고기품있는할머니의음성이었다.
그녀는백석시인과가까웠던사람이라고자신을소개하며,언젠가한번만나기를청했다.나는궁금증을참지못하고곧상경하여그녀를만났다.그녀는자신을‘자야’라고불러달라고말했다.이이름은백석시인이지어준것이라는설명과더불어,그녀는백석시인과관련된자신의생애를조용히,그러나상기된표정으로말했다.
자신의흘러간20대초반,어여쁘던처녀시절에함경도함흥에서시인백석과처음만나뜨거운사랑에빠지게되었고,이후3년간서울청진동의한작은집에서혼례를치르지않은부부로서함께산적이있노라고.
나는대뜸모든내력을알아차렸다.동시에함흥시절에쓴백석시의애틋함과고뇌와갈등따위가일시에정돈된풍경으로다가왔다.내가그토록존경하고흠모하던한선배시인의풍모와직접적인체취를새삼생생하게확인할수있는기회에나는흥분의도가니로빠져버렸다.(이동순발문,「아름다운인연,아름다운족적」중에서)

이동순시인은기회가있을때마다김자야에게백석과의사연을정리해보기를강력히권했다고한다.
그도그럴것이,김자야는이미1930년대중반파인김동환이발간하던잡지『삼천리』지에수필을발표한바있었고,한때기생신분이긴했으나일본유학까지갔다온인텔리여성에다가1953년만학으로중앙대학교영어영문학과까지졸업한학구파였다.김자야가이원고에쏟아부은공력과노고는대단한것이었다.원고집필은1992년봄부터이후4년간이나쉬지않고틈틈이계속되었다.그렇게하여이동순시인은200자원고지앞뒤에종서로빽빽하니써내려간,낭군백석에대한절절한그리움의원고를받아내었다.그때김자야는이미팔순이가까운노구였다.그는이글을쓰면서때때로밤을새우기가여러번,심지어는건강에무리가왔고,이로말미암아두어차례입원하기까지했다고한다.『내사랑백석』의완성은그야말로난산(難産)이었다.
백석의시가“쓸쓸한적막을시들지않게하는맑고신선한생명의원천수”라고말하는자야는이책을낸것이일생일대의큰기쁨이라고하지만,시인백석과백석시에대한새로운단서를얻게된우리모두의기쁨이다.
이동순시인은“김자야의문체는1930년대식어법과문형을고스란히유지하고있었다.지금은사라지고없는당시의진기한어휘나고전적문투등의이채로운언어습관을그대로지니고있다”며이책의또다른묘미를짚어준다.

책의종장에서자야는노구를이끌고백석과함께살던청진동집앞으로간다.추억마저희미해져가는두사람의옛집을되짚어가다가문득터져나오는자야의슬픔이가슴을저미게한다.

정신을수습하고본즉,그곳은이미거대한변화의물결속에서오랜세월의먼지를뒤집어쓰고사라진옛기억을상기시켜줄뿐이었다.어디선가오래된건물을허물고빌딩을짓는요란한소리가들려오고있었다.
허름한싸구려보신탕집이왼편옆모퉁이에을씨년스럽게붙어있었고,굳게잠긴대문은열리지않았다.그곳은개발지구로서머지않아지금의윤곽마저아주사라져버릴운명에놓여있었다.(…)
쓸쓸히돌아서는무거운발길.나오다가멈추어돌아보고,또한참을걸어나오다간다시뒤돌아다본다.당신이그토록사랑했던,그그립던우리들옛사랑의맞춤의둥지가갑자기곧두사람이함께묻혀버린황막한무덤으로보였다.나는그착각이한없이서러웠다.
그토록많은세월은모두흘러서지금쯤어디를가고있는지?당신은지금어디서무얼하고계시고,나는왜여기서이옛추억의골목을혼자헤매고있는것일까?
이허망한내가슴속을그어떤말로도나는표현할길이없다.가눌수없는상실감과허탈감으로털퍼덕그자리에주저앉아금방이라도터져나올것같은오열을나는겨우겨우억눌러참았다.(300~301쪽,‘당신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