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일곱 해의 마지막

$13.50
Description
이루지 못한 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인다
60년 전 그에게서 시작되어 마침내 지금 우리에게 도달한 빛
개인이 밟아나간 작품 활동의 궤적을 곧 한국소설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내며 한국문학의 판도를 뒤바꾼 작가 김연수의 신작 장편소설『일곱 해의 마지막』. 이번 작품은 청춘, 사랑, 역사, 개인이라는 그간의 김연수 소설의 핵심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삶을 그려낸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58년 여름, 번역실에 출근한 기행은 한 통의 편지봉투를 받게 된다. 누군가가 먼저 본 듯 뜯겨 있는 그 봉투 안에는 다른 내용 없이 러시아어로 쓰인 시 두 편만이 담겨 있다. 시를 보낸 사람은 러시아 시인 ‘벨라’. 작년 여름 그녀가 조선작가동맹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방문했을 때 기행은 그녀의 시를 번역한 인연으로 통역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기행은 그녀에게 자신이 쓴 시들이 적힌 노트 한 권을 건넸었다. 그런 만남이 있은 후 기행은 북한에서는 발표할 수 없는 시를 적어 러시아에 있는 벨라에게 보냈던 것인데, 그동안 어떤 회신도 없다가 일 년이 지나 답신이 온 것이었다. 봉투에 러시아 시 두 편만이 담긴 채로. 그 봉투를 먼저 뜯어본 건 누구였을까? 벨라라면 편지도 같이 보냈을 텐데 그건 누가 가져간 걸까? 벨라는 자신이 보낸 노트를 어떻게 했을까? 당의 문예 정책 아래에서 숨죽인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기행의 삶은 벨라에게서 온 그 회신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전쟁 이후의 행보가 불확실한 백석의 삶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이 기행이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전쟁 전이 아니라 그가 꿈꾸던 것들이 계속 좌절되던 그 공백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시인으로 기억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했으며, 시골 학교의 선생이 되지도 못”(83쪽)한 그는 실패자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건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기행이라는 한 개인의 삶만 놓고 봤을 때에만 그러하다고, 김연수는 말하는 듯하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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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연수

경북김천에서태어나성균관대영문과를졸업했다.1993년『작가세계』여름호에시를발표하고,1994년장편소설『가면을가리키며걷기』로제3회작가세계문학상을수상하며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꾿빠이,이상』으로2001년동서문학상을,소설집『내가아직아이였을때』로2003년동인문학상을,소설집『나는유령작가입니다』로2005년대산문학상을,단편소설「달로간코미디언」으로...

목차

1957년과1958년사이009
창작부진의작가들을위한자백위원회061
우리가알던세상의끝109
무아(無我)를향한공무여행167
일곱해의마지막225

작가의말241

출판사 서평

“기행을매혹시킨불행이란흥성하고눈부셨던시절,
그가사랑했던모든것들의결과물이었다.
다시시를써야겠다고마음먹은것도그때문이었다.
사랑을증명할수만있다면불행해지는것쯤이야두렵지않아서.”

순하고여린것들로북적대던아름다운시절이끝나고찾아온적막
그세상에서끝내버릴수없던어떤마음과그마음이남긴몇줄의시

1958년여름,번역실에출근한기행은한통의편지봉투를받게된다.누군가가먼저본듯뜯겨있는그봉투안에는다른내용없이러시아어로쓰인시두편만이담겨있다.시를보낸사람은러시아시인‘벨라’.작년여름그녀가조선작가동맹의초청을받아북한에방문했을때기행은그녀의시를번역한인연으로통역을맡았었다.그리고그녀가러시아로돌아가기전기행은그녀에게자신이쓴시들이적힌노트한권을건넸었다.지금은아무도기행을시인으로알고있지않지만,한국전쟁이일어나기전만하더라도기행은시집『사슴』으로이름을알린시인이었다.하지만전쟁으로인해세상이바뀌어버렸고,북한문단은기행에게당의이념을인민들에게널리알릴수있는문학만을쓰기를강요했다.당이요구하는시를쓰지않으면평양에서쫓겨날수도있는상황임에도기행은어떤시도써내지않는다.당이요구하는시란기행이“평생혼자서사랑하고몰두했던”(190쪽)언어로이루어진세계가아니기때문이었다.벨라에게노트를건네며“폐허에굴러다니는벽돌조각들처럼단어들은점점부서지고”(162쪽)있다고고백하는기행에게그녀는다음과같이말한다.

“당신안에서조선어단어들이죽어가고있다면,그죽음에대해당신도책임감을느껴야만해요.날마다죽음을생각해야만해요.아침저녁으로죽음을생각해야만해요.그러지않으면제대로사는게아니에요.매일매일죽어가는단어들을생각해야만해요.그게시인의일이에요.매일매일세수를하듯이,꼬박꼬박.”(165쪽)

그런만남이있은후기행은북한에서는발표할수없는시를적어러시아에있는벨라에게보냈던것인데,그동안어떤회신도없다가일년이지나답신이온것이었다.봉투에러시아시두편만이담긴채로.그봉투를먼저뜯어본건누구였을까?벨라라면편지도같이보냈을텐데그건누가가져간걸까?벨라는자신이보낸노트를어떻게했을까?당의문예정책아래에서숨죽인채무기력하게살아가던기행의삶은벨라에게서온그회신으로인해예상치못한방향으로흘러가기시작한다.

이루지못한꿈은사라지는게아니라누군가에의해다시쓰인다
60년전그에게서시작되어마침내지금우리에게도달한빛

『일곱해의마지막』이전쟁이후의행보가불확실한백석의삶을복원하는데초점을맞추는것은아니지만,이소설이기행이시인으로활발하게활동하던전쟁전이아니라그가꿈꾸던것들이계속좌절되던그공백의시간을들여다보고있다는점은의미심장하게다가온다.그공백의시간동안“시인으로기억되지도못했고,사랑하는여인을아내로맞이하지도못했으며,시골학교의선생이되지도못”(83쪽)한그는실패자와다름없어보인다.그러나그건1950년대라는시대적배경과기행이라는한개인의삶만놓고봤을때에만그러하다고,김연수는말하는듯하다.

언제부터인가나는현실에서실현되지못한일들은소설이된다고믿고있었다.소망했으나이뤄지지않은일들,마지막순간에차마선택하지못한일들,밤이면두고두고생각나는일들은모두이야기가되고소설이된다.(…)이것은백석이살아보지못한세계에대한이야기이자,죽는순간까지도그가마음속에서놓지않았던소망에대한이야기다._‘작가의말’중에서

그러니까,꿈꾸었으나이루지못한것들,간절히원했으나실현되지못한것들은사라지는게아니라그시대와개인이라는조건을뛰어넘어“거기가아닌다른어딘가,지금이아닌먼미래의언젠가”(58쪽)이뤄지기도한다고말이다.그삶의공백을새롭게채워넣는다른누군가에의해서.그러므로『일곱해의마지막』이1950년대의기행의삶에서부터시작되는건당연한일인지도모른다.그리고그로인해소설속인물은두가지방식으로살게된다.한번은자신이원하는삶을끝내이루지못하는방식으로,다른한번은자신이원했던바로그삶의방식으로.완결되었다고여겨진삶에새로운숨결을불어넣음으로써두번의삶이가능하도록하는것.그것이우리가계속해서김연수의소설에매혹되는이유중하나임을『일곱해의마지막』을읽으며새삼깨닫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