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사랑을 한다 - 문학동네시인선 144

희망은 사랑을 한다 - 문학동네시인선 144

$12.00
Description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
귀신이 안 되려고 노력하는 모양이 안됐다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가엾다”
-새로운 ‘-되기’를 실험하는 낯선 주체들의 탈주
문학동네시인선 144 김복희 시집 『희망은 사랑을 한다』를 펴낸다.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발명의 시”라는 평을 받으며 2015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언어의 부유는 언어의 의문이 되고, 언어의 민첩함은 언어의 주름이 된다. 이렇게 그의 언어에 대한 자각은 말과 사물의 분열로부터 시작된다”(이수명 시인, 해설에서)는 평이 더해진 첫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을 펴낸 것이 2018년의 일. 2년이 지나 묶는 두 번째 시집에는 총 5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담겼다. 부 제목에서 이번 시집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바, 1부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2부 ‘우리는 밤에 싸우는지 밤과 싸우는지’, 3부 ‘서성이며 일렁이며 만지는 마음’이 그것이다. 기껏 인간을 좋아하는 것이 ‘가엾다’ 말하는 사람, 천 원을 손에 쥔 채 ‘천 원을 가지는지 천 원으로 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가지는지 생각’하며 어느 밤 싸우듯 골몰하는 사람, 불 앞에 선 채 서성이며 일렁이며 어떤 마음을 만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새로운 궤적을 찾아 나서는 이 인물들이 낯설면서도 기이한 흡인력으로 이끄는 곳, 함께 따라가보자.
저자

김복희

김복희는1986년태어났다.2015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내가사랑하는나의새인간』『희망은사랑을한다』,산문집으로『노래하는복희』『시를쓰고싶으시다고요』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기껏인간을너무좋아하는것이
귀신하기/지수/머리가셋달린개/신의술/사랑하는신/sobercompanion?숨은낭독자/왼손이하는오른손의일/엽서를봉투에담는사람의마음/취한배/세라핀의꽃,꽃의세라핀/인조노동자/희망의집에는샤워볼이있다/종모법/완두콩공주/더둥글고더예뻤다?J에게/여행하는눈

2부우리는밤에싸우는지밤과싸우는지
천원이기/국화와가을/여름을보호하기/관광버스멈추기/맞닿은몸/내친구의손가락/좋은말좋은꿈/보면/우리들마음에빛이있다면/도나우강_증기선_회사_선장의_미망인/새소식/당신이원하는사람/꽃과나무,할머니의노래/집회/데츠로와나/세라핀의흰물감?해변에서잠들기

3부서성이며일렁이며만지는마음
끝까지읽을사람/귤까기/상을엎기/받침/당신은사랑을하는군요/구름이바라본나와내친구들의집/아름다운베개/Namenlosering/공-독(void)/따뜻한튀김/신의잠/소감문쓰기/산더미만큼쌓인사과/섬집아기들/핏기/두명/불/바람에흔들리는유리종삼키기/피고용인잭이마침표로읽을문장은……/검은비둘기

해설|낯선주체들의탈주
|김영임(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많이좋아하면귀신이돼

복숭아귀신곶감귀신그런것이한집에둘이면곤란하다
그렇다고같이사는게귀신이아니면조금어색하다

약봉지가서랍하나를다채울정도로많아지기에
자네,이제약귀신이되려나인사했더니
좋아하는것이없어약을먹기시작했네,빙그레웃었다
좋아는하는데귀신은되지않으려고그러네,
몸이힘들어약을먹어야한다네,모를소리를하고
그러고는출근해버렸다

퇴근하면서가끔
술이며초콜릿을가져다주기도하니
소원이있거나겁이많은친구일것이다
읽고쓰는것을좋아하면서
귀신이안되려고노력하는모양이안됐다
기껏
인간을너무좋아하는것이가엾다
_「귀신하기」전문

시집의첫번째자리에놓은시.복숭아나곶감을매우좋아하는사람을보면우리는‘복숭아귀신’‘곶감귀신’이라고부른다.“많이좋아하면귀신이”되는것이다.아마도이시의화자는‘귀신’일터인데,‘자네’라불리는대상과의관계가묘하다.“읽고쓰는것을좋아하면서/귀신이안되려고노력하는”‘자네’,어쩌면‘자네’는시인을가리키는것이아닐지.“몸이힘들어약을먹어”가며출근하는시인은집에서그를관찰하는귀신과동거중인지모른다.그귀신은무엇을많이좋아해귀신이되었나.만약‘읽고쓰는것’을너무좋아하고,‘인간을너무좋아’해서귀신이된거라면,‘자네’와‘귀신’은같은처지아닌가.
“시역시이렇게시작된다.그렇지않았다면동시성을알지못했을두가지(이상의)요소가서로교차하면서시가시작되고,이때우주의한조각이마치처음인것처럼모습을드러낸다”는에이드리언리치의말은,보이지않으면서도존재할수있는것들에대한김복희시인의섬세한감각,그것이만들어내는다종다양한주체들을새로이음미하는데도움이된다.
두번째시「지수」역시이러한맥락에서읽어봄직하다.“옆집사람들이새를기르는것같다이사온날못보았으니까나는영원히옆집사는새를보지못할것이다”생각하는화자는,옆집에서들리는“지수야엄마왔어”소리를듣고새이름이지수일것이라고생각한다.사실‘지수’가여자아이건남자아이건새이건,누군가에의해‘길러지고’있다는데서매한가지인바,집이라는좁은세계,새장이라는좁은세계에갇혀있다는데서매한가지인바,“지수가새장에덮인천가운데서새답게얕게자다가문득옆집에서기르는나를나만큼생각하면좋겠다”며화자는묘한동질감을끌어안고옆집에서나는소리에귀기울인다.

영원히비가오지않는곳이있다
크게짖어도돌아오는소리가없고
열지못하는문이있을것이다
내가지키는문내가주인은아닌문

지옥의내부
지옥이무너지고난후
지옥에깃들었던문틈을본다
누군가꿈같이종이를밀어내어
문밖으로종이를조금,밀어내놓은것이다
개주인이보고
가장먼저본머리가먹어,그런다
그걸시라고피부라고부르기도한다
_「머리가셋달린개」부분

‘귀신-자네’‘지수-나’처럼가깝고도먼관계에이어세번째로놓인시「머리가셋달린개」에이르러서는한몸에달린머리셋이등장,“지옥에깃들었던문틈”으로내민종이,그것을“가장먼저본머리가먹”게되는데,“그걸시라고피부라고부르기도한다”는점에서이시는메타시로까지확장해읽어볼수있을것이다.
시집의맨앞세편의시만으로도짐작할수있듯,낯선모습의주체들이맺는생경하고기묘한관계들이김복희시인특유의방식으로직조돼있다.전보다선명하고구체적이며,여전히아름답고서늘한언어들로.일상을비일상으로,안정을불안정으로,가지런함을불규칙함으로,그모든것을또반대로배치하고또재배치하며익숙한관계의사이를잘라내고그틈에새로운궤적이그려지는것을따라가보는일이김복희시세계의여행법이리라.

‘새인간’‘기계인간’‘인조노동자’‘귀신’과같은분열적형태로나타나는김복희의시적주체들과대상들은그것들의발명자체로도의미있는시도라고할수있다.하지만분열증적주체는‘-되기’를통해욕망의탈영토화를실현하기위해탈주한다.변화한주체들은분열을넘어서서타성에젖은습관적인관계맺음을거부한다.결벽증처럼읽히기도하는그들의속성은가장순수한‘사이’를꿈꾸는궤도에오르기위한필요조건일수있다.우리는오염된관계의속성을알면서도오랜시간그흠결을이데올로기로포장해왔는지도모른다.김복희는그장막을걷고탈주선을찾기위해새로운‘-되기’를계속해서실험중이다.
?김영임,해설「낯선주체들의탈주」에서

시란‘무엇에관해’쓰는것만은아닐터,‘무엇을향해’쓰이느냐에방점을찍고이어지는시편들을감상하길권한다.그러다「희망의집에는샤워볼이있다」에서시집의제목이된시구“희망은사랑을한다”를마주한다면잠시머무르며‘희망’의집을들여다봐주길바란다.“사랑을보여달라고하면”“놓고간물건”을보여주는‘희망’의이야기를말이다.

희망은사랑을한다
희망은아주약한사람처럼
더많이사랑을하고
사랑을보여달라고하면네가놓고간물건을보여준다
나는희망의집에서몸을씻는다
누군가희망의집에놓고간회색샤워볼
땀에젖은운동셔츠처럼
처박혀있던것
아무는듯물에적시자어두워졌다
바보가되는걸두려워하면바보가된다
그러면말이다희망아,
희망이되는걸두려워하면희망이될까
나는겁이없어
세상에서제일강한사람
그누구도나보다강할수는없다
_「희망의집에는샤워볼이있다」부분

‘나의사랑하는새인간’에서시작한김복희의사랑은‘희망은사랑을한다’에서이렇듯‘희망’과‘운명’‘(귀)신’으로확장된다.김복희식‘-되기’의영역에서사랑은어떤감정혹은상태혹은차원의일인가.사랑을보여달라고하면그는그리고우리는무엇을보여줄까.너무좋아해서귀신이될것같은것을보여줄까.그대답을품어보며같은시집을저마다다르게읽게될당신들게이제이시집을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