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 문학동네 시인선 155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 문학동네 시인선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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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윤후

저자:서윤후
2009년『현대시』를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어느누구의모든동생』『휴가저택』『소소소小小小』와산문집『방과후지구』『햇빛세입자』가있다.제19회박인환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가장아름다운범벅이될테니
괴도/발광고지(發狂高地)/누가되는슬픔/사슬뜨기/신빙과결속/무기력투구를쓰고/의문과실토/빛불/모모제인(某某諸人)/금붕어불꽃/실화를바탕으로/오늘저녁이어느시대인지모르고/데탕트/그대들은나의좋았던날/불구하고그럼에도불구하고/비틀린/시

2부너는너의어둠이마음에드니
내가되지않는것들/초절기교(超絶技巧)/누가/신비와무질서/부록에도비가내리지/안마의기초/상아먹(象牙墨)/야수의세계/매복/이미테이션텐트/무한한밤홀로미러볼켜네/정물원/계수나무/물보라,산문,눈총/밀랍양초를켜둔청록색식탁/하임(Heim)/성탄전야/어젯밤카레,내일빵

3부우리의눈빛만이살길이었다
공범/나나너너/레몬스웨터블루/주말부부/대화줍기/망원경을선글라스처럼쓰고다니면/휴업일지/불개미지옥천사/미궁/모와미/린넨시절/천박한사랑에관하여/건투를빕니다/피오르드의연인/공동언덕/허밍버드/눈빛수련/끝에서첫번째/폐막식을위하여

해설|내가되지않는시
|박혜진(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슬픔에게서재주가늘어나는것같아

녹슨대문앞을서성거리는사람을글썽거린다고생각한적있었지망설이던말이발을절며다가와매일낭떠러지에있다고나를종용하고

이제등에몰두하자는말을했지두눈동자의주름을펼치며바라보자고했지그러나너무많은슬픔이기성품이되어집에돌아온다누구나붙잡고말하게되는
_「누가되는슬픔」부분

다정함을적선하여많은사람을유리진열장에두었지요.새벽출국장처럼,대부분투명하게사라졌지만……한때북적거림을끌어안고버텼습니다.고독과의지긋지긋한싸움이었네요.

하룻밤사이몇천년을건넌사람처럼지쳤어요.슬픔을공산품처럼다루게되었지요.창밖사이렌만울려도움찔합니다.나의알람이울렸나요?가스레인지를보고현관문을다시잠급니다.그대로인채로엉망일수도있다는게

그리놀랍지않습니다.진열장사람들이하나둘넘어집니다.빗금으로가득한나의광장은아수라장이됩니다.차라리그게낫습니다.눈에보여야수리할수있으니까,그러나아직이곳은아픈곳이보이지않는암흑병동입니다.
_「건투를빕니다」부분

우리곁엔“너무많은슬픔”이있다.마치슬픔과함께태어난것처럼슬픔을품고있는게너무나자연스러워어째서우리가슬퍼하는지영문도모를지경이다.허나슬픔을자세히들여다보면슬픔의기원을찾아낼수있다.“그해우리는사랑했던사람을반듯하게심고/기나긴가로수들을지나왔군요”라고독백하는우리는“불러도대답없는이름만간수하며”(「허밍버드」)산다.우리는모두소중한무언가가도려져나간자리를그대로비워두고산다.“온다고하곤오지않는것들”의이름을밉고아프게담는우리들.“그게용서가되기를바라는이들이모두아팠으면좋겠다”(「그대들은나의좋았던날」)는말은우리가슬픔을대하는최대한솔직한마음일것이다.

얼음이녹아내리듯상태변화한슬픔은흐르고휘발되고섞인다.움직이기시작한슬픔은모두가아는각자의슬픔에서아무도모르는모두의슬픔,이른바실재적슬픔의형이상학이라는결정체를추출한다.(……)새로운행복을선택하는것이진정한삶에이르는선택이라고생각했던바디우의생각은반대의경우에도유효할것이다.새로운슬픔을선택하는것은진정한삶에이르는선택이다.행복의경우와마찬가지로슬픔역시동물적특질들로환원될수없는삶에대해대답해줄수있다는믿음이내게는있다.
_박혜진해설,「내가되지않는시」에서

서윤후에게서슬픔은멀리떼어낼수없는황홀한감정이기도하다.“슬플수록분명하게자라는것”이“되고싶어서상처를애지중지여기던시절”(「눈빛수련」)이있었다.이슬픔은“오직나만을위해준비된슬픔”(해설부분)으로‘나’는슬픔을기꺼이누리며슬픔자체에집중하고있다.슬픔과나의경계가아스라하고어슴푸레해지는동안나는나의슬픔을좀더잘이해할수있기때문이다.시인은내면의슬픔을자꾸만쓰다듬고바라보면서온전히느낀다.서윤후의시들은슬픔을말하며찬란하고황홀하고외롭고고독하다.슬픔의다양한양상이‘미러볼’처럼회전하며펼쳐질때시집은슬픔의빛깔들로다채롭고오묘해진다.
그러나시인은손에고이는슬픔을어루만지면서도슬픔너머를바라보고있다.슬픔은‘나’를온전하게하지만,“서로를보기위해”(「공동언덕」)서는슬픔으로부터고개를들어야하기때문이다.시인은바깥의슬픔을주목한다.“바닥을구슬리는훌쩍거림누추한심장소리목이쉰흐느낌”(「새벽의초인종이들리면누가」)이들려오기를기다릴때,복작거리는소리들은아파하는우리의목소리다.시인은“아파야만아픔이풀릴수있”다며“울음소릴”“내가들어요”(「안마의기초」)라고말한다.슬픔을듣는시간은우리에게무엇을줄까.한없이이어질것만같은슬픔의독해속에서슬픔이깨지는소리가들린다.비로소슬픔바깥으로넘어가는순간이다.

부축을그만하기로해요
넘어지는쪽에서일어나는법을배우진말아요
누가나타날것같다는기대를저버려요

멀리가려는당신의마음을볼수있어요투시력같은건믿음과의심이사랑할때생기는능력이지요
두고가는것과버리는것이다르듯
우리서로의나머지는되지말아요
더하고뺄것없이속삭여요
(……)
감출수록돋아나는우리는
모든걸멈추고잠깐만창피해져요
지금은빨강이필요하니까

우리는과녁앞에쏟아져버린화살이되어
부러지더라도
희미해지지말자는약속을해요
서로의가장빨간부분을겨누면서
멀리가려는뒷모습에
잘가지말라고말하는

오늘은당신이
내게참잘어울리는날이었어요
_「공범」부분

서윤후는우리에게서로다가가고서로를감당하자고말한다.우리는슬픔에약하지만슬픔을이겨낼수있는존재또한우리뿐이다.“잠깐만창피해”질용기를내어“멀리가려는뒷모습에/잘가지말라고말”한다면우리는슬픔을만들어내는헤어짐을극복하고다시만날수있다.“위험한쪽을내다보지않는우리의아늑함을/애태우고싶었는지도모른다”(「피오르드의연인」)며서윤후는우리로하여금안락하고안온한각자의자리에서벗어나게한다.우리가만나는길은결코평탄하지않지만“헐떡일수록질겨지는서로를갈아입고서”(「린넨시절」)과정의힘듦을온전히감내하려한다.서로에게향하는말들은서로를결코포기하지않는다.“사랑은계속뒤섞일테니/가장아름다운범벅이될테니”(「오늘저녁이어느시대인지모르고」).너에게다가가기에‘나’는너무어렵지만,반드시다가가겠다고의지를표명한다.“나는부지런한사랑뿐이라서오래가”(「불개미지옥천사」)기때문이다.그렇게“다른얼굴로만나서/같은표정으로헤어지는”(「모모제인(某某諸人)」),“사랑에흠씬두들겨맞고도계속해서/포옹을여는사람”(「폐막식을위하여」)일우리들에게서윤후는우리가분명만날수있다고,끈질기고다정한용기의말을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