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진수미 시집)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진수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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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97년 제1회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장해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언어, 더없이 낯선 표정을 안겨준 시인 진수미의 첫 시집을 다시 펴낸다. 등단 후 8년에 걸쳐 쌓아올린 이 시집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는 매순간 스스로를 전복하고 다시 눈뜨는 부단함,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치열함으로 피워올린 세계다. 고유의 언어, 여성의 ‘몸’으로 부딪쳐오는 그의 시들은 “상투적 기호를 전복시키는 거꾸로 비치는 거울”(김용희)이 되어, 우리에게 은폐되었던 뒷면의 세계, ‘달의 코르크 마개’를 열어줄 것이다.
저자

진수미

1997년『문학동네』신인문학상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달의코르크마개가열릴때까지』『밤의분명한사실들』,연구서로『시와회화의현대적만남』,미술평론서로『연대의포에틱스』(공저)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개정판시인의말

제1부
시실/무성만화상연기/그러다가어느날/테레사학경차를위한받아쓰기예제/냉장고소년/아비뇽의처녀들

제2부
…………………………………./월말의출납계창구/자정의젖은십자로/수리공/판결/인간이모자를만든다/낙장불입/폭식과광기의나날/내마음의풍차/컵슬리브

제3부
처용단가/그물고양이/머리스무개달린길조/거대한오프너/비만한부인/라라라나는/다리밑의아이들/의자/이식제/유랑극단/세월/가스등

제4부
길위에길을업고/바기날플라워/그해오월의짧은그림자/미장하는여자/하학길/리어왕/구름의공회전/좌(坐)한생각이앉은꽃이되고/열등생/봄노래/다시,폭식과광기의나날/봄,뇌경색/선짓빛우물

출판사 서평

■문학동네포에지를시작하며

“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문학동네복간시집시리즈문학동네포에지를시작하며

1.
2020년11월문학동네복간시집시리즈인문학동네포에지를시작합니다.1차분열권을우선으로선보입니다.문학동네는일찌감치이작업을시도한바있습니다.1996년11월‘포에지2000’시리즈의펴냄아래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그명맥을이어나가던바있습니다.“예민한감성과날카로운직관으로시대의혼돈과상처를노래했던젊은영혼의생생한울림이담긴추억의명시들을독자앞에다시금제시함으로써빛나는시의정수를확인하고자”하려함이라는취지의글이떠오르는데,그때로부터근24년이흘렀습니다.그정신은온전히두고그매무새를새로이다지는과정가운데문학동네포에지의첫행보를내딛기까지시간이오래좀더디걸린것도사실입니다.“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현시되는장을여는일이되기도할것”이다,우리스스로선언한책임과의무의말이실은얼마나큰무게인지모르지않은까닭입니다.시라는무한과시집이라는열림을끌어안으려는데있어한껏오므라들었다힘껏펼칠줄아는시리즈라는줄자,이를가능케하는힘은아무려나사랑에있음을이제는깨닫고온전히그순정에기대어용기를낼수도있게되었습니다.

2.
문학동네의신간시집시리즈인문학동네시인선이어느덧150번째시집을눈앞에두고있는가운데출범하게된문학동네의구간시집시리즈인문학동네포에지는복간의기저를비단문학동네에적을두었던시집만을필두로하지않는다는점을특징으로합니다.반드시는아니더라도이왕이면읽어둬도참좋으련만,이런저런사정으로오랜시간서점에서찾아보기힘들었던시집들이우리에게는꽤있었습니다.문학동네포에지는시간을거슬러찬찬히행하는시로의이뒤로걷기를통해파묻혀있을수밖에없었던시집을발굴하고,숨어있기좋았던시집을골라내며,책장밖으로떨어져있던시집을집어서가에다시꽂는일을게을리하지않음으로써한국시사를관통함에있어필요충분조건이되는시의독본들을여러분들에게친절히제공해드릴참입니다.출발의본거지는제각각달랐으나도착의안식처는모두한데로,문학동네포에지안에서유연성다해섞이고개연성있게엮인가운데한차에열권씩펼쳐질시의병풍은저마다다양한개성으로저마다독특한양식으로저마다특별한사유로시리즈라는줄자에서보다큼지막한테두리로우리를시라는리듬속에재미속에미침속에한껏춤추게할것입니다.특히나귀하디귀하다싶은것이시인들의첫시집임을알아그최전방에첫시집들을앞서배치한것인데김언희,김사인,이수명,성석제,성미정,함민복,진수미,박정대,유형진,박상수시인에이어출간될2차분역시김옥영,이문재,염명순,안도현,정은숙,조연호,김민정,최갑수,이영주,이현승시인의첫시집임에,복간에있어첫시집을앞서염두에둔다는원칙역시말씀드리는바입니다.

3.
문학동네포에지는문학동네시인선과책사이즈가같습니다.세상의시계와는완연히다른시의시간속에이두시리즈가맘껏뒤섞이는난장속에시집시리즈의건강함을기대하였고,맘껏뒤섞이는자연속에시집시리즈의무구함을기약한것도애초의기획의도중하나이기도했습니다.표지디자인의중심을컬러에놓은것도둘의공통점입니다.문학동네시인선이핀꽃이거나필꽃이라할때문학동네포에지는꽃이있다떨어진꽃자리이거나꽃없이진꽃을기억하는등산로앞의자라할적에그컬러의생겨먹음이필시달라야할것이라는짐작이내내따라붙었습니다.힘을빼고또뺐습니다.등을펴고또폈습니다.그렇게비우고그렇게꼿꼿해지는과정속에문학동네포에지는파스텔톤의열가지컬러와마주하게되었습니다.해설이따로실리지않는시집시리즈,추천사도따로박히지않는시집시리즈,시인의약력과시인의자서와시인의시로만꿰는시집시리즈,시인의시가운데미리보기로어떠한가싶어고른한편의시를책뒷면에새기는일로시집의단장을마치고시집의장단을맞춘시집시리즈,이에는색보다는물의수위가높아야한다는결론에이르게되었습니다.앞으로한차에열권씩출간하려는작정은예의과정에서비롯한작정이기도합니다.

4.
구석구석모자람도클것입니다.걸음마에넘어짐은자석근처의철심같은것,하여많은분들이넘어질적마다넘어졌구나가리키시고가르쳐주셔야오랫동안지치지않고씩씩하게걸어나갈수있음을압니다.모쪼록새롭게시작하는문학동네포에지를더도말고덜도말고그저사랑으로지켜봐주시면여한이없을성싶습니다.“사랑이란죽은이도거의소생시킬수있는것”이란에밀리디킨슨의시에힘입어“사랑이란죽은시집도거의소생시킬수있는것”이란우리만의변주로그이가부추긴‘사랑의함대’를비유삼아오늘이렇게문학동네포에지라는배를물위에띄워보는바입니다.

■편집자의책소개

1997년제1회문학동네신인상으로등장해우리에게완전히새로운언어,더없이낯선표정을안겨준시인진수미의첫시집을다시펴낸다.등단후8년에걸쳐쌓아올린이시집『달의코르크마개가열릴때까지』는매순간스스로를전복하고눈뜨는부단함,무엇에도기대지않는치열함으로피워올린세계다.고유의언어,여성의‘몸’으로부딪쳐오는그의시들은“상투적기호를전복시키는거꾸로비치는거울”(김용희)이되어,우리에게은폐되었던뒷면의세계,‘달의코르크마개’를열어보인다.

내가건져올리는
됫박은항상핏빛이었다

시인이열어낸문,달의어둡고깊은구멍너머에는꿈의노랫말대신핏빛비명이출렁인다.들어선입구는“시체공시소”(「시실」).여기저기“시든머리통이쓰레기통에꽂혀있”으며(「테레사학경차를위한받아쓰기예제」)거리에선개들이몰려와“당신의장기를물어뜯”는다(「그러다가어느날」).
달아난끝에우리는간신히인어무리를만나지만,돌아보면바닷속신비의왕국이아니라“잡균이득시글거리는물안”,“차가운생선의/눈알이유리를쪼고있”는“배수구”다.필사적으로매달려봐도“결코따라잡을수없”을그녀들은이내“비웃듯물방울로흩어”진다(「자정의젖은십자로」).
이불온한이야기는도대체우리를어디로이끄는걸까.언젠가인어들을다시만났을때,그것은이미“식기세척기안”이거나“머리가스무개달린구운생선”이놓인접시위에서다(「머리스무개달린길조」).아름다운환상의자리를피흘리는환영들이대신하는세계.
이국의언어,외래의기호로마저보이는이시집을기성의독법으로읽어나가기는쉽지않다.인어의노래는애초부터‘지워진목소리’였던탓이다.“행간마다적재된비명들이뛰쳐나오고젖은발부터녹아흐르”는데“아무도깨닫지못”하는(「테레사학경차를위한받아쓰기예제」)이세상은심지어비명마저새어나올수없도록“벌린입아귀에/주먹대신나무둥치를쑤셔넣는다.”(「………………………………….」)
필사적으로목청을높여보지만누구에게도들리지않는공포.“홀로방생을꿈꾸”는“생선한토막”이되는참극(「열등생」).인어로분한여성에게서목소리를빼앗는일은기어이인간이라는반쪽,‘나’의존재조차지워버리는폭력이다.

인간이모자를만든다.
미켈란젤로도만들고
케테콜비츠도만들었다.

누구도쓸수없는모자다.
쓰면
‘내’가사라진다했다.
아무도사라지지않는다.

─「인간이모자를만든다」부분

빼앗긴것이목소리라면잃어버린것은눈이겠다.시인-여성은볼수없는자,“텅빈동공”(「유랑극단」)“날때부터눈동자를갖지못”한존재다.보는행위,주체의시선을빼앗긴그녀에게“본다는것은견딘다는것”(「봄,뇌경색」)이고,시선이라는감옥,눈의폭력속에내던져지는일이다.「아비뇽의처녀들」은거울앞에서“결코눈을떠서는안”된다고,스스로를욕조속에,“거울을에워싼수증기”속에가두고만다.
입을틀어막고눈알을뽑아버리는이부조리한가학의세계.진수미의시속여성의비명이더욱잔혹하고고통스러운것은,이것이호소나구조요청이아닌,끝끝내스스로를틀어막고버텨보려는악물음,‘내향성의분노’인탓이다.이승하의시에서‘폭력과광기’였던것이진수미에게서“폭식과광기”가될때,외부의‘폭력’은시인의안으로들어와제몸을무너뜨리는자학,‘폭식’이된다(「폭식과광기의나날」).끝을알수없는인내란결국고통을내면화해버리는일.분노는시인의육신을고통의자양분으로삼아버린다.
진수미의시가유독매섭고섬뜩한것은이것이흉내낸상처가아니라체험된고통인까닭이다.시인의삶에따라붙은원인불명의통증속에서,죽음은상상이나비유가아니라실재하는감각이다.시속에서그녀스스로여성시의핏줄을밝히고있더라도,이고통은물려받은불안이아니라직면한공포다.

환상과나를엮는고리는언제나모호하죠
감탄부호를앞지르는그녀들

진수미의언어가낯설게느껴지는것은그로테스크한이미지들때문만은아니다.그풍경을담아내는기호또한조각나고뒤집혀있는까닭이다.“크어억─ㅋ”(「낙장불입」)쪼개지고“좌(坐)한생각”이“와(臥)한생각”(「좌(坐)한생각이앉은꽃이되고」)으로비틀리며“차가운생선의/눈알이유리를쪼고있”(「자정의젖은십자로」)는뒤집힌세계.시가말에서소리를뜯어내고이미지에서의미를벗겨놓을때,우리는지금‘발굴중’인달의내부,거대한지진이시작되려는조짐속에서있다.

시든머리통이쓰레기통에꽂혀있다마침표괄호열고고막들이토악질을시작한다닫는괄호부러진손목은흐늘거리며네경악을만류하는듯하였다마침표장딴지가최후의경련을수용하는순간쉼표외침은찬란한살의문턱에서서괄호를열고이난은기재하지마시오괄호닫기한밤에는시각장애인용음향신호기가이십이분에한번씩작동된다마침표비상구로통하는층계참에서나비의허물을헤아리며나는어디로왔지

─「테레사학경차를위한받아쓰기예제」부분

진수미는빼앗긴목소리를되찾는대신전혀새로운언어의발명을택한다.비명도노래도없이,입없이말하기위해시인은‘몸’으로쓴다.몸으로쓴언어이니몸으로읽어냄이옳겠다.그녀의시를두고‘감각적인언어’라쉬이말하기마뜩잖은것은,이것이언어의틀을빌린감각그자체인까닭이다.
“여름학기/여성학종강한뒤,”“화장실바닥에/거울놓고/양다리활짝열”어본그녀는자신의몸에서“꽃잎”을,“아랫배깊숙이/구근한덩이”를본다.“철따라/점점이피꽃게우”는이뿌리.시인은마침내“나/물오른/한줄기꽃대였다네”,깨닫는것이다(「바기날플라워」).자신의몸을짓누르던고통의힘,그압력으로솟구쳐오르는핏빛꽃.
「바기날플라워」는꽃이라불리기를거부하며스스로피워보이는꽃이다.제몸이라는구근으로,제가세운꽃대로온생애를길어올려만발하고만개한다.“사포는아니고/나혜석도아니고/성모마리아는더더욱아닌//출렁이는젖가슴과/늘어진둔부를가진/닳을대로닳은한여자”(「아비뇽의처녀들」),그녀가터뜨려낸꽃이이토록선연하다.어쩌면꽃술대신이빨을달고서,상상치못할피비린내를풍기며.

이모든구멍에새꽃을

뿌리가없는꽃대,꼬리를버린인어는오롯이제발로서있다.결코누군가의화병에장식되지않을거대한꽃이고동화속에도수족관에도살지않는배수구의인어다.그러니진수미의시는‘여성의발명’일뿐만아니라모든지워지고가려진존재들,감금되고소외된이들에게쥐여지는새로운말하기일것이다.눈과입을빼앗아도“콧속에서뛰쳐나온/아흔아홉갈래”의존재들,“어떠한언어도저지할수없”는코의증명(「판결」).모든비린것이야말로살아있음의증거가아닌가.

너는어떠한언어도저지할수없다
봇물처럼콧속에서뛰쳐나온
아흔아홉갈래
꼬리마다불이붙은암말들

사제도떠난고해소의어둠을부인하듯이
그어떤입술도소리의형상을
녹취된심장의고동소리를
추적할수없을거야이건은너의패소야
완전한너의패소지

말머리가허공을쳐올리고푸른콧김을내뿜는다
실종된자모들이하나씩돌아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