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성의 인문학 (휴머니즘 이후의 문화와 정치)

불가능성의 인문학 (휴머니즘 이후의 문화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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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학평론가이자 수유너머104의 연구원으로 활발한 비평활동을 하고 있는 최진석의 『불가능성의 인문학』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 계간 《문학동네》에 ‘평론’ 부문으로 등단해 문학과 사회, 문화와 정치의 역설적 이면에 관심을 두고 《감응의 정치학: 코뮨주의와 혁명》,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 등을 펴내며 독창적인 이론을 전개해온 저자는, 마침내 이번 저서에서 ‘인문학 이후의 인문학’을 탐구하는 사유의 새로운 퍼즐을 찾아냈다.
저자

최진석

문학평론가,수유너머104연구원.서울대학교노어노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근대비평사연구로석사학위를,러시아인문학대학교에서문화와반反문화의역동성을주제로문화학박사학위를받았다.문학과사회,문화와정치의역설적이면에관심을두면서강의와연구를이어가고있다.『감응의정치학:코뮨주의와혁명』『민중과그로테스크의문화정치학:미하일바흐친과생성의사유』『불온한인문학』(공저)『문화정치학의영토들』(공저)등을썼고,『다시,마르크스를읽는다』『누가들뢰즈와가타리를두려워하는가?』『해체와파괴』『러시아문화사강의』(공역)등을옮겼다.

목차

서문WhitherHumanities?004

1부(불)가능,또는정치의아포리아
1장슬라보예지젝과도래할공산주의0172장자크데리다와(불)가능한정치의시간0553장발터벤야민과역사유물론의미-래088

2부무의식과욕망의분열분석
4장이데올로기의숭고한유물론125
5장트랜스-섹슈얼리티의정치학166
6장가장뜨거운모더니티218

3부휴머니즘이후의인문학
7장우리는결코인간이었던적이없다291
8장기계는자신을무엇이라생각하는가327
9장누구를위한인문학인가367

4부급진적문화연구의계보학
10장예술-노동의문화정치학405
11장급진적문화연구는실패했는가454

발표지면493
찾아보기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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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지금여기에꼭필요한새로운인문학의가능성

새로운인문학의가능성을말하는것은늘익숙한동시에꼭필요한작업이다.하지만격랑을겪어온한국사회의지난10여년간의모습들,예컨대‘18대대선’과‘세월호참사’,그리고‘촛불집회’와박근혜대통령탄핵,페미니즘과성소수자의인권에관한문제등민주주의를향한열망과더나은세상에대한갈망을무수한패배와성취로서모두겪어낸지금-여기의우리들에게는더욱특별한감정을불러일으키는뜻깊은일이아닐수없다.최진석은각기다른주제와상황들속에서일어나는사건들의의미를직접적으로탐구하기보다는‘비인간’이라는키워드를중심으로지젝과벤야민,데리다와들뢰즈등을경유해다채로운사유를펼쳐낸다.

그에의하면현재대한민국에서‘인문학’은1980년대중반을지나며‘창안된’개념이다.문학과역사,철학을기반으로삼는학문적전통으로서의인문학은분명그이전에도존재했지만,정치와경제,사회와문화,문학과예술,과학기술과인공지능,페미니즘까지아우르는인식과성찰의전영역을인문학이라부르는풍조는비교적최근에생겨난것이다.이른바‘문·사·철’로한정되어있던근대적유산은1990년대중반‘인문학의위기’와더불어끝나고말았다.그러니지금우리가말하는인문학은냉전의종말과근대문학의종언,그리고‘포스트모던’의바람이교차하는지점에서탄생한‘신생’학문이라고말해도크게틀리지않을것이다.
그렇다면인문학이란과연무엇인가?인간,문화,학문의세가지가인문학이끝까지움켜쥐고있던본질적인가치들이었다.지구상의어떤존재보다인간을우선시하는지혜,삶을풍요롭게증진시키는예술적환경,즉물적인식을넘어서삶의근저를관통하는앎으로서인문학은스스로를정체화해왔다.그러나비대해진인간의자아속에소외되어버린감각및신체적실존문제나휴머니즘을명분으로인간아닌것일반에자행되었던공격성,다수자와소수자를가르고차별하며배제함으로써성립한폭력적구조등은인문학의가치나소용이진정추구할만한것인지의문스럽게만든다.“세계에대한해석이아니라변화가중요하다”는마르크스의언명조차소비자를유인하는광고문구가되는상황에서,인문학은어디로가야하는가.지금-여기,우리에게가장간절한질문이다.

포장만바뀌어온낡은인문학을벗어날경계너머의사유
최진석은2013년방한한지젝에관한이야기로부터‘1부(불)가능,또는정치의아포리아’를열어젖힌다.이는‘낡아빠진’공산주의와레닌에대한사유로이어지는데,저자에의하면레닌을반복하는일은‘재현’이아니라‘수행’이다.붉은광장의묘석내부에눕혀져전시되어있는그를살려내그가했던행적들을고스란히되풀이하는것이아니라,레닌이하지않고남겨놓은잠재성을찾아내그것이현행화될수있는조건들을지금-여기서다시수행하는것.이런맥락에서우리앞에호출된공산주의는1991년해체된소비에트연방의그것과동일한것일수없다.새로탄생하는공산주의라는(불)가능한이름.그괄호안의단어를없애는순간,우리는그것의가능성과불가능성이라는이분법사이에서새로운길을찾아내게될것이다.
이어지는2장,「자크데리다와(불)가능한정치의시간」은여기에서한발더나아간다.사람들의탄식과분노,체념과질타가뒤섞인어떤물음들,가령그것은일어나지않은또다른시간의계열들,역사의다른길에대한의문들이다.만약그어떤날에시위대가바리케이드를넘어청와대로행진했다면?대통령선거에서다른사람이당선되었다면?그저가능성으로만머문(불)가능한정치의시간들.레토릭에갇힌이말을현재속에풀어놓음으로써,그것의작동을현실로서상상하고미리실험해보는‘낯선’경험을실행해볼것을최진석은제안한다.
3장「발터벤야민과역사유물론의미-래」로1부를마무리한후시작되는2부는‘무의식과욕망의분열분석’에관해다룬다.4장「이데올로기의숭고한유물론」에서는마르크스와엥겔스,루카치,그람시,알튀세르를경유하며아직끝나지않은이데올로기의시대를탐구하고,이어지는5장「트랜스-섹슈얼리티의정치학」에서는태어나서얼마지나지않아의사의실수로생식기를잃은브루스/브렌다의이야기를통해LGBTQ를넘어서는n개의성에관한사유를시도한다.6장「가장뜨거운모더니티」는포그노그라피와정치가쌍생아적관계에있으며,그연대가언제나비대칭적이고폭력적이었음을지적한다.
3부는‘휴머니즘이후의인문학’이라는제목하에7장「우리는결코인간이었던적이없다」,8장「기계는자신을무엇이라생각하는가」,9장「누구를위한인문학인가」를통해인간과휴머니즘에대해탐구하며인간화된기계,혹은기계화된인간에관해살펴보고특히9장에서는좀더구체적인현실에서학문으로서의인문학이부딪친문제에관해다룬다.
4부‘급진적문화연구의계보학’에서는10장「예술-노동의문화정치학」과11장「급진적문화연구는실패했는가」를통해예술과노동의관계에관한문제와한국의문화연구현실을살펴본다.문화연구의시초부터현재한국의인문학이처한현실까지비판적인동시에건설적으로논의한다.

진부한휴머니즘을넘어서서
결국이모든글들을아우르는것은지금까지의인문학은시간이지나며낡은틀이되었으며,이제는이를벗어나야한다는대주제다.근대의인문학은모두‘인간을위한학문’,즉‘휴머니즘’으로귀결된다.그러나인류세란말이낡은것처럼느껴지는요즈음,신이죽은이후인간도죽었다는말이어쩌면이제는사실처럼들린다.‘인간’이라는개념은유사이래늘확장되어왔지만그럼에도비좁은개념이었고,이를벗어나는것이새로운사유의도약을위한출발점이될것이라는것이저자의의견이다.
지금우리는인문학의위기와부흥이동시에운위되는이상스런역설의시간을살아가고있다.한편으로인문학은실제적생활의필요를충족시켜주지못하는무용한학문으로치부되지만,다른한편으로세파에지친대중에게달콤한유혹과환상,위로를줄것으로기대되는형편이다.이이중의역설은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가창궐한시대상황과합류하면서인문학의존재가치와방향설정에더큰혼란을부채질하고있다.
그렇다면우리시대의인문학이란대체어떤것이어야할까?아이러니하게도인문학의역사와사유,방법과전망에대한이러한비판적의식은인문학의발판위에서이루어질수밖에없다.학문의성채에갇히지않으면서도인식과통찰에충실하고,외적인유행을추종하지않으면서도부단히외부와의교섭력을잃지않아야하는불가능성의인문학.지금우리는이를직시하고성찰해야할시간에놓여있다.
저자는비인간,그로테스크,감응이라는세가지키워드를제시하며인간의시대가저물고있는이시점에서더이상인간자신만이인간의주요한관심사로남을수없다고말한다.인문학의불가능성과가능성의조건을동시에사유함으로써유일한현재의굴레에결박되지않는것,여기에인문학의잠재성이놓여있진않을까.그것이가능할때우리는세계에대한더내밀한이해에도달하며,마침내근대인문학의벽을넘어설수있을것이다.

*

레닌을반복하는일은‘재현’이아니라‘수행’이다.붉은광장의묘석내부에눕혀져전시되고있는그의사체를되살려내는것이아니라,그가했던행적들을고스란히되풀이하는것도아니라,레닌이하지않고남겨놓은잠재성을찾아내그것이현행화될수있는조건들을지금-여기서수행하는것이레닌의‘반복’이자공산주의이념의‘귀환’이다.(52쪽)

(불)가능성이란그같은아포리아를사유하려는데리다의역설을보여주는용어다.아포리아를말장난이나이해할수없는선문답처럼여기는세간의태도와반대로,(불)가능성은지금-현재우리에게불가능해보이는정치의시간을가능성의장으로불러오고혁명적으로현행화할수있는조건을묻기에오히려역설적인합리성을갖는다.그것은현실적조건너머의잠재적조건을헤아리고,불가능한것이가능한것에항상-이미머물러있음을통찰하는힘을가리킨다.(58쪽)

알튀세르의말대로,이데올로기는영원하리라.그러나언제나다른모습으로,다른방식으로작동하면서우리와더불어현실을구성하는힘으로서영속할것이다.무의식이영원한것처럼.만약이데올로기가현실의부단한변형을추진하는동력이아니라그것을가로막는반동적인장애물로나타날때,그에맞서는투쟁을우리는포기할이유가없다.우리의무의식이작동하듯이데올로기도작동하며,능동과반동의상호작용을통해또다른현실을구동시킬것이다.(165쪽)

관건은규범의이쪽이나저쪽,혹은그경계에서는데있지않다.규범은언제나세워질것이며항상우리를억압하려들것이다.규범으로부터탈주하려는욕망만큼이나또다른규범을발명하려는충동,그리고다시넘어서려는감응에얼마나우리를맡길수있을것인가?과잉에대한요구,때로는그것이가장절실하고도필요한과제로던져진다.지금의우리처럼.(217쪽)

포르노그라피라는추상적개념의이면에는항상남성과여성,또는동성들간의위계와차별이폭력적으로작동하고있었고,그것이정치의이름으로정당화되어왔다.반면,정치와맞잡은손을끊어버릴때포르노그라피는,거기에표현된섹슈얼리티는또다른폭력,가령자본의권력에방치되고만다.이과정이야말로어쩌면포르노그라피와정치의본질적관계를보여주는답안이아닐까?포르노그라피는,섹슈얼리티를표현하는그것은기실정치적인것과의연대를재발명하는과정에만그현행적의미를구가할수있는게아닐까?(286쪽)

휴머니즘의한계를비판하며포스트휴머니즘의조건들을넘겨보는와중에도,다시금휴머니즘을되돌아볼수밖에없는이유는우리가여전히인간이기때문이다.근대인으로태어나서,근대인으로살아가며,끝내근대인으로사멸할수밖에없는우리들에게가능한탐구의비전은휴머니즘의조건들을따져보고그한계의문턱에서포스트휴먼의징후를어렴풋하게나마포착해보는것밖에없다.(357쪽)

*
“인문학은불가능한가?그렇다.진작유효기간이지난쿠폰에미련을둘필요가어디있는가?인간적가치를위해인간밖의모든것을지옥으로몰아넣는인문학,문화를창달한답시고권력의시종이된인문학에장래를걸이유는없다.인문학은가능한가?진정그렇다.인문학을배반하는인문학,휴머니즘이라는철지난깃발을걷어내고인간성의경계너머로인간을돌려보내는인문학,문화의내부와외부를구분짓는경계선을지워내는그로테스크한표정의인문학,실선과직선의논리학을점선과곡선그리고뫼비우스의비논리로감응하는인문학을통해우리는인문학을넘어서는인문학을기대할수있으리라.”_최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