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월모일 : 박연준 산문집

모월모일 : 박연준 산문집

$13.00
Description
박연준 시인이 발견한 모월모일의 특별한 평범함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일상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타인과의 접촉은 물론이고, 가급적 말도 섞지 않는 것이 예의인 요즘, 마스크와 에탄올 소독제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외출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잠깐 집앞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사는 지극히 사소한 일상마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때에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모월모일』을 펴낸다. 끔찍한 날도 좋은 날도, 찬란한 날도 울적한 날도,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모두 ‘모월모일’이 아닐지.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시간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가 시인 특유의 깊고 섬세한 관찰을 통해 새로이 발굴된다.

저자의 네번째 산문집인 이 책에는 ‘겨울 고양이’ ‘하루치 봄’ ‘여름비’ ‘오래된 가을’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계절감이 도드라지는 글이 많으며, 그 계절에만 포착되는 풍경과 소리, 맛과 감정들이 읽는 이의 감각을 활짝 열게 한다. 또한 순환하는 계절이 소환하는 과거의 기억과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가만한 통찰과 그것을 감싼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절묘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저자

박연준

파주에살며시와산문을쓴다.시,사랑,발레,건강한‘여자어른’이되는일에관심이많다.2019년5월『아무튼,비건』을읽은후비건을지향하는인간이되었다.일단시작하면꾸준히한다.사랑하면믿는다.분방하고충동적이지만(이상하게도)수련과수양을좋아하는타입이다.무지몽매해서늘실연에실패한다.무언가를사랑해서까맣게타는것이좋다.

1980년서울에서태어나동덕여대문예...

목차

서문│모월모일,모과

?겨울고양이
밤이하도깊어
조그맣고딱딱한,붉은간처럼생긴슬픔
그의머플러는여전히이상하지만
김밥예찬
얼지않은동태있나요?
옷,내가머무는작은공간
밤과고양이
개의마음
스무살때만난택시기사
어른여자를보면―김언희시인께
시창작수업에서우리가나누는말들

?하루치봄
사월
맹추라는말
하루치봄
호락호락하지않은발전
진딧물은어디에서오는가
작은그릇
G의얼굴이좋았다
카페에서<로망스>듣기
봄바람도구설수에오를때가있다
조용필과위대한청춘
믿을수없는일을믿지않기
호두세알,초코쿠키한개

?여름비
목숨걸고구경하지않을자유
비오는날발레하기
여름엔감자,여름엔옥수수
선생님도모른단다
그때내가낭독한여름
아는것말고알아주는것
당신의귀를믿어요
밤에용서라는말을들었다
여름비
하하하,오해입니다
웃고웃고또웃네
살수없는것들의목록
식탁위에놓이는것
시간이내게주는것

?오래된가을
날마다카페에간다
책읽는자가누리는산책
몽당이라는말
찬란하고소소한취미인생
피로가뭐냐고묻지마세요
모든인간은자라서노인이된다
엄살쟁이를위한변명
보통과특별사이
오래된것이도착했다
내앞에는당신의등이있다
눈감고지나는가을밤
파주의기러기들

출판사 서평

시집『속눈썹이지르는비명』『아버지는나를처제,하고불렀다』『베누스푸디카』『밤,비,뱀』과산문집『소란』『밤은길고,괴롭습니다』『인생은이상하게흐른다』등으로탄탄한작품세계를구축해온박연준시인.그의네번째산문집『모월모일』은지금껏그가써온작품가운데가장평범하고친근한일상을소재삼았다.‘겨울고양이’‘하루치봄’‘여름비’‘오래된가을’총네개의부로구성된것에서알수있듯계절감이도드라지는글이많으며,그계절에만포착되는풍경과소리,맛과감정들이읽는이의감각을활짝열게한다.또한순환하는계절이소환하는과거의기억과그것을바라보는지금의‘나’사이의간극에서생겨나는가만한통찰과그것을감싼경쾌하고리드미컬한문장이절묘한감동으로밀려온다.“우리에게주어진모든날은작고가볍고공평하다.해와달이하나씩있고,내가나로오롯이서있는하루”가있다.거기서모든특별함이시작된다.“매일뜨는달이밤의특별함이듯.”(‘서문’에서)

서문을지나만나는첫번째글에서우리는겨울밤,얼려놓은곶감을종지에담아녹을때까지기다리는‘나’를만난다.가만히앉아고요한그시간을그대로누리며낮에‘당신’과나눈짧은대화를떠올린다.겨울에나무들이잎을다떨구고회초리처럼서있는게나무들로선겨울을지나기위해할수있는최선일거라던당신의말.나무의태만이라섣불리여기고말았던것이최대한고요해지고자최선을다하는일일수있다니,곰곰생각에잠기는겨울밤.가만히그옆에앉아함께골몰하고싶어진다.

겨울밤은야박하지않다.길고길다.먼데서오는손님처럼아침은아직소식이없을것같으니,느릿느릿딴생각을불러오기에알맞다.곶감이녹으려면더있어야한다.그런데누가,감을말릴생각을했을까?말린감은웅크린감처럼보인다.누구에게나웅크릴시간이필요하다.병든자의병도잠든자의잠도자라는자의성장도비밀이많은자의비밀도겨울밤을빌어웅크리다가,더깊어질것이다.
_14쪽,「밤이하도깊어」에서

어느날은카페에서책을읽다가‘일곱살의나’를내앞에앉혀두는이야기를만나기도한다.“일곱살의나는조그맣고딱딱한,붉은간처럼생긴슬픔을손바닥에올려놓”은채그것이아직도붉고싱싱하다고말한다.내가할수있는건카페에서고개를숙인채앉아우는것.“잠잠해지도록,슬픔을달래”기위해.“그도나이고,나도그이”기에.(「조그맣고딱딱한,붉은간처럼생긴슬픔」)불시에습격하는건음악도못지않다.대학시절친구와반지하방에앉아문학에대해이야기나누고서로의창작시를비평하며자주다투고치열했던기억을불러온건조용필의노래이다.

그작은방에서,우리는스물셋이었다.벽에기대앉아목이터져라부르던노래가다.(…)그때우리는우리가청춘의한복판에있음을몰랐다.우리는얼마나뾰족하고빛났던가.청춘은별안간끝난다.(…)그게누구의봄이든봄날은간다.그리고이따금노래에실려,돌아온다.
_95~97쪽,「조용필과위대한청춘」에서

읽는이의마음을특히충만하게하는것은‘난지금의내가마음에들어!’하고스스로를받아들이고아끼는대목들일것이다.남편과다툰뒤감정에휘말려일상을내팽개치지않고할일을잘마친뒤짐을싸홀로여행을떠날수있는나,낯선도시를혼자걷고현재를부정하지않고그대로바라볼줄알게된나에대한긍정.그여유가나와타인의관계또한건강하게하리라.

둘이되지못해안달인시간이있는가하면혼자이지못해누추해지는시간도있다.인간에겐햇빛,음식,타인의사랑만큼이나‘혼자인시간’역시필요한법.지금당신도멀리서,나처럼혼자일거라생각하니그조차마음에들었다.아무리좋아도오래붙어있다보면종종상대의빛을보지못한다.혼자일때빛날수있어야한다.다시둘이될때,내빛남으로당신을돌볼수있도록.그반대가되어선곤란하다.
_73쪽,「호락호락하지않은발전」에서

‘안마기’를‘당나귀’로알아듣고,생선가게에서‘얼지않은동태’를찾기도하고,벚꽃흩날리는풍경앞에서‘장관’대신‘가관’을외치기도하지만그런스스로가재미있어서좋다고말하는박연준시인.그는“이제겨우말할수있다.나는나를좋아한다.이걸깨닫는데사십년이나걸리다니!당신이나보다는좀더빨리,자신을좋아했으면좋겠다.자신을좋아하면서아닌척딴청을피우는시간,스스로를괴롭히는시간을멀리내다버렸으면좋겠다”(‘서문’에서)며자신의좌충우돌과시행착오를진솔하고유머러스하게고백한다.

작가는산문집을엮는동안내내‘모과’를생각했다고한다.딱히예쁘다고하기엔조금모자란울퉁불퉁한과일.향을맡고,손에쥐어보고,무게도가늠해보고,모과한알로무얼할수있을지고민해볼수도있을테고,아무것도하지않은채그저두고보기만할수도있을터이다.그런모과한알이평범한하루와닮았을지도모르겠다.‘모월모일의모과’같은오십편의글이쉽지않은매일을보내고있을독자들에게기분좋은위로가되리라기대한다.

??표지에쓴사진은구본창사진작가의‘비누’연작가운데하나,(2004)이다.작가가매일세수하고손씻으며쓰다남은비누를수집,촬영한작품으로마치어여쁜자갈혹은근사한추상화처럼보이기도한다.시간이가고손길이닿은만큼저마다다른모양으로닳고작아진비누를,박연준시인이고른모과한알과함께독자에게보내고싶다.


책속에서

우리에게주어진모든날은작고가볍고공평하다.해와달이하나씩있고,내가나로오롯이서있는하루.
이산문집은평범한날을기리며썼다.빛나고싶은적많았으나빛나지못한순간들,그시간에깃든범상한일들과마음의무늬를관찰했다.삶이일퍼센트의찬란과구십구퍼센트의평범으로이루어진거라면,나는구십구퍼센트의평범을사랑하기로했다.
_8쪽,「서문―모월모일,모과」에서

그러나알다시피,어른여자는흔하지않다.어른남자가드문것처럼.어른이못된여자,여자라기보다늙은어른,어른이되기엔상처가많은여자,여자따위는되고싶지않은어른……어른여자로살아가기힘든세상이다.나는모르는게많아어른여자가못된사람.언제나될수있을까,진짜어른여자는.
_51쪽,「어른여자를보면―김언희시인께」에서

보이는것은실제와다르다.오해는나편한대로생각하는것,생각이가는대로가보자고떠나는이기적인산책이다.실체를보지못하고,테두리만볼때일어나는‘작은비극’이다.
_146쪽,「하하하,오해입니다」에서

그때우리는우리가청춘의한복판에있음을몰랐다.우리는얼마나뾰족하고빛났던가.
청춘은별안간끝난다.(…)그게누구의봄이든봄날은간다.그리고이따금노래에실려,돌아온다.
_96~97쪽,「조용필과위대한청춘」에서

이건정말못당한다.좋아서하는일.가끔이지만이런수강생을보면티내지않으려해도심장이뛴다.태어나려나봐,저사람,태어나려는것같아.어쩌지,태어나면저사람빛날텐데,빛나다어두워지기도할텐데,괴로울텐데,행복에겨울텐데,도망치고도싶을텐데,어쩌려고저러나……걱정반기대반.
_55쪽,「시창작수업에서우리가나누는말들」에서

제존재를다쓰이고오도카니누워있는몽당연필앞에서생각이많아진다.사람역시‘몽당이’로태어나‘몽당이’로죽는게아닐까.나역시날마다몽당이가되어가고있는지도모른다.실제로나이들면서키가조금씩줄어드니까.그러니까할머니할아버지는‘몽당사람’이라부를수도있겠지.그게뭐든조금씩은닳고있다.시간도몸도즐거움의한계치도.사랑도그런게있을지몰라.흘리고퍼주고부비고쏟아내다‘몽당사랑’이되는일.몽당사랑이라니.왠지싫다.‘몽땅사랑’이라바꿔말할까.나쁘지않네.
_173쪽,「몽당이라는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