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 문학동네 시인선 139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 문학동네 시인선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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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경인

1972년서울에서태어났다.2001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한밤의퀼트』『얘들아,모든이름을사랑해』가있다.현재한양대학교에리카캠퍼스창의융합교육원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슬픔이조마조마하게창문을두드릴때
두사람/삼월/반반/여름의할일/벌레의춤/빛과함께/가을이오면/분명한사실/일주일/낙관적인전망/라푼첼의방/코코라는이름/동쪽가까이

2부어떤아름다움과도무관하게
허밍/지붕위의평화/우리는겨울/거룩한밤/도마뱀의편지/눈을뜨고모든밤/밝은방/히브리어사전/흰밤구름/인간연습/나쁜일/시/숲

3부손님은나몰래나를사랑하여
초대/어제/대낮/비의일요일/수집가K/외출/마감하겠습니다/여름아침/티타임오후/석고와나/잠의해고목록들/상속

4부여름의잔디이게해줘
잘자/앨리스/동지/뜰채의시간/밤의임무/국수/딸기잼이있는저녁/대화/미래의가로수/양한마리/심야버스에서하룻밤/초록이저물때까지/환한술병/생일

5부수신인이없을때가장아름다워지는편지들
오늘의맛/염소생각/삼십대/새소리/눈을뜨고모든밤/바나나리퍼블릭/기대어앉은오후/나의아름다운정원/산책하는사람/안식도서관/음악/밤이후/최선의삶/젖은무화과

해설|피로젖은흙
|장은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비유가익숙한세계에그는있다.그는다시읽기시작했다.죽은사람들은어쩐지아름다워.그래.그렇지만이제부터물의비유는절대쓰지말자.그래.그래.아무것도잊어서는안돼.정말봄이라며?응.우리는여기에있지?그래,여기에있지.산으로부터어스름이몰려온다.봄이군.그가울기시작했다.
_「두사람」부분

올여름의할일은
모르는사람의그늘을읽는일
느린속도로열리는울음한송이
둥글고오목한돌의표정을한천사가
뒹굴다발에채고
이제빛을거두어
땅아래로하나둘걸어들어가니
그늘은둘이울기좋은곳
고통을축복하기에좋은곳

(…)

그가준불꽃을식은돌의심장에옮겨지피는
여름,꿈이없이는한발짝도나갈수없는
그러니까올여름은꿈꾸기퍽이나좋은계절

(…)

은쟁반에놓인무심한버터한조각처럼
삶이여,너는녹아부드럽게사라져라
_「여름의할일」부분


‘나’와‘무’사이의꿈결같은대화-운동
어떤아름다움과도무관하게,
무한하게번지는이미지의가능성들

“어제와오늘이/비극과희극사이가/좁혀지지”(「미래의가로수」)않는일.“질주하는나의망상”속“조립과해체를견디는삶”(‘시인의말’).생과사,밤과낮,슬픔과기쁨,흼과검음,미래와죽음.때로는이항대립으로보이지만,어쩌면대극이아닌둘사이를시인은한없이진동하고맴돈다.그리고순간구름처럼솟아오르는이미지에사로잡히고,잡힐듯잡히지않는,제모습을시시각각바꾸는,때로는내마음이바뀌는순간을포착해그궤적을시로써내려간다.‘나’와‘무’사이는때로시인과독자사이가되고,때로는홀로때로는짝으로이어지는꿈결같은대화는이미지와이미지가,너와내가,나와내가사랑했던시인들이결국엔환상적인논리로이어져있음을증명한다.


가로수는언제무성해지나
어제와오늘이
비극과희극사이가
좁혀지지않았다

가까운사람이말하길
너와나랑같이걷자,
마지막나무와걷지못한나무사이에
거울처럼빛나는미래가걸려있다고

가로수가무성해지면
토르소처럼모양좋게자를수도있다고
일정한간격으로펼쳐지는아름다움을알게될거라고

나와무사이에
누군가있다
_「미래의가로수」부분

죽음을잊은소녀는낡은털실을풀어환상을짜고
첨탑아래에선내일이면막노동하러도시로떠날
눈먼왕자가마지막세레나데를쥐어짜는방
꿈은도마뱀,꼬리를자르고뿔뿔이달아나버린
나선형계단모양으로꿈틀거리며늘어지는긴혀의방
지칠줄모르고자라나는흰머리카락의연주,어지러운화음
앵무새깃털을꽂은무구의마법사가눈을감고날아가다멈추는방
_「라푼첼의방」부분

“꿈속과꿈의바깥을사소하고가난한문장만으로동시에묘사할수있어나는슬프”(「상속」)다고말하는시인의목소리는어쩌면당연한지도모르겠다.이토록진지하고도정직한시를쓰는시인의언어는한없이낮고검박할수밖에없고,“네가사랑하는문장들은모두가짜야”(「어제」)라고회의할수밖에없으며,“먼지로덮인꿈을다털고나니/모든비유가사라졌”(「수집가K」)음을항상인식할수밖에없을것이다.하지만그것이곧시인이시쓰게하는힘이자,부끄러움이자,용기이자,자부이리라.그리하여“세상의모든부끄러움에는/더큰부끄러움으로저항하”(「수집가K」)며시를쓰는것일테다.그더큰부끄러움이야말로일부러틀린진심에다름아니다.

꿈꾼다는것은무엇인가.이시집을읽고또읽으며알게되었다.마음을가진자들만이꿈꿀수있다는사실에대하여.피로젖은흙위에서살아가는우리들이이참혹한고통과죽음들을딛고서서비유의언어를감히문학적수사에가까운찬사로만손쉽게읽어낼수있겠는가.그저‘나는마음을가지고있을까’되물으며피로젖은흙속을파고들때에만겨우내꿈이자라난다고말하는것이내가쓸수있는최선이다.그러니“올여름은내내꿈꾸는일”이란단지멈춰선애도가아니라우리를한발자국겨우나아가게하는것.어쩌면시를읽고쓴다는것,비유에대한책임을진다는것은일어난일들,겪어야만했던시간속을파고들면서생긴마음으로꿈꾸는일을계속하는것인지도모르겠다.
_장은정(문학평론가),해설「피로젖은흙」부분

시를읽는기쁨은우리가‘여기에있기’에,‘살아있기’에가능할,잊었던감정과감각을다시한번되찾는일이기도할것이다.그리고그감각은그저살아있는사람에게주어지는것이아니라마음을가진사람들,꿈을품은사람들이느낄수있는것이라고시인은말하는듯하다.“우리는여기에있지?그래,여기에있지”(「두사람」).이문장이지금이곳에있는사람들이자신이살아있음을말하는것이기도하지만제마음의위치를가리키는듯보이는이유도그때문일것이다.한여름바싹마른리넨의흼,때로는축축한흙에서피어오르는유기물의향기,물속을유영할때다가와붙는서늘한촉감,눈을감아야보이는다정한입술.우리가잊었거나되찾고싶은감각을김경인은“서랍속에서언무지개를꺼내/몸속에풀어놓”(「동지」)듯시로부려놓는다.다시말해생의이채로운기운을무지갯빛으로불어넣는다.그러니까올여름,우리의할일은김경인의시집을읽고,밖으로나가부신햇빛아래에서눈을뜨고꿈꿔-보는일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