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바닐라 (정한아 소설)

술과 바닐라 (정한아 소설)

$13.50
Description
기혼, 미혼, 그리고 비혼,
각각의 길이 서로 다른 행복으로 통하리라는 믿음
상실이 남긴 빈자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매력적인 인물들을 선보여온 소설가 정한아의 세번째 소설집 『술과 바닐라』가 출간되었다. 정한아는 2005년 대학생 신분으로 등단한 이래 생애주기마다 맞닥뜨린 고민들을 깊이 곱씹어 작품 속에 녹여왔다. 그렇게 작가 자신과 함께 성장해온 소설들은 인간의 삶의 궤적과 긴밀히 조응하며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제 정한아는 사십대에 접어들며 펴내는 이 소설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삶을 집중 조명한다. 작가는 여성 소설가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일과 가정 사이에서 느낀 갈등을 각기 다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다양하게 형상화한다. 유독 여성의 삶에서 결혼과 출산은 한번 넘어서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높은 문턱처럼 여겨지고, 그 결과 여성들은 삶의 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정한아 소설은 이 비가역성을 감수하고 새로운 세계로 발걸음을 내디딘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모든 여성들이 각자의 삶뿐만 아니라 서로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도 이해해나갈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열어 보인다.
저자

정한아

1982년서울에서태어났다.소설집『나를위해웃다』『애니』,장편소설『달의바다』『리틀시카고』『친밀한이방인』이있다.문학동네작가상,김용익소설문학상,한무숙문학상,김승옥문학상우수상을수상했다.

목차

잉글리시하운드독_007
술과바닐라_041
참새잡기_073
바다와캥거루와낙원의밤_107
고양이자세를해주세요_143
기진의마음_175
할로윈_211

대담|정한아×염승숙
실패할수밖에없는싸움을계속한다_245

작가의말_275

출판사 서평

2020김승옥문학상우수상수상작
「바다와캥거루와낙원의밤」수록!

“지나간낙원이실은진짜낙원이아니었듯,
지금의폐허또한진짜폐허가아닐것임을역설적으로보여준다.”
_정소현(소설가)

“지금까지와는다른지점으로건너갈사다리같은작품.”
_염승숙(소설가)

결혼한여자의삶은독하면서도부드럽고,
씁쓸한동시에달콤하다

겉으로는안정되어보이던기혼여성의생활속에서균열을발견하는순간은『술과바닐라』의주요소재이다.가정을이루고안락한주거공간을마련한여성인물들에게찾아오는또다른결의불안감을묘사하며,정한아는‘결혼이주는안정감’이라는오해혹은환상에대해증언한다.
소설집의첫머리에놓인작품「잉글리시하운드독」은이러한중산층여성의심리적갈등을적나라하게내보이며긴장을고조시킨다.남편과아이들을보살피며평범한행복을지키는삶을택한‘미연’은자신과정반대의가치관을토대로자유롭고화려한삶을사는친구‘연주’에게은연중열등감을갖고있다.그래서연주내외가경제적부침을겪을때질투심과희열을번갈아느끼며,아이로부터얻어지는행복을모르는연주를은근히내려다보기도한다.결혼생활에대한미연의만족감이연주의불행에기반해있는것이드러날때,견고해보였던미연의행복은타인에의해언제든역전될위기에처한다.
「기진의마음」은유방암으로인한절실한고통을가까운가족에게도이해받지못하는‘기진’의소외감을그린다.기진의남편은그녀를살뜰하게간병하지만,사실남편의노력에기진에대한배려는결핍되어있다.오히려남편이과거에저지른잘못이고통과함께되살아나기진을괴롭힌다.죽음의공포를느끼는기진에게힘이되어준사람은완전한타인이면서투병생활을함께한‘윤’뿐이다.가족에게깊이이해받기를바라는기대가한계에부딪힐때마다고립감을겪는기진을통해,소설은관계에대한기대를내려놓고홀로설때비로소고독으로부터자유로워질수있다고말한다.
「고양이자세를해주세요」는결혼생활에서파국을맞은‘나’가그후삶을재건하는과정을따라간다.홀로남겨졌다는불안감을감당하지못하던‘나’는요가원에서우연히재회한옛친구‘정우’와급속도로가까워진다.그러나‘나’는상실을극복하지못한채로당장의욕구를해소하는데급급할뿐정우와진중한관계로발전하지못한다.정우와도멀어지고만후에야,‘나’는요가수련을통해몸의지경地境을확장하며마음의영역또한넓혀나간다.자기몫의행복을스스로찾아냈을때진정한평안이깃들고,타인과의행복은그후에도모할수있다는진실이결혼이라는기로에선이들에게중요한시사점을던진다.

어머니로서가져서는안되는마음을정확히쓰는것
혈연조차허상처럼느껴지는가정내에서
자기자신을잃지않으려는꿋꿋한움직임

정한아의여성인물이지닌가장큰특징은파편화된가정에서성장해‘사랑을주는일’에곤란을겪는다는점이다.어머니의부재와아버지의무관심속에서자란그들은모성이라는본능자체에이질감을느낀다.그래서인간으로서의욕망과성취가모성을앞설때마다혼란스러워하기도하고,애정을갈구하는자신의아이를버거워하기도한다.이렇듯정한아는어머니로서가져서는안되는것처럼여겨지는마음들을정확하게기술하면서‘엄마됨’에딸려오는복합적인감정을소설속에고스란히담아낸다.
2020년김승옥문학상우수상수상작인「바다와캥거루와낙원의밤」은친딸에게안정된가정환경을제공하지못한다는죄책감을느끼면서도결혼과이혼,새로운연애를반복하는어머니상을제시한다.딸을전남편에게로떠나보내며어머니로서도여자로서도“사랑에완전히실패”했다고느끼던인물이버림받은이웃아이들에게문득애정을갖게되는장면이따스하다.「참새잡기」는자신을길러준할머니로부터받은애정의정체를확인하고방황하는‘나’의이야기이다.할머니는볼품없는아버지의삶을끝까지책임지기위해희생해왔고,이제는‘나’에게마저그희생을바란다.“아이에관한모든것을후회”하고있던‘나’는할머니에게서정신적으로자립한끝에할머니의감정을이해하고,그감정이자기자신에게도깃들어있음을받아들인다.
표제작「술과바닐라」는출산후에도자신의커리어를포기하지않으려는‘나’를주인공으로삼아직장과가정사이에서분투하는뭇여성의공감을불러일으킨다.설상가상으로‘나’에게는의지할친정이없는데,나이든베이비시터‘이모님’이그빈자리를채워주기시작한다.이모님은‘나’의친정어머니보다가까운존재가되어아이의성장을대신지켜봐주고,‘나’의직업적성공을함께축하해준다.그러나이모님이‘나’의가정에편입되어어머니로서실현하지못했던욕망을대리충족하고있다는사실이드러난후,서서히끓어오르던긴장감이한꺼번에분출되기에이른다.

소설집의말미에는작가의친우이자동료소설가인염승숙과정한아의진솔한대담이실렸다.‘글쓰는어머니’로살아가는일의어려움과,그럼에도불구하고느끼는찬란한기쁨이웃음과눈물에실려생생하게전해져온다.이들은결혼이전의삶을그리워하지도,결혼이후의삶을부정하지도않는다.각각의삶마다서로다른행복과그대가로따라오는고민이존재한다는것을알기때문이다.
정한아소설에서는그빛과어둠이칵테일처럼부드럽게섞여든다.정한아가그리는다양하고또유일한삶의형태들을음미하다보면이해불가능해보였던타인의인생에서새로운의미를발견하는순간을경험할수있을것이다.



“최근에‘엄마됨’에대해긍정적으로그리는서사가거의없는데나부터도그게달갑지는않았어요.엄마로서의나는이렇게소모되고착취당하고있어,라는뉘앙스들이굳어진정서가돼버릴까봐두렵기도하거든요.엄마가됨으로써얻어지는새로운감각-관계맺음을통한시야의확장,유연함이라는무기,물리적삶의극복이라는측면이분명히있으니까요.이소설집에서그것이제대로쓰였는지는모르겠지만그런이야기를하고싶었고계속해나가고싶다는생각이들어요.행복이라는것이꼭쾌감,불쾌감의두가지감각만으로가늠되는것은아닐거예요.아주복합적이고,세밀하고,또매순간새로운것이죠.삶도같을거예요.”
_정한아,대담「실패할수밖에없는싸움을계속한다」중에서

정한아작가는정공법으로폐허를재현한다.언뜻무사해보였던일상이,견고해보였던관계가미세한균열로부터무너져내리는과정을핍진하게그려낸다.작가의섬세한시선을따라가다보면우리가한때아름다웠던시간속에있었음을,아름다운줄도모르고그시간을떠나와버렸음을,그시간은다시돌아오지않으리라는것을사후적으로깨닫는한순간을체험하게된다.작가는과거를미화하거나미래를낙관하지않는다.지나간낙원이실은진짜낙원이아니었듯,지금의폐허또한진짜폐허가아닐것임을역설적으로보여준다.이강렬한미적체험은우리를서늘하게하는동시에폐허위로새로피어날풍경을기대하게한다.설령아무것도없다해도,조금늦는다해도괜찮다.함께파도를바라보는마음,온기를잃지않으려는마음,간절히기도하는마음만으로도이미아름답지않은가._정소현(소설가)