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목소리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

기억의 목소리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

$48.88
Description
사진과 시, 인터뷰로 만나는 제주4.3 희생자의 삶
기억의 시침을 70여 년 전 그날로 돌려놓는 사물들
민간인 희생자 3만여 명, 소리 없이 묻혀진 죽음과 비극. 올해로 73주년을 맞은 제주4.3의 희생자 유품을 사진과 시, 인터뷰로 기록한 책 『기억의 목소리』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제주4.3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고현주 사진작가가 유품 사진을 찍고, 허은실 시인이 인터뷰를 기록하고 시를 썼다. 유족들이 간직하고 있는 4.3 관련 유품 22점과 수장고에 보관된 신원불명 희생자의 유품 5점까지, 총 27점의 사물을 중심으로 만나는 제주4.3의 이야기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희생자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유가족들이 간직해온 소소한 사물을 통해 4.3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되짚는다는 것이다. 쌀 포대로 안감을 댄 저고리, 사후 영혼결혼식을 치른 젊은 남녀의 영정 사진, 토벌대를 피해 산에서 지낼 때 밥해먹은 그릇, ‘한국의 쉰들러’라고 불렸던 아버지의 성경책…… 70여 년 전 당시 제주 곳곳에서 말없이 참혹한 현장을 지켜봤던 사물들이다. 『기억의 목소리』에서는 수십 년 세월의 풍파를 거쳐 보존된 유품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4.3 희생자의 일상을 조명하며 아픈 역사와 사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고현주 작가는 2018년부터 제주4.3 관련 유품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역사라는 이름 아래 왜곡되거나 소외되었던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온전히 애도받지 못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4.3을 ‘사물’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유족의 보따리 속에, 궤 속에 오랜 세월 보존되어 있던 사물들의 서사를 하나씩 마주하며 카메라로 담아냈다.

2018년 제주로 이주한 허은실 시인이 이 작업에 함께했다. 때로는 남겨진 사물과 사람의 눈으로, 때로는 떠나간 영령의 마음으로 쓴 시는 70여 년 전 제주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간다.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시는 그 시절을 살았던 구체적인 존재를 한 명 한 명 호명한다. 그들이 생전 했던 일, 살아서 맺었던 애틋한 관계, 일상에서 사용했던 사물은 지극히 평범했기에 이 평범함은 더 큰 슬픔으로 증폭되어 전해온다. “숟가락을 놓는 것”은 “당신을 눕히는 일”이었고(「녹슨 한술」 중에서), “밤새 미싱 돌아가는 소리”에 “아들은 키가 자랐다”(「미싱」 중에서). 그의 시 속에서 사물과 인간이 맺는 소박하고 내밀한 관계가 4.3이라는 아픈 역사와 맞물려 더 크게 부각된다.
저자

허은실

2018년제주로이주한후4.3관련증언을기록하며시로쓰는일을이어오고있다.문명과역사,체제와이념의폭력속에서음소거된목소리를듣는일,문서가누락한이름들을부르는작업에더많은시간과마음을쓰려한다.지은책으로시집『나는잠깐설웁다』,산문『내일쓰는일기』『그날당신이내게말을걸어서』『나는,당신에게만열리는책』이있다.

목차

프롤로그_봉인된시간의기억과마주하다_고현주008

강은택아버지의저고리014
안순실어머니의비녀022
안순실시아주버니내외의영정사진034
양남호어머니의놋쇠숟가락046
강중훈어머니의재봉틀056
이양자부모님의놋화로068
윤만석아버지의궤080
홍기성어머니의데왁세기088
윤옥화의물옷102
김두연의망주석114
오국만부모님의궤122
강숙자어머니의은반지130
임애덕아버지의그림136
강방자의아버지사진144
양성보의맷돌152
조인숙의혼례복160
이재후어머니의다듬잇돌168
조정자아버지의성경책174
고창선형님의엽서184
김연옥의사진192
진아영의무명천198
박선희시할머니의궤와한복208

수장고에보관된4.3유품들227

에필로그_끝내남아부르는노래_허은실244

출판사 서평

한평생그자리에놓여있는슬픔들
말년까지충격과아픔떠안고살아야했던4.3유족의이야기

물려받은것은
텅빈궤하나와기일뿐이어서
죽은이들먹이기위해
산목숨이어온시간이었다

가을이면애련애련옹이가저려와
궤를열면어둠속에웅크린
일곱살이있다
_허은실,「몰쿠실낭궤」중에서

사물에서시작하는이야기는참혹한학살의순간에대한증언으로이어진다.궤짜는일을하던윤만석의아버지는집에있던멀구슬나무로궤를짜던중느닷없이군인들의습격을받았다.그자리에서아버지,작은아버지,큰아버지,동네사람들이모두잡혀갔다.친구아버지가주민들이모두집결한자리에서공개처형을당하고며칠후의일이었다.아버지는영문도모른채목포형무소로끌려가‘내란죄’를이유로형을살아야했고,큰부상을입은모습으로돌아왔다.당시고작일곱살이던윤만석은경제활동을할수없는아버지를대신해가장이되어동생들을먹여살려야했다.책에실린사물에는4.3당시의긴박함과아픔의세월이스며들어있다.생필품에지나지않았던사물이유품이되는것은한순간이었다.

그겨울우리는지상을떠났습니다
그밤뜨거운총알이우리몸을통과했습니다
그해당신스물나는열일곱

희,
무덤속에서비로소잡아보는
손,
다행이에요
따뜻해서
_허은실,「이제,」중에서

안순실시아주버니내외의영혼결혼식사연은애달프다.4.3때아버지와함께희생된시숙이어머니꿈자리에나타나‘내일기장에보면뭐가있다’고말해잠에서깨자마자일기장을찾아보니과연시숙의연애편지가나왔다.편지의수신인을추적해보았지만그집안도이미4.3으로몰살된후다.하나남은조카에게사진을받아그는두사람의영정사진으로영혼결혼식을올려주었다.선산으로모셔와같이한무덤에합장시켰다.무덤속에서비로소손잡은두사람은몸을잃은채영정사진으로만그곳에남아있다.

“멸치떼가밀려와서덤으로죽듯이그렇게죽었어요.터진목이라는덴데,여기서460여명이학살됐어.1948년11월부터이듬해,그이듬해까지.그때내가여덟살이었는데우리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3형제,고모까지다학살되는현장을직접봤어요.죽음은그렇게간단했어요.”_강중훈유족인터뷰,66쪽

그시절,제주도민은너나없이모두피해자였다.부모와형제를눈앞에서잃은이들에게4.3은너무나큰상처이기에쉽게이야기할수없었고,어렵게입밖으로나온이야기들은믿기힘들정도로충격적이었다.유족들은‘학살의간단함’에대해입모아이야기한다.순식간이었고,이유를몰랐고,수십년이지난오늘까지도여전히왜희생당해야했는지모르는상태로노구가되었다.유족양남호는돌아가신아버지를평생지극히모신어머니에대한애틋함을이야기하다“저도이제일흔아홉인데잊어버려야죠,뭐……”라며말을줄인다.

심지어‘빨갱이’‘폭도’‘도피자가족’이라는누명을쓰고두려움에떨어야했던유족들은4.3사건을입에올리지도못하고관련유품을전부태워버리는경우가많았다.김두연은4.3으로희생된아버지와형의사진한장남기지못하고전부태워버렸다.강중훈은생전일본에서장사를하셨던아버지의가계부를넘겨보다안에기록된이름의주인들에게혹여해가될까쓰인페이지를전부찢어버렸다.이책에기록된유품20여점은그럼에도태워지지않고끝내남은것들이다.“무덤속에서도살아남고”“망각보다오래살아남아”(「그러나나는,」중에서)우리가만날수있는것들이다.마지막의마지막까지살아남은사물들은잃어버린개인의역사를발굴하고조각난생애를잇는데결정적인역할을했다.


그토록염원했던‘평화’의의미를다시묻는오늘
‘죽은자’와‘산자’를잇는목소리

해마다유채꽃이만발하는4월이면,많은사람들이제주를찾는다.성산일출봉,함덕해수욕장,섯알오름,다랑쉬오름,정방폭포,표선해수욕장등제주의대표관광지로알려진이아름다운공간이70여년전집단학살터였다는것을,발딛는땅마다한맺힌영혼이묻혀있다는사실을아는사람은그리많지않다.허은실시인과고현주작가는『기억의목소리』작업을통해개인의일상이깨진다는것이얼마나큰슬픔이고절망인지를전하고자했다.어디서부터어떻게이야기를시작해야할지막막했던역사의실마리는사물에있었다.벌써오래전희미해져버린그리운얼굴이지만그사물에묻은흔적만은하나같이선명하게기억했다.어머니가,아버지가,형님이생전쓰시던물건을이야기하면서헝클어진기억의타래가서서히풀리기시작했고,묻어둔아픔이하나둘드러났다.

사진작가는사진찍기전기도를했고,시인은시쓰기전삼배를올렸다.유족과유품을마주할수록,사건을직접겪지못한후손으로서는상상하기어렵고감당하기힘든진실의무게에기록하는자의두려움은더커졌다.하지만시간이얼마남아있지않았다.4.3의참혹함을눈으로보고몸으로겪은생존자들이하나둘세상을떠나고있고,한명이라도더만나지않으면,한마디라도더듣지않으면4.3에대한생생한증언을들을기회를영영잃을지도모른다는생각에마음을다잡고더가까이,더깊이아픈역사를추적했다.

2021년3월,4.3당시군사재판을받고형무소로끌려갔다가행방불명된희생자들과일반재판수형인들이전부무죄판결을받고제주4.3특별법전부개정안이국회를통과했다.아직갈길은멀다.이한권의책에담긴‘기억의목소리’가세상에더울려퍼져야한다.책표지에실린동백저고리사진에는‘기억’과‘평화’의의미가담겨있다.평화를소망하기위해서는평화의반대감각또한기억해야한다고,허은실시인은말한다.저마다기구하고각별한사연을가진채남겨진사물들이전하는‘삶’에귀를기울여달라고말한다.그렇게다시봄이오는제주에서가장작은목소리를기억하는일에함께해달라고,이토록소중한평화의가치를오래오래잊지말자고,4.3의피와눈물이밴사물들은외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