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스터디 (이다희 시집)

시 창작 스터디 (이다희 시집)

$12.00
Description
읽는 이를 읽는 이의 삶 속으로 돌려보내는 시
나와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특별한 순간을 탐구하는 시 창작 스터디
문학동네 시인선 138번째 시집으로 이다희 시인의 『시 창작 스터디』를 펴낸다. 201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돌올하게 신선하고, 침착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펼쳐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등단한 그의 첫 시집. “시적 화자인 ‘나’와 대상과의 관계, 즉 우리가 담겨 있는 이 세계 속에서 ‘나’와 사물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고, 말의 꼬리를 붙잡고 조근조근 할말을 밟아나가는 말의 운용 방식 또한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 차분하고 여유 있는 목소리로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자세에서 저력이 느껴졌다”고 심사평이 이어졌었다. 부러 도발하지 않고, 쉽게 도피하지도 않고, 묵묵하고 차분히 시 세계를 꾸려간 이다희 시인의 시 50편을 데뷔 3년 만에 내놓는다.
저자

이다희

1990년대전에서출생했다.2017년경향신문신춘문예를통해등단했다.

목차

시인의말005

1부내일은당신이라도좋아요
포춘쿠키/얼음위에두발이/희극/곡선의이유/일직선슬픔/초가타는시간/늦게오는자장가/백색소음/깨진컵의위로/아침오믈렛/햇빛이오는쪽/개구리와독수리/(2020)/()/아침의예감

2부햇빛이복도를오래사랑했다
플랫폼/강아지를찾습니다/인터뷰/개들/스크립트/시창작스터디/공기무덤/트렁크/수업결석에관한사유서/새벽네시삼십분의알람/공복/플랫폼2

3부비는모두를버리고내린다
복통으로걸어가는/4월과농담/대답하는사람/아마추어/검정코트의어려움/색맹/외설이지나가고슬픔이지나간다/행진/문앞에서/모래시계장난/눈에는눈/헹가래/나무가있는초상화

4부처음을두번할수있을까
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1/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카페에서/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3/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두개의붉은줄/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목요일저녁에/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6/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한개의붉은줄/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옆사람의옆얼굴/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조금센치한/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10

해설|우리가우리로서정확해질때-이다희의시,내몸속에우글우글한내계인보고서
|신용목(시인)

출판사 서평

조용히눈을떠요.눈을뜰때에는조용히뜹니다.눈꺼풀이하는일은소란스럽지않아요.물건들이어렴풋한덩어리로보이기시작합니다.눈길로오래더듬으면덩어리에날이생기죠.나는물건들과의이러한친교에순응하는편입니다.

벽에붙은선반에대하여
나에게선반은평평하지만선반입장에서는
필사의직립(直立)이아니겠습니까?

옆집에서는담을높이는공사가한창입니다.점점높아지는담에대하여,시멘트가채마르기전에누군가적어놓는이름에대하여.며칠째,습한날씨가계속되고투명한문신같은이름이피부에내려앉습니다.

피부가세상에가장먼저나가는마중이라면나는이마중에실패하는기분이듭니다.나는이습기에순응합니다.

하지만만약손에닿지도않은컵이미끄러진다면컵을믿겠습니까?미끄러짐을믿겠습니까?

유일한목격자로서이비밀을어떻게옮겨놓을수있을까요.도대체이습기는누구의이름입니까.

눈꺼풀을닫아도닫아지지않는눈이
내가사라지고도내곁을지키는잠이
오래나를지켜봅니다.
-「백색소음」전문

눈을뜨면서시작하고감으면서끝나는시「백색소음」,이다희시인의등단작이다.제목에서예상되는청각적이미지보다‘나’와사물의관계가풍성한시각적디테일로채워져있다.‘나’가먼저가아니라사물이먼저말을걸어오는순간들,‘나’의생각이아니라사물들의생각이전개되는순간들에대한시라할수있겠다.고요히관찰하는눈이인상적이다.사물/대상을장악하려하지않고,위선도위악도위장도없이“친교에순응하는편”을택한이의눈이기에,“세상에가장먼저나가는마중”인내‘피부’와그피부에“투명한문신같은이름”으로내려앉는습기를관찰하며“도대체이습기는누구의이름입니까”라물을수있다.요컨대내가내경계라믿어온피부에구멍을내고스며들고감각되는습기를관찰함으로써,나와세계의경계가사라지는특별한순간을읽는이로하여금마주하게하는것.
이렇듯이다희의시쓰기는무언가를터뜨리고발산하기보다는,잘알수없는순간을포착해고요속에가만히가두고골똘히들여다보는일에가깝다.새벽에유독잘들리는작은소리에귀기울이거나(「아침의예감」),몸은아직잠속에있는데눈만깜박이며익숙한듯생경한듯나를둘러싼풍경을짚어보거나(「새벽네시삼십분의알람」)할때의그고요,소리없는시선의움직임말이다.그런때에우리의인생에는아무사건도일어나지않지만,그러므로아무런의미도남기지않는다말할수는없으리란것을시로써보여주는시쓰기.

긴복도를따라걷는발걸음이있다
발소리가길게따라붙는다

홀로걷는사람은
자신의발소리를자신만듣는다

(…)

복도가휘는것은
시간이흐른다고생각하는것은
너무긴것에대한착시일뿐이라고

(…)

아무도복도에서생활하지않고

걸어오다문득
사라지는사람이있다

햇빛이복도를오래사랑했다
-「플랫폼」에서

해설을쓴신용목시인은이시의제목이‘플랫폼’인이유가“인생은사건으로구조화된것이아니라어떤사건들이드나드는‘순간’들로이루어져있다는것”을나타낸다썼다.또한이시와짝을이루는「플랫폼2」에서‘복도’를모두‘사랑’으로대체해쓸수있었던것역시“사랑은,인생은,사건과사건의연속으로이루어진게아니라그것들이잠깐반짝이다몸속으로침몰하는순간들”로볼수있다고.여기에고개끄덕인다면“바닥에닿지않는커튼이계속아름다운직물의모습을보여줄때”(「포춘쿠키」)그것이바닥과무관한일이냐는이어지는질문에‘아니오’라답하게되리라.바닥에어른거리는커튼의무늬가삶에드리운그순간들을형상화했다말하지않을수없으리라.또한그형상을가만히들여다보는일이시인이이세계와개인의경계를지우고또새로이분리해보는작업과닮아있음또한눈치챌수있을것이다.
비단‘나’와사물간의관계뿐아니라,타인을향한시인의시선에서도특장인관찰력과차분함이돋보인다.“텅빈상자를보면상자를채우고싶은사람이있고한번밟아보고싶은사람이있어요.채우면채워지는선물이좋아요.밟으면구겨지는내면이좋아요”(「()」)같은시나,“많이아프냐고이마를짚는사람이있고왜자꾸아프냐고벌컥화를내는사람이있다두사람은한사람이다”(「복통으로걸어가는」)라말하는시,“당신이이렇게힘이없으니까나는괜히우쭐하고어쩐지불공평하다고느껴당신은깊은바다에빠져허우적거리는것같기도하고악몽을꾸는사람같기도하고외로워보였다가순식간에편해진사람같아그런데우리가불공평하지않은적이있던가”(「아마추어」)등에서보이는통찰이근원이거기에있을터.
4부의「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연작시10편은‘나’의안으로침잠해,내안의다양한‘나’들을관찰한다.‘열명의사람들’로대표되어나의여러시절들을나눠가진분신들.“뒤를돌아보니열에아홉이올라오고있었다(…)그리고마침내그들은나를그냥스쳐지나갔다”(「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10」는구절로대표되는,나에게따라붙거나스쳐지나앞질러가거나하는분열된사유들은,기억으로때로는환영으로존재하며‘나’의내면에깃들어있다.

우리열명의사람이우리의재능으로
누군가는미래에있었고누군가는아프기시작했으며누군가는질투심을사용했다
하나의꽃이피기도하고지기도한다는것을영영이해하지못하듯걸었다

누군가바다를한번도본적없다는사실을수줍게고백했다우리열명의사람은바다로갔다수줍은사람은바다를앞에두고잠시말이없었고우리는그의감동까지더해져그날의바다를아름답게느꼈는데,수줍은사람은바다를무서워했다수줍은사람은무서워하는사람이됐다
-「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1」에서

한번깨진거울은다시깨질수없고그녀의피부는부드러워서깨진거울에찔리면피가날것이다.거울이깨진경험에서거울을빼면어떻게될까.거울이없이도거울이깨질수있을까.처음을두번할수있을까.
-「마음이사라지지않아서-두개의붉은줄」에서

“사랑안에서무력한저에게그럼에도불구하고기록할힘이있다는것은큰위로가됩니다.부디그힘이다른사람에게도위로가됐으면좋겠습니다.상처가됐으면좋겠습니다.먼길을달려노래가된다면좋겠습니다”라고신춘문예당선소감을밝혔던시인.그가계속해갈‘시창작스터디’가환기할일상속이상하고아름다운순간들,불러일으킬내안의초상들,그시를통과해비로소마주할특별한노랫소리를기대해본다.

이다희의시는적대를피하려고도하지않지만그것을관념화하지도않아서,손쉬운대결과선명한선언속에미적싸움을가두지않는다.일상의시간을찢되그조각을다시일상의자리에내던짐으로써,읽는이를읽는이의삶속으로돌려보낸다.언어의재현을보여주는게아니라삶을끝없는재현속에위치시키는것.이역전의방식이때로시간을그저흘러가는것처럼보이게만들지라도그마지막에서우리는비로소‘우리’로서정확해질것이다.이보다아름다운과정을나는알지못한다.
_신용목,해설「우리가우리로서정확해질때-이다희의시,내몸속에우글우글한내계인보고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