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트, 그리고 퀼트 (주민현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 (주민현 시집)

$12.00
Description
“기울어진 채로 걸어가는 이 길은 흔들리고
나는 이렇게 이마에 멍이 드는 시간이 좋아”
-그리고 하나의 말을 던질 수 있다면 ‘미래의 여자들은 강하다’라고 할 거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역동성이 있고 의욕이 넘친다”는 평을 받으며 2017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한 주민현 시인의 첫 시집을 선보인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역사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강한 자의 것이므로, 이제 문학의 역사는 지금 말하는 당신들의 것이 될 것”(문학평론가 강지희, 「이 밤이 영원히 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이라 여기며 새로운 목소리를 기다려온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것이 분명한 시집. 오래 겪고 오래 응시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로 정치하게 꾹꾹 눌러쓴 55편의 시를 4부-1부 우리는 계속 사람인 척한다, 2부 이곳의 이웃들은 밤잠이 없는 것 같아, 3부 코를 고는 사람을 코만 남은 것처럼, 4부 사랑은 있겠지, 쥐들이 사는 창문에도-로 나눠 담았다. 생명이라고 다 같은 생명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며, 여성이라고 다 같은 여성이 아님을, 부러 이목을 집중시키는 큰 목소리 하나 내지 않고 치열하고 올곧게 쓰는 그다. 이소연ㆍ이서하 시인, 전영규 평론가와 함께 창작동인 ‘켬’을 꾸렸으며 ‘켬’에서는 에코페미니즘을 기조 삼아 입장료 대신 쓰레기를 받아 진행한 ‘쓰레기 낭독회’ 등을 통해 독자와 함께 새로운 방식의 시 쓰기, 시 읽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

주민현

1989년서울에서출생했다.2017년한국경제신춘문예로등단했다.‘켬’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우리는계속사람인척한다
네가신이라면/킬트의시대/가장완벽한핑크색을찾아서/오리들의합창/철새와엽총/우리는,하지/이미시작된영화/사건과갈등/아무해도끼치지않는펭귄/아무해도끼치지않는암소/터미널에대한생각/옆집사람/세계과자할인점/절반은커튼,절반은창문/안젤름키퍼와걷는밤

2부이곳의이웃들은밤잠이없는것같아
호텔,캘리포니아/빵과장미1/안과밖/카프리섬/빵과장미2/핀란드의숲/나는밤에/오늘우리의식탁이멈춘다면/광장과생각/선악과맛/사소한이유/비틀린,베를린,/기관없는신체/밤의영화관/빈집의미래/서핑

3부코를고는사람은코만남은것처럼
블루스의리듬/나의사랑,나의아내린다/미래의책/공작/새를기르는법/가방의존재/이인분의식탁/흐린날에나의침대는/스테인드글라스/음향/거울속의남자/코고는사람은/별장관리자

4부사랑은있겠지,쥐들이사는창문에도
복선과은유/스노볼/한낮의공원/심장은사탕/오리녀석들/앞으로나란히/원피스에대한이해/어두운골목/잭과나이프/브루클린,맨해튼,천국으로가는다리/가장검은색을찾아서

발문|우리는하지,돌이켜하지/김상혁(시인)

출판사 서평

표제‘킬트,그리고퀼트’는수록작「킬트의시대」의시구에서따왔다.비슷한듯다른2음절단어둘과그연결이주민현시인의시세계를잘드러낸다.‘킬트’는스코틀랜드의남성이전통적으로착용하는치마이며,‘퀼트’는천과천사이에심이나솜을넣고기워무늬를두드러지게하는기법혹은그렇게박음질한천을일컫는다.「킬트의시대」의화자는치마를입고스코틀랜드어느광장에서킬트차림의남자들과춤을춘다.치마가넓게퍼지며돌고그것이만들어내는새로운무늬가시야에들어오는데,그렇게‘돌면서’화자는자신에게‘돌았니’하고묻던사람,조용히하라고하던사람들을떠올린다.“치마를입고상스럽게앉은어느날의일이었”다.“치마를입고함께춤을춘다고해서/우리의성이같아지는건아니지만”그광장에서그와‘나’는“모호하게기워져있”다.“깁다,라는것은깊다는것과별관계”는없지만,“허리나엉덩이주변을감싸는천/또는그런손에대하여”복고풍치마를입은‘나’는타탄무늬킬트차림의그와함께춤을추며생각에잠긴다.

「킬트의시대」가치마를입고함께춤추는다른두성(性)을보여준다면,「철새와엽총」은같은음식을먹으며티브이를보고있는두여성을내세운다.

오늘은나의이란인친구와
나란히앉아할랄푸드를먹는다

그녀는히잡을두르고있고
나는반바지위에긴치마를입고
우리는함께앉아서텔레비전을본다

(…)

오늘친구와나는나란히앉아피를흘리고
우리는가슴이있어서여자라불린다

마치생각이없다는것처럼
그녀는검은히잡을두르고있고

철새를사냥하듯이총을들고숲을뒤졌다고했다
그녀의친구가옆집남자와웃으며대화했다는이유로

(…)

그녀의히잡은검고
내치마는희고

우리는나란히앉아
이세계에허락된음식을먹는다
_「철새와엽총」에서

‘나’와나의‘이란인친구’는“나란히앉아피를흘리고”“가슴이있어서여자라불린다”.‘우리’는둘다여성이지만,남편아닌남자와이야기했다는이유로살해당할수도있는건친구이지‘나’가아니다.친구역시그이야기를할수있는비교적안전한상황에‘나’와함께있는것으로보이므로,친구와친구의다른친구들역시같은상황이라할수없으리라.
김상혁시인이발문에서지적한바,주민현시인은주체와타자를한프레임안에‘더블’로놓으며두존재의연대의식을그리는동시에둘의차이를드러내는데까지골몰해나아간다.“그렇게다르면서도그들은같다.아니,둘이그토록다르기에그들은오히려같음을주장할수있다.서로그토록다름에도불구하고(…)둘은오직여성이라는이유만으로똑같이위태롭다.(…)주민현의주체는남성이여성에게심어둔찢긴자아와‘운집/분열’‘동등/위계’‘갱신/왜곡’등의요소로대응하면서,전혀폭력적이지않은‘둘’,권력차이없이같은공간에존재할수있는‘둘’이가능함을보여준다.”(김상혁,발문「우리는하지,돌이켜하지」에서)

주민현시인의시속여성들은능동적으로대처하거나분노하거나복수하지않는다.광기어린시어들로억압해왔던것들을낱낱이표출하거나칼을들고맞서지않는다.그는이란인친구와함께할랄푸드를먹고나란히앉아티브이를보며그의이야기를들어주는쪽이다.감시와위계가없는교감을통해서만이회복될수있는관계를응시하는쪽이다.

눈을감고걸어도암흑과지팡이의세계를
이해할수있는건아니지만

기울어진채로걸어가는이길은흔들리고
나는이렇게이마에멍이드는시간이좋아
_「이미시작된영화」에서

네가신이라면새들에겐그림자
인간에겐견딜만한추위와허기를주고

그들의기쁨과슬픔을공깃돌처럼가지고놀겠지

나는구멍난공깃돌에서흐르는
작은슬픔을엿보네
_「네가신이라면」에서

이렇듯기울어진채걷고,작은슬픔을엿보는시인.그의이마에얼마간더멍이들지라도,쉬이규정할수없는자기만의윤리로기워갈존재와세계가,그로부터끊임없이갱신되고또한확장될그존재와세계가벌써부터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