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생과 사의 경계, 중환자실 간호사로 산다는 것)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생과 사의 경계, 중환자실 간호사로 산다는 것)

$15.50
Description
누군가의 슬픔과 죽음 앞에 부디 무뎌지지 않기를,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하는 책

중환자실의 ‘민폐덩어리’가 ‘터널의 불빛’이 되기까지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만난 사람들

“넌 중환자실에서 뭐가 가장 힘들어? 난 한 공간 안에 갇혀 있는 거. 감옥 같아.”
“선생님, 전 사람 죽는 게 가장 힘들어요. 죽는 걸 지켜보는 것도 힘들고, 죽은 사람 정리하는 것도 힘들고. 근무 끝나고 집에 가서 잠이 들면 꿈속에서 그 장면이 반복돼요. 그래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아요.”
(‘애증의 관계’, 20쪽)

의식 없는 환자들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고, 24시간짜리 투석기가 여기저기서 돌아가는 곳. 기계의 알람음과 경고등이 수시로 울려대는 중환자실에서는 사소한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처음 하는 일이어도 실수 없이 척척 해내야 하고, 걷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환자들의 요구사항을 눈치껏 빠르게 해결해줘야 한다. 이 책은 바쁘고 예민한 선배들 사이에서, 위태로운 환자들 앞에서 능숙하게 대처할 줄 모르는 스스로를 진로방해만 하는 ‘민폐덩어리’라 생각했던 중환자실 신규 간호사의 기록이다. 여느 신입사원이 그렇듯 실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들어섰지만 눈에 거슬리거나 튀는 행동은 절대 금물이었다. 중환자실이 무서운 건 신규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은 원래 지병을 가지고 있다가 오는 사람도 있고 갑작스럽게 오게 된 사람들도 있다. 특히 중환자실은 갑작스럽게 오는 경우가 많다. 중환자실에 누워 보호자와도 같이 있지 못하고, 사회와 단절된 채 침대 밑으로는 전혀 내려오지 못하니 참 답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최전방에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일 것이다. 어쩌면 의료진의 역할이란 어두운 터널에서 불빛 하나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어두운 하늘에 달과 별이 빛을 내 어둠을 밝혀주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깜깜한 곳에서 손전등을 켜고 같이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암흑’, 235쪽)

책 속에는 저자가 중환자실에서 만난 다양한 환자들이 등장한다.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구조됐으나 정신이 들자마자 “나 좀 죽여줘, 제발 부탁이야”라며 간곡히 부탁하는 환자, 잘 적응한 듯 보였는데 면회시간에 “여보, 나 여기 무서워……”라며 아내를 붙잡는 환자, 개인물품은 소지할 수 없는 중환자실에서 “너네 내 카드로 삼겹살 회식하고 온 거 다 알아!”라고 고함지르는 환자, 이불 안에서 몰래 인절미를 먹다가 입 주위에 가루를 가득 묻혀 들켜버린 환자. 책장을 넘기다보면 차가움과 따뜻함을 넘나드는 중환자실의 온도가 그대로 전해진다. 특히, 의식이 있는지 체크하는 간호사에게 “내가 여기에 죽어 있는 거야, 살아 있는 거야?”라고 묻는 환자는 중환자실이 어떤 곳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

이라윤

대학병원중환자실간호사.
처음부터간호사의꿈을키운건아니다.부모님의병환으로독립할방법을고민하다간호학과를전공으로택했고,졸업후실습한번못해본중환자실에서덜컥일하게되었다.‘관계자외출입금지’가적힌좁은공간에투입되어엄격한선생님들과함께의식없는환자들을마주해야했다.
‘여기서얼마나버틸수있을까’생각하다어느덧5년차간호사가되었다.시도때도없이찾아오는‘골든아워’를놓치지않기위해퇴근하고도졸린눈을비비며공부하는날들이많다.생명이다해가는환자앞에서몇시간이라도벌기위해,보호자가마음의준비를하고마지막인사를할수있는몇분이라도벌기위해오늘도뛰어다니고있다.

목차

프롤로그_불완전한내가아픈당신에게6

1부무너지지말고

애증의관계11
백의의천사이기전에,저희도사람입니다22
척척박사,원더우먼30
Zeroing37
민폐덩어리43
당신은괜찮은가요?48
기꺼이상처받을것56
적절한타이밍63
신의영역69
여보,나여기무서워75
잠못드는밤81
페르소나89
마지막인사96
나좀죽여줘102
건방진신규간호사109
의사와간호사사이116
절벽122
콩쥐간호사127
할아버지,왜이렇게왔어!133
용기138
한번쯤그만두고싶을때144
사이렌149

2부무뎌지지도말고

무뎌진듯해도무뎌지지않는157
삶과죽음의공존162
간호사의온도167
울어줘서고마워174
누군가에게인생의전부179
당신은뭐때문에살아?185
내가여기에죽어있는거야?살아있는거야?191
난일단해보고후회할래195
RightNow199
익숙함속의소중함203
매일뜨는해207
지금까지그렇게해왔어214
소수220
간격224
가장많은시간을갖기위해오늘도달립니다229
암흑233
거기누구없어요?236
인절미먹고가243
꽃한송이248
내가버티는힘251

에필로그_미워한다,사랑한다257

출판사 서평

태움,간호사장기자랑,의사와의갈등,병원의지나친서비스업화……
신규간호사눈으로본간호업계의민감한문제들

수술실에서일하던후배가두달도못버티고나가면서했던말이있다.수술실은감염위험성을낮추기위해수술실의온도를낮게해두는데,너무추워서카디건을입고싶어도경력이낮으면입을수없다고했다.추워서카디건을입는데도경력이필요한것인가?(‘건방진신규간호사’,114쪽)

왜해외간호사에관련된책만쏟아질까?한국에서는인정받으며일하지못하고궁지로몰리는탓에간호사들이해외로가는건아닐까?이렇게해외로한명두명가다보면한국의병원은누가지키게될까?머지않아독일같은나라처럼문화나말이통하지않는간호사들에게간호받게되는날이오지않을까?(‘콩쥐간호사’,131쪽)

간호업계는하루도조용할날이없다.‘영혼이재가될때까지태운다’는태움문제부터신규간호사들에게장기자랑을강요하는악습,환자와보호자를‘손님’대하듯서비스경쟁을우선시하는병원분위기,의사에게집중된권한으로발생하는문제등꾸준히논의되는간호업계의이슈들이저자의시선을통해구체적으로언급된다.환자의중증도가높은중환자실에서는저마다신경이날카롭다보니그로인한태움과폭언,민원사건들이끊이지않는다.또한병원은간호사뿐만아니라많은사람들이팀을이루어일하는곳이지만,대부분의잔업들이간호사에게만집중되는경향이있는데이를두고저자는‘콩쥐간호사’라표현한다.

하루가끝나면잘못한일을확실히반성하고자책한다음,두려움을제로잉한다.제로베이스로만드는것이다.불필요한감정들을0으로만들기위해서.행여혼이날까일어나지도않은일들을무서워하거나,해야할일을못하는것을두려워하기로했다.두려워하는것을두려워하기로했다.(‘Zeroing’,42쪽)

좀처럼바뀌지않을것같은임상앞에서그만두거나그냥견디거나,두가지길만이있는듯보이는현실은절망스럽다.하나둘떠나는동기와선배들을지켜보면서계속병원에남아간호사로일한다는건어떤의미일까?이라윤간호사는자기만의답을조금씩찾아가며성장하는중이다.첫째로,부당함을직면하고목소리를낼것.건방지다는말을들을지라도문제를개선하기위해작지만필요한목소리를내보는것이다.둘째로,하루하루의제로잉(zeroing).그날있었던일들을찬찬히되돌아본후반성할것은반성하고다시0에서부터담담하게시작한다.살기위해서는,적어도이일을계속하기위해서는무뎌져야했기때문이다.


죽음의최전방에서시작한사회생활
생업을대하는90년대생‘간호초년생’의속마음

“아니,왜석션을제대로못해?”
“선생님,석션하는게무서워요.갑자기심장이멈춰버릴까봐……”
“이정도가지고무서워하면중환자실에서일어떻게할래?”(‘애증의관계’,14쪽)

2018년12월기준간호사평균연령은28.7세,전체활동간호사의76.4%는20대,평균재직기간은6.2년이다.입사시기는빠르지만근속연수는매우낮은편이다.경력자가버티지못하고나간자리를신규간호사로만채우는분위기도존재한다.누구나경력이쌓이기전에신규시절을거친다.경험을쌓고요령을터득해나가는과정에서시행착오를겪는건당연하지만,유독간호사에게는그시기가혹독하다.작은실수하나로도환자상태에큰영향을줄수있다는압박감에서자유로울수없는탓이다.저자는한국간호사평균나이에이책을썼다.지금도많은간호사들이혹독한신규시절을견디지못해업계를떠나고있고,그역시한해에만스무명이넘는간호사들의떠나는뒷모습을봐야했다.

‘사회생활5년차’.경력이아주많다곤할수없지만일을막시작한단계도아니다.이제손으로는제법능숙하게루틴일을다루면서도머릿속으로는이직을하느냐,이민을가느냐,업계를떠나느냐깊이고민하게되는시기다.그는지난신규시절을돌아보며간호사라는직업을미워하기만했다면이렇게기록을남기지못했을거라고고백한다.하루하루다양한사연이있는새로운사람들을만나새로운상황을겪는만큼자신의새로운면을계속발견하게되는소득이있다고말한다.이일이도저히감당하기벅차다고느껴지면언제든지떠날수있다는마음으로,하지만다른것에휩쓸리듯떠나지는않겠다는나름의다짐으로마음의중심을잡는다.내일도반복될‘애증’의출근길앞에서스스로에게,또저마다의길을치열하게걷고있을이들에게몸으로터득한위로의메시지를전하는책이다.
누군가의슬픔과죽음앞에부디무뎌지지않기를,그럼에도무너지지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