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소설)

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소설)

$13.50
Description
“편혜영을 읽는 일은 ‘비밀과 어둠과 암호 들’로
빽빽한 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_정이현(소설가)

또 한번 경신되는 편혜영 소설의 현재
2019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호텔 창문」 수록
우리를 둘러싼 일상을 고밀도로 압축해 보여줌으로써 표면화되지 않은 삶의 뒷모습을 감각하게 하는 작가 편혜영의 여섯번째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이 출간되었다.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이루어진 손보미 작가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잡지에 발표된 소설이 책에 그대로 실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듯, 편혜영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쓰인 단편들 가운데 성격이 유사한 여덟 편을 골라 묶은 뒤 작품을 거듭 숙고해 퇴고했다. 그렇게 치열하고 꼼꼼한 수정을 거쳐 묶인 이번 소설집은 간결한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서스펜스가 여전히 선명한 가운데 그와 분리되지 않는 삶의 애틋함을 그동안의 작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와 관계를 새로이 돌아보게 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예외적인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등단 22년 차에 접어든 편혜영 세계의 한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에 묶인 작품들은 모두 인물들이 현재 머물던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시작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이 새로 옮겨간 공간은 대체로 인적이 드문 소도시나 시골이다. 그곳은 언뜻 평화롭고 목가적인 듯 보이지만, 동시에 고립되고 폐쇄적이며 외지인에 대해 배타적인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스무 번』에 실린 작품들은 시골이 가진 이런 이중적인 이미지 가운데 후자를 부각하면서 주변의 공간이 불현듯 낯설게 변하는 은근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한편 이들의 이동은 가족과의 관계 또는 과거에 작은 실수를 저질렀던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로 인해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어떤 문제가 이전과는 다른 자리에서 어느 순간 거대한 위협이 되어 이들을 조여온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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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편혜영

2000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아오이가든』『사육장쪽으로』『저녁의구애』『밤이지나간다』『소년이로』『어쩌면스무번』,장편소설『재와빨강』『서쪽숲에갔다』『선의법칙』『홀』『죽은자로하여금』등이있다.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셜리잭슨상,김유정문학상,제1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어쩌면스무번…007
호텔창문…035
홀리데이홈…061
리코더…089
플리즈콜미…115
후견…141
좋은날이되었네…169
미래의끝…199

작가의말…225

출판사 서평

평화롭고목가적인시골이한순간밀폐된공간으로변할때,
우리를타격하는존재가다름아닌바로가족일때,
잠시에불과했던일이평생에걸쳐지속될때

철거되는중인지새롭게지어지는중인지모를건물처럼
우리를둘러싼이중의조건과아이러니한상황의연쇄속에서
모습을드러내는편혜영의물기어린시골-가족설계도

소설집처음에자리한표제작「어쩌면스무번」의주인공‘나’는치매를앓는장인을모시고아내와함께산골로이사한참이다.주위에옥수수밭이가득하고가장가까운이웃집이삼백미터넘게떨어져있을만큼인적이드문시골에서의삶에적응해가던어느날,한보안업체직원들이집을찾아온다.위험에노출되어도도움을구하기어려운환경을강조하며자신들의회사와계약할것을은근하게강요하는그들의말에아내와‘나’는왠지모를공포를느낀다.‘재산과목숨’을지켜준다고말하는그들이다른그무엇보다아내와‘나’를불안에휩싸이게하는그아이러니가,치매증세가심각해진장인을둘러싼이들의상황을다른시각에서바라보게한다.
이어지는소설「호텔창문」「홀리데이홈」「리코더」를연달아읽으면,우리는삶을바라보는편혜영의시선이한층더깊고치밀해졌음을확인할수있다.그것은무엇보다‘죄책감’‘수치심’등의감정과관련이있다.「호텔창문」의‘운오’는19년전강에빠져죽을뻔했다가사촌형에게구조되었고,사촌형은죽음을피하지못했다.그후로큰아버지와큰어머니는자신의아들을대신해살아난운오에게기회가있을때마다그사실을상기시키며그에걸맞게행동하기를바라지만,운오는늘무섭고두려운존재였던형이자신을살린걸생각하면언제나의아한기분이들뿐,자신이어떤감정을느껴야하는지알수없다.
「홀리데이홈」도관계와감정을둘러싼인물의복잡한모습을드러낸다.‘장소령’이소개팅으로만나결혼한직업군인‘이진수’는소령에서더진급하지못하고전역한다.물품의납품단가를부풀리는일에가담했다가그일이알려지면서책임을질사람으로지목되었다는것이다.이후이진수는식당을차려자리를잡는듯했지만육우를한우로속여판것이적발된뒤손님이줄어결국아파트를팔고전원주택마저팔아야할처지에놓인다.비가거세게쏟아지는어느날,두남자가집을보러이들을찾아온다.그들은과거이진수가저지른또다른일에대해무언가아는듯이그를추궁하려드는데,그추궁은이진수뿐아니라이진수곁에서그모든일을지켜보면서도내내침묵한장소령을향해있는것만같다.
「호텔창문」과「홀리데이홈」이어떤감정을느끼지못하거나일부러모른척하는인물의이야기라면「리코더」는어떤감정을떨쳐낼수없는인물의이야기라고할수있다.감당할수없을정도로빚이쌓인‘무영’은고등학교때같은반이었던‘수오’의집에얹혀살게되는데,얼마안돼수오가증발하듯사라져버리는사건이발생한다.경찰은무영을의심해그를추궁하지만,경찰은알지못하는것이있다.무영과수오가고등학교시절수련장이붕괴되는사고를함께겪었다는사실,두사람은운좋게구조되었지만같은반의다른친구는끝내살아남지못했다는사실이다.무영은수오의실종이어쩐지그일과관련되었을지도모른다는생각이든다.그리고수오가말한‘마지막말’을되새기는무영의모습에,감정을좀처럼발설하지않고건조하게서술하던편혜영의소설세계에서흔히볼수없었던뭉클함과애틋함이고여든다.
이런변화는「리코더」에만한정되지않는다.사업이망하고치매에걸려실종된남편때문에술에점점의존하게된‘미조’가외국에사는딸의집을방문하는이야기인「플리즈콜미」,고요하게일상을이어나가리라고짐작하던어머니가다른사람에게상해를입혔다는소식을듣고고향에내려가는‘나’가과거를돌이키며시작되는「좋은날이되었네」,넉넉하지않은형편에도딸을대학에보내려고보험에드는등삶을반듯하게꾸려나가기위해애쓰던엄마의노력이헝클어지고마는모습을그려낸「미래의끝」과같은작품들역시,미래를전망할수없을만큼절망적인상황에빠진인물들을그리고있음에도불구하고우리를마냥비관속에잠겨있게하지만은않는다.그것은잠시나마따스하고부드러운순간들이이들에게분명존재했기때문일것이다.삶이급속도로나빠진뒤에도미조와딸이서로를애틋하게쳐다볼때(「플리즈콜미」),‘나’가병원에입원한어머니를바라보며어머니가환하게웃던어린시절을떠올릴때(「좋은날이되었네」),‘동방생명아줌마’가혼자남겨진‘나’의손을잡고집밖으로데리고나갈때(「미래의끝」),우리는어찌할수없는어둠속에서도사라지지않는환함을느끼게된다.
처음에는사소한액수이지만시간이지남에따라걷잡을수없이불어나는빚처럼,우리는삶이돌이킬수없이어그러지게된것이언제부터인지알수없다.엉킨매듭의어떤부분을풀어야원래대로돌아갈수있는지알수없다.아니,어쩌면삶은처음부터얽히고꼬여앞뒤를알수없는상태로우리앞에놓여있었는지도모른다.그러니편혜영소설속의‘반전’과‘비밀’은트릭에걸려넘어진인물을둘러싼상황을말끔하게이해하게해주는해결책이아니다.반전과비밀은좀처럼풀리지않고,설사그것이풀리고난뒤에도우리는또다른반전과비밀을더듬으며앞으로나아가야한다.우리의삶이한편의거대한추리소설과같다는사실을편혜영은이토록세련되고우아한방식으로우리에게보여주는지도모른다.



편혜영의소설은정교하고섬세하게세공된열쇠를닮았다.필요불가결한단문들로이루어진서사를좇아맨끝에다다른뒤에야독자는눈을껌뻑이다이내탄식하게된다.이아름다운열쇠와맞아떨어지는자물쇠는존재하지않는다.세계는여전히무표정한채꾹닫혀있다.미셸투르니에에게자물쇠없는열쇠를가진사람은‘두발을묶어놓고가만히있으면안되는사람’이다.그는또열쇠없는자물쇠에대해‘해명해야할비밀,밝혀져야할어둠,판독해야할암호’라고했다.편혜영을읽는일은‘비밀과어둠과암호들’로빽빽한숲을헤치고앞으로나아가는일이다.물음표열쇠를손에꼭쥔채._정이현(소설가)



“내게있어소설은언제나처음에쓰려던이야기와조금다른자리이거나전혀다른지점에서멈춘다.이제는도약한자리가아니라착지한자리가소설이된다는것을알것같다.
그낙차가소설쓰는나를조금나아지게만든다는것도,그렇기는해도나아진채로삶이지속되지않는다는것도알것같다.

이낙차와실패를잘기억해두고싶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