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태도가 된다 (전영관 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 (전영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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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영관 시인의 세번째 시집을 선보인다.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이후 4년 만이다. 2015년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시인은, ‘차가움과 뜨거움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왼손’을 주무르며 한 손으로 시를 써내려갔다. ‘회진’ ‘처방전’ ‘후유증’ ‘섬망’ ‘요양’에서부터 ‘구름 감별사’ ‘허밍’ ‘와온’까지, 60편의 시 제목들에서부터 그의 실제와 꿈, 현실과 지향점이 짐작된다.
저자

전영관

2011년『작가세계』를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바람의전입신고』『부르면제일먼저돌아보는』,산문집으로『좋은말』『슬퍼할권리』가있다.

목차

1부나무에걸린은유
회진/한파주의보/허밍/처방전/나무에걸린은유/폭설카페/일요일/어성전/비오면누구라도/풍문/정전/가까이/정선몰운대/명랑극장/첫/연말/취소

2부다짐비슷한습성
후유증/신사역/카페차희(茶喜)의수사학/대관령/섬망/편의점/나무공화국/삼십년-1988년11월12일/상수와고수/수면유도제/요양/오분의일/새해라서당신/오분

3부비다듬는다정
준비/겸상/중흥사-허수경시인을추모함/연인/담양호/외출의유물론/본색/초대/근황/현금인출기/제야(除夜)/독바위역/문진

4부사람은그리지말고꽃만보는것
안부/장마/기도/파편들/내린천/단풍유혼(丹楓幽魂)/구름감별사/와온/디테일/이사/무임승차/여덟시/귀신/늦깎이/귀촌/퇴원

해설|부서져열린자의삶과사랑
|김수이(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내안의꽃이다지고난후에야비로소꽃이보인다
잔바람에떨어져낡아가는꽃잎들이먼저보인다”
-질병이라는재난이가져다준깨달음,‘슬픔도태도가된다’

2011년『작가세계』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한전영관시인의세번째시집을선보인다.『부르면제일먼저돌아보는』이후4년만이다.2015년뇌졸중으로죽음의문턱까지갔던시인은,‘차가움과뜨거움을통증으로착각하는왼손’을주무르며한손으로시를써내려갔다.‘회진’‘처방전’‘후유증’‘섬망’‘요양’에서부터‘구름감별사’‘허밍’‘와온’까지,60편의시제목들에서부터그의실제와꿈,현실과지향점이짐작된다.

그가오면아침이새뜻해진다
막연하게자신감생기는것이다

능숙한의사같이
쭈그러진어깨를펴주고
무릎을칼날로세워준다
굴종의자세로늘어지는삼겹살
환멸의증거로널브러진토사물
타협의지분으로뒤섞인찌개냄새들을
벤젠이라는항생제로치료한다
새물내나는옷을곧바로입는것보다
어제입었던셔츠가편한까닭은
나만편들어주는체온이남아서겠지
눈치가태도로남아서겠지

환절기에는병원마다감기환자로줄을선다

세탁소가벗어놓은옷으로그득한것은
삶의자세를바꾸면아프다는뜻이다
품은맞는데기장이짧은미흡처럼
일상은무언가의트집을무릅쓰는일이다

물러서는파도를따라잔걸음질치다가
되돌아서는일이호기심때문만은아니다
보낼때확인했는데배달되면주머니마다손넣어본다
누구에게나초인종누르고도망가는악동이있는것처럼
실망에실망하지말아야지

세탁물들고회진중인그가돌아서는순간
풍기는벤젠냄새에서
휘발(揮發)이라는망각을생각했다
-「회진」전문

서시로자리잡은시「회진」에서시인은세탁물을들고동네를도는이를보며병실에서마주한회진시간을떠올린다.그는일상의숱한냄새를지우는벤젠을‘항생제’로대입해보는사람,환절기가오면감기환자로북적이던병원풍경을떠올리는사람이다.기억이환기하는지울수없는고통의시간들을그러나시인은시에욱여넣지않고,일상의숭고함에대한성찰과자기격려의언어들로채우려한다.“삶의자세를바꾸면아프다는뜻”이고,“실망에실망하지말아야하”는것이삶이라고말이다.
인간이얼마나휘청이기쉬운존재인지질병만큼또렷이보여주는것이없다.누구와도나눌수없는시련,철저하고완벽하게나만의것인고통.그와동시에비틀리고훼손되고서야보이는진정한나자신의존재성과내삶을이루던구체성이있나니,절망과희망,보잘것없음과숭고함,파열과축복이자신의삶과세계를어떻게해체하고재구성했는지시인은정제된언어로곡진하게새겼다.
“보잘것없는것들이나차지하려고악력을키웠”(「정선몰운대」)던지난날의무지와어리석음을겸허히받아들이며,“건강할때는사소하다흘려버렸던/사소한것들의목록을되찾고싶”(「수면유도제」)다는바람과“사소한것들도화려했던날은있는것”임을묵묵히써내려가는동안시인이마주한풍경은어두웠을까,무거웠을까,말갛게개어왔을까.

병실에서법고가운다
북채의타격음이아니라채로길게문지르는소리
평생독경으로무두질했을견고한소리
간병인이물수건으로몸을닦을때
아프다고터져나오는소리
절에서왔다는혜운스님이운다
병들지않았다면음성도우렁우렁할스님
차가움과뜨거움을통증으로착각하는내왼손처럼
물수건닿는자리마다낯선감각일테지
거죽을벗기는듯쓰라리고화끈거리겠지
울음소리가새벽의바닥을기어간다
통증은언어바깥의것이다알아듣지못할대화를
간병인과나눈다통증에막다른골목으로몰렸나싶으면
엄마……
엄마……
불경필사를했어도절반은마쳤을노승께서
아미타불대신에엄마,엄마를부른다
부처는넓고크고엄마는깊고질기다고되뇌며
젖은베개를베고돌아눕는다
아득한소리를따라부른다
-「섬망」전문

평생을수행에바친노승마저도고통에몸부림치며“아미타불대신에엄마,엄마를부”른다.시인은“물수건닿는자리마다낯선감각일”터란것을짐작하고,“차가움과뜨거움을통증으로착각하는내왼손”의감각으로상상한다.끝내공유할수없는고통이란것을누구보다잘아는그는섣불리‘나도안다’말하는대신시인으로서묵묵히노승의아픔을받아적는길을택한다.그자신“완치는없다한다”는판정을받은몸.“완치는없고/근처까지는도달한다는뜻으로근치(近治)”판정을받았기에,“망가진육신에슬픔이도착하면서모두비슷해진다”는것을알기에(「가까이」)가능한일이리라.

‘근치’는인간존재의숙명이자삶의속성이며,사랑의조건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근치의인간은자주삐걱거리고침몰하는심신의균열을통해타자와만날가능성을획득한다.불완전한건강상태인‘근치’는오히려‘삶’과‘사랑’을추동하는역설적인추진력이되는것이다.전영관은말한다.고통과두려움에수시로습격당하는투병을통해“폐허를경유한사람”만이아는“수긍의기술”을배웠노라고.(「한파주의보」)“결국,사랑은자기와다른것들을다루는솜씨”임을터득했노라고.(「독바위역」)
-김수이,해설「부서져열린자의삶과사랑」에서

통증,질병,근치와완치,인간,관계,가족,눈물,사랑…이전과는전혀다른‘두번째삶’을살며시인이자기만의사전에새로이정의내렸을시어들을마주하며우리는우리의사전을돌아보게되리라.더나은삶,더그럴듯한삶이란무엇이며무엇이어야할지.몸과마음의건강은무엇으로가능할지.살아지는대로살고있진않은지.놓지말아야할,진정소중한가치는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