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한 일

사랑이 한 일

$14.00
Description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뛰어넘는 것도 아니고
시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작가인생 40년, 그 시간 속 궁극적 물음들
이승우 「창세기」 모티프 연작소설집
사십 년 가까운 작가인생을 갈망 너머의 구원에 대한 천착으로 채우며 독보적인 성취를 거두어온 소설가 이승우. 그는 ‘관념의 토르소’(김윤식),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르 클레지오), ‘조용하고 진지한 영혼에서 분출된, 감동적이면서 묵직한 소설’(르몽드), ‘갈리마르 폴리오 시리즈에 오른 최초의 한국소설’ 등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수식과 상찬이 전혀 과한 것이 아님을 소설로 인생에 복무함으로써 증명해가고 있다. 한국소설로는 흔치 않은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통찰로 ‘생의 이면’을 파고든 그가 신작 소설집에서 「창세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삶의 궁극적 물음들을 마주 세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텍스트로 「창세기」를 다시 읽고 다시 쓴 밀도 높은 작업, 그 가운데 키워드가 되어준 단어 ‘사랑’, 그러므로 이 책은 이승우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이 총동원되었다 할 수 있겠다. 열한번째 소설집이자 첫 연작소설집, 『사랑이 한 일』이다.

이 소설집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태어났다.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그라들거나 찡그려졌다.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도,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이나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 대신 그 요구에 의해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 이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내 번역의 방법은 인간의 마음으로, 즉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사랑’이 내게 발견된 열쇠였고, 그래서 나는 이 부담스러운 패러프레이즈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_‘작가의 말’에서
저자

이승우

저자:이승우
1959년전남장흥에서태어났다.1981년『한국문학』신인상을받으며등단했다.장편소설『에리직톤의초상』『생의이면』『그곳이어디든』『식물들의사생활』『지상의노래』『사랑의생애』『캉탕』등,소설집『일식에대하여』『미궁에대한추측』『사람들은자기집에무엇이있는지도모른다』『오래된일기』『신중한사람』『모르는사람들』등이있다.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현대문학상,동서문학상,대산문학상등을수상했으며다수의작품이독일어,프랑스어,일본어등으로번역되었다.

목차

소돔의하룻밤
하갈의노래
사랑이한일
허기와탐식
야곱의사다리

해설│무서운사랑의미메시스_서영채(문학평론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이소설집은외아들이삭을제물로바치는아브라함에대한「창세기」의일화를이해하려는마음에서태어났다.그장면을읽을때마다마음이오그라들거나찡그려졌다.바칠것을요구하는신도,그요구에순종하는아버지도이해하기가어려웠다.나는바칠것을요구하는신이나그요구에순종하는아버지대신그요구에의해제물로바쳐지는아들의심정속으로들어가이이해할수없고믿을수없는이야기를이해하고믿으려고했다.그러니까내번역의방법은인간의마음으로,즉소설을통해신의마음,즉믿음의문제에접근하는것이었다.‘사랑’이내게발견된열쇠였고,그래서나는이부담스러운패러프레이즈작업을시작할수있었다._‘작가의말’에서

“그러니까신의사랑이,신의지나친사랑이그일을만든거지요.”
‘신’이아니라‘인간’의텍스트로,반복과확장으로다시읽기/쓰기

다섯편의작품이담긴이번소설집은작가가밝힌의도처럼이삭을제물로바치는아브라함의이야기를다룬표제작「사랑이한일」을한가운데두고시간순으로앞뒤에두편씩이더배치되어있다.자기딸을불량배들에게내주는소돔성의롯의이야기인「소돔의하룻밤」,아들이스마엘과함께부당하게내쫓기는하갈의이야기「하갈의노래」가앞의두편,이삭이느끼는기묘한허기와그의쌍둥이아들야곱과에서를향한편애에대한소설적해설이라할수있는「허기와탐식」「야곱의사다리」가뒤의두편이다.

모티프로삼은「창세기」의골자들은그대로둔채작가가의문을품은지점,그리고그것을풀어나가는방식에주목해보자.맨앞자리에놓인「소돔의하룻밤」과표제작「사랑이한일」은우선독특한문체로독자를사로잡는다.「소돔의하룻밤」의경우소돔의멸망과정을보여주는다섯개장면의문장이반복된다.그뒤에이어지는것은소설의문장이라기보다는논리적변증에가까운치밀하고끈질긴문장들이다.성경텍스트속서사의빈자리를작가가디테일하게채우며추론하고납득해가는과정이한편의소설로완성된다는것은신선한충격으로다가온다.동심원을그리듯하는문장의반복이작품을서서히확장시키고거기서오는파동에읽는이의눈은새로이뜨인다.“밀착하면시야가좁아지고매몰되면아예시야가없어진다.내부자는내부밖에보지못하는것이아니라내부도잘보지못한다”는듯이.
표제작「사랑의한일」에서반복되는문장은「소돔의하룻밤」과다른방식으로기능한다.「소돔의하룻밤」이이야기를따라가되작가가자신의속도에맞추어그흐름을밀고나가는방식이라면,「사랑이한일」은“그것은사랑때문에일어난일이다”라는단하나의문장이반복되며화자인이삭,그러니까“너의아들,네가사랑하는외아들이삭을바쳐라”라는신의명령과그명령을따른아버지아브라함양쪽을어떻게든이해해보고자하는인물의내적투쟁을격정적으로보여준다.아버지의손에죽을뻔했던아들이스스로묻고답한다.“사랑때문에일어난일”이라고?누구에대한사랑인가,누구의사랑인가.그사랑이조금덜했다면신은아버지에게그런요구를하지않았을테고,아버지아브라함은나를제물로바치겠다순종하지않았을테고,다시신이아버지에게‘멈추라’고하지않았을일인가.

사랑하지않는무엇이나누구를바치는것은힘들지않지만,그래서요구되지않지만,사랑하는무엇이나누구를바치는것은힘들다.그래서요구된다.우리에게요구되는모든것은힘든것이다.아니다.사랑하지않는무엇이나누구를‘바치는’것은본질적으로불가능하다.사랑하지않는것을누군가에게주는행위는바치는것이아니라버리는것이기때문이다.바치는모습을취하고있더라도그것은바치는것이아니다.버리는것이라고늘쉽지만은않지만바치는것은정말로어렵다.자기를주는상징적표현이바치는것이기때문이다.자기를주는상징적표현으로자기가사랑하는,자기에게속해있으나자기보다소중한,소중하게여기는무엇이나누구를주는것이바치는것이기때문이다.자기에게속해있는것가운데자기보다소중하지않은,소중하게여기지않는무엇이나누구를주는것은자기를주는행위일수없다.자기에게속해있으면서자기보다소중한,소중하게여기는것은그가사랑하는무엇이나누구이다.사랑하는무엇이나누구만이,오직사랑만이바쳐질수있다.바치기가어려운것은그때문이다.사랑하지않을때는어렵지않게할수있는일이사랑하면어렵게도할수없게된다.
_99~100쪽,「사랑이한일」

“이것은옳지않습니다.당신은옳지않습니다.”
소설의장인이보여준미메시스의힘

도저히받아들이기어려운신의명령앞에선인간이할수있는일이란묻고또묻는것,의심하고숙고하고납득해보려애쓰는것,그것에나자신의존재자체를쏟는것이다.신의무리한명령에순종하는아브라함의입장이아니라,영문모른채바쳐지는자로서존재하던이삭에게입을달아준작가는그러므로같은모티프를‘너무나인간적인것’으로다시쓸수있었으리라.
당신은내게왜이러는가묻는또다른인물은「하갈의노래」속‘하갈’이다.아들이스마엘과함께부당하게내쫓긴하갈은복을약속하고후손을약속했던신의목소리를원망한다.“이것은옳지않습니다.당신은옳지않습니다.”「사랑이한일」과함께화자의독백으로구성된작품속화자들은완고한텍스트에서벗어나새로운육성을얻는다.
「허기와탐식」은나이든이삭과그의두아들에서,야곱의이야기이다.맏아들에서가아닌둘째야곱이아버지이삭을속여가부장의권리를가로채려하고,여러사건끝에참회를한야곱이적통을잇는다는것이골자이다.그러나작가이승우는다른지점에주목한다.왜이삭은맏아들에서를편애했는가.아버지의칼날에죽을뻔했던그에게남은상흔과그런그에게위로가되었던이복형이스마엘이잡아준들짐승고기의맛.그것이사냥꾼인맏아들에서에게투사되었다는것이다.그러나이삭의편애와축복은빗나가고,자기것이아닌축복을받은둘째야곱은도망치듯집을떠난다.“거의최초로세상에홀로버려진것같은존재,고아이고나그네가된시간에,크게두렵고깊이외로운그의밤광야의자리로그분이찾아왔다.”“너와함께하겠다.네가어디로가든지너를지키겠다”는말과함께.아버지의편애는받지못했으나신의편애를받은야곱의이야기「야곱의사다리」로소설집은마무리된다.

작가가수천년간변주되고(재)해석되었을성경의장면들에주목한이유는무엇일까.발터옌스와한스큉의문학강론『문학과종교』는문학과종교의관련성을다음과같이설명한다.“모호성,양면성,불화스러운일치,상호조명,변증법이하늘과땅사이에뻗어있는터인즉,긴장스럽고도두려운관계.”오래도록신학을공부하고소설을써온작가이승우에게,특히나“소설쓰기가일종의패러프레이즈라는생각을한다”는그에게이미쓰인것을다시쓰고풀어쓰기에,그‘긴장스럽고도두려운관계’에투신하기에성경만한것이없는것은어찌보면당연한일일지모르겠다.압도적스케일의문학텍스트인구약과이승우의손끝에서재현된서사,그둘이겹쳐지며새로이발생할의미.요컨대독자가이책에서읽어내는것은“미메시스를통해문학이생산하는또다른앎”(서영채,해설에서)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