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

$14.00
Description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한국문학이 당도한 올곧은 따스함, 정세랑 신작 장편소설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 정유미 주연)과, SM에서 제작중인 케이팝 드라마 〈일루미네이션〉의 각본을 집필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그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로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린 대작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피프티 피플』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올해 3월 오픈한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3개월간 연재되었으며, 〈주간 문학동네〉 연재 후 출간되는 첫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는 다소 엉뚱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현대사의 비극과 이 시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세계의 부조리를 관통하며 나아간다.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었던 심시선.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계의 구성원들은 하와이에서 그녀를 기리며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간다. 정세랑이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시선으로부터,』는 한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올곧고 따스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저자

정세랑

1984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0년『판타스틱』에「드림,드림,드림」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3년『이만큼가까이』로창비장편소설상을,2017년『피프티피플』로한국일보문학상을받았다.소설집『옥상에서만나요』,『목소리를드릴게요』,장편소설『덧니가보고싶어』,『지구에서한아뿐』,『재인,재욱,재훈』,『보건교사안은영』,『시선으로부터,』산문집『지구인만큼지구를사랑할...

목차

시선으로부터,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우린하와이에서제사를지낼거야.”

진행자심시선씨,유일하게제사문화에강경한반대발언을하고계신데요.본인사후에도그럼제사를거부하실건가요?
심시선그럼요,죽은사람위해상다리부러지게차려봤자뭐하겠습니까?사라져야할관습입니다.
김행래바깥물좀드셨다고그렇게쉽게말하는거아닙니다.전통문화를그리우습게여기고깔보면안돼요.
심시선형식만남고마음이사라지면고생일뿐입니다.그것도순전여자들만.우리큰딸에게나죽고절대제사지낼생각일랑말라고해놨습니다.
진행자아,따님에게요?아드님있으시잖아요.
심시선셋째요……?걔?걔한테무슨.나죽고나서모든대소사는큰딸이알아서잘할겁니다.
김행래몹쓸언행은아주골라서다하시는군요.
심시선선생생각이랑내생각이랑어느쪽이더오래갈생각인지는나중사람들이판단하겠지요.
_9~10쪽

누구보다이세계의난폭함을잘알고있으면서약한이들에게공감할줄알았던여성.올곧으면서도부드럽고,때로는과격할정도로진보적인발언으로세간에논란을불러일으키곤했던심시선여사의10주기에,그녀의가족들은단한번뿐인제사를지내기로한다.그것도그녀가젊은시절을보낸하와이에서.

“기일저녁여덟시에제사를지낼겁니다.십주기니까딱한번만지낼건데,고리타분하게제사상을차리거나하진않을거고요.각자그때까지하와이를여행하며기뻤던순간,이걸보기위해살아있었구나싶게인상깊었던순간을수집해오기로하는거예요.그순간을상징하는물건도좋고,물건이아니라경험그자체를공유해도좋고.”_83쪽

그들은그곳에서특별한제사를준비한다.방법은각자자유롭게그곳에서가장의미있는순간들을수집해오는것.각기다른방식으로심시선과연결된그들은그녀에대한저마다의기억을가지고하와이를여행한다.가벼운농담을주고받고,서로를배려하고,아름다운것을가만히지켜볼줄아는사람들이지만조금씩아픔과상처를지니고있는그들은,심시선을기리기위한여행에서그녀에게선물할물건과추억을찾으며자기자신을들여다본다.

“야생에서라면도태되었을무른사람들이었기에그들을사랑했다.
그무름을.순정함을.슬픔을.유약함을.”

『시선으로부터,』는시대의폭력과억압앞에서순종하지않았던심시선과그에게서모계로이어지는여성중심의삼대이야기이다.한국전쟁의비극을겪고새로운삶을찾아떠난심시선과,20세기의막바지를살아낸시선의딸명혜,명은,그리고21세기를살아가고있는손녀화수와우윤.심시선에게서뻗어나온여성들의삶은우리에게가능한새로운시대의모습을보여준다.협력업체사장이자행한테러에움츠러들었던화수는세상의일그러지고오염된면을설명할언어를찾고자한다.해림은친구에게가해진인종차별발언에대신화를내다가괴롭힘을당했지만후회하거나굴하지않는다.경아는무난한자질을가지고도오래견디는여성이있다는걸보여주면서뒤따라오는여성들에게힘을주고자한다.바로심시선이그러했듯이.

이제내가그아주머니들보다나이가많은데,나는영영음식을못하는사람으로남았으니비척거리는젊은이가찾아와도먹일것이없다.나이가들면자연스럽게손맛이생길줄알았는데아니었다.아무것도당연히솟아나진않는구나싶고나는나대로젊은이들에게할몫을한것이면좋겠다.낙과같은나의실패와방황을양분삼아다음세대가덜헤맨다면그것은의미가있을것이다.
_299쪽

정세랑이불러낸인물들은인간이특별할것없는존재로서다른존재들과어우러지는세상을희망한다.까만고양이를실수로밟으면안되니센서등을달아야한다고말하는난정,인간만의미감을위해새들이죽어가고있는현실에분노하는해림,꽃목걸이의면실이거북이를죽일수있다고걱정하는사람들이이곳에있다.“남이잘못한것위주로기억하는인간이랑자신이잘못한것위주로기억하는인간.후자쪽이훨씬낫지”라는말은이들을설명하기에더할나위없다.자신이잘못한것위주로기억하는사람은인간으로서의책임을절실하게통감하고,같은잘못을반복하지않기위해위기와위험을예민하게짚어낸다.유조선침몰소식에새들을씻기러가는지수의뒷모습을보며우리는정세랑의섬세한감수성이가리키는세상이멀지만은않음을예감할수있다.

심시선여사와그의가족들은부조리와불합리에소리낼만큼강단있으면서세상을예민하고민감하게받아들이는연약함을가지고있다.연약함은세상의빈틈을날카롭게감각하고,빈틈의존재들은강단있는마음을나누며목소리를획득한다.정세랑의세계에서선함은강함으로쓰인다.선한의지는강한행동을추동하고,어떤존재도소외시키지않는세계에대한상상력을고안해낼것이다.우리에게남은일은정세랑이건네주는선함의상상력을받아들이는것이다.


책속에서

지난세기여성들의마음엔절벽의풍경이하나씩있었을거라는생각을최근에더욱하게되었다.십년전세상을뜬할머니를깨워,날마다의모멸감을어떻게견뎠느냐고묻고싶은마음이었다.어떻게가슴이터져죽지않고웃으면서일흔아홉까지살수있었느냐고.
_15쪽

우윤은방에‘리브어리틀Livealittle’이라고멋들어진필기체로적힌포스터를붙였다.글씨아래로커다란파도와점처럼작게서핑하는여자아이가그려져있었고,우윤은더이상아이가아니었지만마음속에늘아픈아이가있었으므로서핑을해봐야겠다고결정했던것이었다.리브어리틀.난좀살아볼거야.
_100~101쪽

우윤은피곤해서바로쓰러질것만같았는데,규림은아무렇지도않은듯했다.우윤은사촌동생이무척이나부러웠지만꼬인마음을가지지않으려노력했다.누군가는건강하게,좋은운동신경을가지고태어나고누군가는그렇지않은것이다.그뿐이었다.
“아,무지개.”
졸음에겨워기분좋은얼굴로지수가해변저쪽을가리켰다.꽤선명한무지개가보였다.휴대폰카메라로열심히찍어보더니아쉬워했다.
“엉망으로찍히네……”
“그러게.눈에는이렇게잘보이는데.”
“나결심했어.할머니제사상에완벽한무지개사진을가져갈거야.”
“뭐?그렇게단순하게결정하는거야?”
지수의결정에우윤은깔깔웃었지만,속으로자신도결정했다.완벽하게파도를탈거야.그파도의거품을가져갈거야.
_102쪽

그러니여러분,앞으로의이십년을버텨내세요.쉬운일은아닐테지만모퉁이가찾아오면과감히회전하세요.매일그리되관절을아끼세요.아,지금그말에웃는사람이있고심각해지는사람이있군요.벌써관절이시큰거리는사람도많지요?관절은타고나는부분이커서막써도평생쓰는경우가있고아껴써도남아나지않는경우가있어불공평합니다.하지만어쩌겠습니까?모든면에서닳아없어지지마십시오.
_229쪽

“엄마이제안울어?”
해림이물었다.
“응,안울어.얼른다시사러갔어.”
“왜그런걸로울었지?”
사랑하는사람에게잘해주고싶었던거야,그사람이죽고없어도.우윤은말해주고싶었지만그보다는건조한답을택했다.
“속상하면울수도있지.”
_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