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윤제림 시집)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윤제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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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의 평범한 얼굴에 새겨진
비범한 단단함, 그 떳떳한 슬픔
―윤제림 일곱 번째 시집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윤제림 시인이 『새의 얼굴』 이후 6년 만에 찾아왔다. 63편의 시가 담긴,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인간다움에 대하여, 상생(相生)에 대하여, 그것을 담을 언어에 대하여 30년 넘게 천착해온 그. 눈에는 눈물방울이 살짝 맺혀 있고, 입가엔 미소가 흐르는 듯한 표정의 윤제림 시 화자들은 이번 시집에서도 인간사 세상사의 틈바구니를 진중히 들여다본다.
저자

윤제림

충북제천에서나고인천에서자랐다.1987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받으며문단에나왔다.시집으로『삼천리호자전거』『미미의집』『황천반점』『사랑을놓치다』『그는걸어서온다』『새의얼굴』,동시집『거북이는오늘도지각이다』등이있다.현재서울예술대학교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바위에시도썼을것이다
다음번에는/꽃/새벽산/설희/억새-금강의가을/이명(耳鳴)/행성입문(行星入門)/면민회(面民會)/시의기원/오래된가을날/겨울강을지날때는조용히/달은즈믄사람에/수태고지/일행/제주풍경

2부배고프면먹고졸리면자는것
가난타령-명창김연수를생각함/가위-효봉약전/윤용하,당신생각/저(猪)씨문중에보내는사과서한/전원교향곡/좋은친구들/오래오래학생이신,-육주홍기삼선생님고희에/타격왕/현암사-강우식시집『사행시초(四行詩抄)』/만공약전/자화상/아름다움에대하여/1972년,발행인이병철,삼성문화문고-,조선불교유신론/님의침묵/길떠나는가족-이중섭그림/벌꿀비누3000번/박녹주를듣는밤/방산몽유록(芳山夢遊錄)/설산위의남산코끼리에게-산악인박영석을보내는노래

3부불온한생각도아직은더러있는데
나쁜상상/바다엔불공정거래가많다/그날/슬픈날의제화공/그때에저것들이/홍어를먹다가/화물의종류에대하여/거의격추되고,겨우몇대만/잠만잘사람/장편(掌篇)/나는악당이다/근황/푸른꽃/매미는올해도연습만하다갔구나/설렁탕집에서/용산역앞에서

4부나만못본게아니라아무도못봤다
마리아와카타리나는쌍둥이처럼닮았다/봄은길게눕는다/우주의관객/식인사건피의자에대한검사의구형/피리는치마속에들었네/할미꽃/그럴수도있겠다/신동/절받으시오,젊은이/한남자와두여자/이발소앞을지나며/권학문(勸學文)/이산/화장(火葬)

해설|떳떳한슬픔의얼굴
송종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사람으로최상의배역을맡은사람들은
배고프면먹고
졸리면잔다
_「저(猪)씨문중에보내는사과서한」에서

생의윤리나진실혹은비의에복잡한수식도,화려한미사여구도사실은불필요한지모른다.윤제림시에는군더더기없는묘사와진술만으로오랜시력(詩歷)의은근한힘이드러나고,우리는그가부러비워둔침묵의자리마다에서가만히멈추어보아도좋을것이다.

비슷하게한세상살아온사람들이
비슷비슷뜨고붓고눋고타고
그을린얼굴로
솔밭에차일을치고막걸리여러말받아놓고

오래전에이고살던
구름의안색과하늘낯의인상을
대조하며
서로의잔을채우고있었다

넘치게
_「면민회(面民會)」전문

“뜨고붓고눋고타고”네어절로요약되는“이고살던”삶의굴곡들.서로의그것을아는‘면민회’이기에서로의잔을넘치게채워도좋은것이리라.내삶을네가,네삶을내가알아주는일.그것이결국너와나를‘계속살아감’으로이끄는일이라는것을아는시인이기때문일것이다,이번시집곳곳에서눈물흘리는이를마주하게되는것은.그시들이유독빛나는것은.

슬퍼서,

온종일
구두한켤레도완성하지못하고
울기만하는
동료곁에서

눈물쯤은그냥흐르게놔두고
바늘끝에떨어지게내버려두고
콧물이나가끔
토시낀소매로훔치며
결국은
오늘의구두를다짓고있는사람
_「슬픈날의제화공」에서

말이끝나기무섭게운다짐승처럼운다
17호실에……가면
울지않으려고
백주대로에서통곡을한다

이광경을
김종삼시인이물끄러미바라보고있었다
길을건너려다말고
_「장편(掌篇)」에서

저것은,

두보가강변주막에다
조복(朝服)을저당잡히고
아침부터취해울던날에

그의술잔속을들락거리던허연수염이거나,
거기매달려흔들리던
그무엇이다

그것이,지금

짜장면을먹다가느닷없이엉엉울기에
왜우느냐했더니
“단무지가너무맛있어서”라고하고는
다시또울더라는이고장시인
박용래처럼

내앞에서
울고있다
_「억새―금강의가을」전문

우는사람과그를바라보는사람.슬픔의이유를쉽게묻지않고또쉽게연민하거나이해했다말하지않는자세는윤제림시에한결같이흐르는정서이기도하다.두보나박용래,김종삼,강우식등과같은시인이나화가이중섭,효봉스님,명창김연수,산악인박영석실존인물을호명하고기리는것역시지난시집과맥이통한다.실존했던이의삶이소재가되었을때생기는또렷하고구체적인감정과감각들이그에게중요했으리라.“이땅의시는이땅의굴곡진역사만큼개개인의삶에작용한압력과그로인한고통과슬픔을기록했다.이기록에깊음이없다고말할수없지만,윤제림시의깊이는좀다른데서출현한다.가령,우리의평범한얼굴에새겨진,비범한단단함같은것.”(문학평론가송종원,해설에서)

불온한생각도아직은더러있는데
꺼내놓을용기가없다,
대부분옛사람옛글이시키는대로
다소곳이
상부의명령과지시에
고분고분

고향에보내는편지에는그냥
잘지낸다고쓴다
_「근황」전문

떠나보내는이들이점점많아지고,시인은자신이선자리를,자신의쓸모를돌아본다.“또벌레가되더라도책벌레는되고싶지않”으며,“무당벌레나자벌레만되어도당신을위해/할일이있을것같”다고(「다음번에는」).모종의허허로움을품은시인에게지난시간들은어떤의미가되었을지.다가올시간은또그에게어떻게새겨질지.뭉근한화롯불처럼지긋이타오를그의시세계가,어디로어떻게이어갈지또한기대하며기다리지않을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