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냐 헤쿠바냐 (양장본 Hardcover)

햄릿이냐 헤쿠바냐 (양장본 Hardcover)

$13.00
Description
비극의 원천은 역사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통렬히 비판한 정치신학자는
현대의 신화가 된 ‘햄릿’의 비극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고대 비극 너머로, 복수의 주제를 통해, 이 에세이는 유럽 정신의 정치적 운명을 문제삼는다.”
_자크 데리다 (철학자)

“『햄릿』에 관한 이 탁월한 에세이에서 슈미트는, 당대 관객이 극작가와 공유하는 것은 문화적, 역사적 지식의 지평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관객은 극에서 작동하는 정치적 무의식의 몽환적 잔영에도 깊게 공명한다는 것이다.”
_에릭 샌트너 (시카고대 교수)

20세기의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 카를 슈미트가 1956년에 발표한 대표적인 문예비평서.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 ‘주권자의 결단이 법질서의 원천’이라 주장한 슈미트는 왜 만년에 이르러 ‘햄릿’에 주목하며 ‘비극의 원천은 역사’라고 단언했는가? 이 책은 스스로 밝힌 대로 슈미트 자신의 내면적 고백이자, 그의 사상에 접근하는 흥미로운 우회로이다.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 답하는 보론 수록!)
저자

카를슈미트

CarlSchmitt
1888~1985.독일의법학자이자정치학자.독일중서부플레텐베르크의독실한가톨릭집안에서태어났다.베를린대학과뮌헨대학에서정치학과법학을공부했고슈트라스부르크대학에서법학박사학위를받았다.이후『정치적낭만주의』(1919),『독재』(1921),『정치신학』(1922),『정치적인것의개념』(1927),『헌법이론』(1928)같은문제작을잇달아발표하면서학계의중심인물로떠올랐고1933년에베를린대학정교수가되었다.
주권자의결단을법질서의원천으로간주한슈미트의정치사상과헌법이론은의회민주주의,자유주의,낭만주의,법치주의,규범주의같은근대정치사상의다양한조류에대한통렬한비판이었다.사실상주권자의독재를옹호하는그의이론은신학(가톨릭주의)에깊이뿌리내린것으로,파시즘에이론적근거를제공하게되었고,실제로히틀러집권이후나치의계관법학자로자리매김했으며,심지어반유대주의에도동조하는입장을나타냈다.1936년나치정권에서실각해모든공직에서물러났으나2차대전종전까지교수직은유지할수있었다.1945년종전후미군에게체포되어1년여간수용소에갇혔다가고향으로돌아가연구와집필활동을계속했다.이후『대지의노모스』(1950),『햄릿이냐헤쿠바냐』(1956),『파르티잔이론』(1963),『정치신학2』(1970)등을남겼고,1985년4월7일에98세를일기로생을마감했다.
나치치하에서의행적에도불구하고,카를슈미트의사상이후대에미친영향은지대하다.슈미트의사상은보수적정치이론가에게는이론적입지를공고화할계기를마련해주었고,개혁적사상가에게는이론적자극이되었다.민주주의와법치주의가그내재적한계로인해무신론적인사회주의와무정부주의의확장을초래하리라고경고하면서,세속화된신이나다름없는주권자의독재를소환하여국가체제를지켜내고자한슈미트의이론은역실적으로현대정치와법의본질을사유하게끔이끌었다.안토니오네그리,자크데리다,야코프타우베스,조르조아감벤,샹탈무페,슬라보예지젝등이그를사상적으로재조명하면서‘슈미트르네상스’를이끌기도했다.

목차

이책에대해9
머리말11

왕비라는터부17
복수자의형상27
비극의원천38
작가의창작의자유40
유희와비극적인것44
극중극:햄릿이냐헤쿠바냐48
비극적인것과자유로운창작간의불일치53
결과59

보론1왕위계승자로서의햄릿63
보론2셰익스피어희곡의야만적성격에관하여-발터벤야민『독일비애극의원천』에답하며70

주79
해설:한정치신학자의『햄릿』해석87

출판사 서평

“내가대체무슨일을벌인것인가”

『햄릿이냐헤쿠바냐』는법학자이자정치신학자인카를슈미트의저술목록에서단연이례적인책이다.1920년대에『독재』『정치신학』『정치적인것의개념』으로학계의스타로떠올랐고,나치시대에는파시즘과독재를이론적으로정당화하는데일조했던슈미트는전후戰後에왜난데없이‘햄릿’에관한책을썼을까?
이책에서슈미트는문학작품(예술)을역사적현실의관점에서바라봐야한다는입장을피력하며‘햄릿’을현대의신화적인물로내세운다.그는이책출간이후논란이일자「내가대체무슨일을벌인것인가」(1957)라는글을발표하고,여기서다음과같이고백한다.“『햄릿』에관한나의소책자는무엇을목표로하거나의도적으로계획된것이아니다.……그저내생각의내면적의미에충실할뿐.”
『햄릿이냐헤쿠바냐』는일차적으로햄릿을경유한슈미트의자기고백이자과거행적에대한은밀한자기정당화로볼수도있지만,2차대전후모든공적활동을금지당하고고향에칩거한상태에서‘주권’과‘정치적현실’에대한자신의사상을우회적으로드러낸저술로도읽힌다.또한이책이출간된1950년대중반은아도르노의주도로발터벤야민의저서들이재출간되기시작하면서벤야민이재조명되던시기였다.벤야민은일찍이『독일비애극의원천』에서‘햄릿’을중요하게다룬바있고,슈미트의예외상태,주권개념으로부터영향을받았다고직접밝히기도했다.이런벤야민이복권되던시기에슈미트는『햄릿』해석을통해자신의존재감을다시드러내고싶었을수있다.이점은『독일비애극의원천』에답하는보론「셰익스피어희곡의야만적성격에관하여」를『햄릿이냐헤쿠바냐』말미에수록한것에서잘나타난다.(이글에서슈미트는『햄릿』을‘바로크비애극’의범주에포함시키는벤야민의견해를비판한다.)
슈미트가어떤의도에서이책을집필했건간에비극,역사,주권의상관관계를추적하는이짧은책을통해우리는슈미트사상의핵심에다가가는중요한실마리를얻을수있다.

“유희가시작되는곳에서비극은중단된다”

슈미트는셰익스피어의『햄릿』이라는비극이현대의신화로까지자리매김한까닭은이작품이극적유희(비애극)의차원에머물지않고,극속으로침투한시대적현실을절묘한극적장치로담아내어현실이비극에개입하는구조를재현해냈기때문이라고본다.그에따르면,셰익스피어의위대함은비극적사건을창작했다는데있지않다.작가는비극적사건을창작해낼수없다.비극적사건은역사적현실이제공한다.위대한작가는비극의핵심을파악해비극적사건(정치적현실)가운데서신화로승격될만한구조적유형을추출해낸다.
『햄릿』2막2장에서배우가헤쿠바(그리스어로는‘헤카베’.트로이전쟁때남편과자식들을모두잃은트로이의왕비)에게감정이입해눈물을흘리자,햄릿은이렇게말한다.“이배우의눈에서는무슨이유로눈물이흐르는가?그저헤쿠바때문이라고!헤쿠바가대체그에게무엇이고그가헤쿠바에게무슨존재라고?”
슈미트가볼때,그리스신화의비극적인물헤쿠바는아무리관객을눈물짓게할지라도연극적유희에머문다.유희는근본적으로비상사태(예외상태)의반대를의미한다.“유희가시작되는곳에서비극적인것은중단된다.”반면에햄릿은진정한비극적인물이다.“유희로도가려질수없는비극적요소”(47쪽)를품고있기때문이다.슈미트의표현을돌려말하자면,햄릿의경우유희가중단되는곳에서비극이시작된다.
햄릿은셰익스피어당대에잉글랜드왕위에오르는제임스1세의연극적가면이다.햄릿이라는인물은가공의덴마크왕국왕자이기이전에런던에실존하던인물의그림자라는것이다.이와관련하여카를슈미트는자신의딸아니마가독일어로번역한영국문학사가릴리언윈스탠리의저서『햄릿과스코틀랜드의승계문제』를긴요하게참고한다.
이책의부제이기도한‘극속으로침투한시대’는『햄릿』에내재된비극적요소의핵심이다.여기서슈미트는두가지근거를제시한다.‘왕비라는터부’와‘복수자유형의햄릿화’이다.
햄릿의어머니인왕비가선왕(남편)살해사건에공모했는가여부는이이야기에서끝내터부이자미스터리로남는다.왜그럴까?제임스1세의어머니가바로메리스튜어트이기때문이다.희곡『햄릿』이집필된때는1601년경이며,1603~5년에여러판본이출판되고상연되었다.스튜어트왕가출신인제임스1세는1603년에엘리자베스여왕이후계자없이사망하자그뒤를이어잉글랜드왕위에오른다.제임스1세의어머니메리스튜어트는스코틀랜드여왕으로있으면서자신의남편이자제임스의친부인단리경을살해한보스웰백작과재혼하여큰파문을일으켰고(당시그녀가남편살해에공모했다는소문이파다했다)왕위에서쫓겨나평생의라이벌이었던잉글랜드의엘리자베스여왕에의해처형당하는비극적최후를맞았다.연극〈햄릿〉이상연되던17세기초의런던관객은당연히이런역사적사실을익히알고있었다.
햄릿의우유부단한태도는이‘왕비라는터부’와무관하지않다.전형적인복수극의주인공과달리결단을내리지못하고계속주저하는이새로운복수자유형의이면에는스튜어트왕가의비극이라는당대의역사적,정치적현실이작동하고있는것이다.

분열된세계와햄릿신화의탄생

나치에협력했던전력때문에한동안학계로부터외면받아온슈미트에대한관심이되살아난것은공교롭게도우파지식인들이아니라아감벤,지젝,샹?무페같은진보적지식인들이슈미트의‘정치적인것의개념’‘적과동지의구분’‘주권’‘예외상태’같은개념에주목하면서오늘날의현실정치상황에대입하면서였다.
『햄릿이냐헤쿠바냐』도이런관점에서주목을받았다.우선햄릿의배경에자리한제임스1세는종교대립의한가운데서살았던인물이다.가톨릭신봉자인어머니메리스튜어트의비극적죽음이후엘리자베스여왕을비롯한어머니의적들(프로테스탄트들)사이에서자랐던제임스1세는왕의신적권리를열성적으로옹호했다.신학에기반하여절대적주권을강조했던슈미트는릴리언윈스탠리의『햄릿과스코틀랜드왕위계승』독일어판서문에서“『햄릿』은왕의신적권리를성찰이나토론가운데소진시켜서는안된다는,제임스1세를향한간곡한당부”라고했다.
그러나제임스1세가매달렸던신적권리는극심한종교분열의시대에전혀가망이없는것이었다.그는무너져가는봉건체제의마지막수호자에지나지않았다.햄릿과같은우유부단한복수자의등장은이런시대적현실을벗어나서는이해될수없다.햄릿은클로디어스왕을왕위찬탈자로규정하고자신이야말로적법한왕위계승자라고주장하면서도,복수를향해과감하게나아가지못한다.그가주장하는왕권의기반자체가허약할뿐아니라그가적법한왕위계승자인지도확실치않고(보론1에서슈미트는햄릿의왕위계승권문제를상세히다룬다),자신의어머니가적인지동지인지도구분하지못한다.셰익스피어의햄릿은역사적현실과정치적상황에서자유로울수없는존재로,주어진현실상황에따라변형될수밖에없는운명이다.
슈미트는계시종교적신의권위에의존하는규범이이성의힘을기반으로확립한인간의규범에비해더강력하고절대적이라고본다.햄릿의경우처럼현실이인간을옭아매어이러지도저러지도못하는상황에처하게할지라도,이러한역사적현실은주인공의실존을사로잡는그절대적성격때문에그자체로존중되어야할대상이기도하다.슈미트에겐근본적으로역사적현실도신적권위에따른현실이다.
“비극적사건에직면한모든당사자들은뒤엎을수없는현실의존재를잘알고있다.……이뒤엎을수없는현실이란잠자코선바위와같은것으로,유희로서의극은이바위에굴절되고,진정한비극이라는파도도이바위에몰아치고부서진다.바로여기에자유로운문학적창작이넘어설수없는마지막경계가존재한다.”(53쪽)

카를슈미트는르네상스이래로유럽의문화예술이세명의상징적인물을창조했다고말한다.바로돈키호테,파우스트,햄릿이다.이세인물은모두지성때문에정상궤도에서벗어났는데,유일하게햄릿만이신화적인물이되었다.여기서돈키호테는정통가톨릭이고,파우스트는프로테스탄트이다.슈미트에따르면,이두인물사이에해당하는햄릿은유럽의운명을결정지은종교분열의한가운데있는인물이며,바로이런역사속에서비극적인햄릿신화가탄생했다고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