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천수호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천수호 시집)

$10.00
Description
“당신이 다시 온다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도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
삶과 연결되어 생동하는 죽음과 이별의 심상(心象)
문학동네시인선 149번째 시집으로 천수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를 펴낸다. 사물을 보는 낯선 시선과 언어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그는 ‘인간-언어-사물’의 상상적 관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을 서정적 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첫번째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에서는 시적 언어를 통해 세계의 모습을 시각화하고, 두번째 시집 『우울은 허밍』에서는 ‘귀-청각’을 통해 사물과의 소통을 시화(詩化)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가까운 이가 앓는 병과 죽음을 통해 관계와 가치를 무화시키는 어떤 낯선 것들 안에서 슬픔이나 두려움 이상의 의미를 발견해낸다.
저자

천수호

1964년경북경산에서태어났다.명지대학교대학원에서문예창작을전공해박사학위를받았다.2003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으로『아주붉은현기증』『우울은허밍』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언니는혼자만몰랐다
검은철사너머/차창의유리가내얼굴에/송도/대화의조건/권태/그자리/두겹이란것/그방의유령/외포리갈매기/회귀선/개꿈/묵/사구(砂丘)에서시작된이야기/석조원에서돌사자가웃고있다/4월의부사(副詞)/백우(白雨)/얼룩말

2부아프지않아서자국은깊었는데
눕듯이서듯이자작자작/새우의방/겨우라는여우/두글자의이름은잠망경처럼/해빙-에스키모인의화법으로/담석증이라는투석형(投石刑)/이불무덤/다시칼을찾아서/설상가상/양이된케이크/중독자(中毒者)/이제지겹다고안할게/선화여인숙/증세와진단사이의참새방앗간/비문증(飛蚊症)/불면증(不眠症)

3부강은짐이없고
창밖의일들/형용사를쓰는여자/대한(大寒)/설탕이녹는외식/창과창사이의힐끗/입양기억/병뚜껑/아침이라는영정사진/둑/관계에관한짧은검색/오륙도/흑심/수생고구마/역광
물고혹은물려서/휴일의대화/도깨비바늘꽃/돌의혀

4부무덤덤함이무덤같이
벨트우체통/시한부/숨은운명/세이렌노래방/와서가져가라/두뼘/묵독(默讀)/반구대/물집/극야(極夜)/열대야/거울아거울아/깁스라는키스/병을나눠먹는순두부/연분홍유언이있었다/여주

해설|창(窓)을관통하여도래하는것들|고봉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당신은그렇게왔고또그렇게떠났다

오고또갔다고했지만그곳이란원래없는것
파도가풀어내는바다

당신이다시온다면
했던말또하고했던말또해도이제지겹다고안할게

(……)

떠난지오개월이지난지금도
누군가는당신조의금을보내온다
당신이저바닷물에녹아드는데오개월이걸린다고했던말을
증명이라도하듯이

어떻게그렇게천천히걸어들어갈수있는건지

바닷물이소금이되는데한나절이면된다는내말에
당신은또저건너편기슭으로달아난다
-「이제지겹다고안할게」에서

67편의시가수록된『수건은젖고댄서는마른다』는그자체로한편의애도시처럼보일정도로편편에죽음과이별의이미지가깃들어있다.그중애도의과정을가장구체적으로그리고있는시「이제지겹다고안할게」를먼저살펴보자.“당신이다시온다면”이라는가정법에서드러나듯애도에실패한채로살고있는‘나’는‘당신’의죽음을자신과의물리적인거리와시차로환산함으로써상실감을실체화하고자한다.그러나그와동시에‘당신’과‘나’사이에물리적거리와시차는존재하지않음을분명하게인지함으로써슬픔을내면화하는자신에게서거리감을유지하고있기도하다.“오고또갔다고했지만그곳이란원래없는것”이라고말하면서도뒤이어“당신이다시온다면”이라고가정할수밖에없는것,거기에서우리는‘나’의상실감을더욱절실이감각할수있다.그러나그와같은애도의방식이단지절망으로그치지않을수있는것은“당신이저바닷물에녹아드는데오개월이걸린다고했던말”에“바닷물이소금이되는데한나절이면된다”고받을수있는‘나’의태도때문일것이다.

죽음에서의미를발견해낸것처럼,시인은‘생명’과‘병’의관계에서도부정성이상의의미를이끌어낸다.실존의비애라고말할수있는‘죽음’이인간의존재조건이듯‘병’역시생명을위협하는요소인동시에‘생명’의근거라는것,그러니까병들수있다는것이야말로생명의고유한특징이라는시인의사유를통해서야비로소우리는“유리위를흘러내리는어룽무늬처럼/링거수액이천상이야기를타고내려오고/(……)창과창사이이쪽과저쪽은서로힐끗/한장의햇살만이쪽저쪽구분도없이푸욱찔려있다”(「창과창사이의힐끗」)와같은놀랍도록깊고아름다운문장들을만날수있게되는것이다.삶과죽음은단절이아닌관계속에있다는깨달음을창으로분할된두세계를관통하는눈부신햇살의형상으로표현해내는데필요한게단지시인의빛나는언어적감각뿐일까?

회화에비유하자면,천수호의시편들은원근법에충실한묘사보다는사물의질감이나느낌,그것들의우연적인조합이만들어내는낯섦의미학에가까울것이다.자연물을시적소재로삼으면서도상투적인서정을답습하지않고,언어(글자)의모양,의미등언어에대한자의식을중시하면서도형식실험으로흐르지않는시인의시적면모는시집의말미에서만날「거울아거울아」에서더욱선명하게확인할수있다.

수건이닦고지나간눈이며입이며귀가침묵을학습한것처럼저수건이품고간알몸과맨발이비밀을훈련한것처럼젖는것을전수받는오랜습관처럼숭고한침묵을주무르며손을닦는다수건은젖고댄서는마른다
-「거울아거울아」에서

시집의제목이된문장,‘수건은젖고댄서는마른다’라는중의적문장에서수건은두가지역할을수행하고있다.땀에젖은댄서를말려주는수건본연의역할,그리고생명의근원인수분의이동을통해죽음의이미지를구체화하는일.수건은그리하여이시에서죽음의화신과같은존재로변모한다.어딘가에닿고자하는댄서의열망이담긴격렬한몸짓과침묵(죽음)사이의낙차를우리에게친숙한수건이라는일상적사물을통해형상화한데서우리는삶과연결되어생동하는죽음을인지하는시인의섬세한감각을확인할수있다.그래서그뒤로“의자위에아무렇게나던져져서수건은칙칙하고은밀하게말라간다침묵이나비밀과도무관한의자위에수건은단지정물화처럼거기걸쳐진다”라는내용이이어져도,우리는도리어고개를끄덕일수있는것이다.
뜻하지않았고,예상치못했던죽음들이이어지는현재의세계에서어쩌면시인의이와같은인식은우리에게아름다운시구보다먼저도착했어야하는것일지모르겠다.일상을이어가기위해삶과가로놓인죽음들을너무멀리떠나보내거나,현실을직시하고나아가기위해그것들을너무가까이품어안아야했던우리에게필요했던것은두세계사이에놓을맑고투명한창이었을지도모른다.그러니이제너무늦지않게천수호가빚어낸빛나는창으로서의이한권의시집을당신에게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