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고 여자이고 퀴어인 이르사 데일리워드에게,
너는 틀렸다고 말하는 “끔찍한 것”들은 어디에나 있다.
『테러블』은 트라우마의 치유, 새로운 자서전의 가능성,
우리가 삶을 글로 옮기는 또하나의 이유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드는 시적 자서전. _파리 리뷰
네가 어디에 있든 그것이 무엇이든, 그 끔찍한 것은 너를 움켜쥐려 하고 가끔은 길을 걷던 너를 자빠뜨려서 그대로 땅속으로 보내버리려 한다. 그 끔찍한 것은 먹이가 필요하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인생을 통째로 먹어치운다. 어쩌면 그것은 네 친구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끔찍한 것은 네 심장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끔찍한 것은 어쨌든, 너를 사랑하는 걸까? _본문 중에서
젊은-흑인-여성-LGBTQ-시인이자 활동가, 모델, 배우로서 전방위적 활동을 펼쳐가는 이르사 데일리워드의 시집이자 에세이. 종교에 심취한 조부모 밑에서 보낸 억압된 어린 시절, 싱글맘 어머니와의 복잡한 관계, 이부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 술과 마약에 빠져 스스로를 갉아먹던 나날들, 자신을 포함한 주변 모든 여성들의 처지, 사랑했고 사랑하는 연인들, 지독한 자기혐오 등 『뼈』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던 행간의 사연들이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하나씩 꺼내져 열린다. 『뼈』에 비해 한층 밀도 있는 서사를 갖추면서도, 풍부한 시적 언어와 형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시집으로서도, 에세이로서도 완벽하게 기능한다.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캡틴 마블〉의 주인공 브리 라슨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테러블』 속의 구절 “삶은 우리 안감 솔기에 숨어 있나? 우리가 삶을 뒤집어 입고 있는 걸까(Is life hidden in the lining of our seams? Are we wearing it inside out)?”를 업로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의 삶에 더욱 깊이 침투해가는, 끔찍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휘젓기에 충분하다. 2019년 펜/애컬리상 수상작.
거울 속 검은 이방인, 그 끔찍한 형상
“우리가 흑인이라서 그런 거야?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세상은 흑인들을 싫어한대.”
“아니야. 왜냐면 교회 사람들은 갈색인데도 다 엄마가 있잖아. 그리고 엄마도 갈색인걸!”
“할아버지는 우리가 검대. 갈색이 아니라.”
“숯이 검은 거야. 밤과 사악한 것들이 검은 거야. 갈색이 훨씬 더 좋게 들리잖아, 리틀 루. 갈색이라고 해.”
_본문 중에서
어른들은 언제 어디서나 웃으면서 끔찍한 말들을 한다. 나는 아담함을 원했다. 자그맣고 싶었다. 작은 손과 발을 갖고 성장통도 없고 성난 사자 꿈도 없고 가슴은 절대 없고 싶었다. 여덟 살 생일에 다른 애들과 똑같이 생기게 해달라고 간절히 소원을 빌었는데 벌써 아홉 살이 된 지금도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_본문 중에서
이르사 데일리워드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했고 그녀의 몸 어디선가 이르사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남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버렸다. 데일리워드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오빠와 남동생도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오빠의 아버지도, 남동생의 아버지도 아닌 남자를 “아빠”라 부르며 자랐다. 그 남자는 어린 그녀의 잠옷 속을 훔쳐보았고 화가 나면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혼자서 아이들의 양육비를 부담해야 했던 어머니는 매일매일 야간근무를 했다. 그래서 데일리워드와 남동생 리틀 루는 독실한 예수재림교 신자인 조부모와 함께 지내야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린 데일리워드에게 ‘조신하고 독실한 소녀’가 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쁜 소녀’이고 싶었다. TV 속 새하얀 얼굴에 금발 머리칼을 휘날리는 그녀들처럼, 예쁘고 싶었다. 그러면 어머니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도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주변의 어른들이, 학교의 친구들이 더이상 그녀를 ‘검은 이방인’으로 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외롭고 불행한 이유가 어쩌면 피부색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하느님이 검은 것들은 악한 것이라 돌봐주시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했다.
십대가 된 데일리워드는 방황했다. 술과 마약은 일상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를 만나고 다녔고 그들에게 돈을 받기도 하고 일자리를 약속받기도 했다. 과거와 다른 삶, 더 나은 삶을 찾아, 달라진 자기 자신을 찾아 집 밖을 떠돌았다. 그런데 언제나 ‘저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를 ‘섹스’로만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에, 흑인 여성들은 헤프고 까졌다는 세상의 편견에 몸을 맞췄다. 점점 더 가라앉았다. 더이상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끔찍한 형상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에 겪은 학대와 성폭력, 학교에서의 따돌림의 기억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모델 일을 시작하고 마주친 세상의 편견은 그녀의 숨을 조였다. 우울증과 자기혐오는 더이상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이 잘못된 존재, 틀려먹은 존재라는 생각이, 과거의 트라우마와 생의 아이러니에 잠긴 자신의 몸은 끔찍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나쁜 일들을 남몰래 예감하고, 어머니는 점점 야위어가다, 멀리 떨어진 어느 호스피스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가슴 아프고 충격적인 사연들은 간결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언어로 다시 태어나, 우리의 “두 손을 붙들고 목을 휘감”으며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더 많은 사랑이 있을 것이다,”
하늘이 말한다.
“더 많은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난다. 술에 취해 들어간 어느 바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사람들이 모여 글을 읽고 있었다. ‘시 낭독회’였다. 그녀는 홀린 듯 낭독회에 참여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울 속 검은 형상을, ‘끔찍한 나’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고통스런 현실에 ‘평행우주’와 ‘다른 차원의 삶’을 꿈꿨던 어린 시절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딸에게 던져선 안 될 시선을 던지는 연인을 모른척하던 어머니에 대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아가던 시간에 대해,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주었던 연인의 청혼을 끝내 거절해버린 내면의 공허에 대해, 자살시도까지 한 동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못난 자신에 대해, 언제나 유령처럼 자신을 따라오던 그 ‘끔찍한 것’에 대해.
그리고 이르사 데일리워드는 이렇게 말한다. “더 많은 사랑이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세상에게, 상처받은 모든 영혼에게. 아이러니와 트라우마와 편견에 치이고 세상의 사랑에 굶주렸던 그녀가 먼저 사랑을 외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뼈와 내장을 꺼내 보이면서, 우리 함께 더 많은 사랑을 꿈꾸자고 외친다. 『테러블』은 풍부한 시어와 형식의 미를 단단히 갖춘 시집이자, 이르사 데일리워드의 삶이 흥건히 녹아든 자서전이다. 인생이 저무는 시점에 쓴 자서전이 아니라 시작되는 시점에서 쓴 자서전이고, 잘산 인생에 보내는 박수갈채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을 기념하는 축포이다.
네가 잘못했다고, 너는 틀려먹은 존재라고 말하는 “끔찍한 것”들은 흑인이고 여자이고 퀴어인 이르사 데일리워드에게도, 과거에 갇힌 우리, 자기혐오와 우울의 늪에 빠진 우리, 세상의 문턱 앞에 좌절한 우리, 자책하는 우리,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우리에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쓰고, 또 나눠야 한다, 『테러블』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